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를 기다리며
이 홍사
오늘 그 화가는 나오지 않았다.
그 화가를 기다리며 오늘 저녁에는 파타야의 워킹 거리의 화가가 있었던 곳을 세 번이나 갔다가 왔다.
그 거리는 지난밤에 다 둘러보았으니 더 볼 게 없는 거리였는데 하릴없이 그 골목을 통과해서 다녔다.
부근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의 화장실을 다녀가서, 화가가 이 시간이면 나왔으려나? 확인했고, 해변에 띄엄띄엄 서서 담배를 물고 있는 꽃뱀들과 눈을 맞추며 돌아다니다, 이제는 나왔나? 또 가보았고, 부근의 타이 식당에서 쌀국수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또 가서 확인했다.
하룻저녁에 그 골목을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으니 호객행위를 하는 곳곳 주점 앞에 무리 지어 서 있던 무희들이 얼굴을 알아보는지 한 아가씨는 조소를 보냈다. 나를 보자 알아본다는 듯이 피식 웃는 것이었다. 나는 멋쩍게 웃어주었다. 썩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화를 낼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애절하게 화가를 기다렸다.
세 번이나 가보았지만, 오늘 저녁에는 화가가 나오지 않았다. 그 시간까지 나오지 않았다면 오늘은 나오지 않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으로 돌아섰다.
밤 열 시가 넘어서 포기하고 오토바이 꽁무니에 실려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 그 워킹 거리를 찾은 것은 순전히 화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텁수룩한 파마머리에 남루한 청바지 차림으로 스케치북을 무릎에 괴고 쪼그려 앉아 핸드폰의 사진을 한 손으로 키워보고, 줄여보며 연필을 쥔 왼손으로는 쉴새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대칭과 각도, 구도를 잡아 사진 속의 얼굴을 완성해가던 왼손잡이 화가였다. 물론 그의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른다.
그 왼손잡이 화가는 워킹 거리 끝에 있는 조용한 경양식집 울타리 아래, 인도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에게 파타야의 시간은 오늘 저녁밖에는 없다. 화가가 내일 낮에는 나오지 않을 건 뻔하다. 그곳은 밤의 거리니까, 당연히 낯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부재로 심한 낭패감을 느껴야 했다.
파타야 관광특구, 워킹 거리는 밤이 깊어갈수록 그 농염함의 농도를 더해갔다. 쉽게 말하면 밤이 깊어가자 초저녁보다 훨씬 더 벗었고, 더 노골적이고 원색, 원초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거리는 서양 여행객이 반, 무희와 장사치가 반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입은 무희들이 주점 앞, 거리에 나와 호객행위를 하고, 심지어 비키니 차림으로 지나가는 서양 남성의 팔짱을 끼며 끌어당기기도 했지만, 누구도 짜증을 내는 일이 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곤 했고, 아니면 못 이기는 척 팔짱을 낀 채로 술집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 거리만이 지닌 특징이다. 무희의 반라, 요염한 춤은 길을 지나가면서도 어렵사리 볼 수가 있었다. 심지어 반라로 골반만 앞뒤로 흔드는 원초적인 춤을 가게 앞, 길거리에서 추는 무희도 있었다.
그 요염한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파타야는 태국의 관광도시가 아니라 세계의 휴양도시였다.
나는 지금 파타야의 허름한 싸구려 호텔에서, 발가벗고 거울 앞에 앉아 어제 그 화가를 더듬고 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는 수건으로 닦았고 몸은 닦지 말고 말리는 중이다. 호텔이 아니라 여인숙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방이다.
그 화가는 오늘 왜 나오지 않았을까?
어디가 아픈 걸까?
아니면, 집안에 초상이라도 난 건가?
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리려고 그토록 어렵게 사진을 찍었는데 화가를 만나지 못하다니, 한 장의 그림을 얻기 위해 핸드폰의 카메라 기능을 자동으로 하여 거의 두세 시간에 걸쳐, 나는 내 얼굴 사진을 거의 오륙백 장 이상을 찍었다.
농눅 정원의 선인장 그늘이었다.
처음에는 한 장을 찍어서 확인하고 지우곤 하다가 나중엔 거의 서른 컷이나, 마흔 컷을 한꺼번에 찍어서 확인하여 지우고, 또 지우고 해서 얻은 것이 두 컷이었다. 하나는 선글라스를 낀 것이고 하나는 민낯이었다. 화가에게 어느 게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보고 어느 것이든, 초상화로 그리고 싶었는데 화가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사진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다.
단 두 컷의 사진을 얻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내 얼굴을 스스로 찍기는 처음이었다. 순전히 화가의 핸드폰에 저장시켜주기 위해서 그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렇게 절실하게 기다렸던 외국인이 있었다는 걸 화가는 알기나 할까?
오늘은 농눅이라는 정원에 다녀왔었다.
태국어로는 ‘쑤언 농눅’이라고 했다. 쑤언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파타야에서 남쪽으로 좀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개인 소유의 정원이라 했다. 믿기는 어려울 정도로 규모는 대단했다. 정원? 정원이라고 표현하기는 너무 넓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주차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야! 이거 굉장한 관광지인 모양이구나?
주차장에 끝없이 서 있는 관광버스를 보고 주눅이 먼저 들었다. 나는 농눅 정원에 차를 타고 간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 꽁무니에 실려 간, 나 홀로 여행객이었다. 가이드 책자에서 읽은 대로라면 개인 소유라고 했다. 그것도 부호가 아닌 어느 할머니의 개인 소유라고 했다. 그 점이 나를 주눅을 들게 했으며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다. 할머니가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그 할머니는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지만 정작 그 농원에 들어가서는 다소 실망했다.
식물이 지녀야 할 자연미는 철저히 무시되었고 인공미가 가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상업화, 관광화되었다는 게 그 실망의 이유였다.
거의 육십만 평이 되는 땅에 인공정원을 가꾸어 놓았는데 입장료는 파타야치고는 상당히 비쌌고 꾸며놓은 것이 너무 조잡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 실망감으로 인해 그 넓은 농장을 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물론 관람료를 따로 내야 한다는 코끼리 쇼와 전통공연도 보지 않았다.
그 넓은 정원을 혼자서 다니며 그 규모만 짐작했을 뿐이다. 그 넓은 농장을 그렇게 관리하려면 정원사가 적어도 백은 넘어야 할 것이라고 짐작하니 입장료를 그 정도는 받아야 마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웃거리며 좀 돌아다니다 관광객이 한산한 선인장 그늘에 앉아, 바로 조금 떨어진 곳에 금연이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표정을 바꾸어 가며 얼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온 것이다.
지난밤에 그린 초상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었다면 금상첨화일 터인데, 아쉬웠다. 그래서 오늘 마음에 드는 사진을 그렇게 찍어가며 준비했는데 화가를 만나지 못했으니 더 아쉽다.
파타야의 워킹 거리!
그런 거리에 어울리지 않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가 있다니?
화가는 어젯밤 워킹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본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왔다는, 노랑머리의 젊은 녀석을 앞에 앉은뱅이 의자에 앉혀두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는, 말을 걸기가 미안할 정도로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인도에 펼쳐둔 스케치북에는 한 장을 그리는데 십 분이 소요되며 백오십 바트라고 가격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게 일종의 간판인 셈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의 하고 있었다. 화가의 손은 마술가의 손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한 장을 그리는데 백오십 바트면 한화로 얼마야?
환산하니 너무 싼 것이었다. 저런 화가에게 모델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고 연필로만 스케치한 초상화를 한 장 갖고 싶은 욕심도 작용했다. 여행기념으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연필로 그린 그림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 사진과는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뉘앙스도 다르고.
하여, 옆에서 얼쩡거리다가 노랑머리가 일어나자 바로 앉은뱅이 의자에 냉큼 앉았다. 대략 십 분 정도가 걸렸다. 화가는 내 얼굴을 힐끔힐끔 살피며 연필을 쥔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금세 뚝딱! 얼굴은 상당히 닮게 그렸는데 표정이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검은색 리본을 달아 장례식장의 빈소에 얹어놓으면 어울릴 듯한 표정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서, 여태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구나. 표정관리를 매끈하게 해야겠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여태 나는 평소의 내 표정을 보지 못했다. 내가 보지 못해서 관리를 방만하게 한 것이 아니라 늘 욕구불만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그런 표정이 얼굴에 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생각하니 그렇다. 거울을 볼 때마다 본 표정은 가식의 표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젯밤에 그린 초상화가 진짜 내 표정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어쩌면 그 화가가 진정한 내 표정을 사실대로 그렸는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표정관리가 중요다는 말이 사실적으로 실감이 났다.
그 생각을 하며 싸구려 호텔 방에서 발가벗고 거울 앞에 앉아 내 표정을 다시 훑어보고 있다. 말하자면 표정 연습이다. 얼굴을 이렇게 웃어 보이고 또다시 표정을 바꾸어 미소를 지어본다. 미소가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고 거울에 비친 몸이 눈에 거슬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 되어 황홀경에 빠진다는 인간도 있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정정하자. 이제는 아니다.
지난밤에는 두 장의 초상화를 그렸다.
첫 번째는 내가 직접 모델이 되어 화가의 맞은편에 앉아 그렸다. 그런데 작품을 확인하고 실망했다. 받아들고 보니 표정이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핸드폰에 사진이 있나? 앨범을 훑어보니 내 얼굴 사진이 한 컷도 없었다. 하여, 또 몇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동안 옆에서 구경하고 서 있다가, 차례가 되어 화가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두 번째는 여권에 있는 사진을 화가가 핸드폰으로 찍어서 그렸는데, 그리고 보니 그건 얼굴이 더 경직되어 있었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한 장을 얻으려고 오늘 저녁에는 그 거리를 그렇게 싸돌아다녔다. 그 화가가 진정성이 어린 내 표정을 정확하게 그렸는지도 모르는데? 혹시, 나는 엉뚱한 짓을 한 게 아닌가?
지금 거울 앞에서 표정 연습을 하며 생각하니 그렇다.
파타야!
이렇게 불쑥 서두를 던지면 야자수가 있는 그림 같은 해변과 쪽빛 바다를 연상하지만, 창 너머는 시뻘건 황토밭이 나체로 널브러져 있다. 발가벗은 건 나뿐만이 아니라 밭도 벗었다. 그림 같은 휴양도시? 어디에도 그런 환상적인 풍경은 볼 수가 없다. 특히나 도시 뒤편에 자리 잡은 싸구려 호텔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고 내 몸뚱어리 어디에나 세월이 흔적이 묻어 있다.
나도 그렇게 늙어가는가?
파타야에 와서 처음 느낀 점이 있다면 옷을 걸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란 미적 감각으로 따질 때 얼마나 추악한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지금 내 몸도 예술적인 측면에서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지만, 어제 오후에 본, 늙은 서양인 부부의 수영복 차림은 정말이지 예술적이었다. 그런 시각으로 볼 때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감동이 아니라 분명 감탄이었다. 나는 그렇게 늙은 여자의 벗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저렇게 처참하고 흉측할 수도 있는 게 인간의 육신이구나!
저 육신이 담고 있는 정신은 도대체 얼마나 고귀할까? 노인 하나가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일까?
세월 앞에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한참이나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 노부부의 처참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근육이 빠진 팔다리, 쭈글쭈글한 뱃가죽, 곧 벗겨질 듯 불안해 보이는, 축 늘어진 브래지어와 젖가슴, 풍만감을 잃은 엉덩이와 곧 흘러내릴 것 같은 팬티, 탄력이나 풍만함은 어디에서도 엿볼 수가 없었다.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항문괄약근은 탄력을 제대로 지녔는지 그게 궁금할 지경이었다.
아! 인간이 늙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저 처참한 몰골을 보려고 내가 여기에 왔나?
그 모습을 보고 파타야에 온 사실이 순간적으로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해안도로를 피하여 시내 도로를 이용하여 워킹 거리로 갔다. 하긴 해가 졌으니 그 시간에 해수욕한다고 벌거벗은 사람도 없겠지만, 일단 해안도로는 피했다.
거울에 비친 내 발가벗은 몸과 어제 본 그 노부부의 모습이 아직은 대비되지만 내 모습도 그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젊은 시절 탱탱하던 근육, 피부의 탄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거울에 비친 내 벗은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다. 거울 속의 저게 과연 내가 맞는가?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서서 물기를 닦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몸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탄력이 없는 육신이라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벗은 내 몸을 이렇게 찬찬히 살피기도 처음이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대로 비추어주는 게 제 소명이다. 거울은 언제나 소명을 다하고 있는 물건이다.
내 몸을 다시 본다.
저 비친 모습이 내 몸의 실체다.
어제, 수영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그 노부부도 가끔은 벗은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볼까?
생각은 또 거기에서 머문다.
고개를 흔든다.
가능하면 그 노부부의 모습은 기억에서 빨리 지우는 게 정서상 이롭겠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해수욕장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면 그렇게까지 추해 보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데, 그 노부부는 수영복 차림으로 모래밭을 빠져나와, 뭘 마시러 가는지 차량이 지나다니는 큰 도로를 건너서 인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녔으니 눈에 더욱 거슬렸다. 파타야는 그런 도시다. 시내 어디서나 수영복만 걸친 군상을 보는 게 드문 일이 아니다.
워킹 거리는 파타야 해변 남쪽 끝에 자리한 길이 사오백여 미터의 차가 없는 거리다. 저녁 일곱 시부터 아침까지는 차량이 통제되는 관광특구의 원초적인 거리다. 오로지 마시고 즐기기 위해 생겨난 거리인데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마술과 쇼를 수시로 볼 수가 있어 관광객이 미어터지는 거리다.
어제저녁에, 하루만 돌아다녀 충분한데 오늘은 순전히 화가에게 핸드폰에 든 사진을 보여주고 초상화를 부탁하려고 그 거리를 다시 찾은 것이었다.
화가를 만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내일이면 양곤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예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화가를 평생 못 만날 수도 있다.
양곤으로 돌아가는 날을 하루 미룰까?
문득 그 생각을 한다.
하루 더 머물다 가더라도 호텔비만 더 내면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항공편은 올 적에 보니 빈자리가 많았으니 항상 자리는 있을 것이고, 달리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도 미얀마 양곤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양곤에 가는 돌아가는 날이 하루 늦다고 양곤에 별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거울 속의 벌거벗은 중년의 사내, 아니 초로의 사내는 고민 중이다. 나는 그 고민하는 작자를 보고 있다. 저 초로의 사내가 과연 나인가? 굉장히 낯선 사내였다. 거울 앞에 붙은 스위치를 내린다. 거울 위의 전등이 꺼지면서 발가벗은 초로의 사내는 사라졌다.
내가 다시 그리기를 바라는 초상화는 정작 내 표정이 아닐 수도 있다. 지난밤에 그린 경직된 표정이 진짜 내 모습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 가식의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그린 초상화 한 장을 구하려고 오늘 그렇게 화가를 기다린 어리석은 작자인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일 바로 미얀마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이 시간에 뭘 하지?
시계를 보니 이른 시간이 아니다.
미얀마에 있었다면 이 시간이면 오밤중이다. 미얀마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러나 여기는 불야성 파타야다. 열한 시가 넘었는데도 초저녁처럼 여겨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나는 지금 워킹 거리의 분위기에 편승 되어 들떠있는 것인가?
쉽게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배낭에 읽을거리를 잔뜩 넣어 왔지만, 책을 읽을 기분이 아니다.
발가벗고 어둠 속에 앉아 있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정말이지 혼자 오기를 잘했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밤이다.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배운 점은 표정관리를 잘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요 표정은 마음의 빛깔이 아니겠는가?
마음을 밝게 가지고 표정관리를 해야지! 역으로 말하면 마음을 빛깔을 곱게 채색하는 일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마음이 표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표정관리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하나를 배웠다.
정말 여행은 견문을 넓힌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군!
내일이면 양곤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 여정은 그렇게 되어 있다. 파타야도 한국에서 바로 날아온 게 아니었다. 미얀마에 머물다가 잠시 나온 것이다. 미얀마, 양곤에서 한 시간 만에 날아왔고 내일이면 미얀마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아내는 미얀마에 나가면 한 달을 넘기고 들어오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마다 그런 소리를 했다. 이유는 30일이 넘으면 건강보험료가 반 토막으로 줄어서 나온단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비자 없이 30일을 넘기면 과중한 오버스테이 패널티를 물린다.
그게 그거다.
그러나 미얀마에 체류하는 도중에 다른 나라에 한 번 나갔다가 들어가면 그날부터 다시 30일을 시작하니 한국에서 따지면 한 달을 넘길 수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달을 넘겨보자는 심산으로 미얀마에 머물다가 파타야로 날아왔다. 한 달은 한국, 한 달은 미얀마에서 생활하는 나는 미얀마에 체류했던 시간이 거의 사 주일이었다. 따로 비자를 받지 않고 미얀마로 가고, 미얀마 법정 체류 기간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계획하고 다녔다. 그 기간을 체류하면 출국 시에 그냥 통과다
이번에는 한국의 일도 바쁘지 않은 철이니 미얀마에 좀 느긋하게 있자는 심산으로 파타야 여행을 계획했다. 지금 따져보니 파타야 여행은 공짜로 하는 셈이다. 완전히 덤이다. 여태 내가 그렇게 많은 액수의 건강보험료를 내는 줄을 몰랐다. 미얀마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빚은 좀 많지만, 부동산이 조금 있어서 건강보험료를 수월찮게 낸다. 건강보험료를 책정하는데 빚은 따지지 않는다. 한 달이 넘으면 반으로 줄어든다. 그 금액의 반이라면 이번 파타야 여행경비를 감당하고도 남는다.
발가벗고 앉아 조목조목 계산을 해보니 그렇다.
다음에는 미얀마에서 가까운 싱가포르를 가고 그다음에는 말레이시아를 둘러보아야겠다. 그렇게 싸돌아다녀도 여행경비는 공으로 되는 셈이 될 터이다.
양곤에서 방콕까지 항공료는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요금과 비슷하다. 한 시간 거리이니 국제선이라고 그리 비쌀 이유가 없다. 미얀마 부자들은 결혼식이 있거나 큰일이 있으면 방콕으로 장을 보러 나오고, 미얀마에 거주하는 교민들도 비자 클리어를 하러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나와 미얀마 대사관에서 비자를 갱신하고 저녁 비행기로 들어가는 실정이다. 옛날에는 그랬는데 한 달 무비자 조약이 체결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공으로 하며 또 싸게 하는 셈이다.
파타야까지 오는 차편은 스완나품 공항에 내려 도착 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리무진이 삼사십 분 간격으로 있다. 그것도 가이드 책자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굳이 방콕 시내의 동부 터미널까지 갈 이유가 없다. 방콕에 다른 볼일이 없다면 바로 그 버스를 이용하는 게 싸게 먹히고 수월하다.
파타야에 도착했던 어제는 몰라서, 버스에서 내려 한참이나 택시를 찾아다녔다. 호텔을 찾아오는 길이었는데, 몰라서 그랬다. 짐이라고는 달랑 메고 있는 배낭 하나뿐인데 택시를 엄청 비싸게 주고 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헛돈을 쓰며 고생을 한 것이다.
택시를 찾아다니면서 본 이상한 광경은 분명 외국인인데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것이었다. 하나둘이 아니었다. 분명 태국 사람이 아니라 서양인인데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심히 궁금했는데 해안도로로 나가보니 그 답이 금세 나왔다.
외국인에게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곳이 군데군데 여러 곳이 있었다.
가능할까?
일삼아서 오토바이를 빌려준다고 써놓고 여러 대를 줄지어 놓은 오토바이 임대업자에게 물었더니, 관광특구라 면허가 있고 없고는 단속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를 빌리는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얼마이고 빌리는데 보증금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 보증금은 오토바이를 반납하면 돌려준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나는 오토바이를 빌리지 않았다. 그게 비싼 건 아니지만 오토바이를 빌리지 않았다.
겨우 하루 머무는데 무슨 오토바이를 빌리나? 길도 익숙하지가 않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기간 여행을 하지만 서양인들은 아니다. 파타야에 왔다면 최소한 일주일은 버티다가 가는 모양이다. 그런 작자들이 빌리면 오토바이는 유용하게 쓸 수가 있는 물건이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질주하는 서양인들은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오토바이 꽁무니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여자를 태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를 돌아다니고 보니 그게 가능한 도시라는 걸 알았다.
이제야 파악하고 느낀 바지만 파타야를 여행하려면 오토바이를 잘 이용해야 한다.
어제, 파타야로 오는 버스에서 처음 내려서도 택시를 찾을 일이 아니었다. 내가 몰라서 택시를 찾아다녔다. 파타야에서는 택시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니 오토바이 영업이 활성화되어 있기에 그런 모양이다.
가이드 책자에는 그런 게 나와 있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이용했더라면 훨씬 싼 가격에 빠르게 찾을 수가 있는데 몰라서 어렵게 찾은 택시를 비싸게 주고 호텔을 찾아온 것이었다.
어제 오후에 해안을 둘러보라 나가서 오토바이가 택시처럼 영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군데군데 서 있는 오토바이 무리! 예사로 보고 지나다녔다. 워킹 거리를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어느 작자에게 길을 물으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작자가 있었다.
그 작자가 바로 오토바이 영업하는 인간이었던 게다.
영업용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주홍빛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에는 무슨 표시인지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오늘은 그 오토바이를 여러 번 이용했다. 이용해보니 참 편리한 이동수단이었다. 파타야는 도시가 그리 크지 않다. 하여 오토바이로 다 다닐 수가 있었고 오토바이를 택시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모양이다.
어젯밤에는, 오늘 쑤언 농눅에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고 지도를 훑어보았다. 가이드 책자에는 남쪽으로 이십 킬로미터라고 했다. 오토바이는 생각하지 못했고 택시는 너무 비쌀 것이고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본다는 생각으로 호텔을 나섰다.
싸구려 호텔이라 그런지 아침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지난밤에는 아침에 먹을 햄버거를 맥도날드에서 미리 준비했었다. 그 햄버거를 아침으로 때우고 호텔을 나서서 큰길을 건너가 편의점에서 커피를 샀다. 미처 챙기지 못한 커피를 사서 나오는데 길가에 영업용 오토바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키가 자그마한 젊은 아주머니였다. 버스 터미널까지 그걸 이용하면 되겠다고 길을 물었는데 그곳으로 가는 버스는 없고 택시를 이용하면 어떠냐고 되물었다.
택시?
꽤 비싸게 부를 텐데?
그렇게 놀라니 젊은 아주머니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가리켰다. 아주머니가 말한 택시는 바로 오토바이였다. 파타야에서는 영업용 오토바이를 두고 그렇게 택시라고 부르는 게 확실했다. 오토바이로 갈 수 있는 거리인가? 요금을 물었더니 아주 싼 가격이었다. 초행이지만 그 가격이면 버스비와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여겨졌다. 그런 건 감으로 알 수가 있다. 그게 수월하겠다. 돌아오는 걱정은 나중에 하고.
건네주는 여분의 헬멧을 쓰고 바로 오토바이에 올라앉았다. 가는 길이 즐거웠다. 처음엔 손을 잡을 곳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 새댁은 자신의 허리를 안으라고 했다. 허리에 어정쩡하게 손을 대고 있으니 새댁은 내 팔을 끌어다가 자신의 허리에 완전히 감쌌다. 적당한 군살을 지닌 젊은 새댁의 허리를 안고 달리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황홀했다. 그 길로 지구 끝까지, 아니 조금 더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니까, 황홀했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싶다.
쑤언 농눅에 도착하니 많은 서양인이 오토바이를 직접 타고 하나둘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뒤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처녀들을 태우고 있었다.
다들 꽃뱀이니 것을 안다.
그녀들이 꽃뱀이라는 건 이미 어제저녁에 눈치를 챘다.
어제 오후에는 일찌감치 호텔에 짐을 풀고, 읽다가 만 책을 끼고 해안을 거닐었다. 야자수가 있는 시원한 벤치에서 책이나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런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해를 넘기고 말았다.
밤이 되자 해안의 산책로에는 일명 꽃뱀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꽃뱀이라고 이마에 써 붙인 건 아니다. 처음에는 누구를 기다리는 여자들인 줄 알았다. 젊은 여자들이 깨끗하게 차려입고 군데군데 홀로 서 있는데 그곳 벤치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는 사이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서양의 남성들이 말을 걸고, 흥정하는 투였다.
얼레?
눈길을 바로 주지 못하고 힐끔거리고 있으니 내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흥정이 되었는지 바로 팔짱을 끼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꽃뱀이라는 걸 눈치챘다.
이야! 이거, 희한한 도시가 다 있구나!
아무튼, 농눅 쑤언에 도착하자, 그 오토바이 새댁은 요금을 받고 바로 가지 않고 자기가 태운 손님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한껏 발휘했다. 표를 끊는 곳에 가서 입장권을 끊는 것을 도와주고 가격 차이가 입장권을 종류별로 설명을 해주고 출입구에 가서 입장권을 내밀어 통과시켜 주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참 고운 새댁이었다. 잠시 그녀의 행운을 빌었던가?
파타야는 이번에 처음 오는 곳이 아니다. 예전에 아내와 한번 왔었다. 그때는 아내의 계에서 다섯 쌍의 부부가 왔었으니 합이 열이었다. 역사로 따지면 삼십 년 가까이 되는 계인데 패키지로 다녀갔다. 그때 산호섬과 갖가지 공연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그런 공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 워킹 거리에도 물론 갔었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마치고 모자를 돌리는 길거리 마술, 담배를 가지고 하는 마술은 그때도 보았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담배 마술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아무리 보아도 무슨 속임인지 알지 못하고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에는 가이드를 따라 다녔기에 파타야의 길은 익숙하지가 않은데 이번에 와서 대충 익혔다. 다음에 온다면 더 싸게, 더 수월하게 찾아다닐 수가 있겠다.
화가는 오늘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 그의 발목을 잡았을까?
어쩌면 화가가 나오지 않은 것이 잘된 일일 수도 있다. 하마터면 가식의 표정을 초상화에 담을 뻔했다.
화가에게 보여줄 사진은 핸드폰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게 어떤 표정이었기에 마음에 들었던가?
갑자기 그 표정이 궁금했다.
탁자에 던져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거울에는 발가벗은 내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지금 내 표정은 어떤 모습일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으나 불을 켜지 않았다. 불을 켜지 않아도 핸드폰의 사진은 볼 수가 있었다.
저장된 앨범을 훑어보니 오늘 찍은 사진이 좀 된다. 화가를 기다리며 바다의 풍경과 워킹 거리의 마술사를 찍었고, 멀리서 찍은 것이지만 그 거리의 무희들도 사진으로 핸드폰에 남아 있었다.
몇 컷을 넘기다가 쑤언 농눅에 일삼아 찍은 얼굴 사진을 찾아냈다. 민낯으로 찍은 사진의 표정을 살핀다. 살짝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얼굴은 경직되어 있지 않은 표정인데, 어쩌면 이 얼굴은 카메라를 의식하고 지은 가식의 미소인지도 모른다. 그다음에 본 것이 선글라스를 낀 얼굴인데 각도를 잘못 잡아서인지 이마가 좀 넓어 보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인데 주름이 그리 많이 잡히지 않았다. 그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과연, 이게 정작 내 평소의 표정이 맞는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민낯의 사진으로 넘겨서 그 표정을 뜯어보았다.
웃음을 물고 있는 표정이 자연스럽다. 화가에게 보여주었다면 이 사진을 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어 두 컷을 건졌다지만 선글라스를 낀 것은 이제 다시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하나를 건진 셈이다. 나는 민낯의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게 과연 내 평소의 표정인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향해야 할 표정이지 평소의 내 표정은 아니다. 혹시 가식의 미소는 아닌가?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아서 눈물이 괼 정도가 되었다. 어쩌면 화가는 지난밤에 정확한 내 평소의 표정을 이미 읽었고 그걸 그대로 그렸는지도 모른다.
오늘 밤 화가가 나타났다면 내 가식의 표정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화가가 나타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마터면. 가식의 표정을 그릴뻔했다.
이제는 이 사진을 가끔 찾아보며 미소를 짓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 마음의 빛깔을 바꾸어서 표정이 완전히 바뀌면, 그때 가서 파타야를 다시 찾아와야지. 그 화가 앞에 앉아 초상화를 다시 그려서 검열을 받아야지. 답은 내려졌다. 이 사진을 자주 봐야지.
자정이 넘었다.
자야겠다.
발가벗고 그냥 잘까, 아니면 잠옷을 찾아 입고 잘까?
그런데 화가는 오늘 왜 나오지 않았을까? 그것이 심히 궁금한데 잠이 올까? 만약, 다음에 온다면 그 화가를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 초상화를 다시 그리지 않은 것은 잘된 일이지만, 화가를 만나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