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입니다
편의상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우선 미국 치안 조직을 공부하는 게 순서다. 허나 50개 주 951만 8323km2의 광활한 영토와 3억 명 방대한 인구를 다스리는 복잡다기한 노하우 다 설명하려면 쑥과 마늘로 연명하며 100일간 썰을 풀어도 모자랄 터. 부득이하게 보안관, 경찰, FBI의 기본적인 차이에 대해서만 휴가철 고속도로 휴게소 우동마냥 조금, 아주 조금만 제공하는 점, 널리 이해 바란다.
먼저 보안관. 미국은 튼튼한 지방자치제 하에 각 행정 구역마다 별도 치안 조직을 운영한다. 이중 한국의 '군'에 해당하는 '카운티(County)'의 치안 행정 책임자가 바로 Sheriff, 즉 보안관이다.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고 보통 2년에서 4년 임기를 보장받는데, 상대적으로 서부개척시대 잔재가 남아있는 서남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한다. 고로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샘'이 남의 무를 뽑아 갈더라도 보안관한테 걸릴 위험 적다 하겠다. 거긴 미국 북동부거든.
보안관이란 어떤 존재냐. 아득한 옛날, 그러니까 호랑이 하모니카 불고 존 웨인 역마차 몰던 그 시절, 집도 절도 없는 민초들에게 보안관은 정의의 가죽 부츠요 감히 넘볼 수 없는 권력의 정점이었다(가끔 보안관의 여자를 넘보다 비명횡사한 가엾은 콧수염들을 상기하라!). 허나 호랑이 동물원에 가두고 역마차는 지방 중소도시 실내포차 이름으로 전락한 현대 사회, 급기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보안관이 '나는 새됐어', 떨어진 권력을 자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측은한 처지를 이해하려면 실베스터 스탤론과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오는 <캅랜드>를 보면 된다.
NYPD니 LAPD니 하는 것들 역시 지방 경찰이긴 보안관과 매한가지다. 하지만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을 상대한다는 이유로 왠지 더 알아주는 분위기다. 양촌리 이장보다야 대치동 방범대장이 더 어깨에 힘주지 않겠는가. 그 이유 말이 안 된다면 "2부 리그 선수들의 체력을 장담할 수 없"고 "약팀을 상대로 거두는 손쉬운 승리엔 관심 없다."던 히딩크 할아범의 말씀을 기억할지어다. 8년에 한 명씩 언 발에 오줌 누다 얼어 죽은 취객 사인 조사하는 두메산골 보안관보다야 8초에 한 건씩 강력범죄 발생하는 뉴욕시 NYPD가 전투력 만땅인 건 당연한 이치. 아까 말한 <캅랜드>에서 보안관 스탤론과 갈등하는 로버트 드 니로가 바로 NYPD라는 점을 상기하면 공식적으로야 평등해도 내심 서로 삐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미 법무성 소속으로 법무장관의 지휘, 감독을 받는 FBI(미연방수사국)이다. 말만 들어도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듯 싶지만 헐리우드와 일반인의 오해와 달리 이들은 지방 경찰의 상위기관이 아니다. 미국 헌법과 연방법에 따르면 FBI는 어디까지나 지방 경찰과 '협력 관계'로 '공조 수사'를 할 뿐이다. 수사권이 우선하거나 일선 경찰을 지휘, 감독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아니, 상상만 할 수 있고, 자신이 관할한 사건의 현행범과 준현행범을 체포할 뿐 검찰 같은 기소권도 없다. 그저 수사 결과를 연방검찰관 등 관계기관으로 보내는 게 전부다. 열심히 일한 멀더가 보고서나 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FBI와 기타 경찰들의 관계 역시 공식적으로야 평등해도 내심 서로 삐쳐 있으니 거기엔 다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09년 BOI(법무성 검찰국)으로 발족해 1935년 현재 명칭으로 개칭한 FBI. 초창기에 끗발 따윈 없었다. 그러다 1924년, 전설의 존 에드가 후버가 스물아홉 어린 나이로 국장에 취임해 48년 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권한이 왕창 강화되었다.
특히 47년 대통령령에 따라 연방공무원의 '충성심사사무국' 권한이 FBI로 이관되면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되었고, 60년대 대규모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연방형법을 개정하면서 비로소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경지에 다다랐다. 현재 FBI의 수사 범위는 무려 200여 가지에 이른다.
자, 경찰 아저씨들이 FBI를 미워한 게 언제부터냐고? 스컬리도 모르는 국가 기밀을 낸 들 알 턱 없다. 그리고 사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과장한 측면도 있을 거다. 카우보이 모자 쓰고 컨트리 음악 들으면서 연쇄 살인 해결하는 보안관은 왠지 폼이 안 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측을 원한다면 1924년 후버 국장 취임, 47년 수사권 강화, 60년대 수사권 졸라 강화를 거치며 자신들의 밥그릇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데 대한 앙심적 불친절로 결론 내릴 수 있다. 더구나 명색이 연방수사국인 만큼 1만 1천 4백여명 수사요원은 버지니아 FBI 아카데미에서 특수 훈련된 고급 엘리트로 충원한다.
투표로 뽑힌 보안관과 체력장으로 선발한 LAPD가 기죽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경찰과 달리 FBI 요원들은 경력에 따른 임금 차이만 있을 뿐 계급 차이가 없다. 선진적 업무 환경, 시샘할 만하지 않은가? 결국 그들의 억하심정은 오렌지가 되지 못한 낑깡의 자격지심이며 문어를 동경하는 쭈꾸미의 열등감에 다름 아닐 터. 역시 멀더형 말대로 언제나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다.
첫댓글 이러한 이유가 있었군요...잘읽었습니다^^
fbi 영화에서는 다소 과장이 심했군요^^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재밌는 표현에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