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박정희를 시작으로 역사 왜곡이 시작되려 하는 군요.
5년간 정신 바짝 차립시다.
다음의 육성 테이프는 육군본부와 합동수사본부 간의 대치상황에서
이건영 3군사령관과 예하 장군들간의 통화 내용을 합수부가 도청 녹음한 것입니다.
(크롬이신 분은 ie 버전으로 바꾸시면 됩니다)
90년대 후반에 공개된 이 음향 자료는 12·12 군사쿠데타의 현장을 생생히 실황 중계해주는 귀중한 자료.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에서 쿠데타를 성공시키기 위해 육본 측의 통화 내용을 몰래 도청하고 녹음한 자료.
이 녹음 테이프가 어떤 경로를 통해 유출되어 공개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쿠데타를 성공시키기 위해 들였던 그들(신군부)의
노력이 훗날 그들의 위법성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확고한 자료가 되었음.
<음성 내용 중 발췌>
(중략)
이건영 : 그럼 말이야, 30단이 장 장군 명령권 내에 있는 거 아니야?
장태완 : 그런데 거기에는 제가 자극을 안하는기요. 거기에 몽땅 모여 있는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그 새끼들 거기 모여 있으면 뭐합니까. 제가 단장한테 전화를 걸어가지고 이리 오너라 하든지 지시하든지.... 처음에는 단장보고 금마들(그놈들) 당장 쏴 죽이라 했거든요. 그런데 단장이 모두 그놈아들한테 누질려 (눌려) 있는 것 같아요.
이 : 그런데 현재는 말야. 다른 30이나 33이나 부대동원에 대해서는 각각 지휘관들한테 내 명령 없이 출동하지 말라고 지시는 해놔 있어요.
장 : 그거는 마, 지가 알아서 하테니까요,
이 : 그래서 여기선 부대는 하나도 동원 안하는데 쌍방이 충돌이 없이 잘 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굉장한 불상사가 생겨.
장 : 그까짓 거 충돌이고 뭐고 몇 놈 죽어도...
이 : 글쎄 잘못된 놈은 죽어도 좋은데.
장 : 하여튼 내부에선 제가 죽든 살든 할 테니까요. 사령관님은 바깥을 좀 해 주십시오.
이 : 그렇게 해요..... 이거 뭐 좀 불순한 장난이 있는 것 같애.
장 : 예, 완전히 장난이라요. 글마들, 그 전두환이하고 이놈아들이 모두 작당(?)해 가지고 장난인 것 같애요.
이 : 응
장 : 그리고 여기도 보니까 단장들이 몇 놈들이 자취를 감추고 없는데요. 그놈아들한테 전부 사전에 공작을 해서 한 모양인데...중대장들 이상, 중대장들도 싹 다 있고 참모들 다 있고 부 지휘관들 다 있기 땜에 완전히 지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 : 알겠어요.
장 : 30단 그거 하나 빼놔 두고요.
이 : 근데, 거 지금 육군 상황실에 말이야, 거기 지금 지휘부가 함참의장이나 장관님이나 모두 계실거
아닌가,
장 : 거기저,,, 국방부 차관께서도요, 저하고 통화 했거든요, 그담에 연합사 부사령관하고 그담에 저
000장군하고 통화 했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공격을 해야 되것다 이러니까,
[상황을 좀 봐가면서 해라]
이 : 응,
장 : 그건뭐, 하여튼 제가 지금 부대출동 준비가 아직 덜 돼서 그런데, 000??000 확실하게 해놓고,
앞으로는 그렇습니다. 저에게 명령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요.
이노무 시키들 전부 죽여야 되겠어요. 나쁜노무 새끼들 말입니다...
이 : 알겠어. 이게 뭐 굉장히 불순한 장난이 있어 큰일이야.
장 : 안에선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이 : 이랬다가 북괴한테 큰일 나요.
장 : 사령관님은 바깥에서 잘 해 주십시오.
이 : 알겠어요
장 : 저는 안에서... 이놈의 새끼들 다 죽이든지 해버릴 테니....
이 : 하여튼 빨리 수습을 좀 하도록 해. 이거 굉장히 불행한 사태야.
장 : 알겠습니다.
이 : OK, 전화줘 고마워요
->> 군사반란 쿠데타를 진압하러 가면서도 북한에 대비해 바깥 보안은 잘해달라는 장태완 사령관
12 12 사태 요약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 술 좌석에서 김재규에게 시해 당한
사건 수사를 보안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서 추진했다.
당시 육군 참모총장은 정승화 육군 대장이었고,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은 전두환 육군 소장
이었다.
1979년 11월 6일,
전두환 소장은 김재규에 대한 수사결과를 '김재규의 단독 범행'이었다면서,
"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의 말대로 중앙정보부로 움직였더라면 큰 혼란을 초래 했을 것....
다행스럽게 정승화 육참총장은 김재규의 권유를 뿌리치고 육군본부로 갔었다...."라고 했었다.
이때,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이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점에 주목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10.26사태에 연결 고리가 있었을 것으로 세간의 의혹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9년 11월 중순 경,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흉계를 꾸미고 있었던 군부 정치군인들 세력이
있었다.
'하나회'를 비롯한 동조세력 규합에 나선 신군부 세력들 중에는, 허화평 보안사 비서실장, 허삼수 보안사인사처장,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 장세동 30경비단장, 김진영 33경비단장 등이 있었고, 어서 11월 말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황영시 1군단장, 노태우 9사단장, 백윤택 71훈련단장,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공수여단장 등과 만나 거사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런 모의를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전보 발령시키는 것을 포함,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주요 군 요직을 독점해 온 이들을 견제하려는 인사조치를 정승화 장군이 강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9년 12월 8일,
전두환 사령관은 이힉봉 중령으로부터, 정승화 총장의 연행은 일과 시간 후 총장공관에서 실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세부 실행계획서를 전달 받았고,
전 사령관은 허삼수와 우경윤에게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에 의해, 경복궁 내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부대인 장세동 30경비단장실에는,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차규헌, 노태우, 황영시 등이 모였고,
이들은 서울시내 일원을 그들 세력이 장악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었다.
오후 6시, 전두환 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하고, 정승화 장군 체포안에 대한 재가를 요구했으나,최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고,
동시에 전두환 지시를 받은 허삼수, 우경윤 등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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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드디어 정 장군 연행을 위한 군 병력이 투입됐고, 총장공관에서 드디어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승화 장군은 7시 21분,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이 됐고,
오후 9시 30분경, 전두환 유학성, 황영시 등이 다시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및 10.26 박대통령 시해사건과의 관련여부 수사계획 재가를 요청했지만, 다시 거절 당했다.
신군부세력들에 의한 하극상에 분노한 이건영 3군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 등이 정승화 장군의 강제연행에 항의했으나,
전두환을 비롯한 신 군부세력들은, 하극상의 극치를 보이며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 연행했고,
이 과정에서 정병주 소장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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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군부세력은 군 내부의 쿠데타를 실행한지 10시간만인 1979년 12월 13일 새벽 4시,
최 대통령으로부터 사후재가를 득했고,
국방부, 육군본부, 수도경비사령부 등 주요 군사시설을 점령 한 뒤,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이희성 대장을 신임 육군참모총장과 계엄사령관에 임명한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신 군부에 의한 실권 장악 씨나리오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by 한골넣어주영
첫댓글 장포스...
아모르겟습니다....뭐가뭔지...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