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실제 구름을 타고 오시며, 재림하시는 즉시 세상은 멸망하고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증거하는 재림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눅 21장 27~28절
예수님은 당신께서 구름 타고 오시면 곧바로 세상은 심판을 받고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으셨다. 단지 그때는 구속이 가까운 때, 즉 천국이 가까운 때이므로 일어나 머리를 들고 구원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이처럼 재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대다수 기독교인의 생각과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타고 오시는 ‘구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연히 실제 구름일 것이라는 통념 역시 실은 예수님의 뜻을 곡해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재림 예수님을 올바로 영접할 수 없을뿐더러 구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구름 타고 오신 초림 예수님
이에 대한 해답은 초림 예수님에 관한 예언에서 찾을 수 있다. 초림 예수님께서 오시기 약 600년 전,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선지자에게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셨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단 7장 13~14절
장차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며, 하나님께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는 예언이다. 이 예언은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장 18절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장 10절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 22장 29절
구약의 예언에 따라 이 땅에 오셔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신 분은 틀림없이 초림 예수님이시다. 주목할 점은 다니엘서에 예수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기로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 하늘에 있는 구름을 타고 오지 않으시고 마리아의 몸을 통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다니엘서의 예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타고 오시리라 한 구름이 육체를 뜻하는 비유인 것이다.
초림 예수님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듯, 재림 예수님께서 타고 오시는 구름 역시 육체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구름 타고 오신다고 예언한 뒤 한 번은 육체로 오시고, 다른 한 번은 실제 구름을 타고 오실 리 만무하다. 예수님께서는 초림에 대한 예언과 동일한 비유로, 재림하실 때도 초림 때와 같이 육체로 오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것이다.
구름은 육체를 가진 사람을 비유
이밖에도 육체를 가진 사람을 구름으로 비유한 말씀을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유 1장 12절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잠 25장 14절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즉 거짓 선지자를 가리켜 ‘물 없는 구름’이라 하였고, 거짓 자랑하는 자도 ‘비 없는 구름’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육체를 가진 사람을 구름으로 비유했다. 이처럼 구름을 육체로 비유한 성경적인 표현 방식에 따라, 신약성경은 육체로 오실 재림 예수님을 두고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예언했다.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육체로) 재림하시는 이유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임박한 마지막 때 다시 육체를 입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 그렇다면 단번에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전에 육체로 재림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장 8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에서 참된 믿음, 구원에 합당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가 많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안식일, 유월절 등 새 언약의 진리를 온전히 지키는 교회는 찾아볼 수 없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 등 사람이 만든 계명을 지키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헛된 경배라고 분명히 경고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장 8~9절
이처럼 세상이 헛된 경배로 가득 차게 될 때를 가리켜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이런 믿음 없는 세상에 예수님께서 최후 심판주로 강림하신다면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심판 전에 먼저 구원받을 백성들을 모으시고, 생명의 진리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육체로 재림하시는 것이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장 16절
‘이 우리에 든 양’은 예수님께서 초림 때 목자로 오셔서 구원하신 성도들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으며, 그들도 친히 인도하겠다고 하셨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목자로서 제자들을 인도하셨듯 마지막 때에도 다시 한 번 성육신하셔서 구원받을 성도들을 친히 이끄신다는 예언이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구름 타고 오신다는 예언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하늘만 바라보다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진리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공중의 구름만 바라보다가는 구원의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성경의 예언에 착념하여, 육체로 임하신 재림 예수님을 올바로 깨닫고 영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기 위해 몇 가지 다른 용어가 사용됩니다.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ἐπιφάνεια(epiphaneia, 나타나다)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기 위해 여섯 번 사용되었습니다. [2]
헬라어 신약 성경은 헬라어 파루시아(παρουσία, "도착", "오심" 또는 "임재"를 의미함)를 24번 사용하는데, 그 중 17번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파루시아는 한 순간의 시간이 아니라 한 기간의 일체를 가리키는 뚜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 복음 24:37에서는 노아가 살았던 기간을 명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파로우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오심"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eleusis는 parousia와 상호 교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파로우시아' 즉 "임재"는 유일무이한 것이며 이전에 일어난 어떤 것과도 구별될 것이었읍니다. [3] 이 단어는 또한 개인(Stephanas, Fortunatus 및 Achaicus, [4]Titus, [5] 및 Paul the Apostle[6])을 언급하면서 6번 사용되었으며 한 번은 "불법자의 오심"을 언급했습니다. [7]
2010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40%가 예수가 2050년까지 재림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58%에서 가톨릭 신자의 32%와 백인 주류 개신교인의 27%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1] 재림에 대한 믿음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복음 전도자 드와이트 L. 무디(Dwight L. Moody)에 의해 대중화되었으며, 전천년설 해석은 1920년대 기독교 근본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genea의 가장 일반적인 영어 번역은 "generation"이며,[13] 이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재림이 예수와 같은 세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역사가 찰스 프리먼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죽으신 지 한 세대 안에 재림하실 것으로 기대했는데,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깜짝 놀랐습니다. [14]N. T. 라이트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15]
대부분의 독일어 성경에서 genea는 "가족/혈통"(Geschlecht)으로 번역됩니다. [16] 덴마크어, 스웨덴어 및 노르웨이어(각각 slægt, släkte 및 slekt)도 마찬가지입니다. [17][18][19] 덴마크 언어학자 이버 라르센(Iver Larsen)은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 1611)에서 사용된 "세대"라는 단어가 오늘날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졌으며 genea의 올바른 번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재림의 문맥 안에는 "선한 사람들"(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의 말씀처럼 모든 환난을 견디게 될 제자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편 14편에서 킹 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신다"고 선언할 때 "세대"를 이렇게 광범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의미로 사용합니다. [20] Larsen에 따르면, Oxford Universal Dictionary는 "계급, 종류 또는 집단의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genea의 가장 최근의 입증된 사용은 17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라르센은 그 이후로 영어에서 "세대"의 의미가 상당히 좁아졌다고 결론지었다. [21]
성경학자 필립 라 그랑주 뒤 투아(Philip La Grange du Toit)는 신약성경에서 genea는 주로 시대를 초월한 영적 가족/혈통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며, 마태복음 24장의 재림 설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라르센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여기서 genea라는 단어가 "나쁜 종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예수가 앞의 문맥에서 그 경멸적인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23장). 그는 또한 경쟁하는 주요 번역 대안과 다른 견해를 지지하는 일부 학자를 나열합니다.
"이 세대"는 예수의 재림을 포함하여 4-31절에 요약된 "이 모든 일"[πάντα ταῦτα]을 목격할 예수와 동시대 사람들을 가리킨다(Davies & Allison 1997: 367-368; 토끼 1993: 281; Maddox 1982: 111–115). 예수와 동시대 사람들이 그분의 재림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예언이 틀렸다고 주장한다(Luz 2005: 209; cf. Schweitzer 1910: 356-364).
"이 세대"는 4-22절 또는 4-28절에 나와 있는 "이 모든 일"을 목격한 예수와 동시대 사람들을 가리키며, 서기 70년에 있었던 성전의 파괴와 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예수의 재림(29-31절)은 "이 모든 일"에서 제외된다(Blomberg 1992: 364; Carson 1984: 507; 프랑스 2007: 930; Hagner 1995: 715).
"이 세대"는 Ἰουδαῖοι [유대인 또는 유대인]를 가리키며, 그들이 하나의 종족으로서 파루시아 때까지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다(Hendriksen 1973: 868–869; Schweizer 1976: 458).
교부주의적 견해로, "이 세대"는 하데스의 문이 우세하지 않을 교회를 가리킨다(cf. Chrysostom, Hom. Matt. 77:1; 유세비우스, 프래그. in Lc. ad loc).
'이 세대'는 마태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것"을 보는 미래 세대를 가리킨다(Bock 1996: 538–539; Conzelmann 1982: 105).
"일어나다" 또는 "일어났다"[γένηται]라는 단어는 "시작하다" 또는 "시작하다"와 같은 침입 aorist로 해석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모든 일들"은 예수의 현재 제자들의 세대에서 일어나기 시작하겠지만, 반드시 그들의 시대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Cranfield 1954: 291; Talbert 2010: 270).
"이 세대"는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세대"[γενεά]에 대한 경멸적인 의미에 따라 특정 종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Morris 1992: 613; Nelson 1996: 385; Rieske 2008: 225; 예를 들어, 마 11:16; 12:39, 41–42, 45; 16:4; 17:17; (23:36). 드브륀(DeBruyn, 2010: 190)과 렌스키(Lenski, 1943: 953)도 이 표현을 비슷한 방식으로 해석하지만, 그들은 "이 세대"를 예수에 저항한 ἰουδαῖοι 출신의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연결시킨다(앞서 논의한 견해 3 참조). [22]
일부 과거주의자들은 이 "인자가 영광 중에 오심"이 주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그들은 "태양이 어두워질 것",[24] "권세들이 ... 흔들릴 것이다.",[25] 그리고 "그러면 그들은 볼 것이다.". [26]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많은 것들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르리니 그 때에 하늘이 큰 소리와 함께 지나가고 원소들이 맹렬한 열기에 녹을 것이다. 땅과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다 불타 버릴 것이다." [27][28] 그리고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 나타날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애곡할 것이며 그들은 인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9][30]
가톨릭 교회에 따르면, 재림은 단 한 순간에,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게 일어날 것입니다(천사, 성인, 악마조차도 언제 일어날지 모릅니다). [31]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충만함과 우주와 인류의 완성을 가져올 것입니다. [32]
하나님의 통치의 충만함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분의 원수들(죄, 고통, 사탄)을 물리치신 승리를 온전히 나타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3] 하느님께서 예수가 탄생하실 때까지 이스라엘에게 서서히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처럼,34) 하느님께서도 교회의 성례전(세례, 죄 사함, 사탄 쫓아내기, 거룩한 고해성사, 고통 완화 등)을 통해 점차적으로 승리를 나타내시며,35) 우주와 인류의 완성을 통해, 예를 들어 우주와 인류에게 한 몫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승리를 온전히 나타내실 때까지 예수의 부활(우주가 변형되고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심판받고, 보상받는 것). [36][37]
교회는 재림이 재앙(예: 핵전쟁이나 멸종 사건), [38] 환생(예: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 [39] 사회 또는 기술 발전(예: 인류의 노예 제도 폐지 또는 질병 치료) 또는 우위(예: 교회가 정치 권력을 갖는 것)를 통해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40] 또한 교회는 이중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41]
재림은 예수가 "온 이스라엘"에 의해 인정될 때까지 중단되며,[42] 그 다음에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야기된 죄에 대한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유혹(이 경우에는 배교)이 뒤따를 것입니다. [43] 그러나 재림을 재촉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성찬례 거행; [44] 예수의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45] 그리고 재림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46]
많은 기독교 교파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모든 나라에 있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심판으로 간주하며,47)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영광을 얻고 다른 사람들은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 개념은 모든 정경 복음서, 특히 마태복음에서 발견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동안에 있을 이 최후의 심판의 결정적 요인은 자비의 육체적, 영적 행위가 살아 있는 동안 행해졌는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 될 것이다. 그들은 자비, 자선, 정의의 중요한 행위로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자료(마태복음 25:31-46)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과 자비의 역사는 기독교 미술의 회화적 전통에서 매우 빈번하게 나타난다. [48]
초대 교회로부터 보존된 정교회 신자들의 전통적인 견해는 재림이 "번갯불"과 같은 갑작스럽고 명백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49] 그들은 예수가 이 땅에서 사역이나 설교에 시간을 보내지 않고 인류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50]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사역이 재림 직전에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50]
동방 정교회 공동체의 일부인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예수의 재림이 "잃어버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그분의 초림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51]
정교회 평신도인 알렉산더 칼로미로스(Alexander Kalomiros)는 불의 강에서의 재림[52]과 거짓 연합에 대한 초기 교회의 입장을 설명하며,[53]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통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지 말고 적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예수가 왕이 되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생각은 교회에 대한 이단적인 개념이며, "메시아가 지상의 왕이 되기를 바라는 유대인들의 기대"와 동일시된다. 그 대신에 교회는 태초부터 가르쳐 온 것을 가르친다. [설명 필요]
재림에 대한 언급은 니케아 신경과 사도 신경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루터교와 성공회 전례에서 암송됩니다 : "그[예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왕국은 끝이 없으리라." 이와 유사한 진술이 성경의 바울 신조(고전 15:23)에도 있습니다. [54]
루터교와 성공회는 전례를 통해 신앙의 신비를 선포한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으며,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다." [55][56][57]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재림의 실제 날짜를 예측하지 않습니다. 몰몬교도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얼마 후에 미대륙에 있는 그의 "신세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이 종교의 핵심 교리이다. [62]
후기 성도들은 계시록에 언급된 징조로 간주되는 것들에 대해 특별히 독특하고 구체적인 해석을 가지고 있다. [63]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회복된 복음은 재림 전에 세계 모든 곳에서 가르쳐질 것이다. [64] 교회 회원들은 재림이 오기 전에 전쟁, 지진, 허리케인, 기타 인재 및 자연재해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65]
막스 하인델(Max Heindel)의 가르침에는 우주적 그리스도 또는 밖에 계신 그리스도와 내면의 그리스도 사이에 구별이 있습니다. [75] 이 전통에 따르면, 내면의 그리스도는 지구의 에테르계에서 미래의 여섯 번째 시대, 즉 "새 하늘과 새 땅"77)을 향하여 진화하기 위해 각 개인 안에서 태어나야 하는 참된 구세주로 간주된다.[78] 재림 또는 그리스도의 강림은 육신이 아니라,[79] 인간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구름 속에 들리게 될" 행성의 에테르계80)에 있는 각 개인의 새로운 영혼의 몸 안에 있다. [81] 이 사건의 "날과 시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82] 밀교 기독교 전통은 먼저 태양이 물병자리로 들어갈 때 세차운동에 의해 점성술 개념인 물병자리로 들어가는 준비 기간, 즉 다가오는 물병자리 시대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83]
이슬람에서는 예수(또는 이사; 아랍어: عيسى ʿĪsā)는 하나님의 사자이자 바니 이스라일(이스라엘 백성)을 새로운 경전인 인질(복음)로 인도하기 위해 파견된 마시(메시아)로 간주됩니다. [84] 예수(그리고 하나님의 다른 모든 사자)에 대한 믿음은 이슬람에서 요구되며, 무슬림이 되기 위한 요구이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부활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이 필적할 만한 존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분이 선지자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꾸란은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무슬림들은 예수가 복음서에 있는 모든 기적을 (하나님의 허락하에) 행하셨다고 믿습니다. SuraAn-Nisa 4장 157절의 관련 구절은 "그들이 말하기를 '실로 우리가 메시아, 예수, 마리아의 아들, 하나님의 사자를 죽였노라'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다. 그들은 그분을 죽이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그들에게 그를 닮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에 대해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제외하고는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4:158은 계속된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당신 자신에게로 일으키셨다.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높으시니라.
꾸란은 수라 알 마이다 5:116, 5:117에서 심판의 날에 예수와 하나님 사이의 대화를 언급합니다. 예수는 5:116 "너는 백성들에게 너와 너의 어머니를 알라 외에 다른 신으로 숭배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예수는 5장 117절에 "나는 그들에게 당신께서 제게 명령하신 말씀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 가운데 남아 있는 동안 나는 그들을 목격
이러한 예언들이 "재림" 동안에 성취될 것이라는 기독교의 생각과 관련하여, 오르 사마야흐(Ohr Samayach)는 "유대 성경에는 재림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인위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분의 목표를 이루실 수 없었는가?" [100] 랍비 데이비드 울프(David Wolpe)는 재림이 "진정한 실망에서 자라났다. [...] 예수가 죽으셨을 때, 참 신자들은 그 재앙을 신학적으로 보상해야 했다." [101]
라스타파리 종교의 초기 발전에서, 하일레 셀라시에(에티오피아 황제)는 다윗의 집의 일원으로 여겨졌고, 화신한 신으로 숭배되었으며,[102] "검은 예수"와 "검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생각됩니다. [103]마커스 가비(Marcus Garvey)가 셀라시에(Selassie)의 대관식 전날 블랙 메시아의 도래를 설교했다고 주장했다. 이 예언으로 인해 Selassie는 황제가 유럽 식민지 주민들의 예속으로부터 흑인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믿었던 자메이카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기독교 인구의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104]
현대에 이르러 인도의 일부 전통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화신 즉 화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비추어, 인도의 구루 파라마한사 요가난다(Paramahansa Yogananda)는 2004년에 두 권으로 된 책으로 출판된 복음서에 대한 광범위한 주석을 썼다.[105] 이 책은 재림에 대한 신비로운 해석을 제공하며, 재림은 개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내적 경험으로 이해됩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요가난다는 진정한 재림은 당신 안에 있는 무한한 그리스도 의식의 부활이라고 썼다. 또한 누가복음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 "그들도 말하지 말지니라, 보라! 아니면, 저기요! 이는 보라,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 안에 있음이니라." (누가 17:21))
다야 마타(Daya Mata)는 『그리스도의 재림』(The Second Coming of Christ)의 서문에서 "... 따라서 성경 논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최초의 기독교의 본질을 세상에 드러내라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신성한 사명의 포괄적인 정점을 나타냅니다." 그녀는 그의 말을 기록했을 때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위대한 구루는 나사렛 예수와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친교를 통해 그에게 전해진 복음 가르침의 영감 어린 해설을 세상에 기록하면서 환하게 황홀한 얼굴로 빛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105]Larry Dossey, M.D.는 "Paramahansa Yogananda의 The Second Coming of Christ는 현존하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분석 중 하나입니다. ... 예수 말씀에 대한 많은 해석은 민족, 문화, 국가를 분열시킵니다. 이것들은 일치와 치유를 촉진하며, 이것이 바로 그들이 오늘날의 세계에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106]
SCARS: Christian Fiction End-Times Thriller by Patience Prence – 대환난의 시간을 힘겨워하는 Becky라는 소녀에 관한 2010년 소설. [107]
모든 것의 끝에서(At the End of All Things) – 휴거 이후의 날들, 그리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마지막 전쟁 직전의 이야기를 다룬 2011년 소설. [108]
스콧 핀스커(Scott Pinsker)의 재림: 러브 스토리(The Second Coming: A Love Story) –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주장하는 두 남자에 관한 2014년 소설. 각자는 상대방이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09]
^ 1) Future Survival, Chuck Smith, The Word for Today, Costa Mesa, California, 1978, 17페이지 2) The Life of 예수 Critically Examined, David Strauss, Sigler Press, Ramsey, New Jersey, 1994, 587페이지 3) 예수와 마지막 날, 조지 머레이, 헨드릭슨 출판사, 매사추세츠주 피바디, 1993년, 443–444쪽 4)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 알버트 슈바이처, 맥밀란, 뉴욕, 1968년, 240페이지 5) Last Days Madness, Gary DeMar, American Vision Inc., 조지아주 애틀랜타, 1994년, 114페이지 6) The Parousia, Stuart Russell, T. Fisher Unwin Pub., 런던, 영국, 1887년, 84쪽 7)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 에드워드 기번, 펭귄 북스, 뉴욕, 1985년, 276페이지 8) Apocalypse of The Gospels, Milton Terry, (1819), 1992년 John Bray에 의해 18장 재인쇄 및 그 페이지 번호 재매기기, Post Office Box 90129, Lakeland, Florida 33804, 34 & 38페이지
^「가톨릭 백과사전: 일반 심판」(General Judgment): "일반 심판의 진리보다 더 자주, 또는 더 분명하게 성경에 선포되는 진리는 거의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의 날'(욜 2:31; 에스겔 13:5; 93-231700-6 등록 성경 예배 이름 번호 저메인 토마스 맥코이 93-231700-6 이사야 2:12), 여기서 열방은 교부들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파루시아(Parousia), 즉 세상의 심판자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은 자주 반복되는 교리입니다. 구주께서는 친히 그 사건을 예언하실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신다(마 24:27; SGT john 1:18 Parish all world throwed Justice hall Dean Jermaine Thomas McCoy 25:31 sqq.). 사도 말라기 베드로 포펫 노동은 그들의 설교에서 이 교리를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한다(행 10:42; (17:31)과 기록(로마서 2:5-16; 14:10; 고린도 첫째 4:5; 고린도 둘째 5:10; 디모데 둘째 4:1; 데살로니가 후 1:5; 야고보서 5:7). 그 외에도 파루시아(parusia) 또는 대림절(Advent, 고전 15:23; 데살로니가후서 2:19), 재림은 주현절(Epiphany), 주현(epiphaneia) 또는 나타나심(Appearance)이라고도 불립니다(데살로니가후서 2:8; 디모데 첫째 6:14; 디모데 둘째 4:1; 딛 2:13), 묵시록(apokalypsis), 또는 요한계시록(데살로니가후서 2:7; 베드로전서 4:13). 재림의 때는 '그 날'(디모데후서 4:8), '주의 날'(데살로니가전서 5:2), '그리스도의 날'(빌레몬서 1:6), '인자의 날'(누가복음 17:30), '마지막 날'(요한복음 6:39-40)로 언급됩니다. 일반적 심판에 대한 믿음은 교회 안의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널리 퍼져 있었다. 그것은 모든 고대 신조에 신앙의 조항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는 하늘로 승천했다. 거기서부터 그분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사도신경). 두 분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을 가지고 다시 오실 것이다'(니케아 신조). '거기서부터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올 것이며, 그 때에 모든 사람은 그들의 몸을 가지고 일어나 그들의 행위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아타나시우스 신조). 파피아스의 권위에 의지하여, 처음 4세기 동안의 몇몇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천년 지상 통치 이론을 성도들과 함께 세상의 종말에 선행하기 전에 발전시켰다(천년왕국에 관한 기사 참조). 이 생각이 그 저술가들의 종말론적 가르침과 엮여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세계 심판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이 교리에 대한 교부의 증언은 분명하고 만장일치이다."
^ Paul E. Engle과 John H. Armstrong, eds., Understanding Four Views on the Lord's Supper, Zondervan Counterpoints Collection (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2007), p. 46.
^ Tabletalk Magazine, 2005년 3월, The Exaltation of Christ (Lake Mary, Florida: Ligonier Ministries, 2005), p.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