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애인
살구, 매실, 자두, 단풍, 겹벚꽃,
두릅, 목련, 장미, 철쭉, 가시오가피...
서둘러 양재동 화훼단지를 들러 수십 종의 나무 몇 백그루를 싣고
사이클의 메카로 알려진 경기도 강촌,
노후 귀착지가 될 그곳으로 달렸어예
연휴맞아 서울 사는 대학생들이 다 이리로 몰려온 건지
거리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한참을 더 달려 홍천강 기슭
조그만 우리 땅 뙈기에 싣고 간 나무들을 부려놓고 나니
어떻게 이걸 다 심나... 휴!
해종일 호미랑 삽이랑 난타공연했지예
정신없이 씨름을 하고는 앞의 홍천강물을 퍼다가
나무들 물까지 다 멕이고 나니
파김치 된 봄볕이 어느새 꼬리를 감추는기라
노곤피곤 녹진해진 몸을 끌고 돌아오다
그림 같은 북한강 상류지역에서
신랑이 하루 묵고 가자 카더라꼬예
흙먼지, 껍데기, 훌훌 벗어 비누거품으로 전신안마하고
데리고 간 강아지까지 목욕시키고 나니
십년 만에 목욕하는 거맹키 날아갈 거 같데예
꼬르륵 소리들으믄서 호텔 아래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송어회에다 술도 못 묵는 울신랑이 시켜준 이슬이.
흥, 또 나 요리해서 잡아묵을라꼬 카는 기지...
뒷 일이야 우예됐건 매운탕에다 실컨 묵고나이 배도 부르고
알딸딸한 기 우야꼬 신랑이 꼭 옛날 애인같아 비더라꼬예
그래가 심중에 있는 야그꺼정 모지리 꺼내놓고 보이
울 신랑 표정이 꼭 대박 한 껀 올린 영업 이사님 같데예
분좋게 올라갔지예
불 타는 밤, 이히히...
신랑은 복도에서 가져온 요상한 비디오를 틀어쌓데예.
드디어 광란의 서곡은 시작되고, 되고, 되고
근데 그때 갑자기
내 핸폰에서 학원 간 아들의 전.번 시그널이 울리는 기라예
아차, 이거 비상상황이다!(동물적 직감으로).
"엄마, 열쇠가 없어서 나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
오메.. 나 몰라!
말미잘 촉수처럼 넘실대는 이 말초신경은 우야라꼬,
나쁜 넘......
길은 꽉 막혀 갈 수도 없고
부득이 전화로 아래층에다 아들 잠자리 인수인계하고 나니
잠시 긴장 탓에 오랫만의 부니기 깨박상 났지예
삽질로 피곤했던 신랑은 이내 골아 떨어지고
코 고는 소리 음악삼아
잠을 청해야 했... 아흐.. 몰라예!
어 달에 한 번꼴로 호텔 예약해 놓고 저녁에
날 불러내던 신랑은 경기가 엉망인 이후 횟수는 줄었지만
그래도 나한테 죽기살기 용 쓰는 거 보믄 어떤 땐 불쌍해예
겉으로 모범생같이 단정한 울 신랑,
성질은 더럽지만,
그래서 내가 소화불량으로 자주 얹히긴 하지만,
이런 날은 나,
다 잊어버리고 왕비 되기로 하거등예
맛있는 저녁에 와인, 라이브 까페,
거기다 공식행사로 때 밀어주제,
우유 맛사지해주제, 홍콩꺼정 왕복 시켜주제... ㅎㅎ
- 다아 주접이었고예-
새벽, 데크로 나가 발 밑에 내려다뵈는 북한강을 굽어보는데
일인공예
스멀대던 내 속엣 소리 다 어디가고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이 노랫말만 자꾸 얼쩡거려싸예
몰랐지예, 그 가사가 그렇게 내 뇌리에 꽂혀 있었는 줄은예
-그랴 그랴 오늘은 내 쉰 소리 접자, 접고
정태춘의 읇조림에 나를 기대놓자. 그랴 푹 빠져불자-
새벽강은 어떤 증거처럼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수묵화같이 묵직하게 둘러처진 첩첩 야산들,
강 건너 교회당 첨탑엔
붉은 네온 십자가가 신선한 새벽바람을 가르고 있었어예
근처 어디에선 장닭 울음 소리,
일찍 잠 깬 물고기들 퐁당퐁당
참 잘했어요, 아주 잘 했어요, 백 점짜리 파문을 일으켜쌓는데
장승처럼 서서 풍경들 담다보니
꼭 타임머쉰 타고 소시적으로 돌아간 거 같더라꼬예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 양푼에 수수엿을 녹여먹지 않아도
내사 충분히 왕비 될 수 있었던-.
돌아오는 차 안 가득
내내
정태춘의 북한강이 흐르고
남편 애인의 가슴 속에서도 구비구비
북한강이 애돌아 흘러가고 있었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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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詩라고도 할 수 없지만 허지만 내가 보기에는 詩보다 더 詩的이고
그 어떤 문학적인 작품보다 더 절실하게 삶과 사랑과 고독을 투명하게, 절실하게 토로하고 있다.
남편의 애인이라는 제하의 저 글을 쓴 여인에게는 아주 독특한 감성이 철철 넘쳐 흐른다.
리드미칼하면서도 詩的인 것과 美的인 것, 情的인 것, 動的인 것들이 하모니를 이룬 채
경쾌하면서도 환희적인 사랑과.. 어쩌면 우리 인간의 밑바탕에 깔린 원시적인 우수(憂愁)를
절묘하게 접목시켜서 때론 순하고 여리게, 때론 격열하게 부딛치며 특별한 향기를 뿜고 있다.
특히 지방의 사투리를 적절하게, 여인답게, 애교스럽게 구사한 점은 가히 일품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을 해도 행복하지 않고 이별을 해도 아프지 않을 그 어느 날,
우리 모두도.... 어쩌면 저 여인의 가슴 속에 흐르는 -애돌아 가며 흘러가는- 애잔함만 남으리....
우리 모두가 그토록 희구하려 했던 붉은 피의 진한 관능조차 양식이 되지 않고
자신의 한 생애를 꽉~ 씹어야 하는, 영혼이 가난해지는 빈자의 투명함만 남으리...
그리고..
또 어느 날엔가는 죽음보다도 삶을 용서할 수 없다는 독백을 피를 토하는 느낌으로 쏟아 놓으리....
사랑을 잃어버렸거나 사랑마져도 없거나 부질없다고 절망하는 자여!
저 山河, 봄이 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꽃이 피면 어찌하겠는가,
그저 그렇게 계절이 오고 흘러감이 그대가 사랑하는 자의 모습으로 물들었다 해도,
이제 그는 떠나 영영 찾을 수 없다 해도 그를 위하여 다시 부활하려는 꿈은 꾸어야 하리.
참을 수 없는 울음으로 귀하디 귀한 이름 하나 패찰처럼 달고 다니면서
그대의 거대했던 열정도 황량한 고독도, 아니 절망까지도 하나의 삶을 이루었고
오욕칠정이라는 미명 하에서 아주 특별한 향낭의 향수를 맡고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했을 터,
그만하면 됐으리,
어차피 세상은 끝도 없는 모순과 부질없는 욕망으로 얼키고 설켜 퇴페적인 정서로 가득하고
어떤 면에서는 아주 이기적이거나 자기주의로 팽배해 있어
어지간해서는 감동하거나 감탄사가 리얼하게 닿지 않아도
그래도 우리 그것들을 무시하고 삭제해버리는 어리석음으로 일관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죽은 낭만도 껴안고 비열해진 휴머니즘도 실하게 보듬은 채
세속의 시간과 인간들의 틈에 끼인 채 더불어 가야만 하리...
그래도.... 그 사랑이나 낭만이나 휴머니즘 위에 흘려 놓은 웃음과 울음과 고뇌와 고독...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저 오류의 강을 건너 가야 하는 것,
그대들이 귀하게 품었던 테마나 케릭터가 다시 눈부시게 버퍼링되는 기적이 없다할지라도
우리는 시간을 꺼꾸로 돌리려는 모모(momo) 가 되는 꿈도 꾸며 잃어버린 향수에 젖어야만 하리니,
어차피 인간은 그 무엇인가에 편재되지 않으면 삭막할 수밖에 없는 존재,
비록 <애돌아 흘러가는> 애증의 강 기슭에서 서성이고 방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룩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흘러가야만 하리....
하수가...
정태촌의 북한강에서
첫댓글 이 글을 쓰시면서 기울였을 님의 정성과... 녹아든 많은 시간과
인간에 대한 애증과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휴머니즘을 느껴봅니다
감사함으로 머물면서 휴일 안온한 시간을 평화로움으로 채워봅니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허물을 조금씩 벗어가며 자기의 길을 만들어 간답니다
살아가면서 상처도 받도 위안도 받으며 그 어떤 착각이나 환각 속에서 사는 것,
그래서 가끔은 아주 정직하게 자신과 독대할 때면 잃어린 것들과
잊혀진 것들에 대한 연민이 몰려와 혼란을 주기도 하지요
저 글을 쓰면서 망서림없이 .. 주저리주저리 넋두리해 본 것이지요.
아마도 쉽게 해독할 수 없는 스러지 같은 글이겠지만 허지만
나는 솔직하고 진실하게 자신의 내면을 표출시킨 것이지요
암튼,
잘 이해해주신 점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찌 표현이 그리 내 마음에 닿을까♣
음악 또한 나의 마음을 젖어놓고 ......
늘 웃기만 하는줄 알았죠
오늘하루 마음 속에 봄을 가득 채워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친절과 사랑과 웃음, 평화가 모토인 님은
앞으로도 축복과 은혜가 함께할 것입니다
본디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오니... 쭉.... 변함없이 그리 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