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 이야기
요즘 보기힘든 성냥은
1880년에 이동인이 일본에서 처음 한갑을 가져와 고종에게 진상해서 대신들과 조선 상류층에 "임금이 <불씨>를 내장한 화봉(火奉)을 사용 했다는게 알려진다.
그후 1890년부터
일본 상인이 성냥을 가져와 궁궐에 납품했는데 대단한 高價라서 (성냥 30개피 한갑에 쌀 두말값)
백성들에겐 그런게 있다는 것만 알려졌다.
그후 동학란으로 조선에 진주한 일본군대가 성냥을 가져와서 조선의 관군등에 나누어줘 작전지에서 불피울 때 사용케 했다.
당시는 군대나 보부상이나 인간 群集이 이동중 어딘가에서 밤을 새우게 되면 제일 먼저 虎患등 들짐승을 막기위해 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잠잘 막사보다도 먼저 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관군과 일본 군인들이 불씨도 없이 손쉽게 불을 피우는걸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는다.
말로만 듣던 불씨를 간직한 화봉에서 불꽃이 튀어 나오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同時代 선비들의 일기엔 거의 모두 화봉의 놀라움이 나온다. 선비들에게도 당시로는 성냥의 존재가 경천동지 할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 비싸서 일반인들은 사용 할 엄두도 못냈고
궁궐과 정승 판서급과
거부의 양반들이 사용했다.
그들도 멀리 이동時에 담배에 불을 붙일 때만 사용했다.
1915년 日人에 의해 인천에 성냥공장이 세워지고, (사실
그 때에서야 일본도 대량 생산체제가 되었다)
그 때부터 일반 대중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으로 가격이 대폭 인하됐지만
그래도 한갑(30개피)에
쌀 한홉 값이었다.
그러니 일반백성은
아직 사용할 수 없었다.
성냥이 일반 백성들도 담배에 불을 붙일 정도로 저렴해진 것은 1920년대 중반쯤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불과 100년전 성냥(火奉)이란 물건은 超 最新의 文明의 利器였다.
자나깨나 불조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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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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