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개역개정판)
그 유명한 하인리히의 법칙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 W. Heinrich)가 1930년대 산업재해 사례 수만 건을 분석하여 정립했다는...
큰 사고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조 증상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공동체는 성과를 원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 성과의 목표치는 물론, 실제 달성치도 가지가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과란
열 달란트를 남기기 위한 목표 설정과 이를 위한 실행 뭐 이런 것들이라기보다는
열 달란트를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잘 만드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과정 자체가 성과가 된다.
잘 살아가는 것...
성과를 위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우
재무적 성과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 재무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
안전이라고 하는 마땅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위한 수많은 순간들과 과정들이 마땅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지만...
원가절감이나 영업매출증대는 물론
안전을 위해서 통계는 필요하다.
통계...
출애굽 시대에도 인구 계수는 중요했는데
다윗은 왜 인구 조사를 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그 마음과 동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올바른 데이터를 취해서
올바른 통계량을 산출하여
올바른 의사결정을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 의사결정권자의 의무이다.
리스크를 줄이고
지속적인 개선활동과
데이터 기반의 업무를 지속하며
이를 품질 관리와 안전 보건관리에 반영하는 것은
선한 청지기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각 업무 현장에서는 물론
일터에서
배움터에서
집터에서
삶의 모든 터전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회사의 모든 투자는
다음 열매를 위한 프로세스 증대와 개선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떨까?
주로 감정과 경험이라는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 요소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잘해보겠다고 하는
균형 잡히지 않은 약속이 공수표처럼 남발된다.
밥 한 번 먹자는 그 간단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고
그런 엉망진창이 삶은
내 삶의 프로세스를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감정과 경험보다는
데이터라는 수치가
감정의 정성적 편향을 물리치고
정량적(定量的, Quantitative)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그 의미있는 숫자는 통계량의 지표로 관리되어야 하며
리스크와 실패를 줄이는 원동력이 된다.
의사결정권자들 뿐 아니라
내 삶의 의사결정은
주님이 근거가 되시지만
주님이 나를 로봇처럼 조종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지만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살아주시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 의사결정은
내 소견의 옳은대로
내 감정이 끌리는대로 가는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이상 신호들
그 신호들 가운데 발생하는 책망들
그 책망들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취급한다면
심지어 이산확률분포와 연속확률분포의 값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샘플링이 가능한 그 수많은 책망들을
데이터로 대해야겠다.
그렇다고 평균에 표준편차까지 구하느라 애쓰는 건
또 다른 책망만 나을 뿐이고
그 책망의 빈도와 강도를 체크하여
내 삶에서의 수많은 의사결정을
어떻게 해나가야할 지는
데이터와 통계적 관점에서 생각해야겠다.
수리로 표현되지 못할 언어의 영역도 있지만
언어의 영역으로만 머물 것도 수리로 표현하면 개선이 쉬워지는 법이다.
자기 성취에 빠져서
다윗처럼 엉뚱한 인구조사를 진행하다가
그 수많은 인명을 희생하게 했던
그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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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통계만 너무 믿어서는 안된다.
삼성과 하이닉스라는 쌍끌이가
코스피 지수를 미친 듯이 끌어올린 결과가 8,300까지 돌파해 버렸지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아픔과 슬픔으로 몰아놓고 있는 다른 주식들은
어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고민만 한다고 될 것이 아니고
기도만 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도 아니니
책망을 데이터로 수용한다면
나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좌절로 받아들이지 말고
짜증과 분노, 슬픔과 좌절의 근거로 삼지도 말고
지혜롭게 대응한다면
한 달란트가 한 달란트로 남아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과는 원인과 과정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