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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http://m.cafe.daum.net/subdued20club/ReHf/2100186?svc=cafeapp
출처 : http://m.pann.nate.com/talk/343775321
[청원]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398948?page=4
안녕하세요, 지난번 남편에게 감금 폭행 당하는 아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외면하고 잊고 싶었었던 괴로운 기억들을 억지로 꺼내려 하니 몸을 못 가눌 만큼 구토가 계속되서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께 감사의 인사가 늦었습니다.단 한 명만이라도 봐준다면, 딱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줬으면 하는 다급한 마음에 올린 글이었기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덕분에 '나는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소리치면 누군가는 들어준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꼬맹이였을 때부터였습니다.아버지가 여자들과 만날 때 저를 데려가 “새엄마로 어떠냐”라며 묻고 “엄마보다 요리도 잘하니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같이 있던 여자와 둘이서 즐거워하며 웃고, 여자들과 만난 후에는 예쁜 다이어리와 스티커를 사주며 반드시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야 한다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매년 12월 겨울마다 집을 나가 1월 말 즈음 수중에 있는 모든 돈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를 폭행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아버지가 돌아온 후 어머니가 아버지의 통장을 조회해보면 2개월 동안 통장에 들어있던 800~900만 원가량이 되는 돈을 모두 탕진한 상태였던 데다가 당장 쌀살 돈조차 없어 어머니는 박스를 접고 볼펜을 조립하는 등 부업을 해서 살림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부업으로도 생황비를 충당할 수 없어 아버지에게 돈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꺼내면 "팬티 한 장, 양말 한 개라도 사다 준 적 있냐"며 어머니를 계속 폭행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내내 불면증, 우울증 그리고 심장 통증을 겪었습니다.제가 보는 앞에서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니가 구강성교라도 해줬냐(아버지는 특정 단어를 말했었지만 너무 표현이 자극적이라 순화시켰습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고 모 연예인의 영상이 유출되자 “(영상을) 보고 좀 배우던가. 당장 보여줄 테니 좀 배워라”라며 어머니에게 영상을 보도록 강요하였습니다.제게도 늘 “니 엄마는 남자 똥구멍을 긁을 줄 몰라. 살살 잘만 긁으면 돈이 떨어지는데.”라고 어린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충격적인 말들을 일삼았습니다.늘 집에는 고성과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저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의 볼륨을 최대로 해야만 했었습니다. 혹여나 내가 듣지 못하는 새에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내가 모르는 새에 어머니가 죽는 것은 아닐까,늘 불안했고 그마저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있는 바람에 귀가 짓물러 현실을 피할 수조차 없었습니다.듣고 싶지 않은데 정상적인 청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있을까요.매일 밤 계속되는 음담패설과 저항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차라리 귀가 안 들렸으면 좋겠다.. 내일은 학교가다 차에 치여서 죽을 수 있겠지...암울한 생각이 계속되었고 내가 잠들면 어머니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잠조차 편히 잘 수 없어 불면증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 통증을 안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에는 밤새 집안 살림을 부시고 생활집기들을 던지면서 소란을 피워서 어머니와 저는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습니다.어머니와 저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대화를 하다가도 멈추고 잠든 척을 했지만, 아버지에게 들키면 방문을 부수고 뒷수습이 감당 안 될 정도로 동이 틀 때까지 소란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를 놓치지 않게 온통 신경은 현관문으로 가 있었습니다.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유독 크게 들리는 그 발걸음 소리의 공포란... 아버지가 가족들이 잠들었는지 확인하는 그 정적 속에서 절대 자는 척을 들키지 않으려고 감은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들킬까봐 얼마나 심장이 떨렸는지 모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일을 다니셔서 아버지와 대학병원에 심장 검진을 받으러 가게 되었을 때도(심장질환은 검사할 때 반드시 보호자 동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갈 수밖에 없었고 진료 예약도 어머니가 하신 겁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집에 오는 내내 제게 검사비가 아깝다며 타박을 했습니다.검진을 받기 위해 서너 차례 병원을 가면서도 아버지와 가는 것 자체가 너무 싫어서 차라리 이대로 심장이 멎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검사 결과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태어난 탓이라고 했습니다. 무심한 아버지는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은행을 들러 500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트렁크에 싣고 제게 먼저 집에 올라가 있으라는 말을 하곤 차에서 돈을 세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무심한 아버지와 남을 단둘이 남을 딸이 걱정됐던 어머니는 보험금 수취인을 제 이름으로 해두었고 이걸 발견한 아버지는 "미X년들"이라며 욕을 하면서 길길이 날뛰며 주방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방에서 '삭 삭 삭' 오한이 돋는 소리가 들려 어머니와 살펴보니 아버지가 부엌칼로 장판을 찢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아버지는 중학생이었던 제게 "너만 따라오면 엄마는 때리지 않겠다, 니가 오면 엄마도 따라올 거다"라고 했습니다.어머니가 맞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아버지를 따라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끌려가기 전, 어머니와 그나마 친분이 있던 분께 “엄마가 어딜 가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사랑한다고 잊지 말아 달라고 전해주세요”라고 거듭 부탁드렸었는데.. 혹시 제 뒤에 있던 아버지가 들을까봐 귓속말로 전하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해서 눈물이 납니다.그때 어머니가 도망갈 마지막 기회였는데... 어머니는 끝내 저를 버리지 못하고 돌아와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또다시 주먹에 맞고 발로 걷어차이셨습니다.내가 있는 한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서 평생 무릎을 꿇으며 살 수밖에 없구나, 나만 없으면 난 왜 태어나서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할까, 나만 없었으면 엄마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한없이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어린 딸을 위해 입에도 담을 수없이 고된 날들을 참고 제 곁에 남아주신 어머니의 행복을 바랄 뿐, 설령 어머니가 떠난다 해도 원망 따위는 들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홀로 빚을 갚고 있는 와중에도 술값, 담뱃값을 달라며 폭언 폭행을 일삼으며 어머니가 다음날 출근을 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괴롭히며 직장생활에 지장을 주었습니다.집안 사정이 더 어려워져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더 이상 학원을 다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ebs 교재 조차 살 수가 없었습니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고스톱만 치던 아버지는 ‘차는 남자의 자존심’이라며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에쿠스를 구입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여건이 안 되니 차를 팔라고 설득을 해도 지금 팔면 손해라며 남자는 차가 중요한데 그걸 이해 못하냐면서 화를 내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교재비 줄 돈도 없다고 했던 아버지입니다...)
2011년 5월 아침, 자고 있던 저는 갑자기 온 집안을 울리는 ‘쿵쿵쿵’ 소리에 깼습니다. 누군가가 드릴 같은 것으로 집 문을 뜯으려고 하는듯했고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러댔습니다.집안에 혼자 있었던 저는 겁을 먹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후 아버지와 연락이 닿은 어머니께서 전해주는 얘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에쿠스 할부금 때문에 가족들 몰래 카드 돌려 막기를 하고 있었던 데다가 이미 두 차례 채권단에서 압류 집행에 대한 경고를 했었고 그날 아침에도 채권단에서 압류 강제집행을 한다고 문자를 보낸 걸 보고서 집에 딸만 남겨두고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제 연락을 계속 받지 않던 아버지는 문을 안 열어주면 알아서 갈 것이다 안 열어줘도 된다고 하는 문자만 남기고 연락이 다시 두절됐습니다. (안 열어주면 되는걸 본인은 왜 딸을 두고 도망까지 간건지...)채권단이 드릴과 망치로 문을 부수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무서웠고 어머니에게 곧 갈 테니 기다리란 말을 듣고 문을 열었습니다. 윗층 계단까지 빼곡히 열댓 명 정도되는 사람들이 빽빽이 문 앞에 서서 저를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집으로 밀려들어와 빨간 딱지를 곳곳에 붙이던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악몽으로 남아 있습니다.
2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보고 싶으니 제 사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큰 부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무 의심도 없이 사진을 보내드렸습니다. 빠듯한 현실에 사소한 그날 일은 제 기억 속에서 지워졌었고 어머니와 둘이 살기 위해 얻은 전셋집 대출자금 1억이 버거워 부동산에 내놓은 후, 곧바로 집이 가압류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부동산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부동산에 내놓은 사실을 알자마자 가압류를 걸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난 후에 아버지 측에서 이혼소송을 걸겠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제발 어머니와 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버지는 엄마를 꼬드겨 전세자금을 빼올 생각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고 니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끊어버렸습니다.
가정 폭행을 일삼았던 아버지가 재판 중에 제출한 증거는 2년 전 저와 했던 그 카톡이었습니다. 타인의 폰으로 찍어서 저장해두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그때는 정말 내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재판에서 쓸 증거를 모으기 위해 이미 2년 전부터 준비했고 딸과 잘 지낸다는 증거로 저장해뒀던 톡을 법정에 제출한 것이었습니다.아이의 아버지를 범죄자 만들고 싶지 않아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고 터지는 울분을 삭히면서 혼자 약을 바르며 25년을 참아온 어머니가 희생한 결과가 아버지에게 4000만 원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입니다. 아버지가 무서워 경찰에 단 한 번도 신고할 시도조차 못한 이 멍청한 자식은 어머니께 도움이 되어드릴 길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여러 차례 자해도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지만, 가장 두려운 건 내가 죽고 난 후 어머니를 지킬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현실에 편히 눈을 감을 수조차 없습니다.기억을 돌이켜보면, 인생의 반을 아버지와 살며 폭언 폭행을 당하며 살아온 어머니는 항상 모든 걸 포기한 듯 아무것도 담지 않은 표정으로 계셨습니다.아버지에게 맞은 후 일어날 힘조차 없던 어머니는 예전 생각이 문득 난다고 하며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임신 6개월 때도 아버지의 폭력성은 여전했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어머니가 기절한 적도 있었는데 집 안에는 아버지와 단둘이 있었기 때문에 기절해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편히 기절도 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그리고 어머니는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죄만 미워하고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뒤통수를 맞는다는 것을 제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걸까요.
이 글을 보시면 많이 공유해주시고 퍼트려주세요. 부디 이 글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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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두번째 이야기야
너무 충격적이라서 말 못했던 글인데 너무 화가나서 너무 속상해서 도와줄수있는 일이 이거뿐이리서 글을 올려
동의 한번씩 부탁 할게 🙏🏻
[청원]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398948?page=4
서명하고 옴 제발 저런 괴물은 죽어 산소 낭비하지 않길..
너무 충격적이고 분명 주변에 흔히 있을거다 시발 저거 어딘가에서 들었던 레파토리들이야 갖은 한남짓은 다하는 아빠네 시발 법정이혼을 지가 ㅋㅋㅋㅋㅋ시발 좆같은 새끼
삭제된 댓글 입니다.
플
소
취
진짜 기가막혀서 할말을 잃음......제발 공론화됬으면 ㅠㅠㅠㅠ
연어왔는데 어떻게되셨으려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