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 2004년 8월에 걸쳐 KBS 1 채널에서 방송되었던 대하사극 '무인시대' 를
기억하시지요?
1170년 보현원에서 일어난 무신들의 정변으로 시작하여 1219년 최충헌의 죽음으로
마무리지어진 '무인시대' 의 여러 장면들과 거기서 등장한 인물들을 여러분들은 아마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붓을 든 문신 대신 집권한 칼을 든 무신들,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한 무신들간의 숨막히는
대결, 그 가운데서 펼쳐지는 여러가지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 ......
고려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 무신정변은 1170년 의종 24년
일어났습니다.
당시는 918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운 지 252년 후였고 1392년 공양왕이 폐위되어 고려가
망하기 222년 전이었습니다.
이처럼 시기적으로도 475년 고려의 역사에서 대략 중간 시점에서 일어난 이 무신정변으로
고려의 문벌귀족 중심 정치 체제는 붕괴하고 100년간에 걸친 무인정권시대가 열립니다.
고려 초기 광종 황제 ('제국의 아침' 에 등장한 황제) 시대에 과거제도가 시행되고 이후
성종대를 지나면서 고려는 유교 중심 문치(文治)주의를 지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문무신 모두 고려의 지배층을 이루기는 했으나 문신의 지위가 무신에 비해
높아졌습니다.
군 편제에서도 군의 최고 지휘관은 문신이 맡았고 무신은 단지 싸우는 기술을 가진
기술꾼 정도로 대우받았다고 합니다.
거란족의 대군을 무찌른 강감찬 장군이나 여진족과 싸워 동북 9성을 쌓은 윤관 장군, 그리고
묘청이 서경에서 봉기하자 진압군을 이끌었던 김부식은 모두 문과에 급제한 문신 출신
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무신은 문신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으니 전시과(田柴科)체제에서
무신은 문신보다 낮은 품계에 해당되었습니다.
또한 무신은 제도적으로 정3품(정3품 상장군이 무신으로서는 최고의 품계)까지만 승진이
가능하여 재상(종2품 이상 관직자)의 반열에 들지 못했고 그리하여 재추회의
(고려 최고의 국정 회의,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추밀원의 추신으로 구성됨)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문종 황제 시절을 절정으로 하여 번영을 누리던 고려 문벌귀족사회는 점차 그 모순과
문제점을 드러내어 지배층 내부에서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일어났습니다.
어린 헌종(문종의 손자)이 등극하자 계림공 희(문종의 아들)를 중심으로 한 황실세력과
이자의(이자연의 손자)를 중심으로 한 인주이씨 외척세력(여러 대에 걸쳐서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음)과의 갈등이 벌어져 결국 이자의는 살해되고 계림공 희가 등극하니 그가
바로 숙종 황제입니다.
그리고 예종 황제는 한안인 등 신진관료세력을 등용하여 중히 쓰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종 황제가 승하하고 어린 인종 황제가 등극하자 예종의 장인이자 인종의 외조부인
이자겸은 한안인 등 신진세력을 제거하고 막강한 권력을 장악합니다.
게다가 이자겸은 두 딸을 외손자인 인종에게 시집보내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합니다.
급기야 이자겸은 한때 손을 잡았던 척준경이 그에게 등을 돌려 몰락하기에 이릅니다.
인종 대에 발생했던 소위 '이자겸의 난' 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개경 세력과 서경(평양)
세력 간의 대결)' 은 고려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는 사례였습니다.
인종이 승하한 후 의종이 뒤를 이었고 의종은 자주 유흥을 위해 잔치와 시회를 열고
이궁과 정자 등을 지어 그곳에 문신들을 거느리고 놀러다녔습니다.
이러한 유연 행락(遊宴行樂) 속에서 무신들은 점심까지 굶어가며, 심지어는 비를 맞아가며
보초를 서기 마련이었고 여러 건축물을 짓는 공역에도 동원되었습니다.
문신들이 쏟아지는 비를 소재로 하여 편안히 시를 지으며 즐길때 무신들은 밖에서 그 비를
맞아가며 보초를 섰다는 이야기가 고려사에 전해집니다.
그리고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문신 김돈중(김부식의 아들)의 이야기와 늙은 무신
이소응의 뺨을 때린 문신 한뢰의 이야기는 문신이 무신을 천대하고 얕잡아보는 사회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입니다.
아뭏든 이러한 문무신 간의 차별과 갈등 속에서 쌓이고 쌓인 무신들의 불만은 마침내
1170년 8월 보현원에서 터졌습니다.
'문신의 관을 쓴 자는 일개 서리라 할지라도 모조리 죽여서 그 씨를 남기지 말라' 는
무시무시한 구호를 외치고 다니면서 무신들과 군졸들은 닥치는 대로 문신들을 살해했다고
전해집니다.
경인년에 일어난 이 정변 이후 이의방(李義方) - 정중부(鄭仲夫) - 경대승(慶大升)
- 이의민(李義旼) 정권이 1170년부터 1196년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의민을 제거하여 집권한 최충헌,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최우(崔瑀 ; 최충헌의 아들),
최항(崔沆 ; 최충헌의 손자), 최의(崔誼 ; 최충헌의 증손자) 등의 집권자들...
최충헌 집권기는(1196-1219) 아시다시피 KBS 대하사극 '무인시대' 에서 소재로
다루어졌습니다. 기억나시죠?
최씨 정권은 4대 60여년간에 걸쳐 이어지다가 강화도 천도 이후 몽골의 압박과 사회, 경제적
피폐, 돌아선 민심 속에서 최의가 김준(金俊)과 유경(柳璥) 등에 의해 살해되어 최씨 무신
정권은 무너집니다.
그리고 김준이 정권을 잡았다가 임연(林衍)에게 제거되고 임연이 병사한 후 그 아들
임유무(林惟茂)가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았으나 그도 역시 원종의 명을 받은 송송례와
홍문계에 의해 살해됩니다.
이로써 100년간에 걸친 무신정권은 막을 내립니다.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무신집권자들은 개경환도를
거부하고 전쟁, 화친 양면 작전으로 몽골에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무신정권이 붕괴한 이후 고려 조정은 몽골과 화친하여 개경으로 환도했고
무신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삼별초는 이에 반발하여 고려조정과 몽골에 대항합니다.
이상 무신정변의 발생 배경과 무신정권의 성립, 붕괴 등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100년간의 무신정권 기간인만큼 이 시기에도 역시 여러가지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져갔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고려인들의 면모를 '고려사 열전' 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유교적인 사관에서 씌어진 고려사 열전에 무신집권자들은 모두 반역열전에 실려
있습니다. 단 경대승만은 예외로 제신열전에 실려있습니다. 경대승은 고려 조정을 무신정변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복고의 뜻을 지니고 있었기에 반역열전에 실리지는 않았습니다.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 김준, 임연, 임유무 등은 모두 반역열전에
실려있습니다.
자 이제 무신정권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나 보실까요?
이의방(?~1174)
정중부(1106~1179)
경대승(1154-1183)
이의민(?~1196)
최충헌(114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