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의미 홍해가 갈라졌다는 사건은 인간의 일반적인 경험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에서 분명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자연의 질서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만일 하느님이 상황에 따라 자연의 법칙을 임의로 깨뜨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이 스스로 세운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관성 없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완전한 하느님이 필요할 때마다 자연의 질서를 마음대로 바꾼다면 인간은 미래를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매일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을 알고 살아가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해가 다른 방향에서 뜨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면, 인간의 삶에는 근본적인 불안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홍해가 갈라졌다는 사건도 중력이나 부력과 같은 자연의 기본적인 질서가 일시적으로 깨진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정한 시기에 나타나는 조석의 간만이나 해안 지형과 같은 자연적 조건을 모세가 이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면, 사전에 이동 경로와 지형을 조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로막힌 바다를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건너려 했다고 보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자연환경과 조건을 이용하여 건널 방법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러한 지형과 조건을 충분히 알지 못했던 이집트의 추격대는 무리하게 뒤따르다가 물에 휩쓸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성서에 등장하는 표적들은 자연의 질서를 하느님이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의 기적이라기보다, 평범한 자연의 질서 속에서도 인간이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타났다는 의미의 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적은 반드시 자연법칙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매우 희귀하고 놀라운 일이거나, 신앙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여지는 사건일 수 있다. 사실 인간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질서와 패턴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면 인간은 계획을 세울 수도, 문명을 발전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성서에 기록된 기적을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초자연적 사건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인간의 노력 위에 하느님의 축복이 더해졌다는 신앙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적은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느님이 모든 것을 대신해 준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연과 환경의 조건이 인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노력과 판단이 필요하지만, 그 노력만으로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더 큰 질서에 신뢰를 둘 수 있다. 따라서 기적은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하나의 공식이 될 수 있다. 인간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내려놓고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기적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인간의 노력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초자연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굳이 우리가 힘들여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적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인간의 책임과 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하느님의 심판이나 의로운 사람에 대한 보상이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현실의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고, 종교 활동 자체에만 몰두하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특히 시계탑 종파에서는 시한부적인 말세론을 강조하면서 곧 세상의 끝이 올 것이므로 세속적인 학문이나 장래를 위한 준비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태도가 나타난 적이 여러번 있다. 또한 성경의 문구를 특정한 종말론적 시간표에 맞추어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종교적 상징과 현실의 사건을 혼동하는 태도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을, 삶을 더 충실하게 만드는 힘으로 사용하기보다 현실로부터 회피하게 하는 도구로 만들 위험이 있다. 신앙은 이성을 넘어설 수는 있지만, 이성과 모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이성을 버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그 질서 너머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의 태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에 근거하여 신앙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통해 이성을 더욱 넓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을 이유로 이성을 파괴해서도 안 되고, 이성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앙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도 없다. 기적을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하느님의 변덕으로 이해하기보다, 자연의 질서 안에서 인간이 발견하는 놀라운 가능성과 희망의 표현으로 이해할 때, 신앙과 이성은 대립하기보다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