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얘기처럼 누구나 죽을 때까지 내야 하는 게 세금이다. 특히 최고 상속세율 50%를 부담해야 하는 고액 자산가에겐 부담이 크다. 게다가 인구 고령화, 지속되는 저금리로 상속·증여를 준비하는 방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중앙SUNDAY가 자산가의 골치 아픈 숙제인 상속·증여 이슈를 짚어 봤다. 국내 금융사의 대표 세무사 3인의 절세 전략과 최근 큰손이 주목하는 증여신탁을 소개한다. 상속·증여 분쟁 전문가인 방효석 변호사와 인터뷰를 통해 가족 간 다툼 없이 재산을 물려주는 방법도 살펴봤다.
경기도 일산에서 전자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강모(64) 사장은 최근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지인의 소개로 한 금융사의 프라이빗뱅커(PB)에게 상담을 받은 결과 금융자산 30억원을 외아들에게 상속할 경우 최고세율 50%가 적용돼 5억6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강씨는 “30년 넘게 열심히 모아 온 재산의 20%가량을 세금으로 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증여 전략을 세우면 세금을 낮출 수 있다”는 PB 얘기에 한숨을 돌렸다. 그는 아들뿐 아니라 며느리와 손자에게 골고루 증여한 뒤 상속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들에게 바로 상속하는 것보다 세금을 40% 이상 아낄 수 있어서다.
이처럼 상속·증여에 따른 세금폭탄을 피하려면 현명한 절세 방안이 필요하다. 한국의 상속·증여세는 5단계 누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1억원 이하의 상속액엔 과세표준의 10%를 징수하지만 30억원을 초과하면 세율이 50%에 달한다.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원종훈 KB국민은행 세무팀장은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엔 체계적인 준비로 세금을 낮추는 전략을 짜야 한다”며 “평생을 일군 재산을 분쟁 없이 자손에게 물려주는 게 재무설계의 마지막 단계”라고 강조했다.
실제로도 최근 상속·증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신고세액은 2조1896억원으로 1년 전보다 33% 늘었다. 재산을 물려준 피상속인은 5452명으로 같은 기간 14% 증가했다. 증여세를 낸 인원도 9만8045명으로 지난해보다 10% 이상 많아졌다. 박해영 국세청 상속증여세과장은 “사망자가 늘면서 상속세 신고가 는 데다 절세를 위한 사전증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구 고령화, 저금리, 저성장 같은 시대적 변화가 상속·증여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노(老老) 상속’이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 80대 노인이 60세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유행한 말이다. 한국에선 할아버지가 나이 든 자녀를 건너뛰고 한창 돈이 필요한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세대생략증여’가 인기다. 또 시세 차익보다 매달 안정적으로 임대수익을 내는 부동산을 먼저 증여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저금리·고령화시대엔 한 푼이라도 세금을 줄이는 게 가장 확실한 재테크다. 국내 금융사 대표 세무사 3인(김근호 KEB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장, 원종훈 KB국민은행 세무팀장, 황재규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세무사)에게 5가지 상속·증여 절세 전략을 들었다.
전략 1 노후생활비 빼고도 10억 넘으면 증여해라 상속·증여 절세 플랜의 첫걸음은 피상속인의 전체 재산을 점검하는 일이다. 재산 규모가 상속을 할지, 아니면 증여를 하는 게 유리할지 판가름하는 기본 잣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재산이 10억원 미만이라면 상속세 대책이 필요 없다. 일괄공제(기초공제+인적공제, 5억원)와 배우자상속공제(5억원)를 적용하면 상속세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상속인으로 자녀만 있는 경우엔 5억원까지 공제된다. 여기에 금융재산상속공제·가업상속공제 등 다양한 공제제도를 활용하면 세금을 더 줄일 수 있다. 김근호 상속증여센터장은 “고령화시대엔 오래 살 것에 대비한 충분한 노후자금이 필요하다”며 “상속재산을 계산할 때도 노후생활비는 빼고 10억원이 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략 2 자산 쪼개 여러 명에게 나눠주라 상속재산이 1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면 사전증여가 유리하다. 세무사들은 증여세를 낮추는 방법으로 ‘육십분(60대부터 10년 단위로 분배) 전략’을 꼽았다. 증여는 피상속인이 한 살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해야 한다. 상속 개시일(피상속인 사망)로부터 10년 이내에 증여한 것은 상속재산에 합산해 세율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또 증여세는 10년 단위로 합산해 과세하기 때문에 10년이란 기간을 잘 활용하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황재규 세무사는 “적어도 60대에 증여를 계획한다면 10년 단위로 최소 두 번은 증여를 할 수 있다”며 “(증여세 면제한도인) 배우자에겐 6억원, 성년 자녀에게는 5000만원씩(미성년 자녀는 2000만원) 증여하면 증여세를 내지 않고 상속세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배도 중요하다. 최대한 자산을 쪼개 여러 사람에게 나눠 줘야 세금 부담이 준다. 원종훈 세무팀장은 “특히 배우자·자녀 등 1차 상속인이 아닌 며느리·사위·손주를 증여 대상으로 넣어야 한다”며 “이들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 개시일로부터 5년 내 증여한 재산만 상속재산에 더해져 상속세 부담이 준다”고 말했다.
전략 3 현금보다 부동산을 물려줘라 85.2%.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자산가 400명이 상속·증여 수단으로 부동산을 가장 선호한다는 응답률이다. 올 7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6 한국 부자 보고서’ 결과다. 다음으로 현금·주식(80.4%). 보험(18.7%), 사업체 경영권(14.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자산가가 부동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단독주택·상가 등 부동산은 비슷한 매물을 찾기 어려워 시가(거래가격)의 70~80% 수준인 공시지가(기준시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금융자산에 비해 증여세를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단 실거래 사례가 많아 시세를 그대로 적용받는 아파트는 제외한다. 특히 최근엔 상가·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을 증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황 세무사는 “자산가들은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시세 차익보다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을 증여 수단으로 선호한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연남동·서교동 등지 상권이 발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20억~40억원대 꼬마(중소형)빌딩에 투자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4~5%의 안정적인 임대수익률을 누리다 자녀에게 증여할 목적”이라고 말했다.
전략 4 눈앞의 손실보다 미래를 보라 자산가격이 크게 하락한 저평가된 금융자산도 증여 활용도가 높다. 고액 자산가의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사 PB들은 올 들어 홍콩 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증여 상담이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주요 기초지수인 H지수가 지난해 1만4000 선까지 급등했다가 연초 7500 선까지 하락하며 30~40% 평가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업체 장모(62) 사장은 지난해 초 7000만원에 가입했지만 평가금액이 5000만원 아래로 하락하자 대학생 자녀에게 올 3월 증여했다. 장씨는 “원금 손실(녹인)에 진입하는 구간이 낮은 편이라 만기 내 손실을 볼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며 “오히려 최근 H지수가 서서히 회복하고 있어 증여세(성년 자녀 5000만원까지 비과세)를 내지 않고 원금과 이자를 증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의 조재영 강남PB센터 부장은 “이처럼 저평가된 주식이나 펀드를 정리하기보다 증여공제를 활용해 자녀에게 증여하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현금이나 예금을 제외한 금융재산은 증여한 뒤 가격(투자 가치)이 더 하락하면 증여세 신고기한(증여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3개월 이내) 내 취소하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주식을 증여한 후 주가가 급락하면 증여를 취소하고 가장 저평가될 때 다시 증여를 할 수 있어서다.
전략 5 ‘세대 건너뛰기’ 증여해라 고령화시대엔 할아버지가 손자·손녀에게 미리 재산을 물려주는 세대생략증여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세대를 건너뛴 증여는 절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원 팀장은 “조부모가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다시 부모가 자녀에게 넘겨주는 대물림 증여는 이중으로 세금을 내게 된다”며 “이에 비해 부모를 거치지 않고 손주에게 물려주면 할증과세(30%)가 돼도 일반 증여를 두 차례 하는 것보다 세금을 30%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 역시 “손주는 상속인이 아니기 때문에 상속세 합산기간이 상속 개시일부터 5년 이내로 짧기 때문에 증여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단 미성년자에겐 20억원 넘게 재산을 물려주면 세금 부담이 커진다. 올해 세법이 개정되면서 조부모가 미성년자인 손자녀에게 20억원을 초과해 상속이나 증여할 경우 할증률이 기존 30%에서 40%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무사들은 상속·증여 플랜의 궁극적인 목적을 ‘분쟁 없는 건강한 재산이전’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센터장은 “재산 분배에 앞서 가족 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돈이 아니라 부모의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세무사는 “최대한 재산은 공평하게 나눠 줘야 가족 간 분쟁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