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B 이야기’
아르헨티나 김인서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 합니다.
베르나베 1월호에서 잠깐 소개해 드렸던 베르나베 목사님과는 1989년 신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청년이었 던 저는 신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현지에 적응하고 있었고, 같은 반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한국에서 신학을 마치고 이민을 갔기 때문에 2년간 연 수한 후 집에서 가까운 다른 신학교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리고 제가 총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아르헨티나 에 갔을 때 베르나베 목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 다. 그는 신학교 3년 과정을 모두 마친 뒤, 메시의 고 향으로도 잘 알려진 ‘로사리오’와 처가가 있는 아르헨 티나 북쪽 국경 지역 ‘살따’에서 목회했습니다.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200킬로미터 떨어진 ‘네우껜’으로 가서 소망 없이 살아가는 빈민가 주민들을 섬기기 위해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었 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목회자 세미나 사역도 네우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베르나베 목사님이 개척한 복음 중심교회는 주민센터를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센터 책임자가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통보하면서 갑자기 예배 처소를 잃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때 네우껜한인교회 손호정 목사 님과 성도들이 예배당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셨고, 그 은혜로 복음 중심교회는 지난 15년 동 안 안정적으로 예배드리며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베르나베 목사님은 우버의 경쟁사인 까비파이 플랫폼에서 운전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서 네우껜한인교회 예배당에서 복음중심교회를 목회 하고, 저의 목회자 세미나 사역에도 함께 동역하고 있 습니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로레나 사모님과 세 딸 드보라, 야엘, 아멜리와 함께 아르헨티나 복음화를 위 해 묵묵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때 오랜 친구 베르나베 목사님을 다시 만나지 못했 다면 목회자 세미나 사역은 몇 년 늦어졌거나 어쩌면 시작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맺어 주신 인연을 다시 이어 주셨고, 이제 두 사람은 복음 중심교회와 목회자 세미나 사역을 서로 돕고 함께 세워 가는 귀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37년 전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 나님께서는 이미 오늘의 동역을 준비하시며 만나게 하 셨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함께 복음을 위해 섬기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함께 신학공부를 하며 평생의 동역자가 된 베르나베 목사님(맨 왼쪽) 바실리아 약 15년 전, 선교 초기의 일입니다. 당시 현혜옥 선교 사의 건강이 좋지 않아 한동안 집안일을 도와줄 현지인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 청소를 도와주었던 분이 바로 바실리아였습니다. 그 녀는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가사 도우미 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성실하고 정직했으며, 언 제나 좋은 태도로 일했습니다. 계속 함께하고 싶을 만 큼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 가정의 형편상 아내 현혜옥 선교사의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만 매주 한 번씩 도움을 받았는 데 다른 곳에서도 바실리아를 찾는 사람이 많아 시간 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우리가 부탁할 때면 어떻게 든 시간을 내어 찾아오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미처 생 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목사와 선교사를 섬긴다 는 마음으로 더욱 정성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실리아가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렵다 10 111111 고 했습니다. 어깨가 너무 아파 물건조차 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현혜옥 선교사는 교회에 와서 침을 한번 맞아 보라고 권했습니다. 당시 3월호 에서 소개해 드렸던 윤낙호 장로님께서 주일 예배 전 후로 성도들에게 침을 놓아 주며 의료 선교사역을 하 고 계셨습니다. 바실리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와 침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 한 번의 침 치료 후 어깨 통증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침 치료의 효과는 사 람마다 다르고, 한 번의 치료로 이렇게 좋아지는 경우 는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우리 모두에게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 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바실리아를 통해 소문이 퍼지면서 한 달 동안 바실리아의 친척 스 무 명가량이 교회를 찾아와 등록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과의 작은 만남과 섬김이 예상하지 못했던 복음의 통로로 이어진 것입니다. 얼마 후 아르헨티나에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바실리 아는 칠레로 떠났습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바실리아에게 있었던 특별한 일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소중한 간증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실리아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더욱 굳건하 게 세워져 가기를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안 2015년 새 학기, 두란노 신학교 학장님의 추천으로 신 학생 브라이안이 우리 비다 아분단떼 교회에 찾아왔습 니다. 브라이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약 700킬로미터 떨어진 바이아 블랑까에서 올라온 신실 한 청년이었습니다. 브라이안은 학구열이 높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하나 님 나라의 귀한 일꾼입니다. 아르헨티나의 개신교 신 학교 대부분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학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가 신학교를 마쳤을 때 저는 앞 으로 주님의 일을 더 폭넓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공식 적으로 인정받는 학위도 필요하다고 권유했습니다. 그 권유를 받아들인 브라이안은 대학에서 학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과정을 밟아 가정사역과를 이수했고, 이 어 모론대학교에서 교육학 학사과정을 마쳤습니다. 현 재는 대학원 과정까지 모두 이수하고 교육학 석사학위 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된다면 기독교 교육 분야에서 몇 안 되 는 아르헨티나 개신교계의 젊은 학자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계속하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금도 건축 현장에서 일하며 주경야독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며, 주말 에는 신학교에서 몇 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 다. 형편이 어려운 아르헨티나 신학교에서 거의 무보 수에 가까운 강사료를 받으면서도 아르헨티나 교회와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힘을 드리고 있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자 신이 배운 그것을 다시 신학생들에게 가르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브라이안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잘 이겨 내어 훗날 아르헨 티나 교회와 신학교육을 든든히 세워 가는 귀한 기독 교 교육학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