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목) 이사야 51:9-16 찬송 580장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개역 개정)
- 선지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
어제 말씀(1-8절)에서 의를 좇아 행하는 자는 결코 멸망치 않고
구원 얻는다는 위로와 권면의 메시지를 주었던 이사야는
오늘 말씀에서 그 메시지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선지자 자신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먼저 선지자는 과거 출애굽과 홍해 도하의 대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권능을 회고 찬양하면서 선민의 포로 귀환에 대해 간구하였으며(9-11절)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속히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구원할 것이즉
사람을 두려워 말고 당신을 의뢰하라는 약속과 권면을 동시에 주셨다.(12-16절)
이처럼 이사야 선지자가 아직 바벨론으로 포로되어간 것도 아닌데
선민의 구원의 확실성에 대해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이사야 당시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라는 엄청난 사건이
눈 앞에 닥쳤다는 선지자의 예언으로 말미암아 절망하고 있었는 바
이에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여호와 신앙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아가서 이는 궁극적으로 구원의 확신만이
여호와 신앙 회복은 물론 앞으로 닥칠 포로 생활의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이
건성으로 교회를 출입하기만 하며,
신앙 생활에 대해 기쁨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기만
교인(church man)들을 향하여 주는 교훈이다.(롬8:1; 렙2:8-9)
12절)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하나님은 당신을 자기 백성의 위로자로 소개한다.
그런데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위로는 곧 구원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위로자시라는 것은
곧 자기 백성의 구원자시라는 말이다.
특별히 하나님은 ‘나 곧 나’라는 강조적 표현을 통하여
당신이 이스라엘의 참된 구원자가 되심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고 책망하신다.
여기서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였음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하신 말이다.
그리고 ‘죽을 사람’과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였던 바벨론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바벨론이 세상적으로 강력하다는 이유만으로
언젠가는 망하여 사라질 그들의 실상을 모르고 두려워한 사실을 책망하신다.
바벨론은 아무리 세상적으로 강력하다고 해도 언젠가는 망할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현재 아무리 열악한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해도 결코 완전히 망할 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기에,
그리고 자신들이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였기에
자신들을 억압하는 바벨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오늘 우리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지만 우리들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적으로 강한 힘을 소유한 불의한 자들에 의해 억압과 핍박을 받을 수 있다.
특별히 이러한 상황 중에서 하나님께서 참된 구원자시라는 믿음과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자신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는 삶,
비굴하고 초라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세상을 두려워하며
위축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신의 신분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
온갖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말씀을 증거한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끝내 복음을 증거한 사도들은
충분히 압도될 수 있고 위축될 수 있는 열악한 환경, 불의한 형편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이 있다 하여 위축되거나 압도되지 않았다.
충분히 두려워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세상 권력을 두려워하거나
불의한 자들과 영합(迎合)하거나 타협하며 살아가지 않았다.
그런 일들이 있을수록 그들은 담대했고 당당하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밝히며 의로운 삶, 충성된 사명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란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도우시며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같은 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사명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그 백성으로 삼으신 자들을 위로하시고
강하고 능한 팔로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며
우리를 향해서도 우리가 과연 어떠한 자인지,
누구인지를 확인해 보라고 되물으신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복된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이며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 완전한 축복을 누릴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당당하고 의연한 삶, 충성된 삶,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