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제1독서
<아침에게 명령해 보고,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았느냐?>
▥ 욥기의 말씀입니다. 38,1.12-21; 40,3-5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12 “너는 평생에 아침에게 명령해 본 적이 있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지시해 본 적이 있느냐? 13 그래서 새벽이 땅의 가장자리를 붙잡아 흔들어, 악인들이 거기에서 털려 떨어지게 말이다.
14 땅은 도장 찍힌 찰흙처럼 형상을 드러내고, 옷과 같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15 그러나 악인들에게는 빛이 거부되고, 들어 올린 팔은 꺾인다.
16 너는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고, 심연의 밑바닥을 걸어 보았느냐? 17 죽음의 대문이 네게 드러난 적이 있으며, 암흑의 대문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18 너는 땅이 얼마나 넓은지 이해할 수 있느냐? 네가 이 모든 것을 알거든 말해 보아라.
19 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느냐? 또 어둠의 자리는 어디 있느냐? 20 네가 그것들을 제 영토로 데려갈 수 있느냐? 그것들의 집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 그때 이미 네가 태어나 이제 오래 살았으니 너는 알지 않느냐?”
40,3 그러자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4 “저는 보잘것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손을 제 입에 갖다 댈 뿐입니다.
5 한 번 말씀드렸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 말씀드렸으니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나를 물리치는 자는 ”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어촌이고 티로와
코라진은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이지요.
벳사이다는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 위치한 물의 수원지 입구라 할 수 있습니다.
필립보, 안드레아, 베드로의 고향(요한 1,44)이기도 해서 다른 제자들과
예수님께도 친숙한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사이다에서 눈먼 사람을 치유하시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마르 8,22-26)
또 다른 기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따로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가셨는데
군중이 그것을 알고 그 마을까지 따라 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제자들이
주님께 허기진 군중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곳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루카 9,10-17)
카파르나움은 갈리릴 호수 북쪽에 위치하고 여기에서 더 북쪽 육지 방향으로
코라진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마귀들린 사람을 치유하시고(마르 1,21),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마태 8,1-4).
또한 이곳에서 백인대장의 종(마태 8,5-13), 베드로의 장모(마태 8,14-15),
죽었던 야이로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고 (마르 5, 35-43), 하혈하는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마르 5,25-34).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주시고(마태 12, 9-14),
“생명의 빵”에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시셨습니다. (요한 6,22-71)
티로, 시돈은 사렙타라를 사이에 두고 있는 페니키아 관할 지역에 있고
중해 연안 항구도시입니다.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가 그곳에서 마귀가 들린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쳐주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 15,21-28)
지금은 레바논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특히 코라진, 카파르나움,
벳사이다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정이 가는 곳이지만 이곳 주민들의 냉담한 태도에
슬픈 표현을 하십니다.
그래서 코라진과 베사이다를 두고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루카 10,14)라고 표현하십니다.
또 주님께서 카파르나움을 두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15절)라고 슬픔을 나타내십니다.
당신을 받아들일만한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냉랑함에 대해 섭섭한
심정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과는 거리가 있는 이방인의 도시 티로와 두로를 비교하시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단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으시지만 장차 그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죽음을 맞으실 것을 예견하시는 말씀도 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동포로 부터의 배척은 더 큰 슬픔을 가져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나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차가운 시선이나
배척하는 마음을 전해 받을 때,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느끼지요.
가깝기 때문에 기대도 하고 이해 받고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돌아 선 상대의 모습에서
우리는 곧잘 ‘세상에 혼자’라는 씁쓰레함에 빠져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삶을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받곤 합니니다.
당신이 죽음을 준비하며 예루살렘으로 스스로 나아가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큰 힘을 줍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설령 나를 반대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고
피하는 것이 아닌 바로 그 자리에서 미운 이웃을 맞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로사리오의 달에 묵주 기도와 함께 용기를 냅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