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 지음
이 책은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 <고사관수도>, 안견 <몽유도원도>, 윤두서 <자화상>, 김홍도 <주상관매도>, 윤두서 <진단타려도>, 김정희 <세한도>, 김시 <동자견려도>, 김홍도 <씨름>과 <무동>, 이인상 <설송도>, 정선 <인왕제색도> 등 조선시대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다.
좋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쁘게 서두르다 보면 참맛을 놓치게 된다. 찬찬히 요모조모를 살펴보고 작품을 통하여 그린 이의 손 동작을 느끼며 나아가서 그 마음자리까지 더듬어 가늠해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정녕 시간을 넘어선 또 다른 예술 공간 속에서 문득 그린 이와 하나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 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 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p7
김명국의 <달마상>에는 색色이 없다.. 먹의 선線, 그것은 형태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의 흐름이기 때문에 사 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 은 껴앉을 자리가 없었다. 색이 필 요하지도 않았지만 거기에 색을 칠 할 수도 없었다.p23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고요한 그림이다..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 림'이니 고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바라보는 선비의 시선이 물의 흐름처럼 잔잔하지 않은가? (…) <고사관수도>는 그러나 움직이고 있다. 작품 속의 모든 것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p34
오늘날까지 전하는 조선의 옛 그림 가운데 가장 귀한 작품을 하나만 들라고 하면 물론 매우 비예술적이 고지각 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아 무래도 <몽유도원도>를 들 수밖에 없다. <몽유도원도>는 한 편의 장대 한 교향시다.p61
<자화상>을 바라보는 나는, 이를테 면 그림 속의 윤두서와 그것을 그리는 또 하나의 윤두서, 그 두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나는 그려진 윤두서의 고요함 속으로도, 그린 윤두서의 강한 의지 속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 윤두서가 나지막이 윤두서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누구인가, 네가 나인가, 너는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가.p98
만약 하늘이 꿈속에서나마 소원하 는 옛 그림 한점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준다고 하면 나는 <주상관매도> 를 고르고 싶다. 이 작품의 넉넉한 여백 속에서 시성 두보의 시름섞인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 아 니라, 늙은 김홍도 그분의 풍류로운 모습을 아련하게 느낄 수 있으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옛 음악의 가락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