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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일 대하소설 <<반야>> 중에서
<늙은 쥐>
섬진강에 면하여 큰 나루와 큰 장터가 있는 화개협峽 입구는 하동과 구례와 쌍계사 길이 합쳐지고 갈라지는 지점이다. 지리산의 화전민들과 약초꾼들이 캐 내리는 온갖 약초와 나물들, 전라도 쪽의 물산들, 하동바다와 섬진강 하류의 산물들이 만나고 흩어지는 곳. 나루터와 장터에서 한 모퉁이 비켜난 산자락 속에 위치한 반반골은 약초를 캐고 차를 만드는 족속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하였다. 그 가운데 있는 유수화려는 사뭇 소박한 초가다. 아무리 겉모양보고 속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겉모양이 사람의 한 모습인 것도 실상이다. 이록은 온이 이 집에 거한다는 무녀의 무엇에 혹해 살펴 달라했는지 집 모양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황공하여이다, 마님,
무녀의 노복이라는 자가 신당 안에서 들리는 예불 소리에 다가드는 이록을 막아서듯 합장 하고 나선다.
-왜, 자네 주인이 예불할 때는 손님 왔노라 기별하면 아니 되는가?
-쇤네 주인이 아직 점사를 재개치 못한지라, 신당 모양이 미처 갖춰져 있지 않나이다. 아직은 그저 갓 난 아기만한 부처님 한분 모셔놓고 예불이나 드리고 계시는 처지라서요.
세상의 사람은 여러 층으로 분별되되 위아래 족속이 분명하다. 그 고하의 족속들 중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승려, 상여꾼과 더불어 무격이 가장 천하다. 그런 팔천八賤 하나인 무격의 아랫것이라면 어찌 하늘을 이고 살까 싶지만 결국 그들도 사람이라 제 주인의 체면부터 챙긴다. 이록 스스로, 무녀이며 첩실인 화씨의 체면을 챙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네가 꺼리는 게 그 점이라면 손이 왔노라고 아뢰어 보게. 혹시 아는가? 내가 자네 주인의 살림에 도움이 될지.
머뭇거리던 노복이 제 주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란 말에 혹했는지 툇마루에 아래서 합장 삼배를 하고는 방문을 열어 보인다. 아무것도 없어 훤한 방의 정면에 자그만 목재 불단이 있고 그 위에 갓 난 아이만한 불상 한 기가 앉아 있다. 불상 아래에 향로와 두 점의 촛대가 놓였을 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서 세 여인이 불단을 향해 절하며 염불을 외고 있다. 방문이 열려도 돌아보지 않는다. 방안에 장식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이록은 그 방의 주인이 제법한 신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던 온의 말을 수긍한다.
별 치장 없이 무격 노릇을 할 수 있는 무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한양 홍지문 밖 가마골 웃실에 살던 소경 무녀였다. 새벽에만 손님을 받던 그때의 소경 무녀는 무녀로서는 모든 것을 지닌 여인이었다. 가마골 소경무녀라거나 신당의 이름을 따 소소무녀라고만 알려진 그 이름이 몹시도 높았다. 당시 이록은 소경 무녀가 혹시 만파식령萬波息鈴을 취한 것이 아닐까, 사신계의 칠성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여 찾아 갔다. 너울을 쓰고 앉은 그의 신당은 짐짓 소박하였으되 그 안을 채운 물건들은 최상의 솜씨들로 빚어진 것들이었다. 특히나 신당 벽에 걸려 있던 널따란 팔도 지도는 수십 만 번의 바늘땀으로 정교히 수놓인 것이었다. 이록이 그때 소경무녀한테 물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팔도 지도는 무엇 때문에 걸어놨는가."
소경무녀가 소리 내어 웃고 나서 대답했다.
"손님들께서 어디서 오셨는지 대강이나마 짐작해 보기 위함이오나 기실은, 손님들께 소인이 색다른 무녀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과장된 치장이자 허식이옵니다. 혜량하소서."
그 새벽에 소경무녀에게 만파식령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치장하지 않는 것조차 허식이라 말하는 그의 기운이 워낙 담담하여 만파식령을 찾는 자신의 의도를 밝히기가 어쩐지 거리꼈다. 대신 이록은 자신이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느냐 물었고 언젠가 얻으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언제냐고 했더니 그것까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이 열 자식 값을 해 줄 것이니 아들에 연연치 말라고 덧붙였다. 아들을 얻을 수는 있되 낳지는 못한다는 말이었다. 이록 스스로 다시 자식을 낳기 어려우리라 예감하고 있던 참이었으나 몹시 실망하고 분노했다. 무녀에게 분풀이를 할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았으므로 고이 물러나왔다. 그 뒤 온을 소경무녀에게 보냈다. 기가 막히게도 온은 소경 무녀한테는 닿지도 못하고 그 아래 가마골에서 일 년 반이나 되는 세월을 허비하고 돌아왔다. 온이 가마골에서 나온 직후 소경 무녀가 있던 웃실의 소소원이 당시 도성을 소란케 했던 명화당 도적 떼와 연루되어 곤욕을 겪었다고 했다.
이록은 신당 앞에서 몇 걸음 물러나 예참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이록은 자신에게 신기가 있음을 어릴 때부터 느꼈다. 그 신기가 강력하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기는 터수이되 무격들을 천시하지 않았다. 되지 못한 행세로 혹세무민하는 무격들을 경멸할지언정 대개의 무격들이 백성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임을 인정했다. 천출의 무녀 화씨를 첩실로 삼은 것도 그래서였다. 간혹 드러나는 무격들의 비행이라야 탐관오리들의 작태, 임금과 그 주변 위인들의 작태에 비하면 오히려 안쓰러운 정도 아닌가.
아래 채 옆의 느티나무 가지에 좌대 모양의 그네가 드리워져 있다. 강의 한 어귀와 강 저편의 첩첩한 봉우리들, 그 아래 끼어 있는 마을이 건너다보인다. 이록은 강을 등지고 그네에 앉는다. 그네 줄이 칡넝쿨과 화살나무 잔가지로 엮였고 그네 판은 참죽나무 판자임 직하다. 그저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매어놓은 그네일 뿐이지만 공들인 품이 소담한 집에는 과분할 만큼이다. 그네에 앉아 땅에 발을 댄 채 흔들흔들 하노라니 어디선가 바람 따라 불어온 은은한 불내와 고소한 다향이 느껴진다. 효맹이 주변을 돌아보려는지 불내가 나는 쪽을 향해 콧구멍을 키우며 옮겨간다. 무녀의 노복이 멈칫멈칫 다가와 곁에 섰다.
-자네 주인이 여기 자리 잡기 전에는 어디서 지내었다고?
-운주사라고, 전라도 화순에 있는 절 아랫마을에 있다 왔나이다.
이록도 운주사에 가 본적이 있다. 운주사에 있다는 천기의 석불과 천 개의 석탑보다 북두칠성 형상으로 누워있다는 칠성석이 궁금했다. 운주사 칠성석이 만파식령과 무슨 관련이 있지 않는가 싶기도 했다. 칠성석은 영락없는 북두칠성 형세로 누워있기는 했다. 만파식령과 칠성석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절의 중들은 천불 천탑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고려조 초엽에 조성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따름이라 했다.
-내도록 게서 살지는 않았을 테고, 그 전에는?
-소인은 주인을 그곳에서 만나 섬기기로 하고 이 고을로 따라온 터라 세세히 모르옵니다만, 한성에서 나신 것 같나이다.
-네 주인이 혹시 소경이냐?
-어, 어찌 그걸 아시옵는지요?
혹시나 하여 물어본 것인데 사실이라 하니 놀랍다. 방안에 있는 여인이 소소원의 그 소경 무녀라는 뜻이 아닌가. 온이 하릴없는 세월을 보내고 돌아온 뒤 전해 들은바 소경무녀는 가마골 웃실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대놓고 궐 출입을 하던 그가 곤전에 들어갔다가 나오던 길에 명화당의 잔적들에게 피습을 당하였다는 은밀한 말이 육조六曹거리에 퍼졌던 것 같았다. 명화당 잔적들이 한 짓인지, 당시 한성 판윤 측에서 한 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단사가, 이록이 한 일은 아니었다.
-자네가 지난 이월 보름 즈음에 반야봉에서 한 계집아이를 만나 이곳으로 이끌어 왔던가? -아, 그 아씨의 아버님이시옵니까?
-그렇네. 우리 아이가, 자네 주인의 신기가 제법 높은 것 같다 하기로 내 일부러 넘어와 보았어. 이제 보니 내가 예전 한양에서 자네 주인을 본적이 있는 성 싶구먼. 자네 주인을 만나기 위해 부러 왔으니 주인에게 온의 아비가 왔노라고 알리게.
-황송하옵니다, 마님. 부디 잠시만 더 기다려주시옵소서. <반야심경>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금세 끝날 것이옵니다. 주인의 몸이 워낙 약한데다 눈까지 어두워 쉬이 움직이기 어려운바, 무슨 일이건 정해진 일을 마치기 전에는 중단하지 않나이다.
-자네 주인의 신기가 많이 떨어졌는가?
-소인에게야 주인의 신기가 세상 최고로 보이옵니다만 스스로는 아직 무녀노릇을 재개할 수도 없다고 여기는 것 같나이다. 그래서 점사를 벌일 생각도 아니 하고 날마다 기도만 하는 게 아닌가 하옵니다.
-이 그네는 주인을 위한 자네 솜씨일 터이지?
-주인이 홀로 움직이기 임의롭지 못한 지라 날 좋을 때 잠시라도 나와 앉으시라고 한번 매어보았나이다. -주인이 점사를 못 봐 돈도 못 벌매 자네나 자네 식구를 돌봐주지도 못할 터인데 어찌하여 저 사람을 이리 지성으로 섬기는 게야?
-운주사 아랫골에 살적에 소인이 죽을 수가 들어 넘어졌사온데 이웃에 계시던 주인께서 이리 늙은 쇤네를 안고 다독이며 경문을 읊어 주셨습니다. 그 덕에 소인이 말짱히 일어난바 그분을 주인으로 섬기며 덤으로 생긴 생을 살기로 하였나이다.
-늙은 자네가 언감, 목숨 구해준 젊은 주인을 사모하는 게로군.
농으로 한 말에 늙은이가 대답을 바로 못하고 우물쭈물 읍한다. 얼굴이 붉어졌다. 석양빛 때문이 아니라 정곡을 찔려 부끄러워한다. 방안에 있는 늙은이의 주인, 여러 해 전의 소경무녀가 떠오른다. 상대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여 모든 인종을 똑같이 은자 닷 냥의 손님으로만 대했을 뿐이지, 제가 맘만 먹는다면 남녀노소 없이 홀릴 수 있을 법한 계집이었다. 솔직히 이록도 그 소경무녀와 마주앉았을 때 설렜다. 실재의 아무것도 못 보는 눈임에도 너울 위로 드러난 눈매며 눈빛이 사뭇 아름다웠다. 그의 너울을 걷어내고 옷고름을 풀고 비녀를 빼고 치맛말기의 매듭을 풀어 알몸으로 만든 뒤 그 몸 구석구석을 노략하는 상상으로 몸서리를 쳤던 순간이 있었다. 더하여 그가 나로 하여 애달아 사랑해 달라 애원하고 나를 사랑한다면 그야말로 궁극의 쾌락일 것이라고. 정말 잠깐이었다.
무녀를 일순간의 쾌락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임을 이록은 잘 알고 있었다. 십여 년 전 도고현령을 지내던 삼기사자三麒嗣子 김학주란 자가 우매하게도 그런 짓을 하다 변을 당했다. 깊든 얕든 뭇기巫氣가 있는 자들은 상대의 뭇기를 경계하되 존중해야 하는 법이다. 김학주는 힘없는 무녀들의 신기를 탐하며 유린했다. 핑계는 만파식령을 찾아 사령에게 바침으로써 만단사를 강성케 하는데 공을 세우겠다는 것이었겠으나 스스로 뭇기를 높여 사욕을 채우려 했던 것이다. 그런 자가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건 뻔한 이치. 결국 놈은 도적떼에게 변을 당해 죽었다. 그 대목에 의혹이 없지는 않았다. 도적놈들의 소행이라 보기 어려울 만치 뒤처리가 재빨랐거니와 그들이 지나간 자리가 너무 깨끗했다. 도적 패거리인 명화당이 하필이면 왜 도고관아를 쳤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리지 않았다.
이록은 당시 봉황부령으로서 만단사령에게 그 내막을 파보자 취품했으나 사령은 삼기사자 김학주가 이미 죽었으므로 덧들일 필요 없노라 허락지 않았다. 사령 노릇을 삼십여 년 째 하던 일흔 넘은 늙은이라 일 벌리길 꺼려하던 즈음이었다. 분명히 어떤 세력이 움직인 것인데, 어떤 세력이 움직였다면 까닭이 있을 터, 내막을 파 봄이 마땅하지 않은가. 사령이 허락지 않으니 다른 부의 부령들도 꿈쩍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도고현령이었던 김학주가 기린부 사자일 제 기린부령조차도 그 자가 이미 죽어 신경 쓰지 않아도 된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당시 사령은 차기 사령 자리를 기린부령에게 물려 줄 속셈이었다. 차기 사령 자리는 현직 사령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가 유고된 뒤 부령들의 추대에 의해 오르는 게 원칙일지라도 당대 사령의 뜻이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이록은 그래서 당시의 기린부령을 먼저 제거했다. 연후 포섭해 두었던 기린부의 일기사자一麒嗣子 민손택을 부령으로 밀어 올렸고 기린부에 들어 있던 김학주의 식구를 거두어 봉황부로 들였다. 이듬해 사령을 유고시키고 이록 스스로 사령위에 올랐다. 자연적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기엔 이록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많고 가야 할 길이 심히 멀기 때문이었다.
신당 앞으로 건너갔던 무녀의 노복이 되돌아온다.
-마님, 안으로 드시어 달라 하십니다.
이록은 주위를 살피고 돌아온 효맹에게 마당가에서 수직하라 이른 뒤 신당으로 들어선다. 예전 소소원 신당에서는 새벽에만 손님을 맞이했다. 지금은 새벽이 아니라 해질녘이라는 것만 다를 뿐 그때 풍경과 흡사하다. 속이 비칠 듯 말 듯 얇은 너울을 쓰므로 아련한 용모가 오히려 돋보이던 얼굴. 지금은 너울을 쓰지 않아 전모가 드러난 얼굴이 서늘하리만치 곱다. 그 시절 소경무녀 곁에서 시중들던 무녀의 하속도 소소원의 그 계집이다. 호리한 몸매며 영민해 보이는 눈매가 그때의 계집이 틀림없다. 소경 무녀가 방으로 들어선 손님을 보려는 듯 더듬거리는 눈길을 보내다가 입을 연다.
-혜원, 손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세요.
과거 소소원 신당에서는 하속이 손님을 이끌어 무녀 앞에 등을 대고 앉게 하더니 오늘은 멀찍이 마주보게 앉힌다. 하속이 제 주인의 등 뒤로 돌아가 마주앉은 이록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온의 부친이라는 것과 낯빛이 희다는 것과 입은 옷 등에 대한 간략이다. 듣고 난 무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을 모셔놓고 송구합니다. 소인이 장님이라 이렇습니다. 지난 이월 보름날 새벽에 다녀가신 이온 아가씨의 아버님이시라고요?
-내가 찾아올 줄 알았는가?
-따님께서 한번쯤 더 오시지 않을까 짐작하였습니다.
-아이가 부탁하여 내가 먼저 왔네. 점사는 아니 본다고 하던데?
-건강을 찾은 뒤 깃발을 내걸려 하옵니다.
-내가 그대를 한양에서, 소소원에서 만난 적이 있느니. 혹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가?
-당시 워낙 많은 분들을 뵙고 살아 손님들의 목소리를 일일이 기억치 못하옵니다. 과거처럼 점을 보러 오시었다면, 그때와 같이 등에 손을 대어 손님을 읽어보고 과거에 만난 적이 있는 분임을 알아보았을지 모르나, 오늘은 점사 손님으로 오신 게 아닌 까닭에 그리 하지 않습니다. 하오니 손님께오서 제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해 주십시오.
-소소원에서도 중석이라는 이름이었던가?
-그때는 그저 소경무녀였지요. 난 자리가 천하여 분명한 이름이 없는지라 닿는 곳마다 임의로 지어 쓰옵니다.
-어떤 뜻의 중석인가.
-부처님 주변에서 살고 있는, 늙은 쥐라 자칭하였습니다.
-몹시 겸손한 이름이로군. 그대 혹 만파식령이라는 방울에 대해 아는가?
익숙한 물건의 이름이라는 듯 중석이 미소 짓는다.
-만파식령, 혹은 자명령自鳴鈴! 그건 모든 무격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물건이지요. 그 방울을 얻으면 신력神力이 높아지고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고요. 그렇지만 고구려 요동 땅의 돌 지팡이療東 釋杖나 낙랑 땅의 자명고自鳴鼓, 대방과 한성으로 이루어졌던 두 백제의 팔주령八珠鈴, 신라의 만파식적 등이 그러하듯, 만파식령도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물건임을 모르는 무격도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수련하여 그런 신이한 물건들이 의미하는 경지에 닿고자 애쓰는 무격들이 없지 않을 것이고요. 손님께서도 만파식령을 찾으시옵니까?
-요동 석장이니 두 백제의 팔주령이니 하는 물건들도 있어?
-무격들은 다들 아는 물건일 것입니다. 요동 석장은 고구려 시조 동명왕이 얻은, 닿는 곳마다 꽂기만 하면 그의 영토가 되는 천신의 지팡이라 하고, 팔주령은 천신을 모시던 백제가 대방과 한성을 아우르던 시대에 백제 신궁에서 지녔던 물건이라 들었습니다. 요동석장이나 자명고나 팔주령, 만파식적이 다 만파식령과 같은 힘을 지닌 물건들이되, 부처님을 모시기 전, 천신天神을 섬겼던 시절의 물건들이라는 옛이야기지요.
중석이 천 몇 백 년 전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는데 그 범위가 자못 광대하다.
-그대는 저 대방과 요동 땅에서 신라 땅까지를 다 하나로 보는 것인가? 청국에서 들으면, 청국이 상국이라 운운하는 조정 인사들이 듣기만 해도, 자네를 토벌하러 올 만한 이론인데?
이록의 농담에 중석이 흐흥 웃는다.
-미천한 소인이 평생 무격으로 살면서 주워들은 말을 섬기고 있을 뿐 무슨 이론이겠나이까. 혜량하십시오.
-태백혈이라는 동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 또한 무격들 사이에서는 흔히 전래되는 곳입니다. 그곳에 만파식령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속설 때문이지요. 그 때문에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책들에도 태백혈이 등장하는 것으로 압니다.
-속설이든 정설이든 태백혈이 백두산에 있다는 게 맞나?
-이야기 속의 태백혈이 있다는 백두산이 현재 조선 땅인 백두산인지 현재 청국 땅인 태산인지 혹은 상징으로서의 큰 산을 의미하는 태백산인지 명확히 아는 이가 있겠나이까. 그걸 모를 제 태백혈이 백두산에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겠지요. 소인도 물론 모르나이다.
숱한 사람이 백두산 천지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이야기 속의 태백혈을 찾아보았을 터였다. 아무도 찾지 못한 탓에 이야기만 무성한 것이고. 이록도 백두산 천지에 올랐을 때 태백혈이 어디일지 가늠해 보느라 백두 산하를 한참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태백혈을 찾을 수 없을 것을 알았거니와 그 안에 만파식령이 들어있을 리도 만무하므로 산속을 헤매 다니지는 않았다. 자명령이건 만파식령이건 몇 천 년 전에 이미 세상에 나와 조선을 여는데 쓰였다고 하는데 동굴에 남아있겠는가.
-이론이든 옛날이야기든 자네 말이 사뭇 듬직해, 맘에 드네. 복채를 내겠네.
-아직 점사를 못 본다 말씀 드렸나이다. 점사를 보기 전에 관가에 신고해야 하옵는데 소인이 아직 허약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자네한테 뭔가를 묻자면 정식으로 해야 할 듯한데? 관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도록 내가 벗한테 주머니 하나 선물하는 것으로 하지.
상위에 엎어 놓은 정주에다 손을 얹은 채 가만하다. 저 정주를 뒤집어 흔들면 어떤 소리가 날까. 이록은 중석의 손안에 있는 정주가 만파식령일 수도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겉은 사발모양의 정주 같고 안에는 칠성방울이 매달린 것처럼 생겼다는 만파식령. 요동 석장과 자명고와 팔주령과 만파식적을 다 합친 것 같은 그게 실재하는 물건이라면, 그걸 손에 넣게 된다면 과연 무한한 신력神力이 생길까. 상림에 두고 있는 첩실 화씨가 대장간에 명하여 만든 정주가 만파식령 모양을 하고 있기는 했다. 모양은 그러하나 그건 그저 시끄러운 종일뿐이다. 잠시 가만하던 중석이 입을 연다.
-하오시면 그리 하소서.
-복채를 얼마 내면 되겠는가.
-소인에게 묻고자 하시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몸소 내리소서.
이록은 소맷부리 속에 넣어두었던 주머니를 꺼내어 방바닥에 놓고 중석 쪽을 향해 밀어 보낸다. 혜원이 주머니를 가져가 들여다보고 눈이 동그래지더니 제 주인한테 귓속말을 한다. 중석이 또 미소를 짓는다.
-거액의 복채를 내셨나이다. 사주를 말씀해 주시든가, 소인에게 다가오시어 등을 내어주시지요.
역서에 나와 있는 사주 풀이 쯤 이록 스스로도 할 수 있다. 무녀를 끼고 살므로 이따금 가까운 앞날에 대한 예시를 받기도 한다. 이록은 일어나 중석 앞으로 다가든 뒤 상 앞에 등을 대고 앉는다. 그가 크음 헛기침을 하니 중석이 뒤에서 후, 숨을 다스린다. 이어 두 손이 등에 와 살포시 얹히더니 자그맣게 읊조리는 소리가 났다.
-다나타 옴 아나례 비사제 비라 바아라 다리반다 반다니 바아라 바니반호 훔 다로웅박 사바하.
불경의 한 주문인 <능엄신주楞嚴神呪>다. 무녀가 비구니처럼 불상 한 기 차려놓고 살면서 불경을 제 주문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록은 『주역』을 즐겨 읽고『옥추보경』을 자주 독송해도 불경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 외경하는 까닭이지만 결국 껄끄럽기 때문이다. 능엄신주를 세 번 외고 난 중석의 두 손이 가만히 떨어져 나간다. 뜻밖에도 그 자리가 도려빠진 듯 허전하여 이록은 흠, 헛기침을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나를 읽었는가?
-여러 해 전 초겨울에 소소원의 소인을 찾아오시어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느냐 물으셨지요. 그때 소인은 나리께, 따님 한분이 열 아들을 값하실 거라 말씀 드렸던 듯합니다.
-그랬지. 그 딸이 그대가 이미 만난 아이이고.
-예, 나리. 이제 하문하십시오.
-내가 아들을 낳을 수 있는가?
-오래전 그때와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아드님을 얻으실 수도 있습니다.
낳을 수 있느냐 묻는데 얻을 수도 있다고 한다. 세월이 변했어도 답은 똑같다. 서운할 정도로.
-언젠가 생길 아들이 어찌 이리 더딘 게지?
소리 없이 웃는다.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록이 몸으로는 생기지 않는 아들을 갖고자 한다면 양자를 들이면 되고 그건 이록이 결정할 일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한 큰 뜻을 품고 있네. 그걸 느꼈는가?
-현재도 나리께서는 더없이 높은 곳에 계시며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계시온데, 더 높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시고자 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품은 그 큰 뜻을 현실화할 시기가 언제쯤이겠는가.
-나리의 큰 뜻의 내용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면 소인의 풀이도 더 분명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결국 권력, 혹은 자리에 관한 것이겠지?
조선 왕조의 대통은 대통이랄 것이 없다. 근본적으로 정통성이 결여되었다. 적장자가 대위에 올라 온전히 왕 노릇을 한 경우는 드물다. 힘센 자가 왕이 되었고 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권신들에 의해 올려 진 왕자가 왕 노릇을 했다. 금상이라고 다른가. 제 이복형인 선왕을 암살하고 즉위한 금상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미쳤다. 그를 마주하여 엎드릴 때마다 느꼈다. 세자인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기며 적대하는 그에게 후위後位는 중요치 않았다. 금상은 자신이 죽을 때 세상도 더불어 소멸하면 좋으리라 여기는 자였다.
그 점에서 금상은 이록 자신과 똑 닮았다. 이록은 그렇게 느꼈다. 때문에 현실의 벼슬 따위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자신이 폐조의 오대손이라는 명분도 필요 없었다. 일조一祖 광해께서 빼앗긴 자리를 되찾자는 것도 아니었다. 이록은, 명분 따위가 소용없도록,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도록, 대통이니 왕통이니 운운할 자들을 모조리 제거하면서 일시에 갈아 업을 참이었다. 그와 동시에 조선이 아닌 새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다. 새 나라의 이름은 아침 햇살 같은 나라 만단萬旦으로 삼아도 좋을 터였다.
-만승지존萬乘之尊에 오르고자 하십니까?
한갓 무녀가 만승지존이라는 말을 태연히 한다. 워낙 천연덕스레 내놓으니 차려놓은 밥상에 앉으려 하느냐는 듯이 가볍다. 이록이 알기로 가마골 소경무녀는 소소원에서 무수한 관헌들을 상대했고 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지존이라는 말은 단 한사람, 궐의 주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자를 의미하는 순간 역모가 된다. 그걸 모를 리 없는데 중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록의 정곡을 찔러왔다. 이록으로서는 웃음으로 무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건 농담으로도 나눌 말이 아니지. 그 말은 주고받지 않은 걸로 치고, 내가 닿고자 하는 곳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그래, 우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어디쯤이라 하지. 내가 그곳에 닿고자 한다면 그 시기가 언제쯤이겠는가?
그에 대한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내색치 않으면서, 금상의 눈에 걸리지 않도록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다. 그 첫 번째가 왕실 안에 내분을 일으키는 일이다. 저희들 스스로, 아비가 자식을 잡고 자식이 아비에게 대서게 만들어 골육상쟁으로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권력의 속성이라는 게 부모 자식 간에도 적이 되기 일쑤라지만 금상 이금李昑은 제 생애 제일의 적을 오직 하나 있는 아들로 간주했다. 제 생전에 필시 아들을 죽일 것이었다. 그 일에 수시로 기름을 붓는 자들도 있었다. 그의 신하라는 자들이 그렇고, 근자에 금상의 총애를 받는 소원 문씨와 그의 오라비 문성국이 그랬다. 이록이 문성국을 궐의 별감으로 심었다. 그가 제 누이를 궁녀로 끌어 들인지 십년이 됐다. 문녀가 금상의 눈에 띄어 옹주 둘을 낳고 소원 봉작을 받았다. 금상의 총애가 제 누이한테 머물렀다 싶은지 얼마 전부터 문성국은 만단사라는 제 본색을 하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만단사에 대해, 이록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 시기가 언제쯤이겠느냐 물었네.
-무릇 사람이 육로로 길을 나설 때는 도적과 병사를 만나고, 혹은 뱀이나 호랑이나 악한 여우나 산도깨비들을 만나고, 수로로 갈 때는 이무기나 자라나 악어 등을 만나고, 풍랑이 일어나 물에 죽은 혼백들이 삶을 탐해 사람을 대신 죽이려고 한다지요. 혹은 죽음에 직면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혹은 표류하여 다른 지방으로 가는 등 숱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고요.
-『옥추보경玉樞寶經』의 <원행장園行章>편에 나오는 구절이던가?
-어느 길에든 신고辛苦와 간난艱難이 있다는 말씀 아니겠나이까. 더구나 나리께서 수많은 목숨들을 거느리고 계신바 홀로 가실 길이 아니시고요.
-그렇지.
이록이 새 나라를 짓기 위한 준비로서 두 번째 할 일이 만단사 장악이다. 현재 기린부와 봉황부는 수하에 들어왔고 용부는 지난번 용부령인 나주목사 이하징을 제거함으로써 새 부령을 세웠다. 새 용부령인 김현로가 용부의 일룡사자一龍嗣子들을 장악하면 될 것이다. 거북부는 아직 한참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전라도 강경에 거하면서 남녘의 상권을 거머쥐고 있는 거북부령 황환이 겨우 쉰 두 살인데다 일귀사자一龜嗣子들의 숫자가 육십 명이 넘는다. 보위부의 동보가 황환의 둘째 아들이다. 동보는 제 아비와 상전의 가운데서 묵묵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지낸다. 근자의 거북부령은, 네가 만단사를 이끌고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아직 모르므로 내버려두는 것이라는 듯, 이록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새 나라를 세울 때 만단사가 일시에 움직여야 하는데, 만단사는 사령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네 부, 이제 칠성부까지 아울러 다섯 부의 부령이 자발적으로 동조해야 했다. 거북부령이 승복하고 온이 칠성부를 키우는 데에 길게 잡아 십년을 예상했으므로 중석의 예시가 맞는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을 홀로 가실 수 없으므로 더불어 갈 사람들을 어찌 거느리느냐에 따라 그 시기가 보이겠지요. 자충수를 두지 않으셔야 하고요.
-내가 둘 수 있는 자충수라는 게 무엇일까?
-나리께서 더 잘 아실 터입니다. 내 사람을 나의 적으로 만드는 것,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게 자충수 아니겠나이까. 어쨌든 나리의 큰 기세가 고요하고 평안하시므로 당장 크게 달라지진 않을 듯합니다. 어떤 길이시든 당장 서둘러도 아니 되실 거고요. 현재와 같은 평정을 유지하시면서 거느리신 목숨들을 너그러이 이끌어 나가심이 가장 빠른 길이겠지요.
-그렇지. 잘 보았어. 그럴 제, 대충의 시기는 언제쯤이라고 봐?
-그 시기를 나리 스스로 결정해야 함을 아실 터, 나리께서는 십년쯤 보고 계시지 않나이까?
과연 그랬다. 최소한 십년은 걸릴 것이되 그때까지 기다릴 게 지루하여 박차를 가하려는 스스로를 시시로 다스리는 참이다. 백년을 준비해 온 일일 제 십년을 못 기다리랴.
-과연 내 여식이 반할만한 스승이로세. 잘 봤네. 내 그쯤은 웅크리며 살아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여하튼 내게 사람이 필요한데, 자네가, 내 여식의 스승으로 내 곁으로 와 나의 제갈공명이 되어 주려는가?
중석이 직설 했듯 이록도 직설로 물었다. 중석이 미소를 짓는다. 맞춰지지 않는 그의 눈에 어린 미소가 문으로 비쳐든 옅은 빛에 온화이 곱다. 온의 스승이 아니라 여인으로 곁에 두어도 좋을 성 싶다. 첩실 화씨는 이록 앞에서 몹시 공순했다. 언행은 요조숙녀와 같이 음전하나 방사는 탁월했다. 아직도 화씨를 안으면 강렬한 쾌락을 누릴 수 있었다. 어떤 여인으로부터도 그만한 쾌락을 얻기 어려울 만큼 화씨는 첩실로서는 다시없을 계집이었다. 다만 화씨는 지식이나 식견이 천박했다. 듣고 보는 것들을 잊지 않을 만큼 영민하지만 중석과 같이 만승지존에 오르고자 하시느냐, 하는 등의 언사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등의 말의 저변에 무엇이 깔려 있는 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예시한다 할 때 화씨의 예시력은 가을날 나뭇잎이 떨어질 것이라 말하는 정도였다.
-소인, 무녀가 아닌 사람을 제자로 둘 수 없노라, 따님께 이미 말씀 드렸나이다. 지금 나리마님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소인이 섬기는 대상이 부처님과 신령들인 까닭에 특정한 사람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대답을 듣고자 한 것은 아니네. 내가 몇 번을 찾아와 청하면 되겠는가?
-지금으로서는 나리께서 몇 번을 찾아오시어도 소인은 같은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저도 계집이라고 튕기는가. 이록은 자신의 속내에서 이는 웃음이 간지럽다.
-지금은 그렇더라도 상황이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쪽의 속웃음을 알아챈 양 중석도 미소 짓는다. 온이 말하길 한두 번으로 성사 될 것 같지 않다 하였다.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온 터. 나를 따르면 부귀와 광영을 누릴 수 있으리라 제안하지 않기를 잘 한 듯하다. 부귀와 광영 따위로는 넘어오지 않을 무녀이므로 비웃음이나 사고 말았을 게 아닌가. 중석 스스로 말했듯 서두를 일은 아니다. 귀한 것은 아껴야 하는 게 이치, 당장은 순순히 물러나야 할 때다.
-알겠네. 오늘은 날이 저물어 가니 내 돌아가겠네. 날 잡아 다시 오기로 하지.
-살펴 가시옵소서.
말 한필에 해당할 복채의 값은 지존에 오르고자 하냐는 질문을 받은 것으로 충분히 했다. 차 한 잔 얻어 마시며 지체하고 싶으나 물러나는 걸음이 아쉽지는 않다. 사람을 얻기 위한 일이매 이만한 포석은 깔아야 마땅하다. 해거름이 짙어졌다. 그믐날이라 달이 없으므로 금세 깜깜해질 터이다. 어두워져 가는 이웃 어디선가 밥이 끓는 냄새가 감돌고 사람 말소리도 옅게 들린다.
-이대로 내려가시옵니까?
효맹의 물음에 이록은 고개를 끄덕이고 중석의 집을 벗어난다. 두 필의 말을 반반골로 오르는 입구의 화개객점 바깥에다 매어놓고 올라왔다.
-객점에서 하룻밤 유숙한 뒤 내일 아침 일찍 산청으로 넘어가자.
산청 사리내 문정헌聞晶軒의 조엄은 대학자로 이름 높은 조상을 둔 사람치고는 몹시 겸손하고 소박하였다. 문정헌의 가풍자체가 그러했다. 이록이 조엄을 처음 만난 건 그가 성균관 유생으로 지내던 십오 년 전이었다. 알음아리로 만났으나 깊은 교유는 갖지 못했다. 그를 다시 본건 그가 사간원 정언으로 부친상을 당해 향리로 내려간 사년 전이었다. 당시 이록은 충훈부의 도사都事였다. 위도 아래도 없이 종오품의 도사都事 둘 뿐인 충훈부에서 하는 일이라곤 신료들의 공을 따져 공신록에 올리거나 빼는 것이었다. 이미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나 있는 자들을 아울러 현직에 임해 있는 자들까지. 그들의 공과를 촘촘히 따져보는 일을 하매 이미 공과가 결정 난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사가 할 일은 별로 없는 한직이었다. 일을 하자고 들면 이미 공신록에 올라있는 누군가의 전사를 뒤적여 흠을 잡은 뒤 그를 끌어내리거나 청탁에 의해 누군가를 공신록에 올리는 직책이었다. 사안이 빤하지 않을 경우 대개 척을 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 이록은 새 일을 벌이지 않았고 몸을 사렸다. 조엄을 만난 건 판서를 지낸 뒤 하향하여 살다가 하세한 그 부친의 충훈을 따져서 추훈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그는 제 부친의 공을 높이려 전혀 애쓰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제가 아는 사실을 말했다.
어쨌든 사리내에 갔을 때 문정헌이 그 이태 전부터 당한 환란을 알게 되었다. 팔도에서 오십만여 명이 죽어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돌림병의 대 환란의 겨울에 조엄도 어머니며 아우 내외, 아들 둘과 족질들까지 자그마치 아홉이나 되는 식구를 잃었다던가. 그 참사에 이어 부친상까지 당한 조엄이 사직하고 향리에 틀어박힌 것이었다. 이록은 그때 상림으로 가서 장문의 위로 편지와 양곡 서른 섬을 실어 문정헌으로 보냈다. 그의 가세가 빈한하지는 않으나 우의를 표시한 것이었다. 학풍 깊은 가문에서 자란 조엄은 학문이 깊고 심성은 반듯했다. 그는 영호남의 유림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한 사람을 얻음으로써 일천, 일만의 사람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듬해 겨울 다시 찾아갔을 때 조엄의 고명딸 이현을 보았다. 당시 대여섯 살 밖에 아니 되어 제 오라비의 손을 잡고 나오던 아이에게서 뜻밖에도 여상치 않은 뭇기巫氣를 느꼈다. 그때 이현이 너무 어려 이록 자신이 느낀 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호했다. 그때 느낀 뭇기가 맞는지, 맞는다면 어떤 양상으로 자라 있을지가 갑자기 몹시 궁금해진 까닭은 온으로부터 중석에 대해 듣고 나서다. 딸아이가 제 스승으로 삼고 싶다 할 만한 무녀가 화개에 나타났는데 그 이백여 리 즈음에서 조엄의 딸도 무녀로 커나가고 있다면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만단사 칠성부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만단사가 더 커나갈 수 있게 하늘이 돕고 있는 것이지 않는가. 바야흐로 이록의 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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