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철거업체 유착 언제까지…법 개정되도 ‘속수무책’
이데일리 | 2021.06.29
조합 입김 강력해 시공사도 비위 눈감을 수 밖에
조합·시공사·철거업체 컨소시엄으로 움직이기도
“정비업계 전반 걸친 만연한 유착관계 손봐야”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조합과 철거업체간 유착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잘못된 연결고리를 알면서도 시공권 수주에 목마른 대형건설사들이 눈감아주면서 사고를 키웠다.”
광주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사고가 비리 복마전으로 확인되면서 정비업계 전반에 만연한 조합과 철거업체의 유착 관계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철거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법까지 개정됐지만, 고착화된 관행을 뿌리 뽑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조합-철거업체 커넥션, 시공사도 ‘모르쇠’
정비업계에서는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비리는 아직도 만연한 고질적 병폐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 정비사업장에서 조합이 설립되면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시공사 및 철거용역업체 등을 선정해왔다. 이 과정에서 철거업체들은 도시정비구역 지정 전부터 조합장 등에게 접근해 로비를 시작하고 유착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비위가 끊이지 않게 되면서 법 개정도 이뤄졌다. 조합과 철거업체 간의 직접 계약을 막기 위해 시공사에서 철거공사를 사업에 포함하도록 도시및주거환경기본법(도정법)이 2017년 개정됐다.
도정법 제 29조 제 9항에 따르면 시공자와의 계약시 철거와 석면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도록 명문화 했다. 석면 조사·해체·제거공사도 시공사에 맡겨야 할 철거공사에 해당되므로 조합이 분리발주할 수 없다. 부칙 제2조에는 이 법 시행일인 2018년 2월 9일 이후 최초로 시공자를 선정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조합과의 유착 등 비위를 막기 위해 철거 작업에 대한 관리·감독 등의 책임 전반을 시공사에 넘긴 조치다. 하지만 이번에 사고가 난 학동4구역의 경우 관련 법이 시행되기 전에 HDC현산에서 시공사로 선정돼 조합이 다원이앤씨에 석면 해체를 따로 발주하면서 유착 관계가 드러난 사례다.
문제는 법이 시행 후 시공자가 선정된 이후에도 조합장이 시공사를 주물러 철거업체 선정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법과 상관없이 실상은 여전히 조합은 철거업체와 짬짜미를 일삼고 있다”면서 “시공사도 조합의 입김을 절대 무시할 수 없어 이러한 비위를 눈감고 조합 구미에 맞는 철거업체로 맞추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합·시공사·철거업체 컨소시엄 같은 존재”…한 몸으로 움직여
시공사의 입장은 어떨까. 법 개정으로 철거공사에 대한 책임이 시공사에게 있는 만큼, 철거업체 선정에 대한 투명성은 한층 강화됐다고 한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지금은 철거업체를 선정할 때 실적을 토대로 공정성을 기하고 있다”면서 “현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선정하는 게 아닌 본사 자체서 개입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이와는 딴 판이다. 철거업체 선정과정은 상식 이하로 비합리적이며, 들러리를 앞세운 ‘짜고 치는’ 입찰도 무수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정비업계 관계자는 “이미 내정된 철거업체를 두고 경쟁업체를 들러리 세우는 입찰경쟁이 허다하다”면서 “내정업체가 실적이 좋으면 실적으로 ‘커팅’을 하거나, 실적이 낮으면 법인소재지가 수도권에 있어야 한다고 정한다든지 등 조합 임의로 내정업체를 위한 선정조건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합과 시공사, 철거업체가 ‘컨소시엄’처럼 조직적으로 운영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재개발·재건축 분야를 주로 담당해 온 법무법인 정향 김예림 변호사는 “재개발 현장을 보면 조합과 시공사, 철거업체 뿐만 아니라 범죄예방까지 한 팀으로 꾸려 움직인다”면서 “이 과정에서 용역대금 부풀리기 사례도 빈번하고 일부는 조합장이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알 수 없는 기준으로 공정하지 않게 철거업체를 선정하면 결국 조합원 갈등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면서 “도정법 일부를 개정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구청이나 경찰서 차원에서 관리감독을 명확히 하는 조직체계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정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