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문학 기자
중국 서민들 식탁에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메뉴는 콩이다. 콩국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두부요리를 즐기며 심지어 거의 모든 요리에 대두유를 쓴다.
중국사람 한 명이 먹어치우는 대두유만도 연간 20리터를 넘는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콩 1000만 톤으로는 두부나 콩국을 만들기에도 부족하다.
자급자족을 하려면 중국에서 경작 가능한 토지 약 4000억 평 중 3분의 1을 할당해야 할 판이다. 동북지방을 기준으로 보면 60킬로그램의 콩을 생산하는 데 100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인에서 자급자족해야하는 3대 주식은 대두가 아니고 쌀과 보리 그리고 옥수수다. 7억에 달하는 농민들이 대두 경작을 늘리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식용유를 만드는 9000만 톤의 콩은 고스란히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다.
당국도 수입을 묵인한다. 주요 수입국은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지다. 액수로 따지면 340억 달러 어치다.
중국에서 콩을 재배한 역사는 상(商)나라 시절인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자급자족 생산 대국의 지위를 이어가는 한편 수출국에도 이름을 올린다.
20세기 초 만주지방의 군벌이던 장쉐량(张学良) 시절에는 대두를 수출해 20만 명 규모의 군대를 먹여 살렸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시장 개방을 약속하자마자 미국대두협회 전문가들이 대두 농장을 시찰한다. 미국 전문가는 유전자 변형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품질 보전이 잘 된 중국 콩으로 유전자 표본을 만들자 17%이던 수확량이 22%로 올라간다. 수확량을 5% 높이면 식용유를 1% 더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드디어 유전자 변형된 중국 콩은 미국 땅에서 재배된다. 자본주의 농업 강국인 미국은 기계화로 효율을 높인다.
중서부에 위치한 대평원은 세계 양곡 창고로 불린다. 미국 수요를 채우고 남는 물량은 전 세계로 수출한다.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게 중국 대두유로 식용유를 만드는 업계다. 지난 2004년 당시 중국 대두유 생산량은 1000만 톤이고 부족분 중에 2500만 톤을 수입 물량으로 확보한다. 중국 식용유 기업 생산능력 7000만 톤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물량이다.
중국 식용유 기업들은 돈을 싸들고 미국으로 달려간다. 이른바 유전자 변형으로 생산한 대두를 사기 위해서다.
중국인들의 수요로 대두유 가격은 오른다. 중국 농민들도 경작지마다 대두를 심는다. 그런데 너무 오른 대두가격은 그다음 설 명절도 오기 전에 폭락한다.
결과는 중국 식용유기업들의 대량 파산이다. 수 천 개의 식용유 기업이 문을 닫는다.
기업이 파산하자 거래처를 놓친 농민들도 1년 농사를 망친다.
중국기업이 초토화되자 4대 곡물 메이저가 중국 시장에 등장한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직전까지 중국 당국도 외국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다.
다른 기업들도 중국 대두 시장에 지분 참여를 하거나 직접 진출한다. 중국이 WTO에 가입 한 지 5년이 지나자 중국 민간 식용유 업계는 국제 자본에 완전히 넘어간다.
한마디로 14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중국 대두유 시장을 외국업체들이 장악한 형국이다.
곡물 메이저들이 취급하는 유전자 변형 콩은 관세를 아무리 부과하도 중국산 콩보다 싸다. 2017년 11월 기준으로 미국과 브라질서 수입한 중국 대두 가격은 톤 당 3420위안(약 58만원)인데 비해 중국 동북지역에서 생산된 대두는 톤 당 3560위안이다. 수입 대두가 중국인 식탁을 점령했지만 농민입장에서는 대두를 심어봐야 돈도 안 되는 상황인 셈이다.
대두를 심어도 돈이 안 되자 파종면적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중국에서 대두가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그나마 국영농장에 대한 손실을 국가에서 보전해주고 있다.
2003년부터 2015년 사이 중국 식량 총생산은 30%나 증가한다. 그런데도 대두는 계속 감소한다.
중국의 대두생산량은 200평당 125킬로그램이다. 해외의 생산량 190킬로그램보다 뚝 떨어지는 수준이다.
중국서 대두를 생산하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600위안 정도다. 여기에 옥수수를 심으면 800위안을 번다. 농민들이 콩을 안 심는 이유다.
급기야 농민들이 나서 수입 대두에 반덤핑 관세라도 부과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볼멘 소리를 하는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봐서 중국이 WTO의 최대 수혜국인 만큼 대두 농민들에게 줄 답변도 없다. 대두를 희생하는 대신 다른 품목의 이익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에서 WTO 가입 당시 한 약속 중에 통신이나 자동차 시장 개방 약속을 지키지 못해 비난받는 마당에 대두에 반덤핑 관세를 메겼다간 마찰만 심해진다는 논리다.
중국 정부는 2004년 이후 농산물 수매 가격을 올리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사용 중이다.그러다 보니 농산물 가격은 계속 오른다. 가격 조절을 위해 수입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다. 수급을 시장에 맡기지 않으면 중국 농산물 중간상들의 배만 불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국제시장에서 중국 흔들기를 하는 세력에 대한 경계도 늦출 수 없는 입장이다. 지난 2006년 초 월가에서 식량 위기설을 부추기는 바람에 곡물 가격이 급등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는 분위기다.
당시 세계 인구의 0.2%가 식량부족에 처한다는 공포로 인해 2년 간 국제 소맥가격은 서너 배씩 뛴다. 옥수수 가격도 3.2배 오른다.
필리핀의 경우 국가 파산하더라도 국제은행에서 대출받아 양식 확보에 나선다. 그런데 같은 기간 중국의 소맥과 옥수수가격은 0.7배 오르는 데 그친다.
비결은 전략 비축물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곡물 가격 파동이 나면 일단 전략 비축 물량을 내놓는다.
비축 물량이 나오기 시작하면 곡물 메이저는 바로 사재기에 들어간다.그런데 사재기 준비금을 다 썼지만 중국의 비축 물량은 그치지 않는다.
곡물 메이저들이 손을 든다. 대두유처럼 중국 시장을 흔들려다가 파산지경에 이른 사례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폭발한 후 월가 투자은행이 파산하면서 곡물 메이저들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대두유로 대표되는 국제 식량 전쟁은 여전히 휴전 상태다.
[현문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