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랭이 조샌떡(댁) / 조영안
그녀는 오늘도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집을 나선다. 이번에 새로 나온 시내버스는 계단형 발판이 아니라서 손수레를 바로 밀고 들어갈 수 있다. 그 출발 시각에 맞추려고 숟가락을 놓자말자 내달린다. 목적지는 의료기 체험장이다. 호랭이 조샌떡(댁)은 아흔 살이다. 밤새 끙끙 앓다가도 집 밖에만 나가면 생생해진다. 젊었을 때부터 바깥일을 해선지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지 최근에는 여기저기가 아프다.
스무 살에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한평생 일만 했다. 이웃 마을에서 박 부잣집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남녀 머슴이 넷이나 있을 정도로 큰 살림이었다. ‘애기씨’로 불리며 곱게 자랐지만 엄마가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새엄마가 들어와 남동생을 하나 두었는데, 지금까지도 같은 읍에 살면서 의좋게 지내고 있다. 애기씨 집에는 큰 유자나무가 있다. 낯선 사람이 집을 찾을 때도 이 나무가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런데 큰오빠의 아내인 그녀의 올케가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잣집 명운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래로 하나 있는 남동생이 남은 재산을 잘 일구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빠는 올케와 떨어져 살다가 인천에 있는 아들 집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장수 집안인지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각각 102세와 96세이다. 요양원에서 지내지만 아직은 건강하다.
지난 설 명절에 큰언니를 만나러 갔다. 서울 사는 큰딸 부부, 함께 사는 아들 내외, 그리고 작은딸 부부가 동행했다. 내 시어머니 호랑이 조샌떡은 큰언니의 자손과 함께 그리워하던 언니를 보러 간 것이다. 면회를 신청하고, 언니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요양원 직원과 함께 체구가 작은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코로나도 겪었고, 무심한 세월 탓에 두 자매는 무척 오랜만에 만났다. "누군지 알아보겠소? 언니, 나가 누구요?" 호랭이 조샌떡이 묻자 "응? 내 딸이여." 동생을 못 알아보고 엉뚱하게 대답한다. 사실 이모님한테는 비밀이 있다. 싹싹하고 살가웠던 당신의 딸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걸 모른다. 이 요양원에도 그 딸이 모셔다 놓았다. 그래서 그 딸만이 기억에 남아있나 보다.
마음 아파 하며 지켜보는 우리에게 이번에는 본인 자랑을 한다. "썩을 것들이 모두 누워서 똥 싸고, 오줌 싸. 기저귀 차고 누워있어. 나는 걸어서 화장실도 가고, 밥도 혼자서 잘 묵어." 그렇게 말하는 이모님의 머리를 보고 우리는 또 한 번 놀랐다. 하얀 머리 뿌리마다 까만 머리카락이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회춘하는 거냐고 한바탕 웃었다. 짧은 면회를 끝내고 지팡이를 짚은 채 돌아서는 동생을 보고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이게 마지막일 게다." 하면서 조샌떡은 돌아오는 차에서 눈물을 훔쳤다. 이런 어머님이 안쓰러워 내친김에 지리산으로 향했다. 도로 양옆 곳곳에는 눈이 쌓여 있어 이른 봄과 겨울의 운치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노고단은 못 오르더라도 차로 갈 수 있는 성삼재까지는 가려고 했다. 그런데 밤새 내린 눈으로 차량을 통제하는 바람에 사암재에서 더 오를 수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갑갑했던 가슴이 탁 트인다. 휴게소에서 어묵국과 뻥튀기 과자랑 호떡을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도 좋아하신다. ‘이렇게 모시고 다시 올 수 있을까,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호랭이 조샌떡(댁)’ 택호는 갓 시집온 새색시 때부터 생겼다. 그때는 ‘작은 호랭이 떡’이었다. 남들은 얼마나 지독하고 사납기에 그렇게 부를까 생각하겠지만 실제는 다르다. 고조보다 더 윗대 이야기다.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온 마을 사람들이 꽹과리를 치며 쫓아도 달아나지 않자, 조샌집 할아버지가 호랑이와 한 판 붙었다. 엎치락뒤치락하다 호랑이가 달아났고, 그때부터 새댁을 ‘호랭이 조샌집’이라고 불렀다. 대대로 내려오면서 며느리한테 그 택호가 이어졌지만 지금은 거의 듣기 어렵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조샌떡 며느리’이고, 손자는 ‘호랑이 새끼’로 통한다. 아마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어머님은 정말 열심히 사셨다. 50대 중반에 남편을 잃었다. 임대료를 받으러 가던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도로는 비포장 길이라 자전거는 더 위험했다. 뺑소니 사고였지만 결국 범인이 잡혔다. 겨우 큰아들과 큰딸만 결혼시킨 터였다. 남은 4남매를 거두느라 일에 파묻혀 살았다. 시어머니한테 아이를 맡겨 놓고, 집안일은 제쳐둔 채 바깥에서 돈 버는 일만 했다. 일꾼 대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일꾼이 필요한 집마다 이끌고 다니며 사계절을 쉬지 않고 일했다. 혼자 힘으로 남은 4남매를 출가시켰다. 덕분에 자식들도 성공했다 소리 들으며 잘살고 있다.
아들 3형제는 읍내에 산다. 자식이 가까이 사는 것도 복이다. 큰딸과 둘째 딸은 윗녘 도시에, 막내딸은 이웃 순천에 산다. 아이가 없던 큰아들도 느지막이 남매를 두어 소원을 이루었다. 슬하에 열여섯 명의 손자, 손녀가 있다. 둘째 아들 손녀 둘은 좋은 곳으로 시집갔다. 이번에 증손자도 안겨 줬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호랭이 조샌떡의 훈장이다.
아흔의 나이에도 갈 곳이 있다. 그 시절에 초등학교를 나와 글도 쓰고, 읽기도 한다. 교회 노인 대학에도 다니고, 마을 회관에서 화투도 친다. 그런데 한 가지 병은 있다. 바깥을 맴도는 병이라 자식들은 걱정이다. 혹시나 사고를 당할까 봐서다. 그렇다고 집에만 계시는 것도 여의치가 않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이라 시내버스 요금도 아까워한다. 광양시에서는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교통 카드를 준다. 하루에 몇 번을 타도 교통비는 무료다. 여수도, 순천도 그냥 다녀올 수 있다. 노인 복지가 좋은 지역에 사는 것도 행운이고, 행복이다. 어머님은 이런 혜택을 맘껏 누리는 것 같아 다행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농장엘 간다. 어머님의 손길이 끊긴 곳에는 해야 할 일거리가 잔뜩 기다리고 있다. 갈 때마다 부지런하게 살아온 당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이번엔 부드러운 쑥을 베어 왔다. 쌀을 불려 놓은 것을 보니 쑥 털털이를 만들려나 보다.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하실 모양이다. 어머님은 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불린 쌀을 절구통에 직접 빻는다. 그래서 더 맛있고 쫀득쫀득한 특별한 어머니표 쑥버무리가 탄생한다.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이런 호랭이 조샌떡한테 큰상을 드리고 싶다. 살아온 지난날이 반짝반짝 빛나기에.
첫댓글 어머님께 호랑이 기운이 이어졌나 봅니다.
시어머니 잘 모시고 열심히 사는 선생님께도 큰상을 드리고 싶네요.
때로는 어깨가 으쓱해질 때도 있답니다. 조샌떡 며느리라는 소리를 들으면요. 하하
그리고 제가 시어머니를 모시는게 아니고, 어머님이 데리고 산 셈이죠.
기다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기다리셨군요. 저번주 '춤'은 어쩔 수 없었답니다. 정말 엄청 아팠거든요.
읍내가 다 아는 호랑이 조샌떡 며느리 고생하셨습니다. 그 시집살이 견디어낸 상으로 답글을 답니다.
아닙니다. 호랭이 조샌떡 시어머니면 저 또한 쏘랭이 조샌떡 며느리 인걸요. 하하
글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잘 담긴 것 같아요. 글도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표현이 너무 재밌어요.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미운정 고운정이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가르쳐주는 듯요.
맞아요. 읍내가 다 아는 호랑이 조샌떡 며느리, 살아내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토닥토닥!
선생님은 잘 아시잖아요. 지금은 힘없는 조샌떡이시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의미를 알고 읽어도 택호가 많이 독특하네요. '댁'을 '떡'이라고 부르는 것도 참 재미있어요. 그럼 선생님도 이어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쪽 동부에는 '댁'을 떡이라고. 부르더군요. 처음에는 참 어색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습니다. 당연히 저도 '호랭이 조샌떡'으로 이어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와, 선생님 글 참 재밌어요. 후루룩 즐겁게 읽었어요. 그런데 택호가 선생님과는 안 어울리는데요. 하하.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아마도 저 까지만일 겁니다. 하하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