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의 주련] 27. 안성 청룡사 명부전
팔만사천 지옥은 곧 팔만사천 번뇌
지장보살 찬탄하면 이익 얻는다는
내용 변형해 담은 ‘지장예문’ 인용
석장은 비구가 두타행 할 때 지녀
지장보살은 중생 해방 위해 흔들어
안성 청룡사 명부전.
三界橫眠閑無事 閻王殿上往還來
삼계횡면한무사 염왕전상왕환래
手中金錫彈聲震 八萬四千地獄開
수중금석탄성진 팔만사천지옥개
삼계에 일이 없어 잠만 자나니/ 염라대왕 궁전을 수없이 오갔도다!/ 손에든 육환장 소리 진동하니/ 팔만사천 지옥문이 열리도다.
이 주련은 안성 청룡사 명부전에서만 볼 수 있지만 아쉬움이 많다. 주련은 우리나라에 전하는 ‘지장예문’에서 인용됐다. ‘지장예문’은 ‘지장보살본원경’ 제13 촉루품에서 ‘지장보살을 찬탄하고 첨례하면 28종의 이익을 얻게 된다’는 내용을 변형해 문장으로 삼은 글이다.
먼저 청룡사 명부전 주련은 순서부터 어색하다. 사진은 필자가 재배열한 것이다. 글씨체를 보면 ‘삼계횡면한무사’는 다른 사람의 글씨로 여겨진다. 명부전의 주련 하나가 분실되었을까? 청룡사 전각을 두루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명부전에 걸려야 할 주련 ‘기작삼도혼처월’은 청룡당에 걸려있고, 청룡당에 걸려야 할 ‘삼계횡면한무사’는 명부전에 걸려있다. ‘삼계횡면한무사’는 지장보살하고는 관련이 없는 ‘한산시’의 문구다. 명부전 주련의 첫 구절은 ‘몇 번이나 삼악도의 어두운 곳에서 밝은 달이 되어주시며’라는 내용의 ‘기작삼도혼처월’이 걸려야 맞다.
‘기작’은 여러 번이라는 뜻이다. ‘삼도’는 삼악도, 지옥, 아귀, 축생을 줄여서 표현한 말이다. ‘혼처’는 어두운 세계를 말하므로 명부세계, 지혜가 없고 무명으로 점철된 세계다. 지장보살은 삼악도의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로 설정돼 있다. 이어서 나오는 달을 뜻하는 ‘월’은 지혜를 표현한 것이다. 어두움을 깨트릴 수 있는 것은 빛이기 때문이다.
‘염왕전’은 염라대왕이 머무는 궁전을 말하지만, 불교와 거리가 멀다. 불교에는 염라대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고는 도교의 잔재다. ‘지장경’은 위경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염라대왕은 명계의 지배자다. 지옥에서 중생의 업을 심판하는 판관 열 명 가운데 다섯 번째 궁에 머문다는 왕이다. 염라대왕이 염라궁을 몇 번이나 오고 갔는지 헤아릴 수 없다는 표현은 곧 중생의 업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갔다는 의미다.
‘금석’은 쇠로 만든 석장(錫杖)을 말하며 석장의 머리에는 여섯 개의 고리가 달려있어 ‘육환장’이라고도 한다. 원래 석장은 비구가 두타행을 행할 때 소지하는 십팔물 가운데 하나이며 비구가 거처를 떠나 돌아다닐 때는 반드시 휴대하는 도구였지만 중국 불교에서는 이를 지장보살을 상징하는 지물로 삼았기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석장의 원래 용도는 독사나 해충을 쫓아내거나 걸식을 할 때 이를 흔들어 멀리서도 소리를 듣게끔 하려고 지녔다. 천수관음보살의 40수에도 석장수라 해 석장을 지닌 모습을 나타낸다.
지장보살이 손에 든 석장을 흔드는 소리가 마치 대지가 진동하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하였으니 이는 지장보살의 상징인 지옥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석장을 흔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석장은 법을 나타냄과 동시에 법의 위엄을 나타낸다. ‘지장청’에는 ‘손바닥 위의 밝은 구슬로 대천세계를 비추고 손안의 석장으로 지옥문을 흔들어 열어주심’이라 표현한다.
지장보살이 석장을 흔드는 이유는 팔만사천의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지옥이 왜 팔만 사천 개나 된다고 했을까? 중생의 번뇌가 팔만 사천 개나 된다는 표현이다. 번뇌 하나가 지옥인 것이다. 이런 번뇌를 제거하고자 팔만 사천 법문을 설하셨다고 해 ‘팔만사천법문’이라 한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음과 마찬가지다. 중생의 병이 팔만 사천 가지나 되기에 처방되는 약도 팔만 사천 가지나 되는 것이다.
황벽희운(黃檗希運 ?~850) 선사의 ‘전심법요’에는 “팔만사천법문이란 팔만사천 가지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다. 다만 교화하고자 이끄는 문이기에 본래는 일체의 법이 없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