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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밀양의 노래는 이미 3월부터 시작되었다. 산악회 주축 멤버인 남회장님 만석이형 종원이형 뜬총무님의 궐위 상태에서도 15인승을 예약하는 등 화려한 외출을 준비하였는데, 뜻밖에 진영이형과 환이형의 막판 불참 선언으로 10명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사 월 십구일 그날은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아침 여덞 시 양재역을 거쳐 안산에서 동천까지 택시로 달려온 규갑이형과 동탄에서 올라온 순기님을 태우고서 스타리아는 거침없는 행진가를 부르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밀양땅은 전도연의 영화적 고향이기도 하지만 우리 회장님의 고향이다. 회장님은 이번 밀양 정기산행 모의와 운전과 문화해설에 이르기까지 그 탁월함을 만방에 떨쳐 보여 주었다.
여덟 명을 태우고서 12시 27분에 밀양 산외면 맛집 고가식당에 무사히 안착하여 다슬기와 논고동 세트 메뉴와 고등어구이로 만찬을 즐기고서 바로 얼음골케이블카로 이동하였다. 케이블카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13시 40분에 공중 그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일행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록예찬이 그냥 쓰인 수필이 아니구나, 그런 느낌을 하늘에서 만끽하고 있자니 다들 온몸에 전율이 일기 시작했다. 울산 가는 옛길과 새로 만든 고속도로, 산내와 산외면 동네들, 길게 뻗쳐 내려가는 단장천에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하얀 호랑이 형상의 바위까지, 너는 누구냐, 나는 대체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 외에 일행이 한 팀 더 있었다.
순기님은 피부 트러블로 다시 케이블카로 먼저 하산하고 회장님, 알장님, 규갑이형, 용진이형, 왕눈이님, 은경님, 재철님은 그다지 험하지 않은 산길로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시리고 싱그러운 사월의 산을 눈에 담아 가기 위해 다들 바빴다. 1시간여 걸어 나가니, 아, 저기 천황산이 있구나, 영남 알프스 9봉 의 하나로구나, 1,189고지다. 가을철 억새가 아직도 미련 남았는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억새군락지이구나, 하늘 높은 가을날 예쁜 님 데불고 다시 한번 더 와야겠다는 강한 유혹이 스며들고 있다. 데크 계단길로 쭉 내려가다 천황재와 재약산이 지척으로 보이는 고갯마루서 막걸리 타임을 가진다. 재철님과 용진이형이 음식을 준비해 왔다.
갈길 멀어 그 좋은 풍광을 뒤로하고서 다시 데크길 친구 되어 가다 보니 천황재가 나온다. 평원이다. 평야이다. 사자떼가 무리 지어 다닌다는 바로 그곳이다. 회장님의 유려한 멘트가 이어지고 재약산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그때가 오후 3시 50분이다. 저질체력인 호랭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사자와 놀기로 하고 나머지 여덟의 용사는 보무도 당당하게 재약산으로 재약산으로 고고씽!
재약산의 전경을 놓치고서 그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바람이 깨워 일어나니 바로 회장님이 내려오고 있었다. 규갑이형, 은경님의 고지정복을 미처 보지 못하고 먼저 정상 인증샷을 남기고서 케이블카로 이동하기 위해 내려왔던 것이다. 역전의 용사 일곱은 재약산의 위용을 들쳐 엎고서 그 아름다운 층층폭포, 구룡폭포, 흑룡폭포를 눈에 담기 위해 하산길로 접어들었다는 전갈이 왔다.
회장님과 호랭이는 케이블카로 부지런히 지팡이를 두드렸다. 천황산으로 가지 않고 산허리를 잘라 만든 임도 비슷한 길로 너무도 편안하게, 편안하게 샘물상회까지 왔다. 인걸은 간데없고 만월대 주춧돌만 남았듯이, 샘물상회가 그와 비슷했다. 예전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산악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오후 5시 40분, 마지막 공중그네를 타라는 안내였다. 휴, 큰일날 뻔했구나, 자칫했으면 알프스 목장에서 밤을 꼬박 지새울 뻔했다. 케이블카로 하강하니 순기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심심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노, 프라블럼, 표충사로 하산팀을 맞으러 떠난다.
능이백숙, 황칠백숙의 산그늘 식당을 여섯 시 사십 분에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과연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섯 시 이십 분쯤 표충사 도착하여 경내를 관람하고 있으니 재철님 용진이형이 절에 들어서고 있었다. 회장님의 유려한 멘트가 이곳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잠시 뒤에 왕눈이님 알장님의 모습도 포착되었다.
벌써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없다.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규갑이형, 은경님이다. 어찌 된 일인가. 겨우 연락을 취한다. 은경님이 퍼졌다는 급보가 날아든다. 이 일을 어쩐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터인데, 알장님이 구조대로 급파된다. 회장님은 여차 상황에 대비해 다리목에 차량을 대기시켰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두 분이 나타났다. 끊임없이 이어진 하산계단에 은경님이 그만 다리가 풀려버렸다는 것이다. 규갑이형이 그 고독한 여정을 끝까지 함께해 주었다.
여덞 시가 다 되어 저녁식사 장소인 산그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었지만, 황칠오리백숙, 능이오리백숙에 소맥과 고생한 얘기들이 날아다녔다. 층층폭포의 미모에 반했기에 망정이지, 그도 저도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다들 그랬다. 하산길 너무 힘들었지만 폭포 하나는 좋았다고. 1일 차 산행은 오프닝이고 2일 차, 3일 차가 본 게임이다. 2일차 산행 여부를 물었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2일 차 산행 멤버 구성을 어찌한다, 알장님, 장렬공의 운명은?
아홉 시 넘어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질 하우스에 도착한다. 멋진 기와집이 떡 버티고 서 있다. 다 좋은데 건너편 고르후장 강렬한 불빛에 눈이 부시다. 이 야밤에 누가 고르후를 한단 말인가, 정신 나간 이들인가, 암튼 모르겠다. 암막 커튼이라도 쳐야 되는가. 그건 그렇고 하우스에 도착했는데 대문 열쇠가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거실창을 통해 집으로 들어간다. 월담, 아니 월창이다. 이럴 수가, 호랭이가 이 집 주인장이 두었다는 열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뭐 중요하랴, 얘기 나누고 몸 누일 공간이 있다는 게 어디인가.
하우스에 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순정의 밤을 지낼 만반의 준비를 한다. 드디어 순기님이 가져온 대만산 위스키 카발란이 춤을 춘다. 알콜도수가 무려 58.7도다. 컵의 절반을 얼음이 차지하고 있다. 음 좋아, 좋아, 다들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회장님이 가져온 '흔들흔들 피자 토핑 보드게임기'가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그 게임, 참 재밌네. 처음이 아닌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균형 잡기가 게임의 제1 요소다. 토핑을 아래로 떨어뜨리면 벌칙이다. 위스키를 원액으로 마셔야 한다. 크아, 아이구 이거 장난 아니네.
벌칙게임이 늦은 밤을 빠르게 흐르게 하나 싶더니 순기님 용진이형의 사랑의 이중창, 회장님의 만취가가 이어지고 여섯이 음주가무를 즐기다 최후 세 명이 새벽 2시인지, 3시인지, 그 독한 위스키를 마셔댄다. 진한 우정의 언어도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얗게 불태운다. 첫날밤은 이렇게 지나간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이십사년 사월하고 열아흐레였지,
(2일 차)
일찍 잠을 깬 알장님은 동네 한 바퀴 순시에 나선다. 장렬공을 통도사역에서 마중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산행팀이 꾸려졌다. 알장님, 장렬공에 왕눈이님이 당첨되었다. 전장에서 최후로 살아남을 전투원이다. 막강 신방을 지켜낼 죽어도 죽지 않을 귀신들이다. 아침이 차려진다. 알장님이 가져온 누룽지에 마트에서 사 온 콩나물을 넣고 고춧가루 팍팍 뿌려 해장국밥을 만든다. 천하의 요리사 은경님 순기님 알장님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어젯밤의 황홀함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겠다. 술이 깨지를 않는다. 그래도 가야 한다. 드디어 장렬공을 만난다. 산행의 달인이다. 이틀 산행을 굳건히 책임진다고 자신만만했던 차였다. 장렬공이 산행팀 점심을 편의점에서 마련했다. 배내고개 주차장에 오늘의 주인공들을 내려놓고, 밀양 문화재 답사팀 일곱은 얼른 내뺀다.
부근의 가지산 석남사에 오전 10시쯤에 도착한다. 여승들의 도량이다. 정갈하다. 절로 들어가는 길이 초록으로 휘황찬란하다. 예의 회장님의 멘트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느긋하게 보내자, 커피도 마시면서 보내자, 답사팀의 모토였다. 그 좋은 절을 찬찬히 찬찬히 둘러보고서 점심 먹으러 간다. 원래 2일 차의 일정이 본대가 서울로 가면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3일 차 산행팀이 피자를 먹는 것이었는데, 일정상 급변경. 산행팀과 합류하는 통도사 인근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해서 점심시간도 대폭 앞당겨졌다.
하우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솔밭만두로 정해졌다. 회장님의 추천 맛집이다. 와우, 이럴 수가, 순기님의 탄사가 이어진다. 육즙이 톡톡 터져요. 다들 맛있다고 야단법석이다. 절도 아닌 음식점인데, 법석이라니! 순기님, 재철님이 과외로 시켜 집에 가져간다. 그렇게 맛이 있나, 음, 그럴 수도, 요새 만두 잘하는 집 잘 없기는 하지,
답사의 본궤도에 오른다. 회장님 재실로 간다. 살내마을에 두 채의 기와 얹은 콘크리트 건물의 위용에 입이 떡 벌어진다. 여주이씨 입이 마르게 칭찬하길, 어언 삼십 년, 과연 칭찬받을 만했다. 후손들이 잘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상을 잘 모신다. 우리나라 최고의 언론인을 여주이씨 가문에서 배출했으니, 말해 무엇하리. 금시당(今是堂)으로 발걸음 옮긴다. 원래 이곳에서 시사(時祀) 를 지냈는데 살내마을 재실을 신축해 그곳서 지낸다고 한다.
그간 연고대 교수는 있어도 서울대 교수는 없었는데 드디어 나왔다고 한다. 교수보다는 언론인이 한 끗 위지, 암만,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의 문신 여주이씨 이광진의 별서다. 오백 년 가까이 된 은행나무는 텔레비전에도 나왔다고 한다. 조용하고 절제와 여백의 미가 한껏 녹아들어 있는 이곳에서 무엇이 중한지 생각해 본다. 지금이 가장 중하제, 그래서 금시당아이겠는가, 다시 발길을 옮긴다.
여주이씨의 또 다른 빛나는 장소이다. 월연정(月淵亭)이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달빛이 교교히 흐르다 지쳐 잠들면 저 아래 실개천이 슬며시 깨우러 온다는 곳이다. 가히 일품이다. 가히 절색이다. 봄비가 처연히 내리고 정자 마루에 나란히 앉아 생각에 잠긴다. 그 생각 무얼까, 울산 가는 고속도로 소음이 선비의 고즈넉함을 깨우고 있다. 저기 저기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줄을 잡고서 강을 건넜다는, 그 강 이름은 밀양강이라, 아리랑길이 소로로 연결되고 있었다. 시간 나면 걸어볼 만하겠다.
월연정을 뒤로하고 시내로 들어온다. 김원봉을 배출한 밀양답게 아리랑시장 가까운 곳에 독립운동가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광복의 원혼들이 살아 있는 듯했다. 비는 여전히 나린다. 나라 잘 되기를 죽음의 순간까지도 기원했다는, 우리가 기억해야 될 모습이다. 그런데 일본을 찬양하는 일부의 무리는 또 무엔가. 조금 한가해지고 싶다.
순기님이 발굴한 카페 해와강으로 간다. 밀양강이 창 너머로 웃고 있다. 달짝지근한 커피맛이 참으로 맛있다. 순기님은 웹소설의 달인이다. 한 꼭지당 백 원인데 많을 때는 하루에 만 원도 소진한다고 한다. 글을 그렇게 많이 읽으니 똑소리 나지. 우리처럼 책 읽지 않는 이들이 본받아야 될 부분이다. 해와강에서 무심을 씹어 먹다가 통도사 가는 일정에 쫓기듯 벌떡 일어난다.
밀양의 보물1호인 영남루로 으랏차차 올라간다. 영남 촉석 광한이 남한 3대 누각이다. 비가 와서 마루에 올라설 수 없다. 무척 아쉽다. 하지만 멋진 모습을 마음에, 휴대폰에 가득 담는다. 영남루에서 바라보는 밀양강은 더없이 아름답다. 세상의 명사들이 이 곳을 찾아 시를 읊었던 이유를 알겠다. 영남루 맞은편 천진궁에서 이 땅의 시조 어르신들 찾아뵙고 이 나라의 바른 인도를 목놓아 외쳐본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 이팝나무의 대명사 위양지(位良池)로 간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 있다. 주어진 시간은 오분 남짓, 얼른 보고 가야 한다. 이곳 또한 사색의 공간인데, 순례길인데, 콩 볶듯 일어나야 한다니 아쉽다. 호수는 저 멀리 밀양의 아름다운 산세를 그대로 비추어 내고 있다. 옛적, 오랜 옛적에 물을 담아 그 물 비워내고 또 비워내길 몇 백 년이나 하였을까, 위양지는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내는 오월에 한번 와야 되는 전설의 땅이다.
바쁘다. 그래도 퇴로(退老)마을 아니 갈 수 없다. 여주이씨의 고택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는 곳이다. 찬찬히 찬찬히 거닐어야 하는데 차로 후딱 돌아보고 만다. 남겨 두어야 나중에 와서 자세히 보는 거지, 고택의 흙담이 참 아름답다. 후원의 대숲이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끝도 모를 담장이 끝날 무렵, 우리는 퇴로 마을의 절반쯤은 알아 버렸다. 여주이씨 밀양 정착지임을, 위대한 조상의 숨결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그랬다. 답사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주이씨가 있었다. 위대한 집안답게, 모든 것이 장엄했고, 여주 이씨는 번창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지니고 있었다.
스타리아는 속보로 움직인다. 통도사 가는 길은 훤하다. 빛이 내린다.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추적추적 비가 방해하고 있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연결된 영롱함이 절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을 운명을 내포하고 있었다.
과연 오늘의 산행팀은 어땠을까, 산에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힘들게 힘들게 걷고 있나 보다. 산행 대신 답사를 택한 용진이형 재철님 규갑이형은 입가에 미소가 만점이다. 인생은 선택이라고, 그래도 산행팀을 말없이 응원하고 있다. 백운암에 와 있다는 연락이다. 통도사 일주문을 지나고 여러 주차장과 암자들을 지나 백운암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후 4시 오십 분이다. 비가 여전히 오고 있다. 그로부터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알장님, 장렬공, 왕눈이님의 순서대로 나타난다.
처연한 모습들이다. 오후 5시 20분이다. 왕눈이님은 우중산행을 대비하지 않아서인지 첫눈에 봐도 무척 힘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렬공 또한 물에 빠진 무엇처럼 불쌍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중에 백일홍이라, 역시 알장님이다. 끄떡없다. 천하대장군이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최근 백두대간 등정 중인데, 바로 그 모습이다. 그 악조건 속에서도 배내봉, 간월봉, 신불산, 영축산 네 개의 알프스를 넘나 들었다. 참으로 장하다. 기개 높다. 무얼 해도 잘할 기상이다.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 통도사 가까운 금미정으로 간다. 오후 여섯 시 다 되어 간다. 가자미조림과 흑돼지 두루치기를 시킨다. 장렬공이 위스키를 꺼낸다.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발베니이다. 17만 원을 주고 샀다. 명품 위스키이다. 어젯밤 무리한 호랭이는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나머지 분들은 즐기고 있다. 힘들었던 산행 얘기다. 그래도 부럽다. 그 고난을 겪고 난 이들이 부럽다. 사람이 사람으로 맺은 인연들, 이번이 마지막 될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는 시간들, 그래서 오늘이 더 값지다. 소중하다. 그 시간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오후 7시를 넘어서면서 서울 가는 본대와 밀양 가는 3일 차 팀이 갈라선다.
밀양복귀팀은 거금 65,000원을 부담하면서 택시를 부른다. 하우스에 도착하여 역시 거실창으로 들어간다. 산행팀 등산화가 흠뻑 물에 젖었다. 아, 그랬구나, 최후의 전사 셋이 다시 자리를 깔았다. 카발란과 발베니가 조금씩 남아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한잔씩 나누어 마신다. 알장님은 피곤했는지 잠자리에 든다. 장렬공과 호랭이는 소맥 두어 잔으로 회포를 풀어 나간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장렬공이 등산 스틱과 법인카드가 든 파우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화들짝 놀란다. 앞서 귀경중인 답사팀에 전화를 해봐도 모른단다. 결론은 저녁식사 장소인 금미정에 두고 온 것. 우중산행이 몹시도 힘들었는지 3일 차 등산은 저어한다. 열 시 삽십 분을 넘어서면서 하우스의 불은 꺼진다. 서울팀은 12시 다 되어 무사안착했다는 소식들이 모두들 잠이 든 하우스에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3일차)
해가 뜨고 비는 그쳤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장렬공이 라면을 2개 끓인다. 알장님은 먹다 남은 김밥을 먹는다. 어찌할 것인가. 알장님을 상양마을 복지회관으로 데려다준다. 가지운문산 가는 코스이다.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인사를 나누고서 장렬공을 태우고 어제의 금미정으로 달려간다. 다행스럽게도 파우치는 잘 보관되어 있었다. 한 명은 산행으로, 한 명은 통도사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뒤에 들은 얘기는 산행자는 가지산은 완등하고 비와 운무에 갇혀 고생하다 석남사로 내려왔다고 한다. 장렬공도 원래의 저녁 7시 예약을 바꾸어 오후 2시쯤 올라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호랭이는 하루종일 토마토 고추 오이 호박 수박 참외 양상추 치커리 적겨자 케일 심었다.
그렇게 '밀양에 살으리랏다'의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꿈같이 흘러가 버렸다. 다시는 안 올지라도, 매일같이 밀양의 꿈을 꾸면서 지내고 있겠지. 그 또한 얼마나 행복한 모습인가, 아니 그런가. 마지막으로 순기님의 멋진 글로 마무리한다.
“시간이 갈수록,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산악회는 제 마음에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흔한 사람관계에 내재해 있는 경쟁과 견제와 질시가 없는, 40년 세월을 이어온 익숙함과 더불어 숲의 평온함과 켜켜이 쌓이는 돈독함이 더하면서 한없이 편안해지는, 때로는 야단스럽고, 그렇게 웃음 폭풍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언제나 명철하게 뚜렷한 길을 찾아 걷고 있는 사람들, 크게 터지던 우리들의 웃음과 빗물에 젖은 숲의 싱그러움이 코끝을 스쳐가는 아침입니다.”
(4월 산행 참가자)
회장님 알대장님 규갑이형 용진이형 은경님 순기님 왕눈이님 장렬공 재철님 그리고 호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