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녹)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3,1-8
형제 여러분, 1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2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3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4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7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씀나눔
살아있는 몸짓으로, 분명한 선택을 ♣
오늘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순교를 전해준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보여준 삶의 태도와 그의 생애의 의미에 집중해 보자. 오늘의 복음의 배경은 벌써 기원전 1세기경부터 있었던 하스모니아 왕가의 처절한 왕위 쟁탈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곧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고 로마제국의 힘을 빌어야 할 만큼 국력도 약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례자 요한은 추종자가 약 6천여 명에 이르는 대단한 세력의 중심인물이었다. 따라서 정치권은 긴장하였고 그를 처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여덟 번이나 결혼하여 열 명의 부인을 거느린 헤로데 왕의 잘못을 고발함으로써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를 선포하였다. 이런 그의 처신이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1세기 말엽 <유대 고사>에서 세례자의 말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 군중이 요한의 말을 듣고 매혹되어 모두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군중이 요한의 권고에 따라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으므로,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이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폭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따라서 헤로데는 무슨 변란이라도 일어나서 난처한 처지에 빠져 후회하느니보다 차라리 사건이 진전되기 전에 그를 없애버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헤로데의 이런 의구심 때문에 요한은 옥에 갇히고 마케론트 요새로 이송되어 거기서 죽음을 당했다.”(18권 116-119항)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사실 요한이 그의 적이 아니었음에도 소신이 없고, 비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요한을 죽였다. 이러한 헤로데의 태도의 결과는 요한의 죽음이었다. 이러한 죽음은 이 세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전형적인 삶의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야망, 이해타산, 뻔뻔스러움, 비열함, 그릇된 명예, 죄악, 불의, 세속적인 사고방식 등을 은폐하기 위하여 권력과 명분을 앞세워 무죄한 자들을 짓밟는 폭력행위이다.
더욱 슬픈 사실은 불의와 횡포, 죄악 앞에서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이 거짓과 위선과 체면 때문에 무시되는 것이며, 심지어 그에 대해 무감각하고 수수방관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둠의 역사의 한 면이다. 헤로데와는 달리 요한은 죄악을 폭로시키는 용기가 있었고 자신의 신원과 소명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있었으며 그에 따라 처신하였다. 구체적인 삶의 순간에 그는 선택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오늘 바로 나 자신이 세례자 요한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증거자가 너무도 부족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몸으로 증거하는 하느님의 사람들이 절실히 요청된다. 오늘 정치와 종교의 충돌,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신앙의 진리가 충돌할 때 나의 ‘신앙고백의 자리’는 어디인가? 신앙고백은 세례자 요한이 목숨을 바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듯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님이 틀림없다.
오늘의 복음은 신앙인들에게 철저한 투신이 요구되며 불의와 거짓과 무관심 앞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결단을 요청한다. 각자 기도하며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 나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나의 태도는? 죄를 짓고 소신 없이 우물거리는 헤로데처럼 그분을 외면할 것인가? 유다인들처럼 현세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해방자로 생각하는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의 안위에 연연하는 삶이 과연 아름다운 인생일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