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의 주련] 28. 파주 용상사 대웅전
허상 갇힌 수행자가 허상에 속음 경계
공명 내세우는 수행자가
앉아 애를 쓴들 결과 참담
초조해 하지말고 행하면
깨달을 수 있다고 격려
파주 용상사 대웅전 / 글씨 문수(文殊) 스님.
月巢鶴作千年夢 雪屋人迷一色空
월소학작천년몽 설옥인미일색공
坐斷十方猶点額 密移一步見飛龍
좌단시방유점액 밀이일보견비룡
학은 달집 속에서 천년의 꿈을 꾸고/ 눈 집에 사는 사람은 일색(一色)의 공(功)에 어둡다./ 앉아서 시방세계를 끊으려고 하나 오히려 이마에 상처만 생김이라./ 가만히 한 걸음 옮겨야만 나는 용을 지켜보리라.
이 주련의 내용은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 선사의 제자인 종법, 종영, 법징, 종신 등이 스승의 어록을 엮은 ‘굉지선사광록’ 총 9권 중 제2에 나오는 게송이다. 주련에는 잘못 쓴 글자와 원문과 같은 의미의 다른 글자도 있다.
굉지 선사는 중국 송대 묵조선을 제창한 조동종 스님으로 11세 때 출가했다. 23세 때 단하자순(丹霞子淳 1064~1117)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39세 때부터 절강성 천동산에 머물며 조동종을 중흥시켰다. 묵조선은 묵묵히 말을 잊고 본성을 관찰하면 밝은 자성이 묘한 작용을 일으킨다는 참선 수행법이다. 선사가 게송을 쓴 배경은 다음과 같다.
구봉도건(九峰道虔 ?~921) 선사가 석상경저(石霜慶諸 807~888) 선사의 시자로 있을 때 석상 선사가 입적했다. 후에 대중이 큰방의 수좌를 청하여 선사의 뒤를 이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구봉 스님은 인정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기다려라. 선사의 뜻을 안다면 내가 선사를 모시듯 시봉을 들 것”이라면서 물었다. “선사께서는 ‘쉬어가고 쉬어가라’ ‘한 생각이 만년을 가리라’ ‘식은 재와 마른나무처럼 하여라’ ‘한 조각의 베를 희게 바래듯이 하여라’고 하셨다. 말해봐라. 무슨 일을 명백하게 밝히신 말씀인가?” 그러자 한 수좌가 말했다. “한 빛깔의 일을 명백하게 밝히신 것이다” 이에 구봉 스님이 말하길, “그대는 아직 선사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에 수좌가 다시 말하길, “내가 만일 아직 선사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 일어나는 곳에서 이 몸을 벗으리라” 과연 향 연기가 일어나자 이내 앉은 자세로 입적했다. 구봉 스님이 수좌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길, “앉아서 죽고, 서서 죽는 것도 큰 법력이지만 아직 선사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허망한 생각이 사람 잡는다. 달집은 허상일 뿐이다. 허상 속에 갇힌 수행자는 이를 모르고 허상에 속을 뿐이지만 정작 자신은 이를 합리화하거나 모르고 있다. 설옥은 눈으로 만든 집이다. 인미는 미혹한 사람이다. 달집에 천년의 꿈을 꾸는 것도 미혹함이며, 눈 집에서 살면서 견고한 줄 아는 것도 인미가 되는 것이다.
일색공에서 일색은 형상을 말한다. 공은 애써 힘들여 이룬 결과다. 좌단은 앉아서 끊는다는 것이고 시방은 시방삼세다. 고로 좌단시방은 허상에 찌들고 공명을 내세우는 수행자가 아무리 앉아서 시방삼세의 의문을 단박에 끊으려고 애를 써도 결과는 참담하다는 것이다.
유점액(猶點額)에서 유는 오히려, 마땅히라는 뜻이며 점액은 이마에 난 상처라는 의미다. 중국 황하 중류에는 물살이 급하고 센 여물목이 있는 데 이를 용문이라고 하여 잉어가 용문을 헤엄쳐 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용문을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마에 상처만 입고 돌아가는 것을 점액이귀(點額而歸), 줄여서 점액이라고 한다. 밀이일보(密移一步)에서 밀이는 남모르게 가만히 옮긴다는 뜻이다. 천지만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변화하기에 이 법칙을 안다면 늙음이나 죽음에 대하여 조금도 초조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이다.
굉지 선사가 게송을 짓기 전 수시(垂示)에서 “좌탈한 수좌는 아직 아상에 젖어 스승의 마음을 꿰뚫기는커녕 그 언저리에 맴돌고 말았다”며 “은은히 생각하고 밀밀이 행하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했다. 이를 “비룡”이라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