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하늘 시민이며 주님 밥상 함께 앉는 상속자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마르14,12~16.22~26)
오늘은 성체성사의 제정과 신비를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개신교에는 없는 칠성사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사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성사에서는 하느님께서 창조된 은총을 주시지만
성체성사에서는 은총을 창조하는 은총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실재적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라 일컫습니다.
나아가 성체성사는 영성생활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며 기본이며 바탕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가 성체성사 안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 즉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의 때가 온 것을 아시고
그동안 정들었던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주시며
이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그대로 제자들에 의해 거행되었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지금 이 순간까지
중단 없이 성체성사, 즉 미사를 봉헌해 왔습니다.
성체성사는 우리 가톨릭교회가 어떤 경우에도 약화하거나 폐기할 수 없는
정체성의 핵심이며 원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파스카 음식을 드시면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14,22).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14,24).”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몸과 피”라는 말은 인간의 생명 혹은 인간 전체를 나타내는
통상적인 히브리적 표현으로서 예수님의 인격 전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미사 안에서 우리도 주님의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매일 거행합니다.
초대 가톨릭교회는 매일 손으로 음식을 날라
가족, 신자들, 약자들과 나누어 먹으며 생존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진화하였습니다.
강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미사 때 사제는 성체를 손으로 높이 들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 외칩니다.
그리고 성체를 바라볼 뿐만이 아니라 모인 모든 회중이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체를 영적 양식으로 삼아 생존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키워나가고 점점 진화해 왔습니다.
하느님을 목말라하고 하느님께 배고파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체를 나누어 먹음으로써 영적인 생명을 키웁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는 성체에 배고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영적양식인 성체를 갈망하고 성체에 배고파합니다.
죽은 사람이 배가 고픕니까?
죽은 사람은 배고파하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에게 밥맛이 있습니까?
아픈 사람에게 밥맛이 좋을 리 없습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체를 영하지 않고도 배고프지 않는 사람은 영혼이 죽은 사람이거나 병든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체를 영하고 또 영해도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체를 영하지 않고도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은
영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성체는 천상양식을 이 세상에서 먹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체 송가에서
“17. 선인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 달라 삶과 죽음 갈라진다.
18. 악인죽고 선인사니 함께 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
23. 저희 먹여 기르시고 생명의 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이 세상에 죽을 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 하고 주님밥상 함께 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라고 노래했습니다.
‘함께 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
함께 영성체를 똑같이 하지만 그 운명은 서로 달라서 악인은 죽고 선인은 산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운명 중에 나의 운명은 어느 운명입니까?
사는 운명입니까? 죽는 운명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는 하늘시민이며
주님밥상에 함께 앉는 상속자임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 죽는 운명이 아니라 사는 운명이 되는 한 주간을 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