고향 해남을 떠나 전국 각지에서 터 닦고 살고 있는 출향민에게 고향은 늘 그리운 곳이다. 이제 객지가 제2의 고향이 될 정도로 길게는 수십 년 타지에서 살고 있다 해도 이들에게 해남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다. 이들 향우들이 객지에서 바라본 고향 모습을 전하면서 앞으로 더 발전된 해남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데 대한 의견을 모았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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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훈<재광향우> |
| 내 인생의 자양분
고향은 늘 마음을 다독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고향 품에 안기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매스컴이나 고향에 다녀오면서 듣는 소식은 매우 우울한 것들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해남에서 낳고 자라는 청소년이나 군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비전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지도자를 세우고 결정하는데 있어서 인간적 자질과 도덕성은 물론 세계적인 흐름을 읽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경영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 뽑히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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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남(재광산이향우) |
| 그리움과 설렘 그리고 계영(戒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남을 떠나 대학시절,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간혹 해남을 방문하곤 했다. 해남이라는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나로서는 마음의 안식을 구하고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몰래 해남을 찾았다. 나이 40을 넘기며 이름을 하나 더 얻었다. 바로 계영(戒盈)이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만 하던 어머니, 배운 것은 많지 않았지만 뭔가를 가르칠 땐 누구보다 엄격했던 어머니가 늘 강조했던 '분수껏 살라'는 말씀을 이름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해남은 어머니와 같은 곳이다. 어머니의 이 말은 오늘 해남인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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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수(재광화산향우) |
| 항상 가보고 싶은 해남으로…
광주에서 해남인 만남의 장인 재광해남향우회는 타 지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정작 해남의 자랑거리는? 해남의 상징성, 소위 말하는 해남의 랜드마크격인, 그 무엇이 마련됐으면 좋겠는데…. 대한민국 육지 끄트머리 땅끝, 아니면 공룡화석지, 대흥사 일원 등 조금은 그럴싸한데 2%가 부족한 듯싶다. 요즘 나들이에는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가 기본인데 우리 해남은? 1박2일 코스 상품을 만들면 외지인들이 해남에 와서 지갑을 열고 색다른 체험과 추억을 만든다면 그것이 바로 해남의 브랜드가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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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기(재울산향우) |
| 따뜻한 고향이 그립다
지난 2002년 4월 해남군민의날 행사를 기억한다. 지역개발 유공자로 해남군수 표창장을 받은 날이다. 해남문화예술회관이 준공된 축제의 날이기도 했다. 출향 향우들이 끈끈한 애향심으로 고향담배판매 운동을 전개해 맺은 결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고향 떠난 세월만큼이나 자꾸 멀어져가는 고향. 떠난 자 만이 찾아가야 하는 것인지. 흩어진 향우를 다시 만날 기회는, 자리는 없는 것인지. 출향인의 애환을 격려해줄 곳은 없는지. 옛날 끈끈한 애향심으로 고향에 봉사할 기회는 누구의 몫이 돼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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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우(재제주향우) |
| 군민 모두 화합을
우리 향우는 고향 발전에 봉사하며 불우이웃돕기, 한동안 내고향 담배 팔아주기, 쌀 판매 협조, 경로당에 제주 감귤 보내기, 내고향 관광홍보 등 많은 일을 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기에 2년 마다 군민과 향우가 하나 되어 만나는 자리인 해남군민의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올해 군민의 날에 2년 마다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온 행사를 특별히 올해 문제 삼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았다. 군민과 향우가 화합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군민의 날 행사를 너무 정치적인 잣대로 재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다. 진정한 해남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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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재제주향우) |
| 해남·제주 바닷길 이어지길
제주도가 해남과 거리상 가까워서인지 이곳 제주에는 해남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다. '해남촌' 이라 불리는 마을도 있으니, 해남사람이 정말 제주에 많이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유럽처럼 육지와 제주를 잇는 바닷길이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꾸어 본다. 안개 낀 영국 도버해협을 통과하며 느꼈던 지난날 항해사 시절을 되돌아보며, 바다 밑에는 지하철이 달리는 그곳처럼, 제주와 해남을 연결하는 차도가 열리고, 바다 밑으로 고속열차가 달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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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용(재경문내향우) |
| 꿈에도 그리운 고향
땅끝 해남을 사랑하는 출향인사들이 서로 단합하고, 화합해 어느 누가 보더라도 단합된 향우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사랑하며 당신의 밥이 되고, 해남 물감재(고구마)가 되어 바보 향우가 됩시다. 고향 해남은 시시각각 변화되고 발전하여 갑니다. 떠나는 향우들이 귀향하는 터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향우들도 살기 좋은 고향 해남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 주위에서 해남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꿈속이라도 그 곳에서 편히 쉴 수있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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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욱(재경화원향우) |
| 내 고향은 국보?
젊은이 자네 고향이 어딘가? 해남인데요! 그래 맞다. 해남 풋 나락, 물감자.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인데요? 그래 얘기하지, 익지도 않은 나락을 탈곡하여…. 열변을 토하며 설명이 자자하다. 은근히 화가나 말대답을 했던 기억들, 어릴 적에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국보급 특산물들, 정겨움이 묻어나는 곳, 내 고향 해남. 출향 후 변해가는 고향의 대역사 지도는, 과거 어릴 적 낙후되어 힘겨울 때 들었던 풋 나락의 정감을 소리 없이 잠재우고, 그 얘기 들려주던 그 아저씨 안부가 궁금하기만 하다. 시간만 흐르고 흔적의 자국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국보를 간직한 고향이 있어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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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림(재경황산향우) |
| 고향 발전의 파수꾼이기를
'누군가의 기쁨이 되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요, 누군가의 슬픔이 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내게 해남신문 한 부 한 부는 이미 신문의 역할을 뛰어 넘어선, 고향과의 정서적인 유대를 탯줄처럼 이어주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전국마라톤대회 등 각종 문화체육사업을 정례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해남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자랑거리 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내적, 외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해남신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해남신문이 고향발전에 가일층 파수꾼이 되고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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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종(재경마산향우) |
| 세계를 움직이는 해남 만들자
땅끝 해남의 지리적 여건 속에 높은 단결력, 도덕성이 살아 있는 인간애, 강한 자긍심 등이 해남인을 서서히 움직이고 있고 변화시켜왔다. 우리는 해남의 이런 특성을 최대한 살려 다른 시·군과 다른 차별화전략(고구마, 조선단지, 공룡단지, 땅끝마을 등 지역특구 지정 필요)으로 경제 자립도를 높이고 인구유입이 더 많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도덕성이 살아 있는 지방도시에서 세계를 움직이고 이끌어가는 중심도시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 때 우리 해남에서 머지않아 세계를 이끌어 나갈 인물도 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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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옥(재경북일향우) |
| 상부상조하는 삶
우리 고장은 자연환경과 뛰어난 관광지로의 가치를 지닌 전형적인 농촌입니다. 인심이 온화하고 효행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예절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장의 선후배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삶의 터전을 두고 향우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서로 상부상조하며 형제처럼 살고 있습니다. 15대 집행부가 출범하였습니다만, 각 단체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향우들 내 의견이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들의 의견을 조화롭게 추슬러 읍면 단위 회장들의 공감대를 이루는 일이 15대 집행부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