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난 왜 글을 쓰는가. 책을 읽는가.
책을 읽으면 열 번 정도는 읽을 것이다. 빠르게 읽는다. 그러다가 눈길이 가는 지점에서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지점은 수시로 되풀이 해서 읽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글을 쓴다. 영화나 드라마도 비슷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 종일 그것만 생각한다. 가끔은 여배우의 벗은 몸이 머리에 맴돌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면 영화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된다.
그러나 형편없는 영화는 주제가 아리송하다.
그래서 깡패영화나 전쟁영화는 흥미가 없다. 뻔하니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소설가 답게 주제가 명확하다.
특히, 그의 초기작 ‘오아시스’는 걸작이다. 장애인의 섹스 문제를 한국 최초로 제기했다. 문소리 설경구 두명의 명배우가 탄생 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명배우가 탄생한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글을 쓰게 된 것은, 내 성격 탓이다.
강자에게는 한 없이 강해지고, 약자에게는 눈물 날 정도로 약해진다.
중고교 시절 그래서 싸움을 많이 했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녀석들을 그냥 두지 못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광경을 보고, 책상을 뛰어 넘어 두둘겨 팬 적도 있다.
기어코 고3 때, 야간 자율학습에 반발해서, 의자와 책상을 옥상에서 불태우고 자퇴했다. 대학을 포기했다. 진짜 강한 권력을 만난 것이다.
고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고3 2 학기는 전학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묵호종합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을 가서도 싸움질만 했다. 묵호 시내 깡패새끼들이 날 가만두지 않았다.
대학을 가서도, 강한 놈들은 여전했다. 독재 정권은 진정한 강자였다.
데모하다가 군에 끌려가고 제대하고, 데모의 한계를 느끼고 공부만 하다가 일본에 유학을 갔다.
공부한다는 것이 나를 새롭게 만들었다. 수 많은 책과 논문들이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다. 시간 강사를 하면서, 더러운 대학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는 먹물들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먹고 살 길이 막연했다. 그래서 포크레인 임대업으로 대박이 나고, 스쿠버 다이빙하다가 몸을 다치고, 집에서 2년간 병치레를 하면서 프로그래머 공부를 했다. 플로그래머 일을 하다가, 마케터가 되었다.
난 사람 사귀는데 서투르다. 그래서 행사 모임은 전혀 안간다. 그래서 양복이 없다.
장사도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해서 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 마케터 쇼핑몰이 되었다.
전부 운이 좋아 돈을 벌었다. 지금 대게 직영점도 내가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에게 돈을 주고 경영을 맡겼다. 난 전혀 관여를 안한다.
아내가 죽고, 술 퍼먹다가 병원에 들락거리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의 마음들을 알아갔다.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나의 성격과 병원에서의 사람들의 아픔들, 책읽기와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들이 글을 쓸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인생의 모든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이제 나의 생각과 글쓰기로 사람들과 공감하고 대화할 생각이다.
그것이 삶이니까. 그래서 노래교실에 나가 노래도 부른다. 노래야 말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사피엔스의 강력한 도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