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시작한지 벌써 2년하고도 6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비록 일천하지만 그간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한번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시간이 더 지나서 이걸 되돌아보고 어쩌면 쥐구멍을 찾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저와 비슷한 경험을 많은 분들이 되풀이 하실텐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구요.
참고로 제 탁구 실력은 무척이나 형편없습니다. 코치 말로는 좀만 더 열심히 하면 지역5부로 재미있게 게임할 수 있을거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숱한 영광의 상처를 가지신 분들에게는 참으로 허접스러울 수 있음을 감안하시고 개인적인 초보 탈출기 정도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
● 무엇 때문에 탁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가?
제가 탁구를 시작할 때 직장에서 정신적으로 여러가지로 힘든시기였습니다. 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죠.이러다간 몸도 마음도 다 상하겠다 싶어 뭔가 몸을 좀 추스려야겠다고 결심을 했죠. 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쉽게 찾은 것이 탁구였습니다. 근력이나 운동신경이 뛰어나진 않지만 어릴때 약간 경험도 했고 무엇보다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에 구장이 있었습니다. 비용도 당연 고려했습니다. 사실 40이 넘은 제 나이에 선택이 그리 많지도 않았구요.
많은 분들이 탁구 시작한 후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시는걸 보아 왔습니다. 저는 좀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오만 죽상을 하고 퇴근해서 탁구채를 잡고 테이블 앞에만 서면 탁구공 외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두세시간 다 잊고 몰두하면 집에 좋은 낮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ㅎㅎ.
돌이켜보면 탁구시작후 근 일년이상 제 일상에서의 탈출구였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일하는 환경이 바뀌어 예전하고는 다른데, 음.. 현재는 중독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재미도 많이 생겼구요. 차차 하나씩 밝혀 보겠습니다.
● 탁구를 시작할때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한 것들
블레이드, 러버, 탁구화, 의류 이런게 탁구를 배우고 즐기기 위한 기본적인 장비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중 블레이드와 러버는 참으로 종류도 많아 선택이 쉽지 않을 뿐더러 자기한테 맞는 걸 찾는 건 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도 감수해야 하죠.
1. 라켓(블레이드와 러버)
처음에는 "관장/코치의 권유", "가격", "주변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들" 이 세가지가 선택의 기준이었습니다. 카페에 열심히 들락거린 지금은 거의 폐기된 기준이지만 , 아무런 정보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블레이드
제가 사용해온 블레이드는 이렇습니다.
특수소재 블레이드(4개월) → 특수소재 블레이드(6개월) → 순수5겹합판 (1년이상/현재)
처음 1년여는 사실 공 따라다니기 바빴고 레슨도 받고 하면서 제가 하는 플레이가 전/중진을 오가며 올라운드 드라이브 공격을 즐기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는데 처음 2개 블레이드 모두 만족하며 사용했습니다.
어느날 레슨 도중 코치가 자신이 사용하는 라켓을 한번 써보라며 건네주어 사용했는데(5겹합판) 오~ 타구시 손에 전달되는 느낌이 제가 쓰던 슐라거와 많이 달랐습니다. 진동/소리가 그 진원이었겠죠. 이 얘길 하니 코치가 "그런 타구 느낌이 공을 정확히 때리고 채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그런 종류를 한번 사용해 보시라" 라고 해서 지금 사용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때는 이 카페에서 어느정도 기본 지식을 쌓았던 지라 코치가 특정 제품을 권유하지 않았지만 별 어려움없이 구매했고 지금으로써는 완전히 만족하며 사용중입니다. 뭐 특성이나 기술적인 것에 대해 자세히는 말할 능력은 안되지만 제가 느낀 좋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공이 제대로 맞았는지 빗맞았는지 손에 전달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음
○ 스윗 스팟이 좁다고 느껴지는데 이게 공을 정확하게 맞추는데 오히려 도움이 됨
○ 볼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게 "내 힘으로 친다"라는 장점이 되고 "콘트롤"이 좋아짐
○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함
이런 특성은 제가 탁구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러버
러버는 좀더 여러가지를 사용해보았습니다. 오메가,베가시리즈,블리츠,플랙션,칼리브라투어시리지,테너지05,타겟,수퍼벨로체...
현재 포핸드에는 회전을 더 많이 중시하고 단단한 감각을 가진 러버를 주로 사용하고 백핸드에는 부드럽고, 상대회전을 조금이라도 덜 타는 러버를 사용하게 있습니다.
물론 늘상 코치는 한가지에 완전히 정착하는게 제일 좋다고 타박을 하고, 구장에서는 사실 제가 유일하게 이런 저런 러버를 시도하긴 하지만, 나름 과하지 않은 선에서 좋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누가 물어보면 플레이에 어울리는 러버를 찾아서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러버의 교체
러버의 교체주기는 선택에 못지 않은 다른 중요한 것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레슨을 시작한 이후로는 최대 2개월이 되기전에 러버를 교체해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평균 주5일(레슨 2회), 하루 3시간 정도를 운동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중심부 표면이 주변부와 차이가 나고, 탑시트 아래 핌플이 도드라지게 보이며, 드라이브할때 잘 채지지 않는 것 같으면 교체할 시기로 간주했습니다.
운동을 오래하신 분이나 코치는 몇주 더 사용해도 된다고 하는데, 이게 러버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공이 마음대로 안보내질때 스윙과 자세를 점검하는 대신 러버를 쳐다보게 되더라구요. 러버가 이상없다는 확신이 있으면 일단 제 스윙과 자세를 교정하게 되니 배우는 과정에서는 차라리 이게 더 득이겠다 싶습니다.
2. 탁구화
다음으로 중요한 것 또 하나는 탁구화가 아닐까 합니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저는 사실 처음 몇달동안 바닥에 돌기가 없는 골프화를 신고 운동했었습니다. ㅎㅎ. 그러다 탁구화를 신으니 오오 이런 신세계가...
사실 탁구화가 필요한 이유중 하나는 부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주변에서 본 바에 의하면,
⊙ 바닥이 미끄러운 운동화
⊙ 중심이 높은 운동화
는 위험하거나 도움이 전혀 안됩니다. 항상 스윙할때 디딤발이 미끄러지는 상태로 치면서 포핸드가 안된다고 하시는 분도 봤구요. 스펀지 두툼하게 들어가고 조깅화 비슷한거 신고 풋웍하시다가 다치시는 경우도 봤습니다.
뭐 움직일 생각이 없으신 분들은 차라리 괜잖은데 그런 안타까운 사고는 꼭 열심히 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분께 일어나더라구요. 탁구장 바닥이 콘크리트가 아니면 꼭 접지력이 좋고(적당) 중심이 낮은 신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마지막으로 의류.
이것에 대해서는 제 주변에도 참 다양한 생각을 피력하십니다만 사실 반바지에 반팔티 정도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바지 서너개, 탁구 유니폼 2개, 가벼운 티 서너개 정도로 아무 불편없이 입고 있습니다. 단, 경험해 본 바로는
⊙ 무릎을 살짝 덥는 5부 반바지를 입다가 움직임이 좀 많아지고는 무릎에 살짝 걸리적거리는 느낌때문에 지금은 입기가 꺼려집니다.
⊙ 유니폼이 없으면 일반 면티를 입고 운동하는데, 애지간한 날은 문제가 없습니다. 땀이 적당히 날 정도로 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날 운좋게(?) 저와 흥미 진진한 게임을 하시는 일부 상수분들과 시합을 하면 후반부에는 어깨쪽 어깨쪽의 면티가 제 스윙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이들 말씀하시듯 흰색 옷은 정말 좀 피해주시는게 좋습니다. 저도 뭐라고 말은 안하는데 상대가 흰색티를 입고 있으면 좀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
주로 처음 1년여간 제가 좀 힘들어 했던 것들입니다. 게시판에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다른 분들과 비슷한게 많습니다. 극복방법은 뭐 천차만별이니 이런 힘든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초보로서의 소외감
초기에는 게임에 참여하는게 사실 불가능했습니다. 단식을 말할것도 없고 어쩌다 복식에 끼워주긴 하는데 이건 뭐 쩝... 완전 민폐만 끼치니 한두번 한 이후로는 제가 오히려 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구장에서 연습보다는 게임을 많이 하는데 여기에 합류를 못하니... 어떤 심한 날은 4~5시간 정도를 그냥 앉아만 있다 온 경우도 몇번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집에 와서 "아 이걸 때려치고 말지"란 생각을 골백번도 더 했었고 평소 원만하고 좋은 인상이었던 분들도 진짜 인간같지 않게 생각되기도 했었습니다.
2. 매너없는 분들로부터 입는 내상
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운동을 하십니다.
▶ 연습랠리 하다가 공 주으러 좀 멀리 갔다 왔더니 말도 없이 다른분과 게임을 시작하신 분
▶ 심판을 연속 3게임 봐주었는데 운동 좀 하겠냐고 물어보지도 않는 분
▶ 게임하면서 입과 제스쳐로 무지하게 무시하거나 자극하는 분
▶ 연습하는데 2구부터 스매시요 겨우 받아 넘기면 백핸드 깊숙히 패대기 치는 분
▶ 기다리는 사람이 많건 적건 두시간 이상 테이블 하나 차지하는 분
▶ 빈 테이블 기다리는 사람이 여럿 대기하고 있는걸 뻔히 보면서 오자마자 일단 점령부터 하시는 분
속으로 열불나게 하는 케이스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제가 얼굴이 두껍지 못해 내상을 입으면 겉으로 내색까지는 못해도 무심한 척을 잘 못해서 좀 더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3. 오지랖 넓은 분들로부터 입는 주화입마
다들 말씀하시다시피 4,5부 정도 되시는 분들중 쫒아 다니면서 가르쳐 주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게 참 고마운 경우도 있지만 난처하고 황당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몇몇 경험을 되새겨보면...
▶ 말도 안되는 이론으로 무장하시고 강론하시는 분
▶ 주장하는 이론과 자신의 스윙이 완전히 별개이신 분
▶ 물리적인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임팩트에 대해 마법같은 환상을 가지고 계신분
▶ 황당 용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하시는 분
▶ 타당한 이론을 제기하면 "너 나보다 잘쳐?" 식으로 깔아뭉개시는 분
▶ 코치한테 레슨받고 연습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하라는 분(레슨 테이블 옆에서 큰소리로 ㅎㅎ)
▶ 용품에 대해 과도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주장하시는 분
저는 다행이 심한 주화입마에 빠지기 전에 이 카페의 기초강좌로 치유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4. 소소한 비용들
처음에 아무도 같이 연습할 분이 없으니 누군가 한번씩 같이 운동해주시면 음료수 접대를 빠뜨리지 않고 했었습니다. 뭐 휴게탁자에 다른 분이 한두분 앉아계시면 둘만 먹을 수 있나요. 같이 먹어야죠 ㅎㅎ. 복식 게임이라도 하면 심판까지 기본이 음료수 5개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구장에 나간 이후로 음료수 매출 1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관장님이 농담조로 말하기까지 합니다.
공도 물론 제걸 사용했고 지금도 상대에 관계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게임하고 그냥 딴 주머니로 들어가는건 그나마 양반이고 연습하고도 그냥 슥 다른 주머니로 없어지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구장비보다 이런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to be continued
첫댓글 제 자랑좀.... 중1때 같은 동네애들과 같이 (5~6명) 몰려 치러 갈때 그중에서는 1~2위
중3때는 탁구장고수 (40년전 지금 7부는 되나) 그래도 탁구장 주인이 서랍에 있던 버터플라이 라켓을 주었슴.
그후 군대서는 소대 고수, 직장 생활할때 (25년전) 탁구 동호회 20여명중 5~6위정도 (6부정도) ,
5년전부터 아파트 탁구장에서 치고 있는데 이제 겨우 물 4부 인데 아줌마한테 초고수 대우 받음
(동호회원 40명중 2인자, 거의 갖 입문한 초보분 가득)
하수인적이 한 번도 없었던 1인 ㅋㅋㅋㅋ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저두 제 자랑 좀...
38에 탁구를 시작해서 3년만에 전국 2부까지 왔는데요... 현재 41입니다...
좋아하는 운동을 하니 기술 습득도 빠르고 승부욕이 자극되니 더욱 열심히 친것 같습니다...
구장시합도 많이 다니고 입상도 많이 하다보니 알고 지내는 분들도 많아져서 사회 생활에도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덤으로 연예인병과 용품병도 얻었습니다...^^
공감하는 내용 많네요.
레슨 받고 나오자마자 회원 데리고 가서 한시간동안 자기만의 스타일로 가르치던 사람.. 잘쳐봐야 4부정도 될까말까하는 실력으로 얼마나 가르쳐 대던지.. 그러면서 쳐주는걸 가지고 관장이 뭐라 그런다고 떠들고 다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참 어이없었죠
저도 운동신경 정말 없고, 엄청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에 탁구가 많이 도움이 됩니다. 머리에 온통 탁구생각뿐이니 퇴근후에는 최소한 업무생각으로 스트레스는 받지 않더라구요.
열정이 느껴지는 글, 감사합니다.^^
초보자들에게 먆은 도움이 되겠네요.
많이 공감하고갑니다. 저는 학생때 동아리 생활을 해서 사회에서 초보경험이 거의 없던것 같은데 주위의 방해꾼들 많이목격해서 그런지 초보자들이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는이상 입다물고 기본 연습만 합니다. 입탁구 그만~!
재밌기도 하고 아픔도 느껴집니다. 아자아자. 더 기술이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탁구는 참 재미있지만, 가까이서 맞대결을 하는 운동이라 조금 친한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기더군요.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말을 함부로 던져도 안되고, 특히 복식은 같은 팀끼리 심리적인 부분이 많아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갈려요
공감하는 글입니다 ~~
2편이 기대됩니다^^
잘 읽었내요 저도 40초반이라 더욱 공감이 가내요
처음으로 댓글 달아봅니다.
저두 이제 40살 레슨 시작한지 한달 지났는데 많은 공감하구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공감가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50중반 초보가 읽어보니 구구절절 맞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