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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는 7봉 또는 9봉으로 얘기한다. 시계 방향으로 운문산(1188m), 가지산(1241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간월산(1069m), 재약산(1108m), 천황산(1189m)을 7봉으로 대접하고 가지산과 신불산 사이에서 뻗어나간 문복산(1014.7m)와 고헌산(1034m)을 보태 9봉으로 대접한다. 고헌산은 석남사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산이다.(언론에 요란하게 보도된 완등 시 순은기념품 증정은 4월에 벌써 종료됐다. 올해 예산을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라는데 어이가 없다. 또 9봉이 아니라 8봉으로 줄였다 했는데 어떤 플래카드는 재약산이 위험해 빠진다고 안내돼 있다. 그런데 어떤 곳에서는 문복산을 뺀다고 알려준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4월 정기산행으로 이곳을 다녀왔다. 호랭이가 산행기를 썼는데 빠지거나 미진한 대목 위주로 써나겠다.
첫날 4월 19일 금요일, 얼음골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는 천황산과 재약산을 올랐다. 현재 우리 국립공원의 케이블카는 조건부 허가 형식을 갖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산행이나 탐방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상부승장장에 내려 녹산대전망대에서 일대를 조망한 뒤 다시 내려오라는 것이다. 매표소가 하부승강장에만 설치돼 있고 상부승강장에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부승강장 건물 외벽에 아래로 내려가는 편도 탑승권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공지하는데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회장님이 누누이 강조했듯 현재 대한민국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정책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산은 보호해야겠고 케이블카를 이용해 등산객들을 편안히 산 위로 올려 주머니를 채우겠다는 지역주민들의 열망을 존중하는 척해야 하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같은 이도 오색약수 케이블카가 개설되면 이를 이용해 대청봉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고 대놓고 거짓말을 하고, 누구도 이에 대해 실은 정상 탐방에 연계해 이용하면 안되는 조건부로 허가를 내린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는 상황이다.
여하튼 케이블카로 천황산 정상을 손쉽게 오를 수 있는 데다 날씨마저 좋아 회원들 모두 좋아했다. 온 산을 전세낸 듯한 기분이었다. 호랭이가 잘 썼지만 녹산대전망대에서 바라본 백호 모양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호가 새겨진 바위는 백운산에 자리하고 있다. 그 뒤로 우뚝 솟은 것이 운문산과 가지산인데 아래 사진에는 9봉 중 최고봉인 가지산만 나온다.
천황산은 예전에 재약산 사자봉으로 불린 곳이다. 산객 중에는 예전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그 아래 사자평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사자평은 4.1㎢(약 120만 평)에 이르는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정상에서 가지산 쪽을 바라보면 구만산(785m)부터 억산(954m), 운문산 거쳐 능동산까지의 마루금이 장쾌하게 이어진다. 고개를 돌리면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 시살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에 왔으면 억새가 장관일텐데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지 않은 이 계절도 괜찮았다. 우리 회원들이 점심 먹었던 곳은 필봉이다. 그 너머로 재약산과 향로산(977m), 금오산(760.5m), 그 뒤 산그리메가 아늑하다. 점심 들며 편히 내려다보이는 바람에 표충사와의 거리를 가까운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해서 꼬맹이와 아브물이 계단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일몰과 거의 동시에 달빛을 받는 신작로까지 나와서 더 큰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표충사 경내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층층폭포와 흑룡폭포, 구룡폭포를 완상한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깊지만 안온한 느낌의 숲은 가히 일품이었다. 초록이 물드는 계절에 반대로 계곡과 숲을 통해 재약산을 올라 사자평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싶었다.
둘쨋날 4월 20일 셋으로 단촐해진 산행은 간월산~신불산~영축산을 올라 통도사로 하산했다. 장렬 공을 울산통도사역에서 픽업해 배내1주차장에서 하차, 산행을 시작했다. 배내고개는 장꾼들이 넘나들던 곳이다. 사자평을 지나 밀양 단장면(호랭이 사촌 세컨하우스 주소지)으로 가거나 능동산에서 얼음골로 내려가는 위험을 감수했단다. 간월산 오르기 전 배내봉(966m) 정상석에서 셋이서 인증샷을 찍었다. 배내봉은 오뉴월 엿가락 늘어진 듯한 긴등(장등)은 언양 부르산으로 연결되고, 남쪽으로 이어진 아찔한 능선벼랑길이 간월산으로 연결된다.
간월산 정상을 오르는데 비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가리려다 강한 바람에 물러나 살짝 낯을 보여주곤 한다. 어처구니없이 벼랑으로 넘어졌다. 왼쪽 발이 무언가에 걸려 중심을 잃고 버둥거려 넘어져 벼랑 쪽으로 눕다시피 했는데 다행히 나무가 붙잡아줘 추락을 면했다. 고개를 드니 장렬 공이 보여 들킬까봐 얼른 일어섰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걸었는데 5분쯤 뒤 휴대폰을 찾았더니 없다. 아차, 일행에게 사연을 숨기고 떨어뜨린 곳을 안다며 찾으러 갔다. 딱 넘어진 그 자리에 있었다. 나중에 돌아와 사연을 얘기했더니 일행이 웃는다.
쓰레기 줍는 단체와 나는 여러 차례 만나게 됐다. 좋은 일 하는 이들인데 나는 못마땅했다. 산행 속도가 빠른데 자주 쉰다. 그러니 내게 자주 선행을 양보했다. 그런데 걸으면 어느새 뒤에 따라와 요란하다. 사실 산을 다니는 이들은 속도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마주치면 내려오는 이를 배려해 가만 기다려주는 것이 산행 예절이다. 뒤에서 추월할 때는 가벼운 목례라도 해주거나 인삿말을 해주는 것이 좋다. 더욱이 한두 번 그러는 것이 아니면 웃음끼 머금은 말투로 '자꾸 앞지르게 됩니다. 미안합니다' 정도는 해줘야 한다.
산행 예절이 부족한 이들은 정상석 주변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정상석 주변은 좁고 날카로운 바위로 이뤄져 있는데 다른 이들에게 양보할 생각은 터럭도 없이 자기네들끼리 떠들썩하고 요란하다.
전날 영남알프스의 장쾌한 마루금을 보지 못한 장렬 공은 배내봉과 간월산 정상에서 순간순간 바라본 천황산과 재약산, 운문산, 가지산 능선미가 이날 본 것의 전부였다. 아쉽고 미안한 대목이다.
간월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 억새밭이 펼쳐지기 시작한 곳에서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앞서 떠들썩했던 단체 산행객들은 전망대에 비닐셜터를 펼치고 그 안에 들어가 점심을 먹으려는 참이다. 우중이라 하지만 전망대는 식사하는 장소가 아닌데 도무지 생각이란 것이 없다.
장렬 공이 새벽 기차를 탔으므로 무척 허기질 것이라 생각해 밥 먹을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아래 건물이 보이길래 거기서 먹자 했는데 웬걸, 더 빗방울이 굵어진다. 서둘러 점심을 장렬 공이 역에서 마련해 온 것으로 들었다. 장렬 공은 10명 모두 산행하는 주로 알고 김밥도시락 둘 외에 풍성한 먹을거리를 챙겨왔다.
그런데 간월재에 내려서니 위에서 본 건물이 간월재휴게소였다. 20명은 족히 앉은 짐한 마루가 깔려 있어 산객들이 등산화를 벗고 편안히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컵라면과 과자, 행동식을 팔고 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뜨끈한 컵라면과 함께 만찬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 가득했다. 특히 장렬 공에게 미안했다.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아 택시를 부르려 했는데 배내2주차장과 사슴농장 쪽으로 2.5km, 반대쪽 영남알프스 인증센터 쪽으로 3,5km는 포장 임도를 걸어 내려가야만 택시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통도사까지 비용도 만만찮았다. 그래서일까, 우중에도 신불산 쪽에서 내려오는 산객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간월산 쪽으로 올랐다.
신불산으로 향하는 길은 간월산 내려오는 곳과 마찬가지로 억새밭이다. 가을의 풍광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걸었다. 신불산에서 하산할 수 있는데 자수정동굴이나 파래소 쪽으로 내려서는 방안이다. 시간도 그리 절약되지 않고 교통편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내처 영축산으로 향했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오후 4시 통도사에서 문화답사 일행과 합류할 수 있겠는가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심란한 게 한 가지 있었다. 어디선가 대형 스피커 소리가 요란한 것이었다. 누군가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뭐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신불산 정상에서부터 들려와 나중에 영축산 백운암으로 내려오는 함박등에 이를 때까지 계속 괴롭혔다. 신불산 정상석에서 셋이 인증샷을 찍는데 영락 비맞은 생쥐 꼴이다.
영축산으로 접어들며 등산화가 젖기 시작했다. 능선 길에 도랑이 만들어져 물이 흥건하다. 피하려고 애를 써도 자꾸 밟게 된다. 억새를 그리는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영축산 정상석에서 혼자 인증샷을 찍는데 왕눈이의 비명이 들린다. 정상석 올라서기 전 바위가 나타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틀면 통도사산문주차장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시작되는데 그 길로 내려간 것 같아 쫓아가며 전화했더니 역시나 그랬다.
사실 영축산 정상 오르기 얼마 전에 여천각시굴을 통해 산문주차장에 이르는 하산하는 길이 안내돼 있었다. 각시굴 아래 공룡능선이 지그재그로 펼쳐져 있다고 안내돼 있었다. 물론 위험한 구간이라고 안내했고, 우리는 수굿이 따르기로 했다.
정상석 주변 표지판을 보니 극락암(통도사)가 안내돼 있다. 어떤 표지판은 백운암(통도사)가 안내돼 있다. 길은 통하겠지 싶었다. 도무지 사위가 보이지 않는다. 하산하는 길이 분명한데 나중에 가파르게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나는 일행에게 영축산 정상으로 원점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걱정을 털어놓았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가 올라챈 곳은 함박등(1052m)이었던 것 같다. 체이등, 죽밧등(죽바우등), 시살등으로 이어진 능선 길이다. 함박등 지나 백운암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백운암에서 800m를 걸어 내려오는데 상당한 너덜경이라 발걸음 떼기가 두렵다. 백운암 내려오며 왕눈이는 일행이 보이지 않으면 더럭 겁이 나는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그는 절대 혼자 산행하지 못할 것 같다.
기신기신 내려와 중간에 한 번 4시 30분으로 연장한 것보다 무려 50분 늦게 처음 내가 문화답사 일행과 합류했다. 장렬 공, 왕눈이 순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곳 주차장을 기준으로 왼쪽이 비로암, 아래로 극락암이 나온다. 차로 돌아본 경내는 어마무시하게 넓었다. 그리고 아늑한 숲, 가히 영축문중이라 할 만했다.
완전체로 저녁을 먹고 헤어진 뒤에야 검색을 통해 영축산 정상에서 들린 소음의 정체를 찾아냈다. 문득 평산리가 이곳 아래였던 것인가 생각이 들었는데 지도를 검색해 보니 평산책방이 뜬다. 통도사로 이어진 길도 표시돼 있다. 아 그렇구나, 극우 유튜버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고성방가하는 것을 시위랍시고 하며, 경찰도 집회와 시위의 자유 때문에 어쩌지 못한다는 얘기를 익히 알고 있었는데 영축산 정상을 탐방하는 이들의 심사까지 심란하게 만든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여튼 사흘째인 21일 나 혼자 운문산과 가지산을 올라 영남알프스 일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호랭이가 장렬 공과 나를 태우고 밀양 산내면 삼양리복지회관 앞에 내려줬다. 나중에 보니 일대가 사과농원 일색이라 아랫재 산행 들머리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었다. 마지막 농원은 사과를 사면 주차를 허가한다고 안내돼 있었다. 사과꽃을 마음껏 바라보며 올라갔다. 아랫재까지 1.8km인데 마을회관부터는 2.9km 걸어야 한다. 아랫재에 배낭을 두고 운문산에 올라갔다. 오전 9시 반이 안돼 왕복 3km를 걷는 동안 누가 이곳을 지나치며, 더욱이 무거운 배낭을 들고 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호젓하니 좋았다. 운문산 인증샷 찍는데 대한산악연맹이 조금 아래에 따로 설치한 정상석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해발고도를 1200m로 새겼다가 줄로 좍 긋고 1188m로 고쳐 새겼다. 무슨 망신인가 싶었다. 정정된 것을 새로 설치하지 줄 긋기가 웬말인가 싶었다.
되짚어 내려오는데 경상도 아지매 혼자 올라와 무섭다며 같이 정상에 가자는 것이었다. 물론 70대는 됨직한 분이었다. 우스갯소리인지 진담인지 헷갈렸다. 정중히 일정이 빠듯하다며 혼자 걷는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배낭 있는 곳 근처에서 4명의 남성(둘은 각자, 둘은 일행)을 마주쳤다.
배낭을 다시 들춰 메고 가지산 오르는데 또 빗방울이 듣는다. 가지산은 영남알프스 9봉 가운데 가장 높다. 가을에 정상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커다란 바위 영봉이 단풍 속에 단아하다. 그런데 이날은 사위가 비구름에 갇혀 제대로 조망할 수가 없었다.
가지산장이 눈에 띄어 이게 뭐지 싶었다. 아 도립공원이라 이게 가능하구나. 두부김치에 좋은데이 소주까지 1만 7000원을 받는다. 계좌이체로 지불이 된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두 할배가 고기 안주를 깔고 술을 꽤나 들었나보다. 산 위에 올라와 남의 얘기를 안줏거리로 삼고 있다. 들으니 주인장과 아는 처지인가 보다. 주인장에게 하산길을 물었다. 능동산으로 해서 배내고개로 내려가는 방안을 물으니, 능선 길인데 비가 들이치니 재미없을 것이라며 교통편도 석남사 쪽처럼 많지 않아 산아래 내려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일리 있다고 생각해 따르기로 했다.
계단을 한참 내려와 쌀바위 구경하고 있자니 질펀한 술자리에 혀 꼬이는 발음을 늘어놓던 아재 한 분이 내려오는데 무척 빠르다. 석남사 계곡을 바로 타는 루트도 있던데 그냥 임도와 번갈아 산길을 타는 상운산 쪽을 타고 약간 빙돌아 석남사로 내려섰다. 듣던 대로 정갈한 산사였다. 부도탑 아래 계단에서 바라본 산 풍광도 한없이 아늑하다.
계곡을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사찰 풍광을 돌아보는 맛도 오롯했다. 산문으로 걸어오는 발걸음이 상쾌했다.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 4시 7분쯤 울산통도사역 가는 버스를 타고 40분쯤 달려 서울행 KTX 열차로 구미김천역까지 갔다. 백두대간 여섯 번째 종주로 우두령~황악산~추풍령~웅이산~큰재 이후를 타기 위해서였다.
이번 산행을 돌아보며 반성해야 했다. 워낙 회장님이 이쪽에 밝은 분이라 산행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지 않은 잘못이 있었다. 첫날 재약산에서 하산하는 계곡 길의 계단이 그렇게 많은지 미리 파악했어야 했다. 해서 꼬맹이만이라도 돌아세웠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둘째날 비가 왔을 때 탈출 경로도 미리 마련했어야 했는데 불성실했다. 운문산과 가지산 도 내 혼자 당한 일이라 미안함은 없는데 역시 큰 틀에서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이곳을 찾는다면 정상과 능선 위주가 아니라 통도사와 일대 암자들, 평산책방(정말로 호랭이는 평산리라 발음하지 못하고 '평사리'로 발음해 장렬 공은 '박경리 토지의 그 마을'이 아니라고 놀려먹었다), 공룡능선(누구는 칼바위라 하는 것 같았다)을 엮어 하루를 보내고 다른 하루는 문복산과 고헌산, 석남사로 이어지는 산행을 구상해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