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백숙 / 이남옥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어 우리는 자주 편견에 갇혀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철학이든 종교든 좋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드러내는 순간 맞부딪치는 물결이 있어 거친 파도가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휩쓸리기도 한다. ‘편견’이란 글감으로 글을 쓰려다 보니 추억이 되어 버린 닭 기르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예전에는 가족이 모이면 키우던 닭을 잡아 백숙을 만들어 먹었다. 가장 손쉽게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 일부러 닭을 키웠다. 장을 보지 않아도 텃밭에서 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어 번거롭지 않고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병아리를 사다가 닭장에 풀어 놓았다. 시골이라 대밭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으며 튼실하게 잘 자랐다. 여름철이 되면 삼계탕 거리로 딱 맞게 커 있었다. 그때부터 시어머님은 자식들 먹일 생각에 신바람을 내었다. 다만 닭 잡는 일은 불편해서 서로 떠넘기다 늘 시아버지께서 도맡아 하셨다. 모진 맘을 먹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 잡고 있으면 움직이지 않게 된다. 그때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빼내어 털을 뽑았다. 그것으로 시어머니는 알맞게 요리를 하셨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부모님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시누이가 깊이 불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갈등이 싹 트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린 고기를 먹을 수 있어 좋았지만 독실한 불자에겐 끔찍한 일이었다. 집에서 살생을 저질렀다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유교 사상으로 똘똘 뭉쳐진 시아버지는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인데 무슨 소리냐며 그냥 넘어갔다. 만났다 하면 이런 언쟁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였다. 다른 식구들은 별생각이 없었으므로 시골에 가면 늘 닭요리를 먹었다. 어쩔 수 없이 외면했지만, 조카들은 촌닭 맛을 알기에 엄마 모르게 후다닥 먹어 치웠다. 그럴 때마다 시누이는 천도재를 지내거나 절에 가서 삼천배로 속죄한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시아버지와 시누이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골이 깊어 갔다. 집에서 닭을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시작했지만, 오빠와 차별 대우했던 부모 세대의 남아선호 사상에서 상처받았던 일까지 번져 걸음이 뜸해지고 말았다. 아들이건 딸이건 공평하게 나눠주고 똑같이 대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작은 생각의 차이가 마음의 거리를 한없이 벌려 놓았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집착하는 모든 것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 에너지가 형태와 분위기를 만든다고 한다. 존재하는 만물은 반드시 변화되거나 파괴되고 다른 방식으로 실행되는데 이것이 바로 윤회라는 것이다. 오랜 옛날에 사냥하러 다니는 대신 닭을 기르기 시작한 이래 닭 소비는 엄청나게 변해 왔다. 요즘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해내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집착과 욕심이 점점 무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해부터는 닭을 키우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시누이의 말이 조금씩 메아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닭을 키우지 않으니 닭 잡을 일도 없어졌다. 식구들이 모이면 이 일 저 일을 서로 나누며 왁자지껄 부대끼던 일도 점차 사라져 갔다. 아침이면 홰치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모이를 주러 가면 퍼드덕거리며 주위로 몰려들던 닭의 힘찬 걸음걸이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제사상에 올리려고 시장에서 사 온 닭은 너무 먹기 힘들었다. 쫄깃거리는 맛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니 쉽게 마음에서 멀어져 갔다. 육식을 적게 해야 환경이 덜 오염된다고 하니 잘 되었다. 생각 하나로 문화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첫댓글 글이 부드럽게 잘 읽어집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구요. 시누이가 가족의 변화를 이끌어냈군요?
대문을 열고 책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닭, 강, 강아지, 토끼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가 1 순위 였는데 지금은 리모콘을 찾는 나를 봅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아야 하는가 봅니다.
언니 글은 따뜻해서 참 좋아요.
맛있는 밥상에 둘러 앉아 대식구가 식사하는 모습이 정답게 그려져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