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남의 말이거나 자기 말이거나 늘 ‘높임말’
《표준국어대사전》은 ‘말씀’에다 “남의 말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와 “자기의 말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를 함께 달아 놓았다. 그러면서 뒤쪽 풀이의 보기로 “말씀을 올리다.”와 “말씀을 드리다.”를 들었다. 《우리말큰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을 보니 거기도 두 가지 풀이를 함께 달아 놓았지만, 뒤쪽 풀이를 《표준국어대사전》과는 달리 “상대방을 높이어 자기의 말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풀이의 보기는 역시 “말씀을 올리다.”와 “말씀을 드리다.”를 들어 놓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르면 ‘말씀’이란 ‘남의 말’일 적에는 높여 이르는 것이 되고, ‘자기 말’일 적에는 낮추어 이르는 것이 된다. 같은 ‘말씀’이라도 남이 쓰면 ‘높임말’이 되지만, 자기가 쓰면 ‘낮춤말’이 된다는 소리다. 《우리말큰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 따르면 ‘말씀’이란 남의 말이거나 자기 말이거나 늘 ‘높임말’일 뿐이다. 다만, 남의 말일 적에는 그 ‘말’을 높이느라 높임말이 되는 것이고, 자기 말일 적에는 ‘상대 쪽’ 사람을 높이느라 높임말이 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올바른 풀이일까? 당연히 《우리말큰사전》과 《조선말대사전》 쪽이 올바른 풀이다. ‘말씀’이라는 한 낱말이 높임말로 쓰이다가 낮춤말로 쓰이다가 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말씀’은 언제나 ‘말’의 높임말일 뿐이다. 다만, 남이 쓰면 바로 그의 ‘말’이 스스로 ‘말씀’으로 높여지는 것이고, 내가 쓰면 듣는 이를 높이느라고 보잘것없는 내 ‘말’이 ‘말씀’으로 높여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은 언제나 ‘말’의 높임말인데, 다만 높여지는 까닭이 남이 말할 때는 그 말 때문이고, 내가 말할 때는 듣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이다.
▲ 흔히들 "말씀"은 남의 말을 높이거나 자기 말을 낮추는 말이라 생각하다. 하지만, "말씀"은 언제나 높임말이다.
그런데 ‘말씀’이 본디부터 ‘말’의 높임말로 쓰인 것은 아니다. <훈민정음>에 쓰인 “나랏 말턲미 듕귁에 달아” 또는 “語는 말턲미라” 했을 적의 ‘말씀(말턵)’은 글자 그대로 [말+쓰다]의 이름꼴인 [말+쓰임(말의 쓰임)]이라는 여느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15세기에 이미 <용비어천가>에 “말턲말 턳킭리 하쾬”와 같이 쓰이면서, 뒤따르는 ‘턳킭리’에 영향을 받으며 높임말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앞뒤 문맥의 영향 없이도 ‘말씀’이 스스로 높임말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말+쓰다]의 이름꼴이 낱말로 자리 잡은 것에 ‘말씨’도 있다. ‘말씨’는 겉모습만 보면 [말+씨]로서, 두 이름씨 낱말이 붙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게 이루어져서 ‘말의 씨앗’으로 풀이하는 낱말인 ‘말씨’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말씨’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낱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말씨’는 본디 [말+쓰다]의 이름꼴로서, [말+쓰+이] 곧 [말+쓰+기]로 쪼갤 수 있는 낱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말씀’이 [말+쓰다]의 이름꼴로서 [말+쓰+임]으로 이루어진 것과 짜임새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말씨’는 ‘말씀’과는 아주 달리 ‘말이 주는 느낌의 빛깔’, ‘말하는 버릇’, ‘사투리가 지닌 남다른 성질’과 같은 뜻으로 쓴다. 낱말의 짜임새와 뜻이란 이처럼 논리를 뛰어넘어 만들어지고 또 쓰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