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25-28 예수께서 아버지에 대해 제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알게 하실 때가 오는데 그 날에는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직접 구할 것이라며 이는 제자들이 아버지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신 뒤에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 자신에게 묻지 않을 것이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받게 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아버지에 대해 제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알게 하실 때가 오는데 그 날에는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직접 구할 것이라며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25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였으나” 라고 하셨다. 너희에게 말했다는 말은 완전히 말했다는 뜻인데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요한복음에서만 아홉 번이 나오는데 그 중 여덟번은 14:25-16:33절의 마지막 강화에서 나온다. 너희라는 말을 뺀다면 33번 나오는데 그러면 에스겔에서 15번 요한복음에서 11번이 나온다. 에스겔에서 나온 15번은 모두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적 말씀들에 쓰였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이 모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도 거의 대부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문맥에서 쓰였다. 요한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타낸 말을 예수님의 말씀에 이렇게 많이 사용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완전히 다 말씀하신 이런 것들이란 19절에서 말한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할 것이고 조금 있으면 볼 것이라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 역시 하나님께서 비밀로 말씀하신 예언적인 말씀이 성취될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런 것들이란 좀 더 넓게 요한복음 전체의 문맥을 보면 예수께서 숨겨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가리킨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적인 말씀을 비밀스러운 말로 숨겨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제 완전히 다 하셨고 더 이상 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원어에서는 바로 이어서 말할 시간이 온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더 이상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해서 너희에게 분명하게 공포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유로 말한다는 말은 개역에서는 비사로 일렀다고 번역했다. 개역에서 비사로 번역한 이유는 공관복음에서 흔히 쓰이는 비유라는 말과는 다른 말이기 때문에 구별해서 번역한 것이다. 개역개정이나 새번역은 쉽게 번역한다고 비유라고 했지만 비유라는 말과는 완전히 어원 자체가 다른 말이기에 잘못된 번역이다.
개역의 비사라는 말을 한자로 그대로 풀어보면 원어의 의미대로 비밀스러운 말이 된다. 어떤 이는 15:1절의 포도나무의 그림과 16:21절의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의 비유나 그 밖의 예수님의 사역에서 하신 일반적인 비유들의 가려진 것을 벗기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개역에서 비사로 번역된 말을 비유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 말은 공관복음에 나온 비유라는 말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로 쓰인 말이다.
이 단어는 그림이나 은유나 비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의 모호함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이 부분은 “이것이 아니라 이것이다” 라는 대조로 말씀하고 계시기에 그 대조가 되는 것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대조가 되는 말은 밝히 또는 분명히 말씀하신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비유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말인 비사인 것이다.
문맥상 의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예수께서 비밀스럽게 말씀하신 내용들을 성령께서 분명히 깨닫고 생각나게 하신다는 뜻이다. 분명히 말해 준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선포하신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비밀을 제자들에게만 비밀스러운 말로 알 수 없게 말씀하셨지만 성령님께서 오시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것을 완전히 알 수 있도록 분명하게 선포하신다는 것이다.
26절에서 예수께서는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영광 받으시고 성령님께서 오시면 아버지께 직접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중간에서 대신 간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아도 23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라는 말도 주신다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구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왜 그런지 그 이유를 27절에서 말씀하신다. 원어에서는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는 말이 맨 앞에 나온다.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대신 잘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대신 말해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말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제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사랑하시기에 제자들이 직접 하나님께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그 이유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했다는 말은 완전히 사랑했다는 말이고 믿었다는 말도 완전히 믿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대속주가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개자가 되신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완전히 믿고 예수님을 완전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28절에서 예수께서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왔다. 나는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간다” 라고 강조해서 분명히 설명하신 것이다. 이는 16:17절에서 제자들이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게 생각한 것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오셨다가 하나님께도 다시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길이고 하나님께 직접 나가 간구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받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아뢸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