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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6장 14- 7장 1절. 악한 자와 멍에를 갈이 매지 말라.
앞부분에서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하나님과 화목’하고(5:20), ‘바울 자신에 대해서 마음을 넓히라’(6:13)고 말한 바울은, 이제 ‘불신자와는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6:14)고 경고합니다.
이 말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반바울파 사람들과 상대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초월하여,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불신자와는 구별되어야 할 것과(14-16절) 부정한 것(17절), 더러운 것(7:1)으로부터 성별되어야 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앞 절과 연관 속에서 사랑으로써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애정에 대한 보답으로 너희는 자신의 행복과 경건을 위해서 불신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고후 6:14 참고)
우리는 이 부분에서 ‘거룩’(holiness) 혹은 ‘구별됨’(separation)과 ‘사랑’(sympathy) 혹은 ‘선교’(homogeneousness :동질화, friendship:친구가 됨)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별된 삶”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4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o not be bound together with unbelievers; for what partnership have righteousness and lawlessness, or what fellowship has light with darkness?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Μὴ γίνεσθε ἑτεροζυγοῦντες ἀπίστοις·
not become unequally yoking together with unbelievers
직역하면 ‘불신자들과 함께 불합치한 멍에를 매는 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멍에를 함께 매는 자가 되지 말라’에서 두 개의 동사(γίνεσθε ἑτεροζυγοῦντες) 중 앞의 동사(γίνεσθ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become) 되지 말라는 것이고, 뒤의 동사(ἑτεροζυγ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unequally yoking together) ‘불합치한 멍에를 매면서’라는 뜻이고, 원형(ἑτεροζυγέω)은 ‘다른’(ἕτερος)이라는 접두어와 ‘멍에’란 단어(ζυγός)의 합성어로서 ‘다른 멍에를 매다’는 뜻입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τίς γὰρ μετοχὴ δικαιοσύνῃ καὶ ἀνομίᾳ,
what for partnership (have) righteousness and lawlessness,
직역하면 ‘왜냐하면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는 뜻인데, 실상 동사는 없지만 한글 번역은 적절한 번역입니다.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ἢ τίς κοινωνία φωτὶ πρὸς σκότος;
or what fellowship light with darkness ?
동사가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English Standard Version: 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매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겠느냐? 또한 빛과 어둠이 어찌 함께 사귀겠느냐? (Do not be unequally yoked with unbelievers. For what partnership has righteousness with lawlessness? Or what fellowship has light with darkness?)
1. 앞부분에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과 화목하고(5:20), 바울 자신에 대해서 마음을 넓히라(6:13)고 말한 바울은 이제 믿지 않는 자와는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6:14)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반바울파 사람들과 상대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초월하여,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불신자와는 구별되어야 할 것(14-16절)과, 부정한 것(17절), 더러운 것(7:1)으로부터 성별되어야 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3. 바울 사도는 앞 절과의 연관 속에서 사랑으로써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애정에 대한 보답으로, 너희는 내 말에 귀담아 듣고, 너희 자신의 행복과 경건을 위해서 불신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Do not be yoked together with unbelievers)
1. ‘멍에’의 개념은 결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고,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즉 혈통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거나,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연합하는 것은 서로 다른 멍에를 지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2. 모든 것은 유유상종하게 마련입니다.
돼지는 돼지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돼지들끼리 진흙에서 놀고, 양은 양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들끼리 풀밭에서 놉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모이고자 합니다.
3.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개념은 신명기 22장 10절에서 왔습니다: “소와 나귀를 함께 겨리하여 쟁기질하지 말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소는 깨끗한 동물이고, 나귀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신 14:1-8)
따라서 이 둘을 함께 멍에 메우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같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둘을 함께 멍에 매는 것은 잔인한 짓입니다.
4. 이와같이 신자를 불신자와 멍에 메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교사들), 실제로는 사탄의 종들과 협력하는 것은 그들이 제아무리 매혹적이고 설득력이 있을지라도, 서로 맞지 않는 멍에를 메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연합과 친교를 해치는 것입니다.
5.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성경 본문을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불신 청년이 처음에는 믿는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앞으로 잘 믿겠다고 약속하고 결혼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전혀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처녀도 잘생긴 총각이 있으면, 불신자라도 앞으로 전도하겠다고 하면서 결혼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불신자 남편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잘 믿는 총각이 예쁘고 직장이 좋은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억지로 불신 처녀를 교회 나오게 해서 결혼하지만, 실제로 결혼생활 하면서 신앙생활에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무리 부부지간이라고 할지라도 살아가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결정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서로 싸우게 됩니다.
신자는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나, 불신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6. 불신 결혼을 하면 전도가 잘되지 않습니다.
왜 안 되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놓고, 전도하겠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전도하겠다는 마음으로 불신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불신자와 결혼하려거든 결혼하기 전에 교회에 데리고 다녀서, 예수 믿는 증표를 확실히 보고. 세례 받은 후에 결혼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7. 또 한 가지는 <믿지 않는 자와 동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 공장을 세울 때, 안 믿는 사람과 한 회사를 차려서 잘해보자는 사람이 있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골치 아픕니다.
한 사람은 주일날 공장을 돌리자고 할 것이고, 한 사람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면, 서로 책임지라는 말이 오고 갈 것이고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핑계가 좋습니다.
안 믿는 사장이 공장을 주일날에도 돌리자고 하니 돌리도록 놔두고, 믿는 자기는 교회 나갈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다고 하는데, 옳은 생각이 못됩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잘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일을 해도 예수님과 이웃에게 잘하려고 하고, 불신자는 이기적으로 돈만 벌려고 하기 때문에, 동업을 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고 맙니다.
그래서 불신자와 동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에 취직해서 들어가는 것은 괜찮지만, 사업을 같이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많은 시험과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2) 그러면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과 관계를 끊어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수도사가 되어, 사회를 떠나 은둔생활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과 상거래도 말고, 애경사에 오고 가지도 말고, 시민으로서 의무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여기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것은 도무지 불신자와 사귀지 말라든지, 그들과 사회적, 사무적 접촉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도무지 불신자와 관계하지 않고 살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서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9-10.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즉 음행자와 사귀지 말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러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7:12-13.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즉, 이미 결혼한 불신 배우자와 결혼하다가 자신이 믿게 된 경우에 불신 배우자가 싫어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을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즉, 불신자 집에서 잔치를 배설하고 초청한 경우에 잔치 자리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3) 이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형식보다는 실질 내용이 중요합니다.
즉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은 형식보다는 내용상 불신앙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일에 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불신앙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비단 결혼뿐만 아니라, 사업 관계와 일상 교제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즉 불신자와의 일상적인 교제나 사업 관계가 죄는 아니지만, 개업식을 하면서 우상을 섬기게 된다든지, 세금을 포탈한다든지, 도덕적인 심각한 죄를 짓는다면, 아무리 친한 인간관계라고 하더라도,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상숭배를 같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개업식에 우상 제물을 놓고 돼지 대가리 입에 돈을 넣어달라고 해도, 단호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불신자가 동호회를 만들어서 주일을 어기고 골프나 낚시를 하러 가자고 해도 함께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신자가 사업상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 회식을 하고, 술 대접을 하고, 돈을 주고, 성접대를 하자고 해도 단호히 거절하시기 바랍니다.
불신자가 사업상 관계 공무원에게 접대를 하면서, 뇌물성 선물을 하자고 해도, 동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신자가 하청업체 사람들에게 접대를 받자고 해도 대가성 있는 접대를 사양하시기 바랍니다.
② 그러나 불신자와 기독교인이 공통으로 함께 살아가는 활동 분야가 있습니다.
즉 친척이나 친구들과 명절이나 애경사 때 인사하고 친교 생활에 협력하는 일은 잘해야 합니다.
시민으로서 나라에 대한 의무는 잘 이행해야 합니다.
공공 대중을 위한 공공 생활에 협력하여, 함께 청소하는 일 등을 잘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대상이 불신자라고 해서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와도 직장에서 상호협력과 학문적인 연구를 잘 협력해야 합니다.
상거래나 전문적인 직업상 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일은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저들에게 전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5:30-32.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③ 그런데 기독교인들만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할 분야가 있습니다.
즉 예배 생활, 교회에서 봉사 생활, 복음 전도와 기도 생활, 그리스도인들과 친교 활동 등입니다.
즉 기독 신자가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하려고 하는데, 불신자가 시간을 같이하자고 해도, 자신의 신앙생활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불신자만이 아니라 심지어 제자들도 떼어 놓고, 혼자서 따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마태복음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숭배자나 불신 이단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복된 교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과거에 동명 교회 청년회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매우 행복한 교제를 했습니다.
주일 오후에는 가정마다 돌아가면서 그곳에서 쉬고 친교하고, 아이들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가정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은밀한 것까지도 기도 제목으로 내놓고 기도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애경사나 사업이나 자녀 문제를 형제처럼 도왔습니다.
이처럼 마음 열어놓고 친밀해져서 심지어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근 3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아름다운 친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 청년들이 지금은 모두 장로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끼리 아름다운 친교를 나누면서 행복한 교회 생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의와 불법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통치자는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범죄자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경찰은 범죄자를 체포해야 하고, 함께 식사하고 놀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도둑놈이 가족을 해치려고 하면, 가장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둑놈을 때려잡거나 몰아내야 합니다.
몸속에 나쁜 병균이 들어와서 건강을 해치려고 하면, 약을 써서 병균을 죽이거나 퇴치해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에서도 이단자가 침투하면, 목회자는 이단자를 처벌하고 출교시켜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도 바울 사도를 추종하든지, 율법주의 이단자들을 추종하든지 둘중에 하나만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자연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즉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또한 어둠이 깃들면, 태양 빛은 물러갑니다.
이처럼 태양 빛과 어둠을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교회 안에서도 정통신앙과 이단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즉 교회 안에서 어둠인 이단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바울을 추종하고, 율법주의 이단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15절.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Or what harmony has Christ with Belial, or what has a believer in common with an unbeliever?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τίς δὲ συμφώνησις Χριστοῦ πρὸς Βελιάρ,
what now harmony Christ with Belial
동사가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ἢ τίς μερὶς πιστῷ μετὰ ἀπίστου;
or what part to believer with unbeliever ?
동사가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으며, 신자와 불신자가 어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느냐? (Or what harmony has Christ with Belial, or what has a believer in common with an unbeliever?)
1.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벨리알>은 히브리어로 ‘똥파리’란 말로서 마귀 사탄을 가리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 마귀가 조화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마귀는 결코 타협과 조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끼리는 서로 양보하고 협력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와 마귀는 서로 타협하거나 협력할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을 섬기든지 마귀를 섬기든지 양단간에 선택해야 하고, 예수님도 섬기고 마귀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도 정통 신앙을 전수해준 바울을 따르든지, 율법주의 이단을 따르든지 양단간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혼합주의(syncretism) 신앙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평상시에는 교회에 잘 다니면서, 명절만 되면 조상 귀신에게 절하고, 조상 귀신에게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배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상신들도 섬겼습니다.
이것은 많은 신을 섬기면, 하나님도 복을 주시고, 우상신들도 복을 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지, 우상신들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28:22-23.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헬라의 아테네 사람들도 우상신들을 빠짐없이 섬겨야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름을 모르는 신에게>라고 새기면서까지 우상신들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도행전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러나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과 호흡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여기서 <상관한다>는 단어(μερὶς)는 서로 결혼하여 몸을 섞는다는 뜻입니다.
즉 믿는 성도와 불신자가 결혼해서 한 몸으로 몸을 섞어서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이고, 불신자는 귀신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한 가정에서 기독신자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데, 불신자가 귀신을 섬기고, 부적 쓰고, 아이가 아프면 무당 푸닥거리하고, 귀신에게 제사하면서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사람이 불신자로 결혼했다가 후에 한쪽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 성도들이 한 몸을 이루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한쪽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데, 다른 쪽은 율법을 믿고 섬긴다면, 한 교회에서 한 몸을 이루며 신앙생활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몸으로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려면, 신앙과 정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마음과 한뜻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참된 공동체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와 말씀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6절.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And what agreement does God's sanctuary have with idols? For we are the sanctuary of the living God, as God said: I will dwell among them and walk among them, and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will be My people.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τίς δὲ συνκατάθεσις ναῷ Θεοῦ μετὰ εἰδώλων;
what now agreement temple of God with idols ?
동사가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ἡμεῖς γὰρ ναὸς Θεοῦ ἐσμεν, ζῶντος·
we for temple of God we are, living
직역하면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ἡμεῖς: we)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살아계신’(ζῶντος)은 현재분사로서(living) 현재 살아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앞의 동사(ἐσ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are) ‘우리는--이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καθὼς εἶπεν ὁ Θεὸς
as said the God
‘이르시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확실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ὅτι Ἐνοικήσω ἐν αὐτοῖς, καὶ ἐνπεριπατήσω,
that I will dwell in them, and I will walk (among them )
‘거하며’(Ἐνοικήσω)는 미래형으로서(I will dwell) 장차 거할 것을 가리키고, ‘두루 행하여’(ἐνπεριπατήσω)도 미래형으로서( I will walk) 장차 두루 행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καὶ ἔσομαι αὐτῶν Θεός,
and I will be of them God
‘되고’(ἔσομαι)도 미래형으로서(I will be) 장차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καὶ αὐτοὶ ἔσονταί μου λαός.
and they they will be my people
‘그들은’(αὐτοὶ: they)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되리라’(ἔσονταί)는 미래형으로서(they will be) 장차 될 것을 가리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연합할 수 있으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성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겠고, 그들 가운데서 행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고 했기 때문이다. (And what union can there be between God's temple and idols? For we are the temple of the living God. As God said: "I will live in them and walk among them.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will be my people.)
1.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1)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성전은 거룩한 예배당이고, 우상 섬기는 절간이나 귀신에게 제사하는 제각이나 무당집은 우상 귀신을 섬기는 더러운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당은 거룩한 곳으로 성별해야 하고, 예배당에서 술 먹고 춤추고 노는 장소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절간이나 제각이나 무당집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당에서 중들이 목탁을 두드린다든지, 무당이 굿을 해서도 안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당과 우상 귀신을 섬기는 우상 신전은 서로 일치가 될 수 없습니다.
(2)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 당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유대교라는 우상을 섬기는 율법주의 이단자들과 동일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오늘날도 목사와 이단 교주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목사나 이단 교주를 다 같은 기독교라고 욕을 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에게 배우든지 이단 교주에게 배우든지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정통과 사이비, 진짜와 가짜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시대에도 이단자들과는 인사도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이서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2.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1)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모임체를 가리키며,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는 장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성전입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자들은 우상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귀신의 종 무당이 하라는 대로 하기 때문에, 우상의 신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과 귀신을 섬기는 귀신의 신당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들과 귀신 숭배자들이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며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의 신전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는 그릇 하나도 성물로 구별되기 때문에, 세상 용도로는 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물건과 집과 사람은 <온전히 바친 것>(חֵ֖רֶם 헤렘. 여호수아 6:17-19)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상 신전에서 사용한 우상의 그릇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가져다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몸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사용하는 하나님의 성전 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 기물인 성도의 몸과 귀신을 섬기는 우상 신전의 기물 된 불신자의 몸을 하나로 섞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3) 그러므로 성도들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든지 우상숭배의 신전이 되든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지, 양다리 걸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하면 우상 신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우상 신전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4) 이와같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하나님의 종인 바울을 선택하든지, 율법주의 이단자를 추종하든지 해야지, 중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이 말씀은 출애굽기 29장 4절과 예레미야 31장 1절을 복합적으로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세 가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2)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주하고 임재해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3) 두루 행하여
둘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두루 행하시며 다스리시며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4)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셋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을 모신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5)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가장이 가족과 함께 살면서 보호하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함께 하셔서,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십니다.
(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그들과 함께 행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느 장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곳에 늘 함께 계시고, 보호하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통 우상은 우상 신전에만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우상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가는 곳에 어디든지 함께 하셔서,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식이 필요할 때는 만나를 주시고, 물이 필요할 때 물을 주시고, 밤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불기둥을 주시고, 낮에는 더위를 이길 수 있도록 구름 기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말렉 적군이 침략할 때는 아말렉 적군을 무찔러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한 곳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고, 두루 행하시며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돌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늘 함께하셔서 보호하시고 돌봐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예배당 안에서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에 나가서 생활할 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서도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고, 순간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배당 안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과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8)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종인 바울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율법주의자들 앞에서는 율법주의를 따르는 것 같고, 바울 앞에서는 복음을 따르는 것 같이 처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이중인격자처럼 변덕스럽게 처신해서는 안 되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봐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돌봐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7절.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Therefore, come out from among them and be separate, says the Lord; do not touch any unclean thing, and I will welcome you.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διὸ ἐξέλθατε ἐκ μέσου αὐτῶν, καὶ ἀφορίσθητε,
therefore come out from midst of them, and be separate
‘나와서’(ἐξέλθα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come out) 단호하게 나오라는 뜻입니다.
‘따로 있고’(ἀφορίσθητε)도 부정과거 수동태로서(be separate) 단호하게 따로 있어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λέγει Κύριος,
says Lord
모든 사본에 다 첨가되어 있는데, 우리 한글 번역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동사(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현재 말씀하고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καὶ ἀκαθάρτου μὴ ἅπτεσθε·
and unclean nothing touch
동사(ἅπτεσθ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touch) 언제나 만지지 말라는 뜻이빈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κἀγὼ εἰσδέξομαι ὑμᾶς,
and I will receive you
‘영접하여’(εἰσδέξομαι)는 미래형으로서(will receive) ‘영접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1. 오늘 본문에는 2가지의 명령이 나타나 있습니다 :
① 불신자에게서 떠나라(17절)
②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17절)
2.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1) 이것은 이사야 52장 11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2) ‘거룩한 것’은 ‘구별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우상의 세계에서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세상과의 격리는 육체적, 공간적, 사회적인 격리가 아니라, 도덕적, 영적인 격리입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고린도 성에서 타지역으로 이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우상숭배나 성적 타락에 깊이 물든 고린도 도성의 불신자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대로 정결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명령하신 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별”이란 떠난다(departure)는 부정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한다(dedication)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떠나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We must separate from sin and dedicate unto God)
(3) “성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성경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방인과 혼합결혼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민 33:50-56)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그 때문에 벌을 받았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하다가 결국 앗수르에 포로되어 가고,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민족들과 구별될 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나, 그들이 이방인들과 섞이기(혈통과 종교, 문화) 시작할 때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민 33:50-56, 신 7:1 ff).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방인과의 ‘구별’의 의미를 백성들에게 다시 가르쳤습니다. (에스라 9-10장, 느 9:2, 10:28, 13:1-9, 23-31)
심지어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을 이혼시키고, 혼혈아들의 머리털을 잡아 뽑았습니다.
(4) 우리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거짓된 성별을 배척하시고, 제자들에게 바리새파와 사두개인의 누룩(거짓 교훈)을 주의하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보호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마 16:6,11. 요 17:14-17)
사도들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교리적 성결과 개인적 성결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신자들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과 동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훈과 사도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자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출 12:1-2, 16:17, 20 등).
(6) 그러나, “성별의 교리”에 있어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교리적이고 개인적인 성별을 원하지만, 주변의 가련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죄인에게서 떠나 있고 더러움이 없는 거룩한’ 분이셨지만(히 7:26), 또한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눅 7:34)
유능한 외과 의사처럼, 우리는 오염받지 않으면서 수술을 집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사역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격리시키게 될 것입니다!
3. 저희 중에서 나와서
바벨론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자들이 득실거리는 바벨론에서 떠나, 고국으로 귀환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신 세상에 대한 상징적인 말씀입니다.
4. 따로 있고
부패케 하는 영향력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52장 11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우상숭배자, 불신자와 부당한 관계를 맺지 말고, 저들을 떠나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5.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구약 성경에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경고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예컨대, 시체나 부정한 사체나 병으로 인한 배설물을 만지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영적인 부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리는 똑같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를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어떤 교훈으로부터 우리를 성결하게 지켜야 하겠습니다.
6.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내가 너희를 내 아들딸로서, 내 백성으로서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영접을 바로 우상 숭배자들과 세상에서 떠나서 회개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즉 불신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만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님만이 가능하게 하시고, 예수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할렐루야!
18절.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 will be a father to you, And you shall be sons and daughters to Me," Says the Lord Almighty.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καὶ ἔσομαι ὑμῖν εἰς Πατέρα,
and I will be to you into Father
동사(ἔσομαι)는 미래형으로서(I will be)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καὶ ὑμεῖς ἔσεσθέ μοι εἰς υἱοὺς καὶ θυγατέρας,
and you you will be to Me into sons and daughters
‘너희는’(ὑμεῖς: you)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되리라’(ἔσεσθέ)는 미래형으로서(you will be)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λέγει Κύριος Παντοκράτωρ.
says Lord Almighty
직역하면 ‘전능하신 주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동사(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현재 말씀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될 것이고, 너희는 내 아들딸들이 될 것이다’고 전능하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And, "I will be a Father to you, and you will be my sons and daughters, says the Lord Almighty." )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1. 아버지는 자녀들의 보호자요, 물질적인 공급자요, 사랑하는 자요, 상담자와 안내자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는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마음에 사랑을 공급해주시고, 어려울 때 기도를 들어주시며, 말씀으로 길을 인도해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2. 마귀의 자녀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1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사무엘하 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만나와 생수를 먹이시고, 옷이 헤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주시고, 아말렉 적군을 물리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시고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우리들은 늘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 아래서 살아가야 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보호를 떠나면, 이리와 같은 마귀가 노략하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늘 받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 예수님은 양된 우리들에게 좋은 꼴을 먹여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양의 문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1-10.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1. 우리가 부자의 자녀가 되는 것이나 권력자의 자녀가 되는 것은 대단히 부러울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는 은혜를 말할 수 없이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신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의 자녀를 해치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2:8.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눈동자 같이 지키실 뿐만 아니라, 날개로 보호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17:4.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자녀들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이 세상에서 돌보시다가, 결국 영생 천국으로 인도해주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14.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히브리서 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2. 이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려면, 율법주의 이단자들에게서 떠나서 바울에게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 당시에도 고라당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멸망을 당했으나, 모세를 추종하는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은 이단자들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잘 따라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영생 천국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서 보호하시고, 돌봐주신다는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감사하시고, 영생 천국을 바라보고 찬양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7장 1절.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having these promises, beloved, let us cleanse ourselves from all defilement of flesh and spirit, perfecting holiness in the fear of God.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ταύτας οὖν ἔχοντες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ἀγαπητοί,
these therefore having the promises, beloved
직역하면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지고 있으므로’란 뜻입니다.
동사(ἔχ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having)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καθαρίσωμεν ἑαυτοὺς ἀπὸ παντὸς μολυσμοῦ σαρκὸ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let us cleanse ourselves from all defilement of flesh and spirit
‘깨끗하게 하자’(καθαρίσωμε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let us cleanse) 단호하게 확실히 깨끗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ἐπιτελοῦντες ἁγιωσύνην ἐν φόβῳ Θεοῦ.
perfecting holiness in fear of God
‘온전히 이루어’(ἐπιτελ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perfecting) 계속 온전히 이루어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자. (Therefore, having these promises, beloved, let us cleanse ourselves from all defilement of flesh and spirit, perfecting holiness in the fear of God)
1. 앞 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돌봐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돌봐주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 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있으니, 그런즉 우리는 더럽게 살아서는 안 되고, 영과 육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과 육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영혼에서 율법주의 이단자의 가르침을 제거해야 하고, 육신적으로도 율법주의 이단자들과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단자의 말이 영혼에 남아 있으면, 목사의 설교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단자가 뱉은 말이 영혼에 큰 해를 끼칩니다.
또한 육신적으로 이단자와 교제를 끊으려면, 큰 결단을 해야 합니다.
즉 같은 지역에서 육신적으로 여러 가지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단자를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단자와 만나서 인사를 하고, 가족과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함께 식사를 하고, 애경사에 참석해서 서로 친교를 하다 보면, 이단자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깨끗케 하자>는 동사(καθαρίσωμεν)는 단순과거형(aorist)으로서 칼로 무를 자르듯이 단호하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2. 이처럼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러운 것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만 멀리하는 것은 거룩의 반만을 이룩한 것입니다.
즉 소극적으로 나쁜 사람과 사귀지 않는 것은 거룩한 생활의 절반만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거룩한 성도들과 사귀는 것이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로부터 성별하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숭배의 도성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자손을 많게 하시고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의 도성 애굽을 떠나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강대한 나라로 복을 주셨습니다.
훗날에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복을 다시 받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결케 하고, 이방인과 혼합된 것을 성결케 했습니다. (에스라 9-10. 느헤미야 13:1-9).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1. 우리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서, 우리를 더럽히는 악령을 물리쳐 이기도록 해야 하고, 육신적으로도 우리를 죄악에 빠뜨리게 하는 죄악의 사람들과 더러운 환경을 멀리해야 합니다.
만일 술 취하는 죄를 범하는 사람은 먼저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님의 능력으로 술로 유혹되게 하는 마귀를 대적해야 하고, 힘들지만 술친구들을 멀리해야 하고, 되도록 술집에 가까이 가지 말고 멀리 돌아다녀야 합니다.
만일 화를 자주 내고 싸우는 사람은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자기 영혼 속에 화를 가져다주는 악령을 물리치고, 늘 성령님의 주장하심을 받아, 선한 말을 하고, 선을 행하고 도와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일 음행에 빠지는 사람은 기도하여 회개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서, 더러운 영을 물리치고, 더러운 사람을 멀리하고, 더러운 환경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육>(flesh)이라는 단어(σαρκός)는 몸, 신체(body)를 가리키는 단어(σώματος)와 다릅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σώματος)는 더러운 똥이나 오염물질에 더러워질 수 있으나, 그것이 우리를 죄악과 형벌로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육>(σαρκός)은 살인이나 폭행이나 술 취함이나 음행 등 죄악의 힘(the power of sin)이 인간에게 역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영>(spirit)이라는 단어(πνεύματος)는 정신이나 마음(mind)을 가리키는 단어(νοῦς)와 다릅니다.
즉 <마음>(νοῦς)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있는 인간의 마음을 가리키지만, <영>(πνεύματος)이란 악령도 있고, 인간의 영도 있고, 성령님도 계십니다(고린도전서 2:11).
그런데 우리 마음은 성령님께서 임재해 계시면, 참된 평안과 생명을 얻습니다. (로마서 8:6)
그러나 악령이 역사하면, 우리의 마음은 제 정신을 잃고, 악한 말과 악한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은 연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받아서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과 영을 깨끗케 하자>는 것은 온갖 범죄로 인한 죄성이 우리를 더럽히지 못 하게 하고, 악령이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 하게 하고, 성령님이 항상 함께 계시도록 기도하고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하자>고 한 것은 바울 자신도 언제나 육과 영이 더럽혀질 수 있기 때문에, 바울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모든 성도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육과 영의 성결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육적인 온갖 범죄와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님 따라서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