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75/180318]12회째 불암산 시산제
3월 셋째주 주말은 명산(名山) 여기저기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산행모임들로 북적거린다. 오죽했으면 불암산에서는 입구에 공동제단을 만들어, 각 단체들이 공동으로 시산제를 지내게 했겠는가. 명예산주(山主)가 ‘한국인의 밥상’으로 유명한 최불암 선생이라던가. 흐흐. 앞으로 국립공원 명산에서는 ‘정상주(頂上酒)’ 등 음주를 불허하겠다니, 물론 과음(過飮)이야 삼갈 일이긴 한데, 세상은 왜 갈수록 멋도 낭만도 없이 팍팍해져가는지 모르겠다.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에 1500원 파는 상인들도 기겁을 할 일이다. 계도기간 6개월이 있고, 국립공원에만 해당되니, 불암산은 도립공원인지라 상관이 없다기도 하고. 18일 오전 10시 상계역 1번출구 앞. 하나둘 동창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시산제에 몇 명이나 참석할까? 내기하자! 15명? 20명? 25명? 그래, 스무 명만 넘으면 많이 온 것으로 간주하자. 뒤풀이 점심에도 온다는 친구들이 있으니. 30여년 동안 ‘민중의 지팡이’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남원 운봉 고향마을에 돌아간 우리의 ‘착한 장비’ 벽곡처사(碧谷處士), 여지없이 플래카드와 제수(祭需)들을 준비하여 일찌감치 명당자리를 잡았겠다! 한두 해도 아니고, 그의 자발적인 노력이 오직 고마울 따름이다. 이날의 화제는 12년 동안 개근한 사람, 정근한 사람 선발. 우천은 하늘색 도포(道袍)와 유건(儒巾) 그리고 축문(祝文)을 갖고 나타났다. 오늘의 제단(祭壇)은 준수했다. 맞춤맞게 차린 제수는 시산제 후 21명이 음복(飮福)을 하는데,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고 딱 맞았다. 연륜(年輪)이 쌓이다보니 노하우가 생긴 셈.
참, 세월은 ‘쏜 화살’이라더니 빠르기도 하고, 잘도 간다. 믿을 수 없는 일(미국 거주 6명이 동시 귀국, 시산제에 참석한 것)로 모두 감격했던 게, 어제런듯한데, 벌써 1년이 되고, 2006년 처음 지낸 이래 어느새 열두 번째의 시산제를 갖다니. 우리는 이제 희끗희끗, 환갑(還甲)을 넘어, 다시 한 주갑을 향한 진갑(進甲)에 들어섰음에랴. 시산제(始山祭)는 왜 지내는가? 누구 좋으라고 지내는 게 아님은 물론이다. 모두 ‘자기’를 위한 것이다. 무슨 종교의식도 아니고, 절을 하지 않을 사람은 안해도 된다. 그저 산신령(山神靈)님이 있다고 믿고, 조촐한 음식을 마련하고 예(禮)를 차리는 까닭은 가정의 행복과 나의 건강을 위함이고, 더 크게는 국태민안(國泰民安)를 기원한다면 오버일까?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현명하게도 자연(自然)을 경외(敬畏)하고, 같이 어울려 사는 지혜를 가졌던 것이다. 고사(告祀)를 지내는 뜻도 마찬가지일 듯.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고 치부하면 의미가 더욱 다가온다. 지나가는 등산객들과 인근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팀들이 한마디씩 한다. “시산제 한번 제대로 하네” 전통복장 차림으로 축문을 낭송하는 게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리라. 2018년 무술년 시산체 축문은 아래와 같다.
유세차(維歲次)
단기 4351년 서기 2018년 무술년
음력 2월 2일 양력 3월 18일
재경 전라고 6회 동창회 회장 박치원은
120여명의 동창들을 대표하여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맞아
불암산 산신령님께
삼가 엎드려 고합니다.
산신령님께 예를 차린 지 어언 12년.
우리의 나이도 어느덧 대부분 환갑을 지나
진갑에 들어서 노후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껏 무탈하고 건강한 몸으로
가정의 행복을 가꾸며
건실한 사회인으로 살 수 있은 것은
모두 산신령님의 덕분입니다.
우리는 객지생활 40년 동안
삶의 동반자로서 든든한 우정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벗들의 기쁜 일에는 함께 기뻐했고,
벗들의 슬픈 일에는 같이 슬퍼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영원한 자랑이자
한없는 긍지라 하겠습니다.
모교는 올해 개교 50주년을 맞아
다음주 토요일 모교에서 자축 기념행사를 합니다.
지자체장이 되어 봉사하려는 친구 등
친구들과 모교의 미래에도
무궁한 발전만이 있도록 굽어 살펴주소서.
아무쪼록 무술년 한 해에도
암같은 골치 아픈 병이나
교통사고, 경제적인 고통 등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 주소서.
지금 한반도 상공에는
이제껏 없었던 훈훈한 바람이 돌고 있습니다.
내달 열리는 문재인-김정은 맞짱회담에서
우리 한민족의 최대 숙제인 ‘평화와 통일’이
한 걸음 더 다가오고,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재개,
나아가 남북 왕래와 교류가 활성화되는 등
눈에 확실히 보이는 성과가 있도록
신령님의 가호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러한 모든 소망을 담아
여기 맑은 술과 소찬을 갖추어
예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상향(尙饗)
시산제를 잘 지낸 덕분에, 올해도 우리 친구들에게는 어떠한 ‘나쁜 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을 굳게 믿자.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복(福)이 있나니. 아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우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