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홈쇼핑 요리를 잘하십니다
-엄마는 요리사가 아니어도 괜찮아!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학교 공개수업에 간 적이 있었다. 학교 공개수업이
란 것이 아이들과 선생님의 수업을 학부모들이 교실 뒤에서 참관하는 행사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발표도 잘하고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는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이 학부모 공개수업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학부모들의 관심이 꼭 아이들에게
머물러 있지 않아서다.
그날 공개수업은 특별할 것 없이 잘 끝났다. 학부모들은 자연스럽게 교실 뒤 학급 활동 게
시판을 보고 있었다. 나 역시 게시판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둘째 아이가 적어 놓은 별 모양
의 스티커를 발견했다. 수업 시간에 ‘우리 가족 자랑하기’ 활동을 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우리 엄마를 자랑합니다>라며 네 가지를 적어 놓았는데 그중 4번이 내 눈에 확 꽂히고
말았다.
‘우리 엄마는 홈쇼핑 요리를 잘하십니다’
요리를 잘한다는 것도 아니고 홈쇼핑 음식을 자주 시킨다는 것도 아닌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사정은 이러했다. 나는 솔직하게 요리를 잘 못한다. 심지어 요리에 관심이 없다. 공
부도 잘 못하면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인데 요리도 그렇다. 잘 못하니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으니 더 못하는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다. 27년 동안 아이들을 키웠으니 생계형 요리를
하는 정도다.
처음에는 된장찌개 끓이는 순서도 헷갈려서 매번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나중에는 안 되겠
다 싶어 레시피 비슷하게 적어 놓고 찌개 끓일 때마다 보곤 했다. 글을 쓰라면 차라리 쓰고
공부를 하라면 밤을 새워하겠는데 이 찌개 끓이는 순서는 몇 년을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
았다. 10년이 넘어서야 찌개 레시피와 결별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요리에 관심이 없어도 아이들에게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만 먹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홈쇼핑에 등장했던 스테이크, 완자, 갈비 등 음식들은 정말 유용한 아이템들이었다.
나름 이리저리 변형을 해가며 아침밥을 챙겨 먹이고 휴일이면 세끼 식사를 해 먹였다.
그러니 아이의 눈은 정확했다. 나는 홈쇼핑 음식으로 요리를 (잘)하는 엄마가 맞았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궁금한데 요리에는 왜 관심이 없는 걸까? 엄마는 내가 지금껏 먹어본 김
치 중 가장 맛있는 김치를 담그실 만큼 요리 솜씨가 빼어나시다. 언니도 술렁술렁 한 상을
차릴 정도로 음식 솜씨가 있다. 나는? 나는 요리에 대해 도전의식이 전혀 없다. 평소에도 크
게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는 편이어서 밥과 김치만 있으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육아를 하
지 않았다면 냉장고에 3분의 1도 채우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애인이나 친한 친구 사이를 보면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많다. 한쪽이 논리적이면 한쪽
은 두리뭉실한 경우가 많고, 한쪽이 계획성이 있으면 한쪽은 기분파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딸들과 나의 관계도 그렇다. 엄마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둘째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
으로 요리만 3년을 배웠다. 여기에는 본인의 의지도 있었지만 3년 동안 묵묵히 지원을 해준
엄마인 나의 큰 그림도 숨어 있었다.
학교에서 베이킹부터 피클 담그기까지 배운 둘째는 제법 자기가 먹을 음식을 잘 만들어 먹
었다. 재료를 준비해 놓으면 먹고 싶은 것을 자주 해 먹었다. 큰 아이는 학교 기숙생활을 했
고 대학을 가서는 바로 다이어트 식단으로 바뀌었다. 역시 재료를 준비해 주면 이름도 낯선
다이어트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렇게 나는 제일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의 식사 준비
에서 조금, 아니 많이 일찍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요리는 내가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포기한 분야다. 아이들은 내가 요리에 관심이 없음을 안
다. 엄마가 요리를 못하는 것을 넘어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을 해주었다. 한
번은 할머니의 부재 이후 김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궁금을 넘어 걱정이 됐던 모양
이다.
“김치 때문에 할 일도 많은데 김장을 배울 수는 없어.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그 후로 아이들은 두 번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요리를 처음부터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은 육아도 살림도 음식도 일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울트라 슈퍼우먼으로 살기도 했다. 하루 4시간을 자며 아침
상을 차리고 홈패션을 배워 쿠션 커버 각을 세우고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소
풍 때면 아이의 기를 살리기 위해 동화 같은 도시락을 싸기도 했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삶의 강박을 바꿔 주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도 잘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니 내가 덜어내야 할 것이 보였다. 그래
서 요리를 포기했다. 내가 잘 못하는 것이고 관심이 없으니 그것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결정
했다. 주말은 아침밥을 차리고 나면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내 역할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취향대로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 후로도 아이들은 “엄마는 요리 못하잖아!”라며 나의 부족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요리를 못하는 부족한 부분보다 나의 장점을 더 많이 봐주기 시작했다. “엄마는 열심히 일
하고, 일할 때는 멋있어.”라고. 나는 요리하기를 포기하며 나의 부족한 면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고 나보다 더 잘 해내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열등감을 내려놓
으니 절대 내가 하지 않았던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어머, 저도 좀 가르쳐 주세요“
-이숙정 https://brunch.co.kr/@pajama9669/
공연전문 객원기자. 인터넷 신문 ‘민중의 소리’에 9년째 매주 공연 리뷰를 쓰고 있는 공연 매니아다. <나도 처음이야, 중년>
<세상을 바꾸는 2%> 두 권의 책을 낸 출간 작가이자 비정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공연을 통해 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 중이다.
(이 글은 이숙정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