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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 이장욱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원을 잃어버렸다.
자꾸 잃어버려서 믿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 그것이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이제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원인이 사라진 풀밭에 자전거를 버려두었다.
바퀴의 은빛 살들이 빛나는 강변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불가능해지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였다.
풀밭에는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가 펼쳐져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쉽다.
그것을 진실로 느끼는 것은 모로 누운 사람들 뿐이지만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니어서
외롭고 강한 사람들뿐이지만
은륜이 떠도는 풍경을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
햇빛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물의 일렁임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달려가다가 멈추어 서서 문득 잔인한 표정을 짓는 일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겠지만
오늘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매일 명확한 것들만을 생각하였다.
나의 풀밭에서 부활하려고 했다.
거대한 존재가 내 곁에 모로 누워 있기라도 한 듯이
사랑을 하려고
석양이 내리자
아무래도 나를 바라보는 이가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집 『음악집』 2024.3
개인적 해석
의료법에 규정된 내용을 제목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사망진단서 법정양식 중 사망진단서의 제10항에 사망의 원인에는 "직접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 적습
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에 피투된 존재가 죽음의 선구적 결의를 통해 불안이 찾아오고 본래적 자기로 기투(다시 태어나는)하는 과정이 하이데거 철학이다.
달리면(원인) 영원(결과)에 도달한다는 기존의 믿음은 복잡한 것이고 진리가 아니다.자전거를 타는 행위, 넘어지지않기 위해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행위, 달리는 행위는 명품, 승진, 재산, 권력 등을 지향하는 원인이다.
* 목적 추구적 삶(원인)-부와 권력(결과, 원인) - 최고선(결과)???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계속 달리는 행위(욕망지향적 삶)가 우리를 행복, 최고선이라는 결과로 인도할까? 그것이 필연적 관계가 있을까?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삶의 여정 즉 인위, 작위, 의미, 목적을 상징하는데 영원과는 인과관계가 없다.
인간은 복잡한 추상화와 이론화를 거쳐 영원과 보편의 목적론을 만들었다.그러나 실존이 본질에 앞서고, 더 나아가 본질은 허구다.
ㅇ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
사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4가지 원인은 질료인(재료), 형상인(형태), 작용인(조각가,신), 목적인(목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모든 행위에는 그 행위가 추구하는 목적이 존재한다. 그 목적의 끝에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 있다는 동일성, 항상성의 보편이 자리잡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형이상학적 사고, 목적론적 사고를 뒤집었다. 노자, 불교 등 동양사상은 생성, 과정, 관계, 변화를 긍정하고 동일성, 항상성의 목적론적 사고를 긍정하지 않는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삶은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는 삶이며 자연과 같은 삶이다.사망증명서 즉 죽음에서는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 적는다. 그러니 살아있을 때도 인과관계가 명확한 삶을 살아라는 메시지다.
이 시에서는 다양하게 읽히도록 여러 장치를 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 노장철학의 생성론, 불교 연기론, 기독교의 믿음, 죽음과 부활, 헤겔의 부엉이 등의 철학을 물 밑에 깔고 각자 경험에 비추어 다양하게 읽도록 하고 있다.
현대시는 상징주의이다.상징은 은유와 다르다.은유는 보조관념과 원관념이 1:1이지만 상징주의는 1:다이다.그러므로 원관념이 많을수록 좋은 시가 된다.후고의 '현대시의 구조'에서 현대시의 특징은 1)탈개성화•탈인간화(감정의 중립), 2)고립과 불안, 3)모호함•비의주의, 4)혼효의 기법, 5)수학적 건축공학적 구조, 6)전제적 상상력(실재세계에 대한 변형•파괴) 등을 들고 있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 이장욱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원을 잃어버렸다.
(삶의 여정 중에 어느 순간 영원 즉 목적론적 사고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자꾸 잃어버려서 믿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 그것이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렸다.
(목적론적 사고를.하지 않다보니 믿음이 없어졌다.원래 목적론은 있지 않다. 유와 종개념적으로 복잡한 사고를 하는 인간이 만든 허상일 뿐이다)
나는 이제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분주하고 맹목적인 삶의 안장에서 내려왔다.)
원인이 사라진 풀밭에 자전거를 버려두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일 뿐이라고 말한 괴테의 말이 연상된다. 풀밭은 추상이니 보편이니 하는 회색의 이론이 없는 개별과 구체일 뿐이다.그런 풀밭에 동화 된다. 목적론의 자전거를 굴리지 않는다)
바퀴의 은빛 살들이 빛나는 강변을 바라보며
(멈춘 자전거는 개별이고 자연이다.은빛 살의 이미지가 강의 윤슬의 이미지로 연쇄된다.)
서로에게 불가능해지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였다.
(추상과 보편, 목적론적 사고방식, 개척지향적,욕망지향적 사고는 개별과 구체, 생성론의 사고와 대척점에 있다.
목적인이 있다는 사고를 버렸다.자전거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행위는 목적인을 상징한다.4원인에서 목적인이 떨어져 나가자 질료는 그 자체로 반짝인다. 게념적 보편적 사고를 멈추면 사회적으로 소통이 어렵다. 우리의 언어는 유종적 종차를 이용한 차별과 차이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강변을 바라보는 묘사 뒤에 불가능이 남아있다는 진술이 힘이 있다)
풀밭에는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가 펼쳐져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쉽다.
그것을 진실로 느끼는 것은 모로 누운 사람들 뿐이지만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니어서
외롭고 강한 사람들뿐이지만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는 음악과 같다. 음악은 예술분야에서 가장 의미화가 덜된 예술이다.모로 누운 시인과 같은 존재만이 다르게 사유한다.나와 너, 주객을 나누는 개념적 사고의 밖에 있으면 왕도 하인도 없다. 그러나 이는 비상식적 사유이므로 외롭고 그것이 진리이므로 강한 것이다)
은륜이 떠도는 풍경을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
햇빛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물의 일렁임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달려가다가 멈추어 서서 문득 잔인한 표정을 짓는 일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겠지만
(자연의 인과관계는 명확하다. 그 변화는 누구나 단순하게 알 수 있다. 멈추어야 보이는 것, 그것을 남에게 말해주려는 행위는 인과관계가 있겠지만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오늘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매일 명확한 것들만을 생각하였다.
나의 풀밭에서 부활하려고 했다.
거대한 존재가 내 곁에 모로 누워 있기라도 한 듯이
사랑을 하려고
(기도는 목적론적 행위이다. 그런 행위는 하지 않고 명확한 개별과 구체의 사유로 부활하려고 한다.. 거대한 존재인 진리, 지혜를 사랑하려고)
석양이 내리자
아무래도 나를 바라보는 이가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주위를 둘러보았다.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미네르바의 부엉이(지혜)는 황혼 녁에 날아오른다.지혜는 시행착오, 낮의 사유 끝에 하루의 끝 무렵인 저녁에 왕성해진다.인과를 본질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은 적다)
결합축(정의)
- 인과 관계가 명확한 것만 적습니다.
선택축(전개,확장,승화)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원인이 사라진 풀밭에 자전거를 버려두었다.
-바퀴의 은빛 살들이 빛나는 강변을 바라본다
- 풀밭에는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
-햇빛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물의 일렁임에도 인과관계가 있다.
- 오늘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매일 명확한 것들만을 생각하였다.
- 나를 바라보는 이가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주위를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