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 목적
인도 사상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최고 목표인 ‘해탈(Mokṣa)’, 즉 ‘모든 것의 한계로부터의 초월’에 이르는 길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다.
요가의 수행은 상키아 철학에서 해탈의 핵심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분별적 지식(Vivekajn̅a̅na)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다.
정신적 진리를 깨닫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서의 요가는 대부분의 인도학파가 인정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Manas) 또는 지성(Buddhi)이 순수하지 못하고 동요되는 한 심원하고 정신적인 것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없다. 철학과 종교의 진리를 깨달으려면 순수하고 평정된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모든 삶은 평화에 대한 탐구이자 그 방법에 대한 추구이다. 요가는 모든 고통과 불행의 완전한 소멸이라는 목적으로 인도하는 정신적인 길 이다.
요가의 수행은 스스로 정화하는, 다시 말해서 신체와 지성을 정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1) 또한 요가는 참된 자신과의 통합이며 신과 하나됨, 자아 완성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말로써 실천적 철학 체계이자 명상 수련의 체계이며 종교는 아니지만 종교체험을 가능케하는 과학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요가라는 말이 특정한 행법의 명칭으로 나타난 것은 인도의 베다 문헌 중에서 초기의 ꡔ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Taittiriya-Upaniṣad:석가모니 이전)ꡕ와 ꡔ카타 우파니샤드(Kaṭha Upaniṣad)ꡕ이며, 요가행법에 관해서 가장 정밀하게 적고 있는 것이 ꡔ요가타트바(Yogatattva)ꡕ이다. 여기서는 빠딴잘리의 요가수행법 8지분(aṅgas)을 언급하며 요가의 궁극적 목적인 삼매를 실현시키는 요가행법으로 네 종류의 요가, 즉 만뜨라 요가(Mantra Yoga), 라야 요가(Laya Yoga), 하타 요가(Haṭha Yoga), 라자 요가(Ra̅ja Yoga)로 구별된다. ꡔ바가바드 기타ꡕ에서는 갸나 요가(Jn̅a̅na Yoga : 지의 요가), 카르마 요가(Karma Yoga : 행의 요가), 박티 요가(Bhakti Yoga : 신의 요가)로 구분하고 있다.
소리를 통해 내면적 경험의 진실을 표현하고 우주의 실상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종교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 인도의 현자들이 그들의 신비한 경험을 통하여 발견한 가장 주목할 만한 것 중의 하나는 우주의 파동(spanda)의 바다라는 통찰이다.
파동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변화와 초월의 수단으로 소리를 이용한 신비적 수련을 하는 만뜨라 과학(mantravidya̅)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접근이 바로 만뜨라 요가이다.
만뜨라 요가는 소리의 파동을 통하여 차별이 없는 본질로 인도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특별한 힘이 들어 있거나 만뜨라라는 신성한 소리의 염송과 사색을 통해서 하나로 응집된 의식을 목표로 한다. 만뜨라는 인도의 다양한 전통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된 반면에, 만뜨라 요가는 그것의 원리적인 방법으로 특별한 기술을 이용한다.2) 즉 만뜨라 요가는 만뜨라(mantra)를 반복적으로 암송함으로써, 순수하고도 초월적인 의식인 사마디(sama̅dhi)에 도달하려는 체계적인 수행법이다. 그것은 최고의 지혜와 영적 실현에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의 필수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인간의 고뇌와 무지에 대한 극복과 초월의 방법으로서, 만뜨라 요가는 가장 유력하면서 일반화된 수단이라고 요가 수행자들은 힘주어 말한다. 스와미 시바난다(Swami Sivananda)는 “만뜨라를 암송하는 것은 요가의 수행법 가운데 가장 쉽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훌륭한 수행법이다.”3)라고 밝힌 바 있다. 스와미 사트야난다(Swami Satyananda)는 만뜨라의 암송은 요가와 명상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힌두교와 기독교와 수피즘과 불교를 비롯한 대다수의 다른 종교와 문화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4)
수많은 길들이 영적 성취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어떤 길을 택하여도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길은 여행자의 특수한 환경과 육체적, 정신적 조건에 구애되지 않고 목표에 빠르고 안전하게 도달케 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만뜨라 요가는 쉽고 신속한 통로가 될 수 있다.5)
이상과 같은 만뜨라 요가는 그 중요성에 비하여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있거나 부족하게 전해진 부분이 많다.
본 논문의 목적은 그러한 것들을 보완하는 과제와 함께 만뜨라 요가의 이론적 토대와 수행체계에 대해 문헌적 고찰을 통하여 현대인들이 만뜨라 요가 수행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실천을 도모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이러한 연구의 자료로서 일차적으로 만뜨라 요가의 주요경전인 빠딴잘리의 ꡔ요가 쑤뜨라ꡕ, ꡔ쉬바 상히타ꡕ6), ꡔ우파니샤드ꡕ의 원본과 번역본을 함께 참고로 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만뜨라 요가에 대한 연구서들과 외국의 관련서적, 국내 논문들, 유사성이 있는 소리와 음악요법 관련서적, 불교 등 종교 집단에서의 진언주문 등을 다룬 서적과 논문등을 참고 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연구를 위하여
먼저 Ⅱ장에서는 만뜨라 요가 수행의 이론적 기초를 살펴 본다. 우선 만뜨라 요가에 대한 어원⋅기원⋅정의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발전과정 등을 고찰해 보고 만뜨라의 원리 및 특성, 만뜨라의 기능을 조명해 본다.
이어서 Ⅲ장에서는 만뜨라의 종류와 사용방법을 고찰하면서 자빠를 위한 만뜨라로써 싸구나 만뜨라, 니르구나 만뜨라, 함사 만뜨라, 비자 만뜨라 및 만뜨라 요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옴 만뜨라를 옴 만뜨라의 의의, 구성, 상징 등으로 세분하여 규명해 본다. 또한 각계(各界)에서 활용되고 있는 여러 만뜨라들도 고찰해 본다. 또한 만뜨라에서 나타난 얀뜨라, 만뜨라에서 나타난 만다라 등도 조명해 본다.
그리고 Ⅳ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만뜨라 요가 수행의 실천적 수행법과 효능에 관해서 고찰해 보는데 먼저 만뜨라 요가 수행을 위한 입문과 입문의 준비과정, 절차 등을 조명해 보고, 만뜨라요가의 실천적 수행방법으로 수행의 제반 단계 및 실천적 수행방법을 고찰해 본다. 다음으로 만뜨라의 체험과 증득을 통한 일상 생활속에서의 만뜨라를 규명해 본다. 다음으로 만뜨라 요가 수행의 효능과 메카니즘을 첫 번째로 만뜨라와 소리요법에 의한 몸 치유메카니즘의 효능과 두 번째로 마음에 미치는 영향과 삼매현상을 조명해 보고, 세 번째로 만뜨라요가 수행을 통한 초능력의 발현 현상을 고찰해봄으로써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만뜨라 요가 수행체계를 정립,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만뜨라 요가 수행의 이론적 기초
1. 만뜨라의 어원⋅기원⋅정의⋅발전과정
소리를 통해 내면적 경험의 진실을 표현하고 우주의 실상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종교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언어, 리듬, 소리가 시를 구성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름도 형체도 없는 또 다른 요소를 암시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말의 힘, 즉 소리의 힘이었다. 서로 다른 성질(相性) 끼리의 마찰(意)은 진동(空) 즉 소리를 내고 따라서 파장(風)이 생기며 에너지(火)를 일으키고 물질(水)를 만들어 형상(地)을 이룬다. 이렇듯 모래알에서 산에 이르기까지 또한 행성과 태양까지도 모든 생명은 리듬으로부터 시작되며 각 생명체는 많은 종류의 리듬을 즐기며 산다. 나아가 어떤 유기체든지 자기만의 고유 진동수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리에는 진동하는 힘이 있고 진동하는 힘에는 리듬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특별한 성질을 가진 유기체라도 기본음을 알아 내면 그 진동수를 이용해 분해할 수 있다.1) 이와같이 소리라는 절대적인 힘을 통해서 영적인 힘, 물리적인 힘 등의 특정한 진동수에 해당하는 만뜨라가 만들어지며 그것은 한 생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영적 존재들까지도 불러내어 명령할 수 있는 만뜨라 수련은 그 위력 때문에 수천년동안 절대적인 비밀로 전수되어 왔던 것이다. 이렇게 소리의 진동과 뜻을 이용하여 심신을 조절하고자 하는 기법이 만뜨라 요가 수행법이다. 소리는 진동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고대와 중세의 요가 수행자들에게 그와 같은 모습으로 알려져 있었다. 만뜨라-비드야(mantra-vidya̅) 또는 만뜨라-샤스트라(mantra-shastra)라고 알려진 신성한 소리의 과학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진동(spanda 또는 spandana)의 상태로 존재한다. 특별히 반복적인 소리인 소리가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의 발견은 아주 오래전 아마도 석기시대부터 이루어졌다. 베다의 찬가들은 전통적으로 만뜨라(mantra)로 간주되었다. 만뜨라라는 단어에 대한 적절한 영어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하다’ 또는 ‘집중하다’를 의미하는 man이라는 동사어근에서 파생되었다. 그것은 또한 만만(manman : 생각하다), 마나스(manas : 마음), 마니샤(maniśa : 이해), 마누(manu : 현명한 또는 인간), 마-나(ma-na : 열성), 마뉴(manyu : 무드 또는 마음), 만뚜(mantu : 지배자), 마누스(manus : 인간존재)등과 같은 용어 속에서도 발견된다. 만뜨라에 있는 접미사 트라(tra)는 수단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의적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구하다’를 의미하는 단어 트라나(trana)를 뜻한다. 그러므로 만뜨라는 마음을 자신으로부터 구하는 것 또는 마음의 집중을 통해 해탈을 이끈다는 의미이다.
만뜨라는 신성한 발성, 신비한 소리, 또는 심적-영적인 힘을 충전하는 소리이다. 만뜨라는 마음에 힘을 주고 마음에 의해 힘을 부여받는 소리이다. 그것은 인간의 심신의 명상적 변형의 수단이며 마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2) 만뜨라는 ‘인간을 구원하는 생각의 도구’로 정의되기도 한다.3)
또 스와미 사트야난다(Swami Satyananda)는 만뜨라를 ‘마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만뜨라 요가에 의하면, 소리는 공기 파장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소리에서부터 들을 수 없는 절대적 파동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다양한 차원을 나타낸다. 만뜨라는 영적인 해탈을 돕는 힘으로 가득 찬 생각이다.4) 이렇게 만뜨라는 영적 에너지의 핵심을 이루는 성스런 음절의 조합이다. 이것은 영적 파동을 끌어당기는 자석, 혹은 그것을 집중시키는 렌즈와 같은 구실을 한다.
인도의 고대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원래 만뜨라의 거처는 시원(始源)적 에테르(Parama Āka̅śa)였다고 한다. 이 영원불변하는 우주의 토대로부터 시원적 소리(Vach)가 울려퍼지면서 우주가 창조됐다고 한다. 비슷한 설명이 요한복음에도 나온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라 ⋯⋯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복음 1장 1절, 14절)”
고대 선견자들은 에테르 안에 존재하는 만뜨라들을 직접 지각하여 그것을 단어, 리듬, 음율로 이뤄진 청각적인 형태로 번역했던 것이다.5)
만뜨라는 한편 베다 Veda書에서 신(神)에 대한 찬가를 일컫는 말로써 사유(思惟)를 표현하는 용구, 사상을 담는 기구, 마음속의 사유를 표현하는 언어의 뜻을 가지고 있다. 베다 Veda書의 신에 대한 찬가(Mantra)는 신의 계시(Śruti)에 의하여 송출(誦出)된 것이므로 신성한 말(語), 진실한 말(語)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어(神聖語)인 만뜨라에 의해 불사의(不思議)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주(呪)로 사용되었다. 주(呪), 밀주(密呪), 밀어(密語), 진언(眞言) 등으로 한역되었다. 이상에서 만뜨라는 사유를 위한 도구, 사유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베다書의 신에 대한 찬가로서 신성시되고 이 신성한 언어를 통하여 영험이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주문처럼 인식되었다. 한편 종교적인 신성한 사상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진언(眞言)으로 번역되었다.6)
바라문교에서 만뜨라는 베다의 문장이나 단편들, 즉 찬가, 가영(歌詠), 제사, 주문 등의 베다 문집(Saṃhita̅)을 암송하거나 영창하는 말을 가리키며, 제의(祭儀)를 행할 때 반드시 동반되고 있다. 이는 ‘생각의 수단’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신성한 신앙적 표현(sacred formula)’이나 ‘주문, 진언’이라고 이해해야 적절할 것이다.7)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 빅뱅(Big bang ; 우주 생성시 대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텅 빈 공간에서 소리가 흘러나와 그 진동이 조금씩 진화해 오늘날의 우주를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유사하게 요가의 우주론과 요가의 가르침에서는 빅뱅을 신성한 소리라고 한다. 요가에서는 우주가 생성되기 전에 모든 형태의 힘을 담고 있는 ‘샥티(Shakti)’라고 하는 잠재된 에너지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작은 열매 속에 거대한 떡갈나무의 미래가 담겨 있듯이, 샥티 안에는 세계를 형성할 에너지가 담겨 그 에너지가 발현될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만뜨라는 자연 상태에서 항상 잠재된 에너지, 즉 소리 에너지로 존재해왔으며 각 개인을 위해 창조되거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력이라는 것이 발명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뉴턴에 의해서 밝혀졌듯이, 만뜨라도 고대의 현인들이 높은 단계의 의식 상태에서 깊은 명상을 할 때 밝혀진 것이다. 만뜨라는 글이나 문서처럼 성문화(成文化)되어 스승에서 제자에게로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져 내려왔다.
이상과 같은 만뜨라의 암송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대체로 만뜨라의 암송은 선사(先史) 시대 이전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록상으로 볼 때, 만뜨라는 ꡔ베다(Veda)ꡕ와 ꡔ우파니샤드’(Upaniṣad)ꡕ 등의 성전(聖典)에 등장함으로써 그 오랜 역사를 시작해왔다고 할 수 있다.
영감어린 찬가들을 수록하고 있는 베다 성전(聖典)은 만뜨라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리그베다(Ṛg Veda)를 비롯하여 야주르 베다(Yajur Veda), 사마 베다(Sa̅ma Veda), 아타르바 베다(Atharva Veda)에 이르기까지, 만뜨라는 그 안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각각의 베다들은 만뜨라의 모음집인 상히타(Sạnghita̅)와 브라흐마나(Bra̅hmaṇa), 우파니샤드(Upaniṣad)의 세 부분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여기에서 브라흐마나는 제례(祭禮)의 절차와 종교적인 의무에 대한 서술이며, 우파니샤드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논의이다. 그런데 베다의 핵심부를 구성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만뜨라의 모음집인 상히타인 것이다.8) 만뜨라는 가슴 속에서 신성한 지혜를 체험한 고대 인도의 현인들에 의해 읊어지고 불려지면서 대를 거듭하여 전수되어 왔다. 그것은 전통에 따라 스승으로부터 제자들에게로 전해진다.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면 꽃이 피어나듯이, 만뜨라에 내재해있는 신성한 힘, 즉 만뜨라 샥티(mantra śakti)는 최초의 근원으로부터 현재 그것을 암송하는 사람에게로 피어나는 것이다.9)
2. 만뜨라의 원리 및 특성
우리 몸은 거대한 에너지가 갇혀 있는 에너지체이자 파동이다. 육안으로 볼 때 우리의 몸은 세포라는 벽돌로 쌓아놓은 단단한 구조물로 보이나 실은 매 순간 우주만물과 교감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파동체이다. 이 파동체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소리 파동이다. 무한 의식의 에너지가 속박에 갇히고 굳어져 물질화 되어 가는 것이 반생명 현상이고 다시 해방되고 풀어지는 것이 생명현상이다. 요가에서 마음과 몸의 굳어짐을 풀게 하고 유연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치유는 해방과 풀어짐에서 일어난다.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고 풀어지게 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바로 소리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 자체가 소리에너지이자 소리 파동이기 때문이다.10) 만뜨라 요가는 모음의 조직으로 된 특별한 소리를 영창하여 우리 몸 전체의 신경이나 샘이나 뇌수에 진동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이다. 모음의 발성은 자음의 발성보다 부드러운 감정을 내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또한 깊은 호흡으로 힘껏 힘을 주어 발성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난다. 모음을 발성하면 머리 속으로 확실한 진동의 효과를 알 수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 모음이 해부학적인 여러 부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11) 또한 한 음절의 만뜨라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것은 실재(實在)를 상징하며 동시에 상징을 위한 기호이다. 만뜨라의 신비한 글자 및 음절과 인체의 미묘한 기관들은 우주에 잠자고 있거나 현상화 되어 있는 신성한 에너지 사이에는 불가사의한 상응관계가 있는 것이다. 부분은 전체에 속하며 전체의 원리나 성질이 부분에도 똑같은 법칙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상징을 작동하므로 모든 존재의 차원에서 그 상징과 상응하는 모든 에너지를 일깨우는 것이다.12)
독일 태생인 라마아나가리카 고빈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뜨라는 그 자체의 마술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경험하는 마음을 통해서만 작용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어떠한 힘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힘을 집중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마치 그 자체로는 어떤 열도 갖지 않지만, 태양광선을 집중시키고 태양의 따스함을 뜨거운 열로 변환시키는 볼록렌즈와 같다.13)
정신을 집중하고 통일하기 위해서는 옛날부터 많은 방법이 고안되어 왔다. 그것들은 시대나 민족이 다르고 종교나 수행 체계가 다름에 맞춰 그 특징을 달리하고 있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시대나 민족에 따라서 인간의 본질이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 집중의 수단으로서 우선 마음을 집중시킬 대상이 필요하다. 대상으로서는 육체의 오감에 맞춘 다음의 다섯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시각의 대상 ꠏꠏꠏꠏꠏ 색채, 모양을 가진 것[만다라]
둘째, 청각의 대상 ꠏꠏꠏꠏꠏ 자연의 음, 악기의 음, 음악, 만뜨라
셋째, 후각의 대상 ꠏꠏꠏꠏꠏ 각종 향기와 냄새
넷째, 미각의 대상 ꠏꠏꠏꠏꠏ 식물 향신료(양념)
다섯째, 촉각의 대상 ꠏꠏꠏꠏꠏ 주로 손의 촉각을 이용하는 물품
이 중에서도 특히 시각적인 것, 청각적인 것이 집중의 대상으로서 이용되어 왔으며14) 만뜨라요가도 여기에 속한다. 10세기 요가의 달인이며 학자였던 아비나바 굽따(Abhinava-Gupta)는 만뜨라의 기능을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한다.
“흐르는 강물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단하나의 물레방아는 그것과 결부된 일련의 새로운 기계적 신제품을 움직일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하나의 만뜨라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함으로써 그와 연결된 신성들(devata)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수행자의 의식의 변화시키는 영감력이 된다”15)
만뜨라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의 일반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견자(rṣi); 선지자들은 직관을 통해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뜨라를 적었다고 전해지며, 그것이 바로 신의 은총, 지식, 힘의 흐름과 소통될 수 있는 통로임을 깨달았다. 즉 본질적으로 계시된 것이어야 하며,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성자에 의해 전수된 것이어야 한다.
둘째, 음률(ra̅ga); 만뜨라를 영송할 때는 음률과 음조를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소리가 토대를 둔 진동수는 만뜨라의 완벽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음조는 각기 다른 진동을 일으켜 육체적,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 낸다.
셋째, 주재신(devata̅); 소리는 명확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진동이다. 신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영송하면 예배 대상인 주재신의 형체나 현시가 점차 형성되어 영향력을 집중시킬 초점으로 작용하다. 마침내는 예배자의 의식을 관통하여 그 중심이 된다. 이때 그 주재신은 만뜨라를 주재하는 신령이자 깨우침의 힘이요, 신의 인격적인 측면이다.
넷째, 씨앗(bīja); 개개의 만뜨라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만뜨라에 힘을, 즉 자생적인 힘을 부여하는 만뜨라의 정수이다. 씨앗 속에 나무가 숨겨져 있듯 만뜨라에 담겨진 에너지의 정수는 장차 아름다운 영적 존재로 성장할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힘, 또는 에너지(sˊakti); 만뜨라의 힘은 발성된 말씀의 여신이자 성모이며, 의식이다. 신의 남성적인 측면은 평형상태를 이룬 에너지이고, 반면에 여성적인 측면은 창조로 나타난 역동적인 에너지이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물 속에는 하나의 에너지만 있을 뿐이다. 그 에너지는 만뜨라를 통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반복 수행을 통해 만뜨라의 잠재력이 풀려나면 결국 수행자는 신명에게 인도되어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여섯째, 기둥(kilaka); 기둥은 처음에는 만뜨라 수행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추진력, 끈기, 의지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다 만뜨라의 힘이 자생적인 관성을 띠기 시작하면 기둥은 수행자를 만뜨라의 힘과 구루와 신명과 결합시키고 결국엔 그 모두를 하나로 짜엮는 매우 정교한 실이 된다.16)
이러한 조건 속에서 만뜨라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생각함으로써 수행자는 환상적인 현상계의 충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힘이 깃든 말의 반복을 통해 만뜨라 요가의 목표, 즉 우주 의식과 개인 의식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만뜨라는 공명, 주술성, 이념의 세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째 만뜨라에는 공명이 있으며 호흡에 맞추어 율동적으로 계속 흐르듯이 반복할 수 있다. 호흡은 인간의 의식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호흡 기능은 ‘쁘라나’라고 불리우는 신체 속의 생명력의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호흡이 빠르고 불규칙적이면 쁘라나는 불안정해지고 그 영향으로 마음이 혼란스럽게 되고 지각과 사고가 불분명해진다. 호흡이 느려지고 규칙적이 될 수록 쁘라나는 인정되고 집중과 마음의 통제가 더 잘 이루어진다. 즉 만뜨라를 천천히 리듬에 맞춰 마음속으로 영창하면 호흡이 느려지고 쁘라나가 안장되며 마음을 갈아 앉히고 조절하는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특성은 주술성으로 만뜨라는 반드시 특정한 소리, 특정한 진동 양식을 지니기 때문에 이를 마음속으로 되뇌면 그 자신의 진동 혹은 본질적 리듬을 상승시킨다. 이 진동은 몸과 마음, 뇌파, 심장박동, 신진대사 등의 다양한 생체리듬과 결합하여 개인의 특정한 선율을 형성시켜 느린 진동수로 상승하며 평화와 같은 무한히 곧은 직선으로 변형시킨다. 이는 만뜨라가 개인의 리듬을 형성하여 깊은 명상의 상태로 나아가게 함을 의미한다.
세 번째 특성은 이념으로 만뜨라는 특별한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요가 수행자들은 수 세기 동안 “너는 네가 생각하는대로 된다.”는 진리를 가르쳤다. 마음은 그 마음의 관념이 만들어 낸 대상과 같아진다. 이것은 오늘날 심리학적으로도 널리 인정된 사실이다. 우리의 의식은 충분한 기간 동안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인 것과 융합되거나 동일시된다는 것이 많은 실험에서 증명되었다. 사물을 머리 속에 그리고 그것을 확신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점점 집중의 대상 쪽으로 변해간다. 매일매일의 수행을 통해, 한결같은 이념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점차 우리 자신을 우리의 신체나 저급한 마음과 동일시 하지 않게 되며 내부에 있는 지복에 넘치는 자아와 우리를 동일시하게 된다.17)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만뜨라를 반복해 음송하면 인간의 두뇌 중 우반구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우반구는 직관력을 주관하므로, 우반구의 활성화는 수행자에게 있어 곧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원래 만뜨라를 읽을 때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좌반구가 활동하는데, 반복하게되면 결과적으로 좌우반구를 통합적으로 사용하게 되어 동조성을 이끌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뜨라 수행을 하면 인간의 뇌 속에 진동 전류가 형성되고, 좌우반구에 진동하는 자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뇌파는 서서히 느려져 일상의식과는 다른 차원의 알파(α)파나 이보다 더 느린 이상적인 파동으로 나타난다.
만뜨라 수행은 좌우반구가 주관하는 해당기관은 물론, 세포 하나하나, 신경계 하나하나에 까지 영향력을 미쳐 동조성을 이끌어내고 같은 파장으로 굽이치도록 만든다. 인도의 의학박사 디팍 초프락(Deepark Choprak)는 “만뜨라는 신경계에 삽입되는 매우 특별한 메시지다.”라고 말한다. 만뜨라 수행이 혈압, 호흡, 맥박수 등의 이완효과(弛緩效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만뜨라 수행은 단전호흡(丹田呼吸) 등에서 강조하는 호흡의 효과뿐만 아니라 거기에 소리의 효과를 추가한다. 만뜨라의 파동을 타고 우주의 근원 에너지와 빠르게 교감한다. 때문에 만뜨라 수행은 호흡에만 의존하는 수행법에 비해 그 효과가 월등히 뛰어나다.18)
3. 만뜨라의 기능
만뜨라의 기능에는 첫째, 주술의 기능이 있다.
모든 인도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해탈의 획득에 있다. 그같은 해탈은 물질적⋅육체적⋅현실적 욕망의 충족이나 해결이라는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해탈의 종교에서도 주술의 측면을 갖고 있음이 엿보인다. 인간이 갖는 물질적⋅육체적⋅현실적 욕망의 충족을 이루고자 신비적 주문의 염송을 그 수단으로서 동원하는 것을 주술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해탈을 추구하면서도 주술의 측면 역시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ꡔ리그베다ꡕ는 신들에게 바치는 30종의 주술적 찬가가 있는데, 모두 치병⋅적의 추방⋅위해의 제거⋅기우(祈雨)⋅승전 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둘째, 만뜨라는 의례의 기능이 있다
만뜨라가 갖는 주술의 기능과 의례의 기능은 엄밀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뜨라의 실천은 의례 속에서 행해지고, 의례속 만뜨라의 목적은 주술의 의미를 띠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정통 인도종교에 있어서 제사와 같은 의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깊은 것이다. 이들 제사의례에 있어서 만뜨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인 것이다.
만뜨라가 갖는 이같은 ‘의례의 기능’에 대해서 ꡔ따이띠리아 우파니샤드ꡕ(1.8.1)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옴’ 자로서 브라흐만 사제는 의식을 알리는 송가를 부르고, ‘옴’자로서 불의 의식에 귀의하고, ‘옴’자로서 브라흐만은 ‘브라흐만을 얻게 하소서’라고 암송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바람으로써 그는 진실로, 브라흐만을 얻는다.
셋째, 만뜨라는 상징의 기능이 있다.
인도인들은 우주적 진리가 하나의 언어를 통하여 상징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의 만뜨라는 하나의 상징”이다. 즉 그것은 ‘실재(實在)’를 상징하며, 동시에 상징을 위한 기호라고 말해진다.1) 엘리아데에 의하면, “ꡔ야주르 베다ꡕ 시대부터 최고의 만뜨라 ‘옴’은 브라흐만이나 베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신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절대적 위세를 가지고 있었다.2)”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상징의 기능이 가장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은 ꡔ우파니샤드ꡕ에 이르러서라고 보아야 할 것같다. 앞서 살펴본 ꡔ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ꡕ(1.8.1)에서 “옴은 브라흐만이다”라고 함으로써 ‘옴’의 상징성을 말하고 있다. 또 ꡔ만두키야 우파니샤드 1⋅2ꡕ에서는 ‘옴’의 상징성을 자아의 사위(四位)와 연결짓고 있다. 이는 다음에 나올 옴만뜨라에서 언급하려고 한다.
넷째, 만뜨라는 도구의 기능이 있다. 만뜨라가 ‘도구의 기능’을 갖게 된다는 것은 우파니샤드 시대에 이르러서라고 보아야 한다. 우빠니샤드 시대는 “자아가 곧 브라흐만이다”3)라고 말하는 것처럼, 절대자를 자기 속에서 찾고자 하는 대전환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결과는 ‘옴’과 같은 만뜨라가 담당하는 기능에도 변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의 아뜨만을 자각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ꡔ까따 우파니샤드ꡕ(1.2.16)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이 음절은 곧 브라흐만이고
이 음절은 최고이니
이 음절을 앎으로써
그가 원하는 것, 그것은 그의 것이리.
Ⅲ. 만뜨라 종류와 수행방법
1. 만뜨라의 종류 및 분류
만뜨라는 각각의 음소를 바탕으로 짧거나 긴 다양한 형태를 이루며 그 소리들의 본질적인 특징에 따라 갖가지 위력과 다양한 변모 기능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김관영에 따르면 먼저 만뜨라에는 음절과 단어, 그리고 문장 형태의 것이 있다. 전자는 음성적 기능을 주로 발휘하고, 후자는 의미적 기능을 주로 발휘한다. 이밖에 다양한 형태로 만뜨라의 종류를 분류할 수 있다.
먼저, 단어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만뜨라를 살펴보자면, ‘Haum’, ‘Dum’, ‘Kreem’, ‘Hreem’, ‘Shreem’, ‘Aim’ 등과 ‘Lam’, ‘Vam’, ‘Ram’, ‘Yam’, ‘Ham’, ‘Oṁ’ 등이 있다. 이 모두는 특정의 신(神)을 상징하는 동시에 명상 수행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두 번째로, 문장 형태의 만뜨라에는 단문(短文)이나 장문(長文)의 것이 있다. 예컨대, ‘나는 그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So-Ham’과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뜻의 ‘Aham Brahma asmi’ 또는 ‘Tat Twam asi’는 짧은 문장의 만뜨라이며 주로 명상에 이용되고 있다. 반면에 가야트리 만뜨라(Gayatri Mantra)와 마하므리튠자야 만뜨라(Maha̅ Mṛtyunjaya Manitta)는 기도문 형태의 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긴 문장의 만뜨라는 종교적인 제례 또는 일상적인 의례의 순간에 자주 암송된다. 이러한 만뜨라는 시(詩)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는 표현 불가능한 것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해내는 최상의 시도이다. 일종의 시라고도 할 수 있는 장문 만뜨라는 내면의 정신적인 힘을 기르거나 외부의 초자연력을 불러오기 위해서 쉽게 읊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가야트리 만뜨라는 수행의 과정에서 돌출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마음의 찌꺼기들을 정화하는데 사용된다.1) 그리고 마하므리튠자야 만뜨라는 내적인 힘을 길러 정신을 치유하는데 암송되곤 한다.2)
세 번째로 만뜨라는 그 쓰임새에 따라 현실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만뜨라와 영적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만뜨라의 둘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어, 전자는 잃어버린 소를 찾는다든가 시험의 합격을 기원하는 의도로 암송된다. 실제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이와 같은 만뜨라를 ‘성취 만뜨라(Siddha Mantra)’라고 부른다.
영적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만뜨라는 명상 수행에 쓰이며, 악업의 결과를 피하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쓰이고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명상 만뜨라(meditative mantra)’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종류의 만뜨라로 수행을 거듭해 간다면 육체와 마음은 정화되고 그 힘이 외부 세계에까지 투사되어 주변을 영화(靈化)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상 만뜨라는 영적 조명(illumination) 또는 깨달음을 얻게 하고 우리를 신성의 영역에 진입시키는 효력을 지니고 있다. 명상 만뜨라는 영적인 스승인 구루(Guru)에 의해 제자들에게 전수되므로 ‘구루 만뜨라(Guru Mantra)’로 불려지기도 한다.3)
네 번째로 만뜨라는 발화적인(speech) 기능이 중시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언어적 만뜨라(linguistical mantra)와 비언어적 만뜨라(anlinguistical mantra)로 구분된다. 전자는 ‘베다 만뜨라(Veda Mantra)’로, 후자는 ‘탄트라 만뜨라(Tantra Mantra)’로 불려지기도 한다. 발화적 또는 언어적 기능을 가진 만뜨라는 주로 베다식 제의(祭儀)에, 비발화적 또는 비언어적 기능을 가진 만뜨라는 주로 명상, 즉 탄트라적 수행에 주로 쓰였기 때문이다.
언어적 만뜨라는 베다 시대(B.C. 1500∼B.C. 600)에 제례와 예배의 행위에 주로 읊어졌으므로 ‘베다 만뜨라(Veda Mantra)’로 일컬어진다. 언어적 만뜨라는 대부분 의례문과 기도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의례적 행위의 한 구성 요소이거나 행동의 형식을 지배하는 규칙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름은 사물의 본질’이며 ‘말과 사고는 불가분의 것’이라는 신념에 의거하여 청원(請願)과 수행을 목적으로 발화(發話)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언어적 만뜨라는 ‘성취 만뜨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4)
비언어적 만뜨라는 명상 수행에 쓰이는 만뜨라이다. 따라서 비언어적 만뜨라는 ‘탄트라 만뜨라(Tantra Mantra)’라고도 불린다. 이때의 ‘탄트라’는 일반인들이 흔히 연상하는 바의 성적(性的) 에너지를 활용하는 좌도적인 것이 아니다. 탄트라는 어디까지나 심흔적인(psychic)에 에너지로서의 쿤달리니(Kundalini)를 일깨워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명상 수행법이다. 이런 까닭으로 만뜨라 요가는 탄트라 요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한 Pandit Rajmani Tigrnait는 만뜨라를 수행하는 목적에 따라 명상만뜨라, 관조만뜨라, 싯다(Siddha)만뜨라, 마하(Maha̅)만뜨라, 아프타(Apta)만뜨라, 사바르(Sabar)만뜨라의 여섯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 명상 만뜨라는 순수한 영적에너지의 초점으로 그것을 명상함으로써 영적조명을 얻을 수 있다. 구루만뜨라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충만한 보호력으로 우리의 생각을 인도해주는 것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 생명의 깊은 차원으로 의식을 인도해 주는 한편,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며 마음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구루만뜨라의 기본적인 기능이다. 이 만뜨라 안에 깃든 내적인 지도력과 신성한 보호력으로 우리의 무의식을 변모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이 만뜨라를 수행하는 목적은 깨달음을 얻는데 있다.
둘째, 관조만뜨라는 대부분 우파니샤드에서 나왔으며, 짧고 간결하며 심오한 문장으로 이뤄졌는데 그 속에 상상을 초월하는 철학적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 그것들은 자기 분석, 자기 성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진아 깨달음을 위해 사용된다. 관조 만뜨라는 대개 포기의 길을 걷는 구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수행법이다. 구도자의 마음은 만뜨라의 소리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안에 내존된 철학적 사유의 흐름을 따라 흘러간다. 따라서 구도자는 만뜨라의 정확한 의미를 명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여 그것이 완벽하고 정확하게 마음속에 떠오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싯다 만뜨라는 내면의 초자연력을 일깨우거나 외면의 자연력을 불러 일으키는 만뜨라를 일컫는 것으로 대개 타인의 마음을 읽거나, 과거나 미래를 알며, 치유의 힘을 일깨우는 등 요가적 초능력(Siddhi)를 계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넷째, 마하 만뜨라는 마하 비드야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가장 강력하고 극히 비밀스런 만뜨라의 정수이다. 모든 마하 비드야는 각각의 완벽한 수행체계와 독특한 형이상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 이는 경전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이 만뜨라의 수행 목적은 구도자의 의식과 마하 만뜨라가 일체가 되는데 있다. 마하 만뜨라의 수행은 만뜨라 수행법 중에서도 최고의 행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체계적이고 정밀한 법문이라서 유능한 스승의 지속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쿤달리니와 탄트라 요가의 경전들에 나오는 기법들이 그 강력한 만뜨라 수행을 위한 토대를 이룬다.
다섯째, 아프타 만뜨라(Apta mantra)는 그것을 전수하는 현인과 관련돼 있다. 그것들은 단순한 말이나 어구처럼 보이거나 들릴 수 있지만 실상 순수한 가슴과 비상한 신성력을 지닌 현인의 말이란 점에서 만뜨라가 된다. 이들은 현인이 결정지은 방식으로 잠재력을 나타내게 되어 있으며 이들을 전수받거나 수행하는데 일정한 규칙은 없다.
“때로는 위대한 분들의 말씀이 만뜨라의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위대한 분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만뜨라로 받아들이고 정성껏 수행해야 한다”
이처럼 성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바로 아프타 만뜨라이다.
여섯째로는 사바르 만뜨라로써 근원이 미확인된 만뜨라들은 이 사바르 만뜨라로 분류된다. 이들은 어떤 언어에서든지 발견될 수 있다. 갖가지 언어와 지역에서 나온 단어, 어구, 개념, 표현법들로 이뤄진다.5)
사바르 만뜨라는 대개 단조로운 소리가 뼈대를 이루면서 현대어나 고대어로 이뤄진 단어들이 간간히 뒤섞이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사바르 만뜨라는 앎, 해방, 깨달음을 위한 것이 아닌 세속적인 목적을 위한 진언이다.
다음으로 시바난다는 만뜨라 명상의 대상에 따라 싸구나 만뜨라, 니르구나 만뜨라, 비자 만뜨라의 3종류로 구분하였다.
첫째, 싸구나 만뜨라(Saguṇa Mantra)는 특정한 신이나 신성 또는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행하는 만뜨라이며 둘째, 니르구나 만뜨라(Nirguṇa Mantra)는 명상의 대상이 속성이 없거나 또는 명상하는 사람이 자신을 절대와 동일시하여 자신의 본성을 밝히는 만뜨라이다. 셋째, 비자(Bija) 또는 종자 만뜨라는 “옴”의 모양과 50개의 산스크리트어 본원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신비한 소리의 만뜨라이다.6)
범위에 따라 나눈 유형별로는
첫째, 우주적 또는 보편적 만뜨라로써 누구나 실현 가능한 보편적인 것, 여러 전통적 사상 체계들에서 사용한다.
둘째는 개인적 만뜨라로서 개인적 성향에 맞게 구루(스승)로부터 입문하게 된다. 대체로 bija(씨앗) 만뜨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신성스러운 문구를 반복하는 자빠(Japa)를 위한 만뜨라와 수행자의 의식적인 노력없이 만뜨라가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반복될 때, 만뜨라는 아자빠(Ajapa)라고 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주로 함소(Hamso) 만뜨라와 가야트리(Ga̅yatrı̅) 만뜨라가 사용되어진다.7)
이렇게 만뜨라는 목적이나 대상 등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되며 목적과 대상을 함께 고려하여 자신에게 맞는 만뜨라를 선택하여 수행하는게 바람직하다.
. 자빠를 위한 만뜨라
가. 자빠(Japa)와 아자빠(Ajapa)의 의미
자빠1)는 만뜨라를 반복하는 것이며 우리의 의식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소리 속에 있는 에너지를 방출시킴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확장해 주는 명상법이다. 만뜨라를 반복하여 의식을 집중시키는 것은 소리의 진동이 사고의 진동으로 몰입하는 것으로 이끌어준다. 이 단계에서는 만뜨라의 뜻은 의미가 없어지고 둘이 아닌 하나(不二)의 상태의 인간의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지까지 이끌어 준다. 수행자는 만뜨라 수행을 통해 활성화시킨 힘들을 자신에게 끌어들이고, 자기 포기를 통해 그 속에 몰입한다. 그는 만뜨라를 통해 의식을 넓혀 진아를 자각한다. 그 결과는 저차원적인 자아와 고차원적인 자아의 통합으로 나타난다. 즉 순수한 본질로 돌아 가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한번 과정적으로 살펴본다.
자빠(Japa)라는 것은 만뜨라를 계속 반복하는 행위이며 수행자의 일상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만뜨라의 반복으로 시작하지만 점차로 수행자는 그 진실한 뜻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명상을 하여 그 만뜨라가 담고 있는 진실한 뜻을 깨닫는다. 그 만뜨라는 또한 수행자의 무의식의 마음의 단계에도 작용하여 분노, 탐욕, 태만과 같은 기분을 통제하거나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심리상태를 자제시키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다음 단계인 초의식으로 진화하는데 필수적인 명상의 단계에 가능하게 수행자를 만들어준다. 자빠 수행은 전세계의 대부분 종교에서 발견되며 기도의 형식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2) 자빠는 신의 이름을 반복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행위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서 하나의 일상적 의례로 규정되어 왔다. 자빠는 다양한 국면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갈구하고 있는 행복 즉, 궁극의 지복(至福)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세상의 힘든 현실로부터 구제해 줄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수단중 하나가 곧, 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자빠이다. 결국 자빠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고 또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한편 자빠는 만뜨라 반복을 통한 영적 교감의 한 방법이기도하다. 만뜨라의 반복을 지속해 나가면 자신의 세계속에 어떠한 울림이 생겨나게 된다. 아울러 그것은 유기체로서의 육신을 정화시키는 동시에 영적 생명력으로 내면을 충만하게 만든다. 자빠는 정신적 혼돈의 문제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깨달음을 얻은 현자들에 따르면 만뜨라는 신에 관한 완벽한 힘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신과의 교감을 위한 최고의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한다.3) 프리티아하라를 유도하는데 사용되고 결국 사마디로 이끄는데 의도되는 요가의 모든 시스템 중에서 자빠 요가는 가장 초기이고 안전하며 어떤 환경에서나 언제나 누구나 다 수행할 수 있다. 자빠라는 단어 자체는 전환한다는 의미이다. 자빠는 의식의 전환을 통한 가장 높은 존재의 자신의 연합을 의미한다.4)
만뜨라의 끊임없는 반복을 가리키는 말이 곧 Japa이다. 그런데 수행자의 의식적인 노력없이 만뜨라가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반복될 때 Japa는 Ajapa(자연발생적) japa가 된다. Japa가 만뜨라의 의도적 반복이라면 Ajapa는 인위적인 노력없이 자발적으로 만뜨라가 흐르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Ajapa japa는 가슴에서 비롯되고 Japa는 입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Ajapa japa는 그 자체로 완전함을 갖춘 sadhana(밀교명상)이며 수행자를 육신 및 환경적 자각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부터 명상의 가장 높은 단계들로 이끌 수 있다. Ajapa japa를 완전한 자각을 바탕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수행해나가면 궁극에 가서는 욕망과 두려움을 비롯해 마음속에 숨겨진 일체의 복잡한 양상들이 정신적으로 표현화된다. 그처럼 정신적 표면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수행자는 기존에 자신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삼스까라(saṁskara, 고통의 근원)와 바사나(vasana, 선천적 성향)들을 이해관계를 벗어난 목격자(witness)의 시각으로 수개월의 기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파악할 수 있게 된다. Ajapa japa는 마음의 모든 응어리를 풀어주게 되며 이것이 대부분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에 있어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있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편, Ajapa japa는 사람의 중뇌(中腦)에 자리잡고 있는 소위 신경계 그물활성핵(recticular activating nucleus)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5)
Ajapa 수행은 힌두(Hindu)경전들 만큼이나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요가에 관한 몇몇 고대 경전을 보면 거기에 수록된 단락과 구절들에서 ‘숨은 so 소리와 함께 들이쉬고 ham 소리와 함께 내쉬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소리가 곧 jiva(개별적 영혼)가 끊임없이 반복하는 Ajapa gayatri의 소리이다. Rishi Valmiki의 스승이었던 Muni Narada는 가르침을 전수함에 있어 좌우역치의 명칭(So' ham이 Haṃsa의 좌우역치임을 의미)의 채택을 기법으로 사용하는 바 이것이 곧 Ajapa 수행법에 해당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자신의 저서에서 ‘전술한 바와 같은 명칭’이 입이 아닌 가슴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해당 명칭이 입으로부터 비롯될 때는 그 자체를 Japa라고 부르며 가슴으로부터 비롯될 때는 Ajapa라고 부른다.
Ajapa 수행은 대단히 중요한 sa̅dhana(밀교명상)의 하나이기도 하며 수행자로 하여금 사마디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기타 모든 요가 수행법의 경우 사마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숨을 통제하고 숨을 중단하고 하는 등의 과정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Ajapa 수행의 경우 그것을 지속하는 상태에서는 숨의 방식을 보통때와 같이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며 사마디에 도달해서도 그러한 숨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다.6)
이렇게 자빠 명상(meditation)은 사람의 의식을 순수한 사고(思考)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이어주는 방법중 하나이다. 구두적 방법이든 정신적 방법이든 만뜨라의 반복은 수행자를 정신 감응적 단계로 끌어 올리며 더 나아가 초월적 단계에까지 이르게 한다.
자빠는 자아실현 곧, 우주적 의식의 확립을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중 하나이며, 분노, 탐욕 등 마음의 때를 없애주며 빛을 가리고 있는 기타의 불순물들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다. 먼지낀 거울을 청소하면 그 거울의 반사능력이 회복되듯이 마음의 불순물을 제거하게 되면 그 마음은 보다 높은 영적 진리를 반영할 수 있는 힘을 되찾게 된다. 자빠의 의미를 느끼고 그 의미에 한점 집중하면서 약간의 암송을 행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속 불순물의 타파는 가능하다. 신념과 헌신, 순수성을 바탕한 자빠명상은 수행자의 능력을 증대시키며 만뜨라를 이끄는 신의 힘과 효능이 그에게 부여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식으로 신이 자신의 의식속으로 게재돼 들어올 때 그 수행자는 깨달음과 지복(至福)을 경험하게 된다.
자빠는 수행자의 마음속에 만뜨라와 연결된 신성(神性)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자빠의 끊임없는 수행은 그같은 신성(神性)을 수행자의 의식의 중심에 자리하게 하여 직접적으로 실현되게 한다. 신성(神性)과 연결된 만뜨라는 그 자체로 신성(神性)과 동일하다. 만뜨라의 의미와 속성에 집중한 상태에서 만뜨라를 반복하게 되면 신성(神性)의 실현은 가속화된다. 그러나 만뜨라의 의미를 인식함이 없이 자빠를 수행할 경우에도 비록 시간이 좀더 소요되기는 하지만 순수한 울림의 힘에 의해 신성의 실현에 다다르게 된다.
자빠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만뜨라에 맞추는 과정은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며 그 과정이 완료되고 나면 명상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명상 상태에서는 만뜨라 반복을 그 통로로 삼아온 내면적 사고의 흐름이 크게 증폭되는데 명상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에 따른 효과는 더욱 뚜렷해진다. 도해적으로 묘사해 보면 ‘마음을 상향 집중할수록 노도와 같은 힘이 머리 맨 위를 통과해 위로 흐르게 되며 이때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연성의 전기를 먹음은 자기(磁氣)의 미세한 비와도 같은 것이 위로부터 흘러 내려와 육신을 흠뻑 적시게 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자빠명상이란 신의 울림에 도달케 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일체의 소리를 아우르는 궁극적 무언(eternal silence)을 체험하게 된다.7)
나. 싸구나(Saguṇa) 만뜨라
싸구나 만뜨라(Saguṇa Mantras)는 신의 이름을 떠올리며 행하는 명상이다. 참된 만뜨라는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공통점이란 모든 만뜨라는 특정한 운율을 갖고 있으며, 자아를 실현한 현인이 후세로 전한 것이며, 소리 구조 내에 역동적인 신성한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싸구나 만뜨라는 만뜨라를 반복할 때, 스승의 외형적인 모습이나 자신을 고양시켜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 아니라, 만뜨라에서 나오는 신성한 형태까지도 형상화 할 수 있도록 해 준다.1)
구체적이고 상세한 특정한 신이나 신성 또는 형상있는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행하는 싸구나 만뜨라를 개괄해 보면 아래와 같다.
∙람 Ram, 진실, 정의, 미덕의 남성적 에너지를 가진 만뜨라로서 세계의 뿌리 소리로 이루어졌다.
∙시타 Sita, 람 만뜨라의 여성적 측면이다. 이 만뜨라는 어머니로서 내려온 쁘라끄리티(Prakṛti) 딸을 상징하며 람과 결합시켜 Sita Ram으로 반복할 수 있다. 이 결합된 만뜨라는 이상적인 결혼, 또는 결합을 의미한다.
∙샴 Sya̅m, 우주적 사랑과 연민의 남성적 상징으로서 모든 감정을 사랑으로 변형시킨다.
∙라다 Radha, 샴의 여성적 측면으로서 성모의 우주적 사랑을 상징한다.
∙옴 나모나라야나야 Oṁ Namo Narayanaya : 조화와 균형의 남성적 측면으로 불행을 당할 때 삶의 조화를 되찾기 위하여 이용한다.
∙옴 아임사라스와티야이 나마 Oṁ Aim Sarasvatyai Namaḥ, 사라스와티 여신 앞에 경배 창조적 에너지와 지혜의 여성적 국면으로 흔히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선호한다.2)
∙하리 옴 Hari Oṁ, 치료의 만뜨라이다. 하리는 비슈누신의 이름이다. 보존하고, 유지하는 힘을 나타낸다. Hari는 없애다의 뜻을 갖고 있다. Oṁ은 창조, 보존, 파괴를 의미하는 힌두교식 삼위일체이다. 신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우주옴의 경지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뜻을 갖고 있다.
∙옴 나마시바야 Oṁ Namaḥ Śivaya, 부정적인 성질을 제거해 주는 정화 에너지로서 금욕적인 성격의 사람이 선호한다. 모든 무지와 환각을 없애버리는 신의 파괴적인 측면에 호소한다.
∙옴 나모 바가바트 바수데바야 Oṁ Namo Bhagavate Vasudevaya, Bhagavat는 숭배할만한 자, 지극히 존귀한 자이고 바슈데바는 Īśvara(자재신)의 현시중 하나로서 최고아이다. 바슈데바와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과 동일시된다. 영혼의 평화와 헌신을 상징한다.
∙옴 타라 Oṁ Tara, 티벳 불교에서 신성한 어머니는 타라로 알려져 있다. 하얀 타라는 붓다의 최고 지혜를 상징하고, 녹색 타라는 자비의 어머니이다. 타라는 별이란 뜻을 갖고 있다. 즉 험한 바다에서 길을 인도해주는 길잡이 별과 같다.
∙라데고빈다 Radhe Govinda, 크리슈나로 인격화된 ‘신성 에너지’와 라다로 인격화된 ‘신성표현체’의 관계와, 그에 따른 감정적이면서도 영적인 탐구를 매력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신성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나타내고 있다.
∙옴 크리쉬나 Oṁ Kṛṣṇa,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화신이다. 모든 감정적 쓰레기를 불태워 버리고 가슴에 순수한 열망을 불어넣고 마음을 침묵시키며 영혼에 평화를 선사하는 헌신의 불길이다.
∙옴 크리쉬나 구루 Oṁ Kṛṣṇa Guru, 스승을 찾을 때 스승에게로 인도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구루는 우리의 무지를 몰아내고 신성한 빛으로 인도해주는 영적인 스승이다.
∙Oṁ Sri Rama Jaya Rama, 진아의 승리를 기원한다. 라마는 진아의식 속에서 기뻐하는 자라는 의미이고, 자야란 만세나 승리를 뜻한다. 내면의 신을 깨닫는데 이용된다.3)
∙마하 므르타윤자야 Maha̅ Mṛtyunjaya, 사고. 재앙. 불치병 예방. 치유. 장수. 불사 기원. 자유를 가져온다. Mokṣa Mantra라고도 한다. 이것은 시바 만뜨라이다.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에너지 부족, 절망감, 슬픔, 질병, 의욕저하, 용기부족, 우유부단 등의 문제를 겪는 이들에게 적당하다.
Oṁ trayambakam Yajamahe
Sugandhim pushṭi vardhanam
Urva-rukam-iva Bandhanan
Mṛtyor Mukṣīya Ma-mṛtat4)
∙가야트리 Ga̅yatrī,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야주르 베다의 만뜨라이다. 베다의 어머니, 우주의 어머니로 불려진다. 에고를 정화하고 까르마를 제거하며 신성한 근원의 빛으로 내적 존재를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 정화작용은 내면에서부터 새롭고 완전히 변화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고통과 재앙과 무지가 제거되고 해탈을 가져온다. 베다 만뜨라중 가장 중요시 되고 있다. 혼란, 의심, 회의주의, 자신감 부족, 방향감각 상실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생명력의 기원이 된다. 기본 형식으로서 6개씩의 네 줄, 즉 24개의 글자를 사용하는 운율을 갖고 있다. ga̅yantaṃtra̅yate, 즉 찬양하는 자를 보호해준다는 뜻이다.
Oṁ Bhu̅r Bhuvaḥ Svaḥ
Tat Savitur Vareṇyaṃ
Bhargo Devasya Dhīmahi
Dhiyo yo naḥ Pracodaya̅t
(우리가 소망하는 그 찬란한 사비뜨리 신
우리는 신의 광휘에 명상합니다.
우리의 지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자)5)
∙옴 스리 두르가야이 나마 Oṁ Śrī durga̅yai namaḥ, 두르가 여신 앞에 경배 ;
두르가(Durga) 여신은 절대자의 모성을 상징한다. 두르가 여신은 신성한 힘을 갖고 있다. 두르가 여신은 그 자체가 힘인 것이다. 그는 보호자이자 은혜를 베푸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것을 지켜 나가는 신이며 선(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경전에서는 브라마, 비슈누, 시바의 의식이 모두 모여 두르가 여신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하한다. 모성이 신성한 우주의 에너지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 만뜨라에 이끌릴 것이다. 두르가 여신은 완벽한 스승이며, 이 여신의 성격 속에 있는 강인함과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옴 스리 마하 가나파타예 나마 Oṁ Śrī maha̅gaṇapataye namaḥ, 위대한 가네샤 신 앞에 경배 ;
가네샤(Ganeśa)는 코끼리 얼굴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신으로 힘과 강인한 의자, 지혜, 완벽한 감각의 통제를 상징한다. 가네샤 신이 갖고 있는 우주의 에너지가 발현되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을 없애고 성공적으로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가네샤 신은 모든 것의 시작을 상징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만뜨라를 외우면 올바른 마음가짐에 임하게 되며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다.
∙옴 스리 마하 락쉬미아이나마 Oṁ Śrī maha̅lakṣmyai namaḥ, 위대한 락쉬미 여신 앞에 경배 ;
락쉬미(Lakṣmi) 여신은 아낌없이 주는 신이다. 비슈누 신의 반려자로, 우주를 지키는 신이다. 락쉬미 여신은 부와 번영을 상징하기 때문에 팔을 자애롭게 벌리고 연꽃잎 위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진다.
락쉬미 여신은 물질적인 부와 정신적인 풍요를 모두 가져다 준다. 또한 여신은 모든 형태의 자애로움, 연민, 선을 상징하며 우주의 뛰어남과 무한함, 절대적인 영광을 상징한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려는 본성을 갖고 있으며 모든 종류의 에너지, 돈, 지식, 사랑 등을 나누어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당하다.
∙옴 스리 하누마테 나마 Oṁ Śrī hanu̅mate namaḥ, 은총을 받는 하누만 신에게 경배 ;
하누만은 완전한 헌신의 상징이다. 이 신은 라마신의 추종자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이타적인 추종자이다.
하누만 신은 전적으로 헌신하고 완전히 복종하기 때문에 놀라운 힘을 얻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위대한 에너지의 원천 프라나를 주재하며 치유에도 관여한다. 하누만 신의 만뜨라는 부정적인 것과 나쁜 영향력을 방어할 수 있는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하레 라마 하레 라마 라마 라마 하레 하레 하레 크리슈나 하레 크리슈나 크리슈나 크리슈나 하레 하레 Hare ra̅ma hare ra̅ma ra̅ma ra̅ma hare hare Hare kṛṣṇa hare kṛṣṇa kṛṣṇa hare hare, 나의 위대한 라마 신이시여! 나의 위대한 크리슈나 신이시여! ;
마하 만뜨라, 혹은 위대한 만뜨라라고 하는 이 만뜨라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특히 적절하다. 이 만뜨라는 라마 신과 크리슈나 신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이 만뜨라는 두 신의 에너지를 받아 우주의 에너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6)
∙우주의 평화를 위한
옴 샨티 샨티 (Oṁ śanti śanti).
∙요가 수행자를 위한
옴 요가 이쉬바라 (Oṁ Yoga Īśvara)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옴 사싵 아난드 (Oṁ Sat Cit Ānanda).
∙깨달음을 위한 만뜨라
옴 싣다 차리야 (Oṁ Sidha Charya).
∙모든 만물을 행복하게 하소서
옴 사르브 바반투 수키나 (Oṁ Sarve Bhavantu Sukhiḥ)
∙모든 만물을 평화롭게 하소서
옴 사르브 산트 니라마야 (Oṁ Sarve Sant niramaya)7) 등(等)이
이 싸구나(Saguṇa) 만뜨라의 범주에 속한다.
다. 니르구나(Nirguṇa) 만뜨라 - 함사 만뜨라
특정한 대상이 없는, 명상의 대상이 속성이 없거나 또는 명상하는 사람이 자신을 절대와 동일시하여 자신의 본성(참나)을 밝히는 만뜨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질을 갖고 있으며 모두가 그 특성에 맞는 신성한 존재에 이끌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우주란 다양한 에너지의 기운을 갖고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근원은 단일점이라고 생각한다.
니르구나 만뜨라(Nirguṇa Mantra)에는 각 특성에 맞는 신성한 존재를 제시하지 않으며, 최상의 의식 상태라고 하는 추상적인 본질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만뜨라이다. 모든 존재의 저변에 깔려 있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순수한 의식을 동일시 하기 위해서 니르구나 만뜨라를 사용한다.8)
∙옴 Oṁ ; 옴은 절대적인 의식을 상징하는 신성한 음절로 모든 만뜨라중에서 가장 위대한 만뜨라이다. 옴에는 모든 만뜨라가 포함되어 있으며, 우주는 옴에서 시작되어 옴에서 휴식을 취하고 옴으로 사라진다. 옴은 ‘아움(Aum)’이라고 쓰여지기도 한다. 산스크리트어에 속하는 알파벳의 모든 문자는 옴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언어와 단어가 이 옴이라고 하는 진언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우주 자체에서 생성되는 에너지의 파장 또한 이 진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9) 이러한 연유로 이 ‘옴’만뜨라는 다음의 3절에서 별도로 논의코자 한다.
∙아함 브라마 아스미, Aham Brahma asmi : ‘나는 브라만(신)이다.’ 마음의 이원성을 극복하는 치유가 일어난다.
∙타뜨 뜨밤 아씨, Tat Tvam asi : ‘네가 그것이다.’ 객관과 주관, 브라흐만과 아뜨만, 대아와 소아는 각각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브라만이 아뜨만이다. 우리의 가장 내면에 있는 개체로서의 아뜨만이 전체 자연과 모든 현상들의 내적 존재인 브라흐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10)
∙소함, So ʹham 나는 그것이다. ; 이 만뜨라를 반복하면 어떤 형태나 특징, 과거, 현재, 미래 등 모든 것을 배제한 순수한 존재로서의 자아에 집중을 할 수 있다. 몸과 마음, 프라나는 도구일 뿐이며 의식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1)
이것은 호흡의 자연스러운 소리란 점에서 모든 중생의 생명력이 만뜨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생명의 리듬이다. 소함에 따라 호흡을 함으로써 올바른 호흡패턴을 재확립한다면 인체의 자연적인 조화를 회복시킬 수 있다.
Saḥ = That, Aham = I, Saḥ + Aham = So 'ham.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주적 만뜨라가 된다.12)
ꡔ요가 쭈다마니 우파니샤드ꡕ에 의하면
이 두 생기는 위와 아래에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요가를 안 사람이다.
‘함(haṁ)’이라는 소리에 의해서
몸 밖으로 나가고, ‘사(sa)’라는 소리에 의해서 다시 몸 안으로 들어온다.(31)
‘함사(haṁsa)’라고 부르는
이 진언(mantra)을
명아가 항상 낮은 소리로 염창하라.
낮과 밤에 21,600회 행하라.(32)
고 하고 있다.
이것은 반대되는 두 생기가 서로 견제되지 않고, 들어오는 생기와 나가는 생기가 각각 별도로 행해지지 않고 만나서 하나가 되도록 하면, 그것이 숨의 출입의 결합이다. 이때에는 나가고 들어오는 숨이 서로 조화되어 마치 들고남이 없는 것 같이 된다. 이것이 쿰바카의 상태다. 이것을 ‘함사’라고 하는 진언으로 표시했다. ‘함사’는 흔히 백조(白鳥)를 가리키기도 하고 ‘함(나)’과 ‘사(너)’의 결합이요, 하나가 된 원리를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나가는 숨인 아파나를 ‘함’으로 나타내서 남성 원리인 시바 신이라고 보고, 들어오는 숨인 프라나를 여성 원리인 샤크티로 하여 ‘사’ 소리로 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함사’는 남성 원리인 시바와 여성 원리인 샤크티가 하나가 된 것을 상징하는 진언을 염송하면 요가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다.13) 우리의 생명은 숨의 출입을 통해서 유지되지만, 또한 숨의 출입에 의해서 소멸한다. 그러므로 들어오는 숨인 생(生)과 나가는 숨인 사(死)가 하나가 된 세계, 곧 생과 사가 서로 대립을 일으키지 않고 하나가 된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세계는 바로 숨의 출입의 결합에 달려 있다. 호흡의 출입이 있으면서 없는 상태, 이것이 결합이고 조화인 쿰바카이기 때문에, 쿰바카가 호흡에서 자연히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면 이것이 생사의 해탈이다. 그래서 요가행자는 밤낮으로 ‘함사’라는 진언을 21,600회 염송하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횟수를 염송하면 드디어는 항상 무의식 속에서 ‘함사’ 그대로 된다. 이것이 생기를 조절하는 요가 호흡의 극치에 이른다는 것이다.14)
역시 ꡔ요가 쭈다마니 우파니샤드ꡕ에 의하면
각성된 두 눈의 중간에 ‘함사(haṃsa)’는 빛난다.
‘사(sa)’자는 케차리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트밤(tvaṁ)이라는 말임에 틀림없다(⋅82)
이를 다시한번 정리해 보면, 각성되고 깨어 있는 두 눈의 중간이란 미간의 차크라다. 이 차크라는 지혜의 샘물과 같은 곳이다. 여기에 ‘함사’가 빛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나(haṁ)와 너(sa)의 일체인 근본 원리를 상징하기도 하고, 나가는 숨과 들어오는 숨이 하나된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나가는 숨은 남성 원리요, 들어오는 숨은 여성원리다. 그러므로 나가고 들어오는 숨이 하나되어 숨이 그친 상태는 ‘함사’가 된다. 미간에 정신이 집중되어 그곳에 생기가 응집되었을 때에 숨도 닫히고 있으며, 그곳에서 지혜의 빛이 빛난다. ‘함’자인 나가는 숨과 더불어 생기가 위쪽으로 올라가서 미간에 도달하면, ‘함’과 ‘사’가 만난다. 그래서 ‘함’은 케차리, 곧 허공으로 가서 ‘사’와 하나가 된다. 이때에 개아인 ‘사’가 최고아인 ‘함’과 합일되는 것이니, 이것이 범아일여의 ‘그것’(tatvaṁ)과 ‘나’는 하나인 것이다. 그때에 ‘타트에캄(tat ekavṁ ; 그 유일한 것)’을 보고 ‘나는 범이다(aham brahma̅smi)’라고 단언하고, ‘너는 그것이다(tat tvaṁasi)’라고 하게 된다.15)
ꡔ브라흐마비드야 우빠니샤드ꡕ16)에서는 ‘함사’에 대해 잘 나타나고 있는바,
「21∼25」에서는 함사지식에 의한 최고 자재신의 성취와
「26∼31」에서는 함사의 지혜에 의한 스승의 해탈의 방법,
「53∼56」에서는 옴 함사를 조사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면전의 희생 행위,
「57∼59」에서는 함사 요가를 획득한 지혜로부터 동일화의 성취,
「60∼62」에서는 함사의 성취장소,
「63∼65」에서는 함사 만뜨라를 기억하는 삼매의 수행실천,
「66∼68」에서는 함사 아싸나의 모습 없음,
「69∼80」에서는 함사 요가 수행 순서,
「81∼110」에서는 함사 요가 수행자가 추구해야 할 아뜨만의 본래 모습을 설하고 있다.
어니스트 우드에 의하면
ꡔ천도갸우파니샤드(Cha̅ndogya Upaniṣad)ꡕ에서 스승이 ‘너는 그것이다(Thou art That, Tat tvam asi)’라고 제자에게 가르치고 나면, 그 제자는 자신이 ‘이것(This)’이 아닌 ‘저것(That)’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자연스럽게 ‘나는 그것이다(So ham)’라고 말하게 된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보면 우선 saḥ는 ‘그이(He)’나 ‘그것(That)’을 뜻하고 다음으로 aham은 ‘나는 ― 이다(I am)’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의 유포니현상에 의해 saḥ의 aḥ는 o가 되고 다음에 aham의 모음 a는 생략된다. 완전한 요가 수행자의 경우에는 모든 숨과 박동이 신(Unity)을 표명하고 선언한다. 이것은 말을 거꾸로 해도 똑같다. 그러면 한사(hansa)라는 발음이 되는데, 이는 백조를 의미한다. 백조는 종교적 상징이다. ― 시간의 새. 그것은 비행 중에 있고, 브라흐만(Brahman, Śabdabrah- man)을 표현한다. 숨은 사실상 마음과 신체, 모두에 있어서의 시간과 과정이다. 우리는 ‘비행하며’ 산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완성에 이른 요가 수행자들을 한사(hansa, 백조)와 파라마한사(paramahaṃsa, 최상의 백조)라고 칭한다.17)
함사(haṃsa)는 아뜨만에 대한 지혜로 모든 다양함을 없애는 이로 개체 아뜨만 혹은 지고의 아뜨만을 말하는 것이다. 새들 중에 백조의 이름도 ‘함사’인데 백조는 물 밑에 다니는 고기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며, 물과 우유를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백조의 이러한 능력을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을 알고 무지와 지혜를 구분할 수 있는 자에 빗댄 표현이다.18)
이 새는 우유와 물을 섞어 놓아도 그 가운데 우유는 마시고 물은 남긴다. 비슷한 방법으로 요가 수행자도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경험의 혼합물 속에서 영혼에 이로운 것을 끌어낼 수 있다.19)
라. 비자(bīja)만뜨라
만뜨라 중에는 신의 특정 형태에 집중을 하기 보다 소리라는 신비하고도 순수한 힘을 통해 절대적 존재와 자신을 연결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을 ‘비자 만뜨라’, 혹은 ‘씨앗 만뜨라’라고 부른다. 이 만뜨라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비자 만뜨라는 아스트랄체의 신경관인 나디에 직접 작용을 하는 것이다. 척추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 차크라를 부드럽게 마사지를 하듯이 진동시켜 막혀 있는 것을 없애고, 쿤달리니 에너지(고귀한 힘)가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절대자가 다양한 신의 모습을 하고 있듯이, 하나의 절대적인 만뜨라인 옴에도 다양한 비자 만뜨라의 방법이 있는 것이다.
비자 만뜨라의 위력은 놀라우리만큼 대단하기 때문에, 초보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정화된 상태에 있으며, 적절한 의식을 치른 사람만이 비자 만뜨라를 암송할 수 있다. 자질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자 만뜨라를 암송하면 정신 상태에 오히려 커다란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한 단계 나아간 명상은 반드시 스승의 지도 아래 수행해야 한다.1) 비자 만뜨라에는 성스러운 에너지가 듬뿍 들어 있어서, 초심자의 무의식에 쌓여있는 부정적인 잠재인상(Saṃska̅ra)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힘을 계발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마치 그것은 커다란 나무로 자라날 ‘씨앗’과 같아서 수행자를 향상시키는데 직접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자 만뜨라는 장문(長文)의 만뜨라에 그 기조음으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요소가 되고 있다. 비자 만뜨라를 반복적으로 암송하면 몸과 마음에 일정한 패턴의 에너지 흐름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의식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는다.2) ‘∼음(M)’ 소리를 제외한 기타 모든 글자에서는 소위 다섯가지 Bhu̅ta(공 空, 풍 風, 화 火, 수 水, 지 地)중 어느 한 가지나 어떤 감지 가능한 실체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만뜨라를 전수하고자 하는 스승은 자신의 제자를 위해 만뜨라를 선택할 때 그 명칭을 이루는 글자들에 Bhu̅ta가 과도하게 깃들어 있는지 아니면 결여돼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한다. Bhu̅ta의 존재가 과도한 경우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글자는 날숨을 통해 소리를 내는 반면 Bhu̅ta의 존재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는 들숨을 통해 그 소리를 낸다. 비자의 경우 그 종결을 위해 ‘∼음(M)’ 소리를 선택하는데 엄밀히 보아 그것이 만뜨라의 근원으로서 단일 특성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Bhu̅ta 들이 균형을 이루며 그 속에 깃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3)
종자(씨앗) 만뜨라는 “옴” 또는 절대자의 양상들을 갖는 만뜨라이다. 50개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신비한 소리의 만뜨라이다. 비자만뜨라는 다양한 신들이 갖추고 있는 양태로서 모든 신성에 알맞은 bīja가 있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효과적인 비자만뜨라는 “옴”인데 산스크리트어의 50개의 근원적인 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비자만뜨라는 한 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개 이상의 음절로 합성될 경우도 있다. 각각의 비자만뜨라는 표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나타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신비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도 그것에 알맞은 bīja를 갖추고 있다. 또한 에너지 중추센터인 각 차크라(cakra)와도 상호연관되어 있다. 소리의 진동을 위한 공계, 공기, 불, 물 그리고 흙들은 각각 다음과 같은 bīja를 갖고 있다.4)
Lam - 지 地 - Mu̅la̅dha̅ra Cakra
Vam - 수 水 - Sva̅dhiṣṭha̅na Cakra
Ram - 화 火 - Maṇipu̅ra Cakra
Yam - 풍 風 - Ana̅hata Cakra
Ham - 공 空 - Viśuddhi Cakra
Oṁ - Ajňa Cakra
Aum - Sahasra̅ra Cakra5)
만뜨라의 무한한 효능은 만뜨라가 표상하는 그 대상 자체이든가 아니면 적어도 올바르게 음송하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각각의 신과 신성도(神聖度)에 해당하는 성음(bīja mantra)이 있는데 이것은 각 신의 종자, 지주, 즉 해당신의 존재 자체이다. 이 종자 만뜨라를 규칙에 맞게 음송함으로써 그것의 존재론적 본질을 전유하며 구체적, 직접적으로 그 신에 동화한다.6) 그 비자 만뜨라는 다음과 같다.
∙Hauṃ - Sada̅śiva bīja
∙Duṃ - Raksa bīja
∙Krīṃ - Yoga bīja
∙Hrīṃ - Śakti bīja
∙Śrīṃ - Rama bīja
∙Aiṃ - Guru bīja
∙Klīṃ - Ka̅ma bīja
∙Hu̅ṃ - Śiva bīja
∙Gaṃ - Gaṃ bīja
∙Glauṃ - Sukha bīja
∙Kṣrauṃ - Nṛsiṃha bīja
∙Strīṃ - Śanti bīja7)
전통적인 요가 수행자에게 세계 혹은 자신의 육체는 최고이고 최고의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는 각기 다른 신들과 연계되어 다양한 상태와 흐름이 있다. 그래서 신성한 몸은 수많은 신들이 거주하는 사원이라고 한다.8) 차크라에선 에너지의 파동 패턴들이 강력하게 활기를 띠는데 그 중심에서는 특정한 소리가 주(主)를 이루면서 다른 소리들이 덧붙여진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쿤달리니 요가에선 차크라가 그 중심과 주변 꽃잎들마다 특정한 글자가 상응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 특정한 글자가 비자 만뜨라이다.9)
각 차크라에 해당되는 모음 소리와 비자만뜨라 <표 1>과 같다.10)
<표 1> 비자 만뜨라와 관련된 차크라
차크라
모음소리
비자 만뜨라
자연
물라다라
'oḥ'
Lam
여명,
일몰,
신선한 대지
지(地)
스와디스타나
short 'o'
Vam
달빛,
맑은 물
수(水)
마니푸라
long 'o'
Ram
햇빛,
꽃밭,
무르익은
곡식 들판,
해바라기
화(火)
아나하타
'ah'
Yam
잘 보존된 자연,
만개한 꽃
연분홍색 하늘
풍(風)
비슈다
'eh'
Ham
파란하늘,
물에 비친 하늘,
부드러운 파도
공(空)
아즈나
'ee'
Oṁ
밤하늘
마음
사하스라라
'm'
Aum
산꼭대기
3. 옴 만뜨라
가. 옴의 의의와 문헌적 고찰
ꡔ요가 쭈다마니 우빠니샤드(Yoga cu̅ḍamany Upaniṣad)ꡕ에 의하면 “옴은 항상 하는 것, 청정한 것, 깨달음, 변함이 없음이며 움직이지 않는 존재이며, 밝혀지지 않는 존재이며,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로써 유일하며, 네번째 초월이며, 과거, 현재, 미래이며 변화되면서도 단절되지 않은 것이며 지고의 존재이며 브라흐마이다. 그로부터 스스로 빛나는 존재인 지고의 힘이 생겨나고, 영혼으로부터 허공이 생겨나고, 허공에서 바람이, 바람에서 불이, 불에서 물이, 물에서 흙이 생겨났다. 신비한 힘을 갖는 신성한 음을 만뜨라라고 부르며 만뜨라 가운데서도 최고의 실재를 가르키는 옴 만뜨라는 특히 중시되어 왔다. 이러한 만뜨라인 옴 이것은 불멸이요 이 모든 것은 그것을 가까이 드러내는 것이요, 과거요, 현재요, 미래이며, 이처럼 모든 것이 바로 옴 자이니, 그 무엇이든 삼시를 벗어난 다른 것 또한 바로 옴자이다. 옴은 지고의 존재인 빛이기 때문에 입으로 늘 외우고 몸으로 마음으로 염송해야 한다. 옴이란 소리로 상징되는 세계의 모든 것이며 세계의 창조주인 브라흐마가 옴이며 세계의 모든 존재의 실상이 옴이다. 브라흐마나 아뜨만의 상징인 옴은 염송함으로써 그것 자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11)라고 하고 있다. 옴은 예부터 인도에서는 성스러운 뜻과 신비한 힘을 가진 말이었다. 이것은 음파 진동을 이용한 과학으로써, 어느 일정한 음향이나 기도의 반복이 인간을 신과 결합시킬 수 있는 상태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옴 만뜨라는 태고의 소리이며 우주의 소리이다. 만뜨라 요가에 따르면 모든 만뜨라는 옴안에 숨겨져 있으며 최고의 만뜨라로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고 우주의 추상적인 의미로써 사용된다. 왜냐하면 옴은 어떠한 신이나 신성에 대응하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공(space)이라고 하는 것은 에테르로서 산스크리트어로는 akaśa tattva라 한다. 이 에테르체, 공의 요소에서 나타나는 가장 정묘한 최초의 바이브레이션이 옴이라고 하는 근원의 바이브레이션이다. 옴은 바로 이 현상계를 창조하는 바로 신 그 자체인 셈이다. 옴이 원래는 A.U.M으로써 첫 번째 글자인 A, 즉 ꡔ아–ꡕ는 소리를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동시에 호흡의 시작, 흡기를 의미하며 또한 브라마(창조자)를 뜻한다. 그 다음 나오는 U, ꡔ우ꡕ음은 오를 소리내다가 미끄러지듯 짧게 발음하는데 이 소리의 심장부에 해당하며 비슈누(보존자)를 뜻한다. 마지막인 음(M)은 한 주기가 사라지는 부분이며 삶, 호흡, 소리가 아우러진 전체 구조가 해체되는 단계이며 시바(파괴자)를 의미한다. 옴은 모든 소리의 합이면서 근원이다. 또한 모든 만뜨라의 첫 번째가 되지만 작은 의미로는 만뜨라라고 할 수가 없다. 신이 창조를 시작할 때의 소리가 옴이다.12) 옴은 천계문학의 시귀절에 대한 응답의 말이다. 옴은 신(神)에 속하고 파타는 인간에 속하는 말이된다. 옴이라고 하는 음은 수문제(隨聞祭)를 거행하면서 가영관(歌詠官)이 사마베다를 고창(高唱)할 때에 읊어지는 것이다. 옴이 만물의 정수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처음에 읊어진다. 옴을 명상하는 것은 자기의 정령과 동시에 자연계의 정령, 태양의 정령을 명상하는 것이 된다.13) 성음의 가치는 일찍이 베다 시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ꡔ야주르 베다(Yajur-Veda)ꡕ의 시기부터 최고의 만뜨라 옴은 브라만이나 베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신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절대적인 위세를 가졌다. 파탄잘리의 주장에 따르면 옴은 자재신인 이슈바라(Iśvara)를 뜻하며 요가행자가 옴을 반복하면 내관력이 생겨 질병, 무기력, 태만, 회의, 망령된 견해, 애착 방일(放逸)과 같은 요가수행의 장애를 없앨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요가에서 참된 자아(Puruṣa)를 상징하는 성음 옴을 가장 중요시한다.
옴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ꡔ찬도갸 우빠니샤드ꡕ (1-1-7)에서는 「옴은 응낙(應諾)이고 응낙은 성공이며 사람이 무엇인가를 허락하고 뜻을 같이하며 결합할 때 응(應)이라고 대답하는 소리와 같다는 것이며 소원을 이룬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같은 우빠니샤드(1-1-9)에서는 소리의 힘은 만물의 정수이다.」라고 하였다.
ꡔ가따 우빠니샤드ꡕ (1-2-15와 16)에 의하면 「일체의 경전들이 가르치는 것, 일체의 고행으로 깨달은 것, 신을 추구하는 목적이 옴이다. 이것은 범(Brahman : 우주의식, 초월의식, 절대자, 진리)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ꡔ만두갸 우빠니샤드ꡕ (1과 2)에 의하면 옴이라는 소리는 만유(萬有)이고 범이며 과거, 현재, 미래를 합친 것을 뜻하고, 그것을 넘어선 것까지도 의미한다. 진아(Ātman)는 범이고 진아는 4족(Pada)이 있다」고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Mircer Eliade의 견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옴은 완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완전(Brahman, Ātman)은 4개의 지체를 가진다. 네 요소는 신비음절 즉 A⋅U⋅M이라는 글자와 이것의 종합인 성음 Oṁ에서도 식별될 수 있다. 이러한 네 개의 분할은 상동관계를 보여준다. 외계를 인식하는 의식의 깨어있는 상태 속에 있는 것이 첫 번째 요소로 바이슈바나라(Vasivanara,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라고 칭한다. A라는 소리가 이것을 상징한다. 내적으로 인식하는, 즉 꿈속에 있는 상태가 타이쟈사(Taijasa, 빛나는 것)라 불리는 두 번째 요소이다. 이것이 나타내는 소리가 U이다. 깊은 잠속에 있는 상태가 프라즈냐(prajna)로써 세 번째 요소이며, M에 해당한다. 네 번째 상태는 안과 밖, 그 어느 쪽도 인식하지 않는가 하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이다. 순수자아가 바로 이것으로, 이 네 번째 상태를 상징하는 소리가 옴이다.14)
ꡔ요가쑤뜨라ꡕ에 의하면 옴은 모든 소리를 합한 것이므로 어느 한 부분의 소리일 수 없으며 탄생, 유지, 변화, 소멸, 본질의 차원 변환적 전변의 일체를 말한 것이므로 어느 한 단계의 표현일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자재신]을 상징하는 거룩한 말은 옴이다.(1.27:)
[요가 행자는] 그 성스러운 말을 반복하여 외어 그 소리가 나타내는 [자재신을] 생각[하라.] (1.28:)
ꡔ프라시나 우빠니샤드ꡕ에 의하면 Oṁ을 한 음절로 고창하면 지계(地界)와 결합하고 ’오-옴’과 같이 두 음절로 찬송하면 공계(空界)와 결합하며 ‘아-우-움’의 세 음절로 찬송하면 천계(天界)에 이른다고 가르치고 있다. 옴은 모든 소리를 합친, 전체를 나타내는 우주의 소리이고 요가 수행에서나 이론에서 가장 높은 소리를 점하고 있는 소리의 우상이다.
ꡔ마하뜨라야니 우빠니샤드ꡕ에서는 청각적인 명상에 중요성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너 절들이 옴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옴에 대한 명상은 해탈로 인도하며(4.22), 브라만과 불멸의 상을 가져온다. 옴은 비쉬뉘(4.23)요, 모든 신들이요, 모든 호흡이요, 모든 희생제(4.5)들이다. 옴이라는 신비한 옴에 관한 명상의 우월성에 대한 설명은 우파니샤드에 공통된 종합과 제파 통합주의의 정신에서 나온 것일 뿐만 아니라 인도가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청각적인 명상기법의 실제적인 성공에서 나온 것이다.
ꡔ디야나빈두 우빠니샤드ꡕ에서는 Oṁ에 대한 조상적(彫像的) 묘사를 한다. 각각 글자 (A.U.M)는 신비한 색을 가지며 각각 하나의 신에 상응한다. 프라나야마 역시 베다 신전의 3주신과 일치된다. 브라만신은 흡(吸)에 해당하고, 비쉬누신은 숨(息)의 휴지(休止)에, 루드라신은 호(呼)에 해당된다. 그러나 요가행자는 옴에 관한 명상을 통해서 프라나야마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15)
ꡔ디야나빈두 우빠니샤드ꡕ16)에 따르면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은 옴이라는 한 글자를 브라흐마로 묵상해야 한다. 쁘리트비, 아그니 그리고 리그베다, 부흐(Bhuḥ)라는 조상(調像) 옴의 첫째 부분 ‘A’음에 도달될 때 몰입된다.(9:)
안타릭샤, 아유르—베다, 바유, 땅과 하늘의 중간 그리고 비슈누, 자나르다나는 두 번째 부분 ‘U’음에 도달될 때 함께 (그 속으로) 몰입된다.(10:)
다유르, 태양, 싸마—베다, 하늘(Suvar), 마헤시와라 등은, 옴의 세 번째 부분 ‘M’이 몰입될 때 모두 함께(그 속으로) 몰입된다.(11:)
글자 ‘A’는 노란색이고 라조구나이다. ‘U’음절은 흰색이고 싸뜨와 구나이다. 음절 ‘M’은 검은색이고 따모 구나이다.(12:)
(옴은) 여덟 가지(Aṅga), 네 부분(Pada), 삼 세(Stha̅na), 다섯 개의 요소(Devata̅)를 갖고 있다. 옴 소리를 알지 못하는 바라문은 그(바라문)가 될 수 없다. 옴의 소리는 활이다. 아뜨만은 화살이며 브라흐만은 과녁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13-14:)
수행자는 과녁에 목표를 둔 화살처럼 과녁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가장 높은 단계인 과녁과 하나가 되었을 때 모든 까르마는 존재하지 않는다.(15:)
그것의 근원으로 옴 음을 갖고, 숨결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리도 그것의 근원으로 옴 소리를 갖으며 움직이거나 고정된 모든 세 개의 세상(삼세)은 그것 자체의 근원으로 옴 소리를 갖는다.(16:)
짧게 소리 내는 옴은 모든 죄를 사라지게 하며 길게 소리 내는 옴은 멸망이 없는 번영의 수혜자이다. 아르다 마뜨라(ardha—ma̅tra̅)와 결합하는 신성한 음절 옴은 해탈을 주는 것이다.(17:)
라고 옴에 대해 기술되고 있다.
ꡔ브라흐마비드야 우빠니샤드ꡕ에서는 게송 3에서 9까지는 옴의 세 음절을 세 신, 세 세상, 세 베다, 세 불에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먼저 리그베다는 A음에, 야주르베다는 U음에, 싸마베다는 M음에 해당된다. 또 가르하빠뜨야, 땅과 브라흐마는 A음에, 허공과 불—닥시나, 비쉬누는 U음에, 하늘과 불—아하와니야, 자재신(이쉬와라), 최상의 신은 M음에 해당된다. 그리고 태양은 A음에 달은 U음에 연기 없는 번개, 불은 M음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음절은 그와 같이 알려져야 할 것으로 성스러운 소리 옴 음절 위에 놓여져 있다.17) 이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 2> 옴 요소의 구별18)
세 음절
세 신
세 베다
세 불
세 세계
형태
1
A
브라흐마
리그베다
가르하빠드야
땅
라. 옴 만뜨라의 수행
ꡔ다르샤나 우빠니샤드(Darśana Upaniṣad)ꡕ에 의하면 옴 만뜨라 수행에 대해
이다를 통해 공기(기)를 복부로 들이마실 때
고요히 16을 세는 동안
그곳에서 음절 A에 대해 명상하라
내부를 숨을 참고 있을 때
64를 세는 동안
음절 U에 대해 기억하면서 신비한 음절을 암송해야 한다.
할 수 있을 때, 기도 다음에 그리고 숨을 내쉴 때 음절 M을 명상하라
삥갈라를 통해 그곳에서 32를 셀 동안 하라.
이것이 호흡조절이며, 그로부터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4.6:)
다시 삥갈라 기도를 통해 그와 같이 숨을 들이 쉬고 16을 세는 동안 여기서도 하나의 제일의 마음으로 음절 A를 기억해야 한다. 아는 이는 신성한 음절을 암송하는 힘을 지니고 들숨을 유지해야 한다. 음절 U를 64를 셀 동안 명상하면서 음절 M를 기억하고 후에 이다의 기도로 참아야 한다.
지성을 지닌 이는 이와 같이 다시 이다의 기도를 통해 숨을 내쉬며 이와 같이 항상 호흡조절을 수행하면서 성자의 최고신이여. 이와 같이 수행하면서 항상 6개월 동안 지식을 지닌 이가 될 것이다.1)
ꡔ게란다 상히타ꡕ에서는 옴 만뜨라의 수행방법으로
먼저 염송 호흡법을 설명하겠다. 길상좌로 동쪽이나 북쪽을 향해 앉아서 피처럼 빨간색을 띤 라자스 속성의 창조자 범신을 종자 ‘아(A)’ 음으로 명상하라.(5.48:)
왼쪽 코로 숨을 마시면서 ‘아(A)’ 음을 16번 염송한다. 들이마시는 호흡을 마치고 멈추기 시작할 때 복부 반다를 한다.(5.49:)
멈춘 상태에서 검은색을 띤 삿트바 성질의 유지자 비슈누 신을 ‘우(U)’ 음으로 64번 염송하며 명상한다.(5.50:)
다음은 ‘마(M)’음을 종자로 하고 하얀색을 띤 타마스 성질의 파괴자 쉬바신을 ‘마(M)’ 음으로 32번 염송하면서 규정에 따라 숨을 오른코로 내쉰다.(5.51:)2)
스와미 시바난다 라다(Swami Sivananda Radha)식의 옴 만뜨라 영송 기법으로는 ‘아’를 영송할 땐 그 소리가 배꼽, 즉 태양총 부위에서 울려나오게 하라. 동시에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하는 연꽃을 마음 속에 그리는 것이다. 그 각각의 연꽃잎에서 빛 에너지의 파동을 시각화한다. 그 빛의 색깔은 선홍빛에서 회색빛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채롭게 변화한다. 그 각각의 빛의 물결이 마치 제 자신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움직이게 하라. 그것들은 각각의 변화하는 기분을 상징한다. 연꽃잎의 끝이 희미한 핑크빛을 띠더니 연꽃 전체가 점차 하얀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하라. 그것은 무지의 비구름을 몰아내는 통찰력과 이해, 사랑의 신성한 빛이다. 그 빛이 퍼져나가면서 옆의 연꽃, 즉 심장 센타에 초점이 맞춰진다. ‘우’를 영송하면서 그 소리가 가슴판에서 울려나오게 하라. 그 두 번째 연꽃잎은 중심이 빨갛고, 중간은 핑크빛이며, 끝이 새하얗다. 영송을 하는 동안, 수행을 통해 감정이 얼마나 순화될지 생각해라. 입을 다문 채 마지막 소리인 ‘음’을 영송하는 동안 몸 안의 수많은 세포들의 반응과 진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송하는 동안, 소리의 고유한 힘과 현시력에 주의깊게 귀기울인 채 관상하라. 그러면 내면의 오른쪽 귀로 비육체적이며 우주적인 소리인 아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음(M)’은 지고자의 소리인 신성한 음절이 울려퍼지는 동안, 그것에 대한 몸의 반응과 자기 포기를 상징한다.3)
다음은 스와미 나란자나난다 사라스와띠(Swami Niranjanananda Saraswati)식의 옴만뜨라 영송기법이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명상을 위한 자세로 앉는다.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눈을 감는다. 육신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그 육신에 내재된 일체의 긴장을 풀어낸다. 그리고 육신이 정적이고 평온한 상태로 되어가고 있음을 느껴본다. 다음으로는 육신을 내면적 관점에서 자각해 보도록 한다. 즉 자각의 초점을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간을 느끼는 일에 맞추어 본다. 이렇게 했을 때 자신의 내면에 광대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음을 자각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광대한 공간 즉, 내면의 정적인 공간속에 무언의 심오함이 자리하고 있음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전술한 바의 광대한 공간내에 하나의 공기 기둥과도 같이 존재한다고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기둥이 당신 자신의 지각이 미치는 만큼 상하로 멀리 뻗쳐져 있다고 상상하고 공간속 그 뻗침의 양상에 대해 주목해 보라. 더불어 그 기둥속에서 숨의 출입 즉, 숨의 들이쉼과 내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애써 보라. 숨을 들이쉴 때 그 숨은 상기한 기둥의 맨 위까지 올라가고 숨을 내쉴 때는 그 숨은 기둥을 통과해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상정한 후 완전한 자각 상태임을 전제 한 채 그 같은 과정을 몇 차례 수행해보라. 그리고 이 때는 숨의 들이쉼과 내쉼이 공기 기둥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간과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는
옴 만뜨라 수행을 5단계로 구분해 놓고 있는데
1단계는 옴 만뜨라의 강도 높은 반복
2단계는 옴만뜨라를 빠른 속도로 암송
3단계는 중간속도로 옴 암송
4단계는 음을 길게한 옴 암송
5단계는 옴의 정신적인 암송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단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 양상들 일체를 동시에 자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4)
또한 김광백은 “옴 만뜨라 행법을 ꡔ프라시나⋅우빠니샤드(Praśna—Upaniṣad)ꡕ에 의하면 한마디의 소리로 “옴 ―”이라고 1음량으로 찬송하면, 지상계(地上界)와 결합되고 “오—음—”이라고 찬송하여 2음량으로 하면 중공계(中空界)에 이르며, “아(A)—우(U)—음(M)—”으로 찬송하여 3음량으로 행하면 천상계(범계)에 이른다.
건강을 위한 생체리듬(진동)을 강화시킬 목적일 때는 1음량이 좋고, 심신을 고상하게 순화시키려면 2음량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신비의 초월의식을 추구할 때는 3음량이 이용된다.
ꡔ찬도갸—우빠니샤드ꡕ에 의하면 고창(高唱)으로 외마디 “옴 ―”을 찬송하라고 했다. 소리의 위력을 이용하여 기(氣)를 집중시키고, 몸의 깊은 곳에서 진동을 일으킬 목적일 때는 큰 소리로 행하며, 평온한 마음을 유도할 때는 부드럽고 길게 소리내어 찬송한다. 그러나 소리를 내지 않고 옴을 상상하는 방법도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5)”
ꡔ디야나빈두 우빠니샤드ꡕ에서는 호흡을 통한 옴에 대한 명상법으로
수행자는 마치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흔들림 없는 빛을 닮고, 심장에 있는 연꽃 한가운데 굳건하게 앉아 있는 이슈와라(īsˊvara)인 음절 옴을 묵상해야한다(19:).
왼쪽 코 속을 통해 숨을 받아들여 그것으로 윗배를 채우고 몸의 중심이 마치 둥근 불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몸의 중앙에 있는 옴 음을 묵상해야 한다(20:).
브라흐마는 들숨이라고 불리고 비슈누는 호흡의 멈춤이라고 불린다. 루드라는 날숨이라고 말해지며, 호흡을 조절하는 주재신들이다(21:).6)
라고 하고 있다.
다음으로 내면의 방법을 통한 옴의 명상법으로
아뜨만을(아래쪽) 불을 지피는 나무로 하고, 신성한 음절 옴은 위쪽 불을 지피는 나무로 만들어 명상이라는 반복된 훈련으로 인하여 마음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22:).
자신의 능력에 따라 옴 소리를 길게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 소리가 완전히 그칠 때까지 숨을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23:).
수많은 태양이 빛나는 것과 같고 홀로 있으며 언제나 가고 오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가 마침내 움직임 등이 없으며 모든 것 안에서 haṃsa의 형상으로 머물러 있는 옴을 관찰하는 그들은 마침내 탐욕이 없게 된다(24:).
고 기술하고 있다.
오쇼에 의하면 “옴 만뜨라는 세 단계로 해야 한다. 먼저 큰 소리로 염송해야 한다. 소리가 몸에서 나와야 한다. 몸이 제1의 문이기 때문이다. 몸에서 나와 몸 전체를 울리도록 하라. 그래서 큰 소리로 반복하라. 신전이나 자신의 방,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큰 소리로 옴을 염송할 수 있는 장소를 찾으라. 수천 명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온몸을 사용하여 염송하라. 온몸이 떨릴 만큼 크게 하라. 처음 3개월 정도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아주 큰 소리로 온몸을 던져 옴을 염송하라. 1단계는 다음 단계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세포 하나하나가 울릴 정도로 크게 옴을 염송하라. 3개월 동안 옴의 소리로 온몸을 흠뻑 적셔라. 그러면 옴의 소리는 세포에까지 퍼질 것이다. 옴을 염송할 때 입으로만 하면 안 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이용하여 염송하라.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씩 계속 옴을 염송하면 3개월 안에 입이 아니라 온몸이 염송하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이는 일어나게 되어 있다.
2단계에서는 입을 다물고 옴을 마음으로 염송한다. 처음에는 몸이요 다음에는 마음이다. 이제 몸은 전혀 사용하지 말라. 입술과 혀, 목 등 다른 모든 신체 부위를 닫고 오직 마음으로만 염송하라. 몸으로 염송했을 때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크게 한다. 이제 마음을 옴의 소리로 적셔라. 이를 3개월 동안 한다.
마음으로 할 때도 몸으로 할 때 걸린 만큼 걸린다. 몸을 한달 안에 완전히 적실 수 있었다면 마음도 한 달 안에 적실 수 있다. 몸으로 할 때 7달이 걸렸다면 마음으로 할 때도 7달이 걸릴 것이다. 사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라기보다는 ‘몸마음’인 것이다. 한쪽이 몸이요 다른 한쪽이 마음이다. 몸은 보이는 마음이요 마음은 보이지 않는 몸이다.
3단계는 마음이 흠뻑 적셔졌다고 느낄 때 온다. 그 느낌이 어떤가에 대해 물을 필요도 없다. 이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야, 배부르다!’ 마음이 배부를 때 마음은 안다. 그러면 3단계가 시작된다. 3단계에서는 몸을 사용해서도 안 되고 마음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앞 단계에서 몸을 닫은 것처럼 이번에는 마음을 닫는다. 이는 어렵지 않다. 이미 3,4개월 동안 옴을 염송했다면 이는 아주 쉽다. 몸을 닫고 마음을 닫는다. 그냥 들으라! 가슴속의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다른 사람이 염송하는 옴의 소리처럼 들린다. 그저 듣는 자가 된다. 이것이 3단계이다. 3단계는 전 존재를 바꾸어 놓는다. 모든 장벽들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장애가 사라진다. 자신의 에너지를 옴의 염송과 명상에 몽땅 쏟아붓는다면 대략 9개월 정도 걸릴 것이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개발해야 한다. 옴의 소리로 몸을 완전히 적시고 마음을 적시면 귀가 생긴다. 이름하여 ‘제3의 귀’, 이 귀로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다. 이는 우주의 소리이다.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나무에 귀를 기울여보라. 나무에서도 우주의 소리가 들린다. 바위에 귀를 기울여보라. 거기에서도 우주의 소리가 울린다. 그러기에 앞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몸마음을 먼저 초월해야 한다. 그 미묘한 소리를 들으려면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옴을 염송할 때는 몸이 옴의 소리로 흠뻑 젖도록 염송하라고 하는 것이다. 몸이 더 이상은 염송하고 싶어하지 않도록 말이다. 마음이 흠뻑 젖도록, 그래서 옴을 더 이상 염송할 필요가 없도록 말이다. 옴의 소리가 넘쳐흘러서 더 이상은 집어넣을 수 없을 때까지. 옴의 소리가 넘쳐흐를 때야 비로소 소리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7)고 말하고 있다.
김관영은 “옴만뜨라 암송 수행법을 먼저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에 집중하고, 샴바비 무드라(Sha̅mbhavi̅ Mudra̅)의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들숨과 날숨에 맞추어 끊임없이 옴 만뜨라를 염송(念誦)한다. 이토록 단순해 보이는 수행법이라 할지라도, 옴 만뜨라의 암송이 유발하는 신기한 진동의 변화를 충분히 경험하게 된다. 만일 수행이 정성스럽게 계속되었다면, 드디어 ‘옴’의 비음화(鼻音化)한 허밍 소리, ‘쁘라나바(Praṇava)’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게 된다. 심이(心耳)로 들리는 과정에 접어드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울려퍼지는 그 소리는 심지어 번다한 일상생활 중에도 끊임 없이 들려오면서 만뜨라와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로 관계지어 놓는다. 그러다가 허밍 소리는 마침내 ‘성스러운 침묵의 소리’로 변용된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이며, 영이(靈耳)에 의하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8)라고 기술하고 있다.
8단계로 구조화되어 있는 라쟈 요가(Raja Yoga) 체계에는 일곱 번째의 ‘명상(dhyana)’ 단계가 있다. 그 가운데 ‘쁘라나바 댜나(Praṇava dhyana)’라는 수행 과정에서 수행자는 몸 안의 세포핵들이 일으키는 미묘한 진동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한다.9)
이와같은 만뜨라 수행은 각계(各界)에서 활용되고 있다.10)
. 만뜨라와 얀뜨라의 관련성
소리와 형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만뜨라는 종종 얀뜨라 위에 새겨지기도 한다. 우리는 신성한 말씀의 근원인 최초의 신성력에서 언어와 사물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형상은 본질적으로 소리이며, 조악한 상태의 소리가 바로 형상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적으로 말하자면 얀뜨라와 만뜨라는 동일한 것이다. 얀뜨라는 만뜨라의 조악한 형태이며, 만뜨라는 얀뜨라의 미묘한 형태이다. 그 둘의 토대가 되는 물리학의 미묘한 법칙들은 에너지를 물질로 변환시키거나 물질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법칙들과 유사하다.
얀뜨라는 명상 만뜨라의 시각적 형태로서 본래의 만뜨라와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영적 진화의 과정들을 거쳐 궁극적인 실재를 체험하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얀뜨라는 현인들이 내면의 여행 중에 직관한 기하학적 도형들이기에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선각자들의 신비체험을 다시 밝혀내는 것도 가능하다.
얀뜨라(yantra)란 단어는 “유지하다, 지지하다, 지탱하다, 다스리다, 통제하다”의 의미를 지닌 ‘얌(yam)’이란 범어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따라서 얀뜨라는 갖가지 에너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이 집중된 역장(力場)이다.
얀뜨라는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들을 다스리는 에너지들의 공식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얀뜨라의 언어를 제대로 배운 수행자는 그 에너지를 통제하며, 양쪽 세계들의 미묘한 역학을 통찰할 수 있다.1)
만뜨라의 형상화된 모습이 얀뜨라(Yantra)이다. 얀뜨라는 도형이나 형상을 이룬다. 그것은 소리의 형상화된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도형일 수도 있고, 기하학적인 형태일 수도 있다. 얀뜨라는 파동과 소리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에서 입자와 파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처럼 도형 안의 소리 에너지를 같이 보는 것이 얀뜨라의 특성이다.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이다. 또한 연결 에너지로 이어져 소리의 파동과 그 응집 형태인 도형은 항상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스크(Disk) 안에 소리가 내장되어 있듯이 우리의 모든 파동은 전부 형상 에너지 안에 포함되어 있다. 수많은 소리의 만뜨라와 그것의 형상으로의 표현인 얀뜨라가 많은 수행자들에게는 내면으로 몰입해 들어가 자신을 초월하게 하는 도구로 쓰여진다.2)
인도의 철학자는 얀뜨라를 모양의 원리, 작용의 원리, 힘의 원리 등 세 개의 원리가 혼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양의 원리라는 것은, 모든 물질은 구조는 아무리 복잡해도 원자와 같은 기본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세계의 각각의 나타남은 얀뜨라의 형(形) 속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면 우주의 가장 중심의 에너지, 곧 원초의 우주 창조의 에너지는 점으로 얀뜨라에 환원할 수 있다. 그것은 현대 과학이 우주의 시초를 백수십억 년의 대폭발(big bang)에 환원한 것처럼 아무리 복잡한 에너지, 복잡한 구조라고 해도 그 근원을 더듬어 가면 단순한 형태로 집약되는 것과 같다.
모든 형체는 그 배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묘한 내적 구조를 갖고 더 나아가서 배후에 형태의 원인이 되었던 기본적인 패턴(얀뜨라)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얀뜨라의 형태는 인간의 내부 의식 상태에 대응하는 심리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융 심리학에서 확실해진 것처럼 이들 형태를 통해 우리들은 심령적인 에너지에 작용하고 제어할 수가 있다. 이것이 작용의 원리이다. 또 명상이나 의식에 의해 우리들의 의식이 얀뜨라에 집중됨에 따라 그 얀뜨라가 상징하듯이 작용이 심령 에너지(정신 에너지)에 이른다고 본다. 이러한 작용이 드디어 현상 세계에도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얀뜨라가 지닌 힘이 활동하기 시작하고 힘의 원리가 작용했던 것이 된다.3) 어니스트 우드는 얀뜨라에 대해 “만뜨라의 사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 얀뜨라이다. 만뜨라는 듣는데 사용되고, 얀뜨라는 보는데 사용된다. 만뜨라가 신성한 소리의 상징이듯이, 얀뜨라는 형태의 상징이다. 얀뜨라는 개념적인 혹은 형상없는 신성의 형태를 보유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표현의 세 가지 면을 갖게 되었다. 즉 ― 추상적 사고에서 표현되는 신성, 소리에서 표현되는 신성, 그리고 형상으로 표현되는 신성, 만뜨라가 신을 소리로 표현하듯이, 얀뜨라(Yantra)는 신을 형상으로 표현한다. 헌신자는 신이 만뜨라와 얀뜨라에 충만하게 스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형상은 그들의 원리가 스며 있다. 그것들은 사려깊은 명상에 큰 재료가 된다. 얀뜨라는 어떤 보통 구조는 원에 포함될 때 때때로 만다라라고 불리어진다. 만다라는 탄트라 수행모임과 티베트에서 많이 사용된다. 보통의 물체는 얀뜨라의 부서진 조각으로 가득차 있으나 만약 전 형상이 완전하게 조정되고, 통합되면 그것은 얀뜨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얀뜨라는 마음이 기본적인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형상에 마음을 고정시키게 할 수 있으며, 그 형상과 그것이 포함하는 모든 디자인에 묵상하는 마음은 쉽게 완전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다.”4) 또한 기하학적 명상 도구인 얀뜨라는 주어진 신의 형상 속에서 인격화된 ― 우주와 (대우주의 소우주적 모사로서의) 인간의 신체의 에너지와 단계들에 대한 아주 작은 그림이다. 얀뜨라는 티벳 딴뜨리즘에서 사용되는 만다라(maṇḍala: 원)와 유사한 기능을 갖는다. 그들 사이의 차이점은 만다라가 보다 그림으로 나타나고 그들 구성요소들이 원에 의한 배열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5) 만다라에 있는 “신성한 공간”은 소우주를 상징하고 있고 이 공간을 일주함으로써 수행의 공간이 담고 있는 신의 힘을 둘러싸려고 한다. 그것은 또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의식공간과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만다라에 따라 명상함으로써 사람은 우주와 합일체가 되는 것이다. 숙달된 요가 수행자는 그것을 자기 내부의 것으로 일체화시킬 때까지 만다라에 정신을 집중한다. 이것이 한번 성취되면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서 만다라를 볼 수 있고 그것을 나타내는 우주와 합체될 수 있다.6)
얀뜨라의 원과 선들은 방정식의 숫자와 상징들처럼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다. 얀뜨라의 모든 요소들, 즉 점, 삼각형, 원, 사각형, 연꽃 무늬, 그리고 씨앗 만뜨라는 대우주와 소우주를 진화시키고 다스리는 시원적 에너지의 갖가지 측면을 상징한다. 얀뜨라는 전형적으로 사각형, 원, 연꽃잎, 삼각형과 중앙에 씨앗의 점(bindu)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구성요소는 거기에 첨가된 다소 정교한 상징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위쪽으로 꼭지점을 가지고 있는 삼각형은 실재의 남성 또는 쉬바의 극을 가리키는 반면 아래로 향한 꼭지점의 삼각형은 여성 또는 샥띠의 극을 나타낸다. 중앙에 있는 점은 우주의 창조적 모체(자궁)이며 초월적 실재자체의 출입구이다.
몇몇 의례상의 얀뜨라들은 또한 치유적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에 덧붙여 병이나 사람에게 특효가 있는 얀뜨라들은 주술적 치료의 효과를 갖는 부적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모든 경우에 얀뜨라의 효과는 달인의 미세한 에너지의 지배뿐만 아니라 정신집중과 시각화 특질에 의존한다.7) 다시 말해서 요가수행자들은 그것의 복잡한 기학학적 형상을 시각화를 통해 마음속에 구성해야 한다. 얀뜨라는 ― 대우주의 전개 과정과 일치하여 ― 내부의 가장 깊은 점으로부터 밖으로 세워지거나 또는 명상적 몰입의 소우주적 과정과 제휴하여 가장 밖에 있는 원주에서 중앙으로 향하도록 세워진다. 내적으로 얀뜨라를 정교하게 만든 후에 요가수행자들은 다시 그것을 녹이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의식 속에서 얀뜨라의 구조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그 용해는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그들 자신의 소멸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서 요가수행자들은 만일 이러한 수행이 성공적이라면 그들의 조건적인 마음을 초월해서 순수한 존재-인식-지복으로 발전하게 된다. 거기에서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8) 차크라에선 에너지의 파동 패턴들이 강하게 활기를 띠는데 그 중심에서는 특정한 소리가 주(主)를 이루면서 다른 소리들이 덧붙여진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쿤달리니요가에선 차크라가 그 중심과 주변 꽃잎들마다 특정한 글자가 상응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지극히 단순한 것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얀뜨라는 차크라의 외적인 상징이다. 그들 대다수는 하나의 차크라에, 아니면 기껏해야 몇 개의 차크라에 상응한다. 하지만 그중 한가지만은 모든 차크라를 포함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림 1과 같은 쉬리 얀뜨라(Śrī Yantra)이다. 만뜨라-마호다디(Mantra-Mahodadhi: 만뜨라의 거대한 바다)의 20장에는 29가지의 얀뜨라들이 서술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찬양받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아래에 그려져 있는 쉬리 얀뜨라(Śrī Yantra)이다. 쉬리라는 명칭은 행운의 여신 락쉬미(Lakshmi)를 가리킨다.
성스러운 소리를 만뜨라라 하고 성스러운 형상을 얀뜨라라 하며 성스러운 소리와 형상을 연결하고 소우주인 인간과 대우주인 우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을 탄트라라 한다. 쉬리 얀뜨라는 만뜨라와 얀뜨라의 종합적인 하나인 탄트라로 연결시키는 신비스런 도형이며 이 모든 만뜨라, 얀뜨라, 탄트라를 통괄적으로 다루는 지식을 성스런 지식인 스리비드야(Śrī Vidya̅)라고 한다.
이 얀뜨라는 그들이 함께 전체 43개의 작은 삼각형들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배열된 9개의 병렬로 된 삼각형들로 구성된다. 9개의 기본적인 삼각형들 가운데 네 개는 꼭지점이 위로 향하며 남성적인 우주 에너지(Śiva)를 나타낸다. 꼭지점이 아래로 향한 다섯 개는 여성적인 힘(Śakti)을 상징한다. 이 삼각형들은 비슈누 신을 상징하는 8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에 의해 둘러싸여있다. 그는 우주에서 모든 곳에 두루 퍼져 있으며 위로 향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다음에 16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은 원하는 목적의 성취 특별히 요가수행자들의 감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이 연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두 개의 연꽃들과 상징적으로 연관된 네 개의 동심원들이다. 둘러싸인 3중의 선은 ‘지구의 도시’(bhu̅-pu̅ra)라고 불린다. 그것은 전체우주일 수도 또 비유적으로 인간의 신체일 수도 있는 신성화된 장소를 나타낸다.9) 그 마하 비드야의 얀뜨라는 소다시(Sodashi), 스리 비드야(Śrī Vidya̅), 트리푸라(Tripu̅ra)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안에선 모든 얀뜨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쿤달리니 요가에서 말하는 7개의 차크라 뿐만 아니라 다른 요가 학파에서 주장하는 수많은 중요하거나 중요치 않은 얀뜨라들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그림 1부터 그림 4들은 스리 얀뜨라의 9가지 회로와, 9가지 주요 차크라의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경전들은 스리 얀뜨라를 이용하여 인체 내에서 지구상의 모든 요소들 뿐만 아니라 대우주의 모든 부분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10)
Ⅳ. 만뜨라 요가 수행의 실천적 수행법
1. 만뜨라 요가 수행을 위한 입문
만뜨라 요가의 과정은 입문단계, 수행단계, 완성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만뜨라 요가는 밀교적 수행이므로, 수행자의 만뜨라 염송이 결실을 맺도록 수행자의 미묘한 에너지를 잘 조정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달인에 의한 입문식이 필요하다. ꡔ만뜨라 요가상히타ꡕ에서는 ‘입문식은 모든 염송의 근본이다’라고 한다. 입문식을 하지 않으면, 만뜨라가 생명력을 가질 그 시점까지 만뜨라를 에너지로 전환하기 어렵다. 이 상태를 만뜨라의 자각이라 하고, 만뜨라의 신성을 수행자가 아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수행에서 이 신성은 에너지의 형태이다.1) 만뜨라들은 마음대로 정한 발명품들이 아니다. 그들은 높은 자각의 상태에 있는 요가달인들에게 계시되며 그들의 효능은 전적으로 적절한 입문(dikṣha)에 의지한다. 인도의 밀교적 전통에 의하면 원형의 만뜨라 옴에 대한 단순한 암송은 그 암송이 자격있는 스승에 의해 능력이 부여되지 않는 한 영적인 효과를 전혀 갖지 못할 수 있다. ꡔ꿀라 아르나바 딴뜨라 (Kula-Arnava- Tantra 11장)ꡕ에서 말하고 있듯이 오직 마음을 왜곡시킬 뿐인 무수한 만뜨라들이 있다. 만뜨라는 결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스승의 은총에 의해 수여되어야 한다. 귀동냥으로 듣거나 사기 또는 우연히 얻어진 만뜨라의 암송은 개인의 불행만을 이끄는 것으로 간주된다.2)
ꡔ만뜨라-요가-상히따(Mantra-Yoga-Saṃhita̅ 1.5)ꡕ에서는
입문(diksha)은 모든 암송(japa)의 뿌리이다; 이와 유사하게 입문은 고행의 뿌리이다; 진정한 스승에 의한 입문은 모든 것을 완성시킨다.3)
라고 말하고 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태복음 8장)만큼 만뜨라 입문의 목적과 효과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얘기도 없을 것이다. “어떤 씨앗은 길 위에 떨어져 새들의 먹이감이 되고, 또는 암석 위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말라 죽으며,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제대로 성장하질 못한다. 반면에 옥토 위에 떨어진 씨앗은 제대로 자라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준다.
ꡔ락슈미 탄트라ꡕ에 따르면, 만뜨라 수행에 수련자를 입문시키는 선생은 환자의 고통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것을 바르게 치료할 줄 아는 의사와 같다.4)고 했다. 만뜨라에 입문할 때, 스승은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만뜨라의 힘을 일깨워 자신의 에너지와 함께 만뜨라의 힘을 제자에게 전해준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정신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제자가 그 기운을 받아들여 자신의 마음 속에 상당한 에너지를 받아들이게 되고, 만뜨라를 암송할 때 그 기운이 더욱 강해진다.5)
만뜨라는 대부분 입문식(Mantra Dikṣha̅)을 통하여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전해진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어서, 어떤 수행자들은 자연적으로 끌리는 만뜨라를 선택하거나 꿈 속에서 얻는 수도 있다.
그러나 만뜨라는 스승으로부터 직접 전수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만 적합한 만뜨라가 따로 있으며, 그에 대한 지식은 매우 전문적이어서 경험 있고 유능한 스승이 아니면 최적의 만뜨라를 각각의 제자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문식은 명상의 기법을 전수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만뜨라의 신성한 에너지가 제자에게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것은 스승과 제자의 영적인 관계가 맺어지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제자는 “진아에 대한 깨달음을 이룬 스승들의 법맥에 이끌리게 되고, 때가되면 그 자신도 그 법맥의 한 고리가 되는 것”6) 나아가 스승은 만뜨라 요가의 수행시에 일어나는 의식의 점진적인 변용과 진보를 적절하게 피드백(feedback)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언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입문식을 통해 주어지지 않은 만뜨라는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있다.7) 따라서 요가 수련에 있어 스승(guru)8)과 제자(śisya̅)의 관계는 아주 특별하다. 부모 자식간, 부부간, 친우간의 관계를 뛰어 넘는다. 요가 스승(사부)은 일반적인 지도자와는 다르다. 단순히 생계를 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영혼의 스승이다. 따라서 제자란 스승이 주는 영혼의 지식을 전수 받은자를 말한다. 스승(guru)은 이기적이지 않고, 명예나 이익에 끌리지 않으며, 궁극적인 목표로 제자를 헌신적으로 인도한다. 사랑을 통해서 제자에게 봉사, 교훈, 계몽을 불어 넣어서 깊은 이해와 자신감을 갖게 한다. 제자가 질문하도록 하고, 질문과 분석을 통해 진리를 터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한다. 제자에 대한 믿음을 갖고, 제자가 그의 가르침에 몰두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스스로 신(神)의 길을 보여주고 이끌어 줌으로써 제자가 영적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제자(śisya̅)는 처음 입문할 때 우선적으로 ‘사랑’ ‘절제’ ‘겸허’를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사랑은 용기를 낳고, 절제는 풍요를 낳고, 겸허는 힘을 낳는다. 사랑이 없는 용기는 잔인함일 뿐이며, 절제가 없는 풍요로움은 방종과 부패를 가져온다. 겸허함이 없는 권력은 오만이나 독재를 부른다. 진실된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그가 근원적인 자아로 돌아갈 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배운다.9)고 한다. 이렇게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해진 만뜨라에 의해 제자의 집중은 마음을 한 곳에 모이게 되고 계속되는 집중은 더욱 강해져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관통하여 마음을 초의식 세계까지 이끌어낸다. 그러나 모든 집중수행법이 마음을 초의식에 까지 이르게 하진 못한다. 수행자의 요구와 능력에 맞게 평가한 것을 기초로 구루가 수행시키는 방법이라야만 초의식의 세계를 이끌 수 있다. 따라서 수행자는 구루의 안내와 은총이 있어야 한다.
만뜨라 수행을 위한 첫 번째 가르침은 특정한 만뜨라를 전수받아 시작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행자는 만뜨라를 함에 있어 특별한 음성이나 소리, 빛 또는 차크라에 대한 집중력을 얻게 된다. 차크라 즉 통합체의 중심부위에 대한 수행을 전수받으면 그 중심부위의 영적인 에너지가 깨어나고 나디(na̅ḍi : 미세 에너지)의 막힌 통로가 개방된다. 이것은 수행자 단독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구루의 전승 계통을 이어 내려온 힘의 전수자인 전수할 수 있는 능력의 구루가 도움을 주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 구루의 은총을 통해서 수행자가 완벽한 성스러운 본성을 실현할 때까지는 훨씬 더 많은 발전된 단계가 계속 존재한다.
한편 모든 단어가 만뜨라가 될 수는 없으며 구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뜨라는 구루에게 전통대로 전수된 것이고 초의식의 상태에 이른 위대한 요기나 깨달은 자들에게만 알려져 왔다. 만뜨라의 과학은 매우 정확하고, 그 진정한 의미나 중요함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일단 전수 됐을 때 수행자는 일생을 통해 그 만뜨라를 되새기고 명상을 하며 점차적으로 만뜨라는 수행자를 사마디의 상태로 이끌게 된다. 경전에서는 제자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을 때라야 구루가 나타난다고 했다.10)
또한 모든 성스런 경전과 스승들은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스승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경청하며 복종할 각오가 서있지 않다면 입문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영적 공감대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는 그 같은 공감대가 두 사람 사이를 일생에 걸쳐 이어주는 영적 통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스승은 제자를 인도하고 정화시키는 일, 그리고 신성(神性)의 실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제자를 준비시키고 강화시키는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목표에 도달하는데 지름길이란 있을 수 없다.
한편, 만뜨라의 전수 과정에서는 제자의 내면적 양상을 고려하여 스승이나 제자 자신이 만뜨라의 유형을 선택하게 되는데 만뜨라의 울림과 제자의 마음 자체의 울림 사이에는 반드시 상호 융화 가능성이 존재하여야 한다. 아울러 제자의 마음 자체가 그것이 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신성(神性)에 대해 수용적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또한, 스승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적절해 보이는 만뜨라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만뜨라가 선택되면 신념과 정진에 기초해 그것을 정신적으로 매일 반복하여야 한다. 이는 그 자체로 정화의 효과를 가져다주며 궁극적으로 신성(神性) 실현에 도달하도록 해 줄 것이다.11) 진정한 만뜨라 입문은 스승과 제자의 영적 결혼과 같다. 지상에선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해도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연기될 뿐이며 제자가 진아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세세생생 지속될 것이다. 스승과 제자는 언제나 만뜨라의 힘을 통해 연결돼 있다. 양쪽 다 의무를 지게 되어있다. 스승은 제자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 것이며, 제자는 스승의 지도와 권위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만뜨라 입문의 관계는 그 유효 기간과 중요성으로 인해 양측 모두가 소중히 알고 전념해야 하는 관계이다. 입문식에서 스승은 제자에게 만뜨라의 힘을 전해준다. 이에 관해 구루데브 시바난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입문은 영적 지식을 전하며 죄를 소멸시킨다. 등불이 또 다른 등불에 불을 붙이듯 만뜨라 안의 신성한 힘(Śakti)은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전해진다.” 만뜨라는 자생력을 발휘하여 제자가 만뜨라의 힘과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준다. 그러나 입문자가 어떤 체험을 하느냐는 만뜨라의 힘을 전달하는 사랑과 진실성의 질(質)과 깊이에 달려 있다.
입문을 하는 사람에겐 엄청난 책임이 뒤따른다. 만뜨라의 힘은 중성적인 것이기에 입문자가 만뜨라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그 힘은 자신과 타인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고, 해악이 될 수도 있다.12)
2. 만뜨라 요가의 실천적 수행방법
ꡔ만뜨라 요가 상히따(Mantra Yoga Samhitꡕ에 의하면 만뜨라 요가는 16종으로 구성된 다음과 같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헌신적(bhakti)은 종교의식적인 숭배로 규정된 헌신(vaidhi-bhakti), 이기적 동기에 의해 오염된 집착을 담고 있는 헌신(ra̅ga-a̅tmika-bhakti) 그리고 최고의 지복을 낳는 최상의 헌신(parabhakti)의 세종류가 있다.
둘째, 정화는 신체, 마음, 방향, 장소의 네 가지 요소에 의해 구별될 수 있다. 이러한 수행은 신체를 깨끗이 하는 것, (믿음, 학습 그리고 다양한 덕의 함양을 통한) 마음의 정화, 만뜨라를 암송하는 동안 올바른 방향을 향하는 것 그리고 실행을 위해 특별히 정화된 장소를 이용하는 것을 수반한다.
셋째, 체위법(a̅sana)은 명상을 하기에 적합한 육체를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그것은 스와스띠까 아사나(svastika-a̅sana)와 연화좌(padma-a̅sana)의 두가지 원칙적인 자세로 이루어진다.
넷째, 신에 대한 다섯 가지의 봉사는 ꡔ바가바드 기타ꡕ와 신의 이름을 날마다 부르는 것, 신을 찬탄하는 찬송(stava), 호신 주문(kavaca) 그리고 마음을 여는 찬송(hṛidaya)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실천으로 신에게 집중함으로써 요가수행자는 점점 신과 동화되어 간다.
다섯째, 행위는 각자 타고난 성향에 따라서 세 종류로 나뉜다.
하나, 신성한 행위(divya)는 삿트바 성향이 강한 수행자에게 적합하다. 이러한 성향은 전통적인 방식의 포기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활동도 초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둘, 좌도 행위(Va̅ma)는 타마스 성향이 강한 수행자에게 적합하다. 이러한 성향은 집착을 떠난 것에 근거한 세속적인 일을 해야 한다.
셋, 우도 행위(dakshina)는 왕과 같은 자질의 특성을 갖는 인격의 소유자이나, 수행자의 입장에서 포기를 실천해야 한다.
여섯째, 정신집중(dhâranâ)은 내부나 외부의 대상을 가질 수 있고, 신념을 근거로 수련해야 한다.
일곱째, ꡐ신성한 공간에 봉사하기ꡑ(divya-desha-sevana)는 주어진 장소를 요가수련에 적합한 신성한 공간으로 바꾸는 16가지 단계를 가진 수행이 있다.
여덟째, 생명력의 제사의식(prâṇa-kriyâ)은 신성한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 각 신체부위에 생명력과 주어진 만뜨라와 연관된 성자, 그리고 50가지의 산스크리트 문자를 배열하는 것이다.
아홉째, 무드라(mudra̅)는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 제사의식을 행할 때 다양한 손 모양을 짓는 것 수인(手印)이다.
이러한 손짓은 신성의 기쁨을 고양하고, 영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물질적 성공도 이룬다고 한다.
열째, ‘만족’(tarpana)은 신들에게 음료 또는 술을 바치는 행위로 그것을 통해 신들을 기쁘게 하여 이로 인해 요가수행자는 축복을 받는다.
열한째, 신을 향한 기도(havana) 또는 만뜨라로 신을 부르는 것이다.
열두째, 제공(bali) - 신에게 과일등과 같은 선물을 선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최상의 제공은 그 자신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기주의적인 자아를 없애고 영적인 성공을 주기 때문이다. 외적인 물질을 제공함과 동시에 수련 자는 욕망과 분노 그리고 여타의 부정적 내면의 태도도 바쳐야 한다.
열셋째, 희생(yâga) -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있다. 내적 희생이 보다 뛰어난 것으로 칭송받는다.
열넷째, 염송(japa)은 마음으로 염송하는 것(ma̅nasa), 조용하게 염송하는 것(upâmshu) 그리고 소리내어 염송하는 것(va̅cika)의 세 종류가 있다. 소리내어 염송하는 것보다 속삭이는 염송은 열배, 그리고 침묵의 염송은 천배 낫다.
열다섯째, 명상(dhya̅na)은 명상 가능한 대상들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종류도 다양하다.
열여섯째, 삼매(sama̅dhi), 이것은 또한 마음이 절대적 존재의 표현으로 선택한 신 또는 신성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위대한 상태(maha̅-bha̅va)라고도 한다.
이때의 마음은 신과 하나로 융합한다. 삼매의 상태에서 명상하는 주체, 명상의 작용, 명상의 대상은 하나의 존재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때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고 환희로 가득 찬 순수 의식 상태이다.
Japa 수행은 마음을 평온케 한 상태에서 조용한 곳에 편안한 자세로 앉는 것이 요구된다. 앉아 있는 상태에서는 나태, 무기력, 하품, 심적 동요, 졸음, 허기, 갈증 등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몸의 움직임이 있어서는 안되며 눈은 감아야 한다. 그리고 신체중 허리 아래 부분에는 어떠한 접촉도 있어서는 안된다. 만뜨라 Japa는 요가 수행의 하나로 간주되기 때문에 내면적 고결함을 결여하거나 의식의 분산이 있는 상태에서 만뜨라를 단순 반복만 할 경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Japa를 위한 영적 열의에 가득찬 사람은 앉은 자세를 취하기에 앞서 반드시 자신의 내면속에 순수의 기운이 깃들이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하고 난 다음 Japa를 수행해야 한다. 만뜨라의 반복은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도 너무 빨라서도 안되는데 요가 수행자는 만뜨라의 반복이 너무 느리면 신체적 병이 유발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빠르면 요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상실돼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총의 탄약통에 잠재되어 있는 폭발력이 노리쇠의 당김이 없이는 분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뜨라에 내포되어 있는 성스러운 힘도 온전한 신앙과 의지력에 바탕한 Japa 수행을 통해 다가가지 않는 한 분출될 수가 없다. 만뜨라를 일깨워 잠재된 것이 발현되도록 할 때 비로소 그에 이끌린 신성(神性) 내지는 눈에 보여지는 힘이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1) 모든 만뜨라는 흔히 sakam과 niṣkam으로 알려져 있는 두 가지 카테고리와 연결돼 있다. 여기서 자기 이해 관계와는 상관없이 만뜨라를 반복하는 것이 niṣkam japa이며 이는 순수 정진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난치병 치료와 같은 자신의 어떤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만뜨라를 반복하는 것이 sakam Japa이다.
병자 치료를 위해 sakam Japa를 행하는 사람은 경전에 명시되어 있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mala나 묵주의 유형, Japa 수행의 과정, 정화의식 등 무수한 규칙과 규정들이 존재하고 있다. 반면, 단순히 영적 고양을 위한 목적에서 niṣkam Japa를 행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별달리 정해져 있는 규칙은 없다. niṣkam japa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며 목욕을 하기전이든 후든 상관이 없다. 결국 방향, 시간, 장소, 절차 등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할 수 있다.
Japa 수행은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구두적 단계이며 곧, 만뜨라를 큰 소리로 암송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단계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만뜨라를 반복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첫 번째 단계보다 그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으나 초심자에겐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초심자가 두 번째 단계를 수행할 경우 마음이 이러저리 산란되는 경험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계는 정신적 manasik Japa의 단계로 지칭되는 것으로서 만뜨라에 따른 정신적 측면의 울림을 깊이 고찰할 것이 요구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만뜨라를 정신적으로 느껴야 하며 귀에 들리든 속삭이든 그 어떤 소리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Japa 반복의 이 세 번째 단계는 전술한 첫 번째, 두 번째 단계들보다 그 효과가 크다. 하지만 역시나 초심자에겐 알맞지가 않으며 어느 정도 Japa 수행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에게 적합하다.2) 소리를 내어 반복하면 만뜨라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며, 이런 암송법을 ‘바이카리 자빠(Vaikhari japa)’라고 한다.
속삭이거나 소리를 작게 내는 암송법은 ‘우팜스 자빠(upa̅ṁsú japa)'라고 하고, 마음 속으로 반복하는 것을 ’마나시카 자빠(Ma̅nasika japa)‘라고 한다. 이 세 가지 방법 중에 마나시카 자빠가 가장 효과적인 암송법이며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3) 네 번째 단계는 Ajapa라고 불리는 단계이다.
한편, Japa 수행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비교하여 자신만의 우월한 측면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니 Japa 수행을 함에 있어서는 이상 서술한 4가지 단계 모두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Japa 수행시에는 padma̅sana(연꽃좌), sidhha̅sana(달인좌), sukha̅sana(안락좌) 등의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데 Japa 수행을 위해서는 그들 세 가지 자세중 하나로 최소한 10분간은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한다.
Japa 수행을 위해 자리를 정하고 앉기에 앞서 몇 가지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좋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지닌 점진적 내향화의 경향으로 인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긴장한 상태가 되고 그러한 상태가 다시 압박감으로 이어져 Japa 수행중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Japa 수행중의 졸림, 가면 상태 등을 방지하고자 할 경우에는 baikhari(소리가 들리게 하는) Japa를 수행하도록 한다. Japa 수행중에는 의식의 최면 상태, 기계적 반복 등의 상황이 배제되어야 한다.4) 또한 글로 쓰는 Japa(Likhita japa)도 있다. 이 경우 만뜨라를 보통 글을 쓰듯이 일렬로 쓸 수도 있고 혹은 헌신을 강화시켜줄 만한 연꽃이나 십자가와 같은 도형이나 얀뜨라와 같은 그림의 형상으로 쓸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일관된 방식으로 쓰는 것이 집중력을 기르는데 유익하다. 글로 쓰는 Japa는 글자나 언어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을 끈기 있게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감정적으로 힘들 때 사용한다.5) 만뜨라를 적어 나가면서, 의식 속에서 인상(印象)을 강화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만뜨라를 반복한다. 이 리키타 자빠는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손가락 마디를 세어나가는 방법도 있다.6)
요가에는 그 수행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지향하게 하면서 숨은 자연스럽게 중단토록 하는 수행법들이 있다. 이 수행법들의 어려움은 수행자의 폐활량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약간의 명상 과정을 지나고 난 후에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외면을 지향하게 되어버린다는데 있다.
그런데 Ajapa 수행에서는 이런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Ajapa 수행이 그 자체로 완전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Ajapa 수행에 관해 ꡔ요가쑤뜨라ꡕ에서는 눈을 뜬채 어떤 명확한 객체에 집중하는 일이고 그런 다음에는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는 것은 어떤 오묘한 형태(subtle form)에 집중을 한다는 것이다. 그처럼 어떤 오묘한 형태에 대한 집중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 해야 하는 것은 해당 형태의 존재를 자신이 또렷히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하는 일이다.
ꡔ바가바드기타ꡕ에서도 Ajapa 수행과 관련해 명백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아빠나(apa̅na)를 주된 축으로 하여 거기에 쁘라나(pra̅ṇa)를 결합한 수행법, 쁘라나를 주된 축으로 하여 거기에 아빠나를 결합한 수행법, 쁘라나에 또다시 쁘라나를 결합한 수행법 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쁘라나는 들숨, 아빠나는 날숨에 해당한다. 그리고 So가 가리키는 것인 쁘라나, ham이 가리키는 것이 아빠나이다. 수행자들중에는 쁘라나에다 아빠나를 결합하는 사람들 즉, so에다 ham을 결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결합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so'ham이다. 한편, 또다른 수행자들중에는 아빠나에다 쁘라나를 결합하는 사람들 즉, ham에다 so를 결합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결합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함소 hamso이다. 한편, 쁘라나에다 또다시 쁘라나를 결합하는 방법도 있다.
ꡔ바가바드기타ꡕ는 Ajapa 수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코에서의 쁘라나와 아빠나의 움직임이 서로간에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즉, 콧구멍을 통한 들숨과 날숨의 흐름이 길이와 지속시간에서 서로간에 동일하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Ajapa 수행은 그 어떤 수행보다도 중요하며 이 점 때문에 고대 경전들에서도 언급돼 왔다. Ajapa 수행은 그 자체로 완전함을 갖추고 있는데 해당 수행법을 행하는 사람은 영적 스승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영적 영역에 들어 갈 수 있다.7)
만뜨라 요가 수행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실천 수행법을 스와미 시바난다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만뜨라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충분히 오랫동안 수행했을 때에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영송하는 동안은 깨어있는 의식이 중요하다. 단순히 오랫동안 수없이 만뜨라를 반복하였다고 하여서 효력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자세, 집중된 정신력, 감정의 정화가 함께 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내면의 정적이 이루어지고 신성자의 재임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을 집중시키는 데 있어서 최대의 장애물 중 하나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잡음들이다. 이 경우 영송의 세세한 과정, 소리가 만들어지는 방식, 호흡, 신체에 미치는 소리의 영향력들을 훈련하면 그것 자체로 수많은 통찰력을 길러 그 장애를 없애준다.
만뜨라는 날마다 정해진 시각에 조용한 장소에서 하여야겠지만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영송을 할 수 있다. 만뜨라를 영송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채 호흡을 관찰한다. 또한 만뜨라가 무엇인지, 그것의 힘이 어떤 것인지,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소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소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인지 자각해 본다면 만뜨라의 효과는 커질 수 있다.
아사나(하타요가 체위법)를 할 때 만뜨라를 반복하면 점차적으로 신체 내 쁘라나의 흐름과 아사나의 심오한 측면들을 자각하고 그 신비한 의미를 체험할 수 있다.
자신의 구루(Guru, 스승)를 찾았다면 스승의 이름을 영송한다. 스승으로부터 자신이 받은 영감에 대한 감탄과 감사의 정을 그 속에 담아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구루 안에 신성을 바라보는 겸손을 기르고 에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뜨라를 외울 수 없는 상황에는 만뜨라 테이프를 틀어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수행시간은 각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영송시간이나 반복 횟수에 대해서는 정해진 제한이 없다. 다만 단 몇 분이라도 만뜨라에 완벽하게 전념하는 것이 집중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시간동안 영송하는 것보다 낫다. 또한 산스크리트어를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즉 올바른 발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슴과 마음에 담겨 있는 느낌과 생각들이 발음보다 더 중요하다. 신에 대한 사랑, 끈기, 헌신, 그리고 참된 의도가 발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영송 중에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만뜨라 자체에 완전히 집중할 수 없게 하며,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삶에 관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송 중에는 마음을 관찰한다. 집중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만뜨라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다.
소리의 요가(na̅da yoga)에 따르면 각 사람의 몸은 가장 반응하는 특정한 진동을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만뜨라를 선택하는 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자연적으로 끌리는 만뜨라를 영송할 수도 있고, 스승이 가장 적합한 만뜨라를 선택해 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 힘을 경험할 때까지 끈기있게 수행하여야 할 것이고, 그 시작한 만뜨라로 발전을 이루었을 때에만 다른 만뜨라를 시도한다.
Japa요가에서는 염주(mala)를 사용한다. 염주알은 108개의 알로 이루어져 있고 1회 돌린다는 것은 만뜨라를 108번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백향목(kuśa) 또는 툴시목(tulasi) 아니면 루드락샤(rudra̅kṣa)의 씨앗으로 만들어진다. 숫자 108은 성스러운 숫자이며 1은 신이자 최고 에너지, 모든 선, 원, 움직임이 파생된 근원적 힘을 상징하는 선이다. 0은 완벽하고 완전한 신의 창조를 상징하는 원이며, 8은 영원히 지속되는 창조를 의미하는 상징이다. 염주 수행은 마음을 집중시키고 감정을 조정하는 효과 때문에 치료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삶이 원인과 결과의 끝없이 이어지는 사념의 사슬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염주알을 돌릴 때 특정한 만뜨라와 관련한 구체적인 의미를 사념들에 부여하게 된다. 염주를 걸고 다니는 까닭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도 절대 즉 진아를 깨달아야 한다는 삶의 목적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며, 영송 때 염주에 접목된 에너지가 그대로 순환되기 때문이다.
만뜨라 수행시간은 대기 중에 소란스런 파동이 잠잠해지는 새벽 3∼5 사이가 이상적이다. 우주의 기운이 하루 중 가장 순수하고 정화되어 있으며 고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든 영송을 통해 활성화된 쁘라나가 원활히 흘러 갈 수 있도록 등뼈를 곧게 세워야 한다. 영송 시에는 모든 숨결,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 영송에 완전히 전념해야 하며, 코로 숨을 쉰다. 영송을 올바르게 완전히 한다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고르게 될 것이다.
만뜨라 영송에 모든 자기자신의 의식을 완전히 집중하고 단순히 기계적으로 말을 외우지 않고 자각한다면 참된 자아를 내면에서 바라보게 된다. 만뜨라 수행이 끝난 후에 자리에 조용히 앉아 내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런 후 부드럽게 수행을 끝내면 된다. 갑작스럽게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게 해서 만뜨라 영송 수행 중에 몸에 배인 평화와 정적을 가능한 오랫 동안 유지한다.8)라는 말로 만뜨라 요가 수행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실천 수행법을 끝맺음하고 있다.
ꡔ만뜨라요가 상히타ꡕ에서는
‘반복적인 염송 없이는 만뜨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9)
또한 ꡔ쉬바 상히타ꡕ에 의하면
해탈을 구하는 모든 수행자에게 이것을 읽어 들려 주어야 한다. 다만 실제로 힘써 수행하는 사람만 성취할 수 있다.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성취할 수 있겠는가.(5.264)10)
라고 설하고 있다. 구도(求道)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꾸준하고 반복적이며 각자에 적합한 만뜨라 염송의 실천 수행만이 만뜨라 수행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3. 생활속의 만뜨라
말은 신(神)의 위력이 있고 진리의 힘이 있다.
천냥의 빚도 말 한마디로 갚을 수 있고 원한도 풀 수가 있다.
사형 선고의 말은 사람을 죽이는 운명을 만든다.
물론 거짓도 말로 할 수 있어서 죄악이 되기도 한다.
말은 칼과 같아서 잘 쓸 때와 잘못 쓸 때 큰 차이를 나타낸다.
성(聖)스러운 말과 소리는 보약보다 우수하므로 명상도 그렇지만 만뜨라도 처방으로 쓰여야 한다.1) 생활 속에서 진실한 말과 구절의 반복은 신체와 정신의 건강 상태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이든 삼천 번 이상하면 동화되어 가는 자기 암시, 타인 암시의 성질을 띠게 된다.
마인드 컨트롤의 창안자 호세 실바는 “뇌는 신중한 해석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의 뇌에 어떠한 단어가 입력이 되는 순간, 기존의 경험에 의해 하게 되는 행동은 뇌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의식이 가는 곳에 기(氣)가 간다.”고 하는 말이 생겼다. 생활 속에서 진실된 말과 구절의 반복은 신체와 정신의 건강상태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만뜨라 또한 부주의한 생각을 줄이고 언어를 일상적인 잡담에서 고차원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 수단이다.
심리학자 ‘도체(Champion K. Teutsch)’는 “언어는 비옥한 토지(우리들의 마음)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으며, “말 한마디가 이익을 가져올지 실패로 끝날지 갈림길을 결정한다”고 했다.
뿌려진 씨앗을 우리들은 빠르든 느리든 언젠가는 거두어야 한다. 긍정적⋅적극적 언어, 노래, 소리, 만뜨라의 습관은 인생을 보다 밝고 환한 플라스적 인생으로 변모시키고 그 반대의 부정적⋅퇴폐적 언어, 노래, 소리, 만뜨라의 습관은 인생을 어둡게 하고, 힘 빠지게 하고 마이너스적 인생으로 변모시킬 확률이 너무도 높다는 사실은 역대 수많은 선각자들이 무수히 설파하고 있다.
평소 자주 사용하는 말, 곧 언어습관이 본인 자신임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 평범한 진리이다.2)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 “삼사일언 해야 한다”, “한번 한말은 물과 같아서 다시 담을 수 없다” 등과 같은 수없이 많은 말에 대해 속담들이 있다. 그만큼 사람에게 있어서 말 한마디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이름은 자기의 만뜨라이며 즐겨 부르는 노래, 불경의 독경, 교회의 찬송가, 반복적인 호소의 말, 기도의 말, 모두가 말대로 그렇게 되어질 수 있는 힘이 있고, 마음과 몸 속에서 깊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3) 한편, 소리로써 만뜨라의 구성은 명석한 영감과 해명의 힘인 창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어떤 류의 응집된 에너지는 강한 힘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보명 행진대가 다리를 건널 때, 현명한 지휘자는 각 대원들에게 보조를 맞추지 말라는 지시를 한다. 같은 리듬에 맞춰 힘차게 내딛는 그들의 발걸음이 강하게 응집된 힘을 만들어 다리의 하부구조를 흔들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4) 불교에서 법명을 지어주거나 성당이나 교회에서 세례명을 지어주는 것도 새로운 에너지를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라는 만뜨라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명과 결혼하면 자를 새로지어주고 또 호를 지어서 불러주는 것도 만뜨라의 실용화된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5) 또한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가 불이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말 속에 기(氣)가 흐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소리 파동의 중대한 의미가 만뜨라 요가의 맥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윌리암 제이스가 말한 “네 생각이 곧 말이 되고, 말이 곧 행동이 되고, 행동이 곧 버릇이 되고, 버릇이 곧 성격이 되고, 그 성격이 곧 네 운명이 되리라”.
이것이 곧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생활속에 진정한 만뜨라 요가가 된다.
다른 정신적인 전통과 마찬가지로, 만뜨라 요가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생활속의 만뜨라 요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만뜨라 요가가 한낮 지식으로서가 아닌 생활속에서의 실천적인 삶의 한 과정으로 녹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만뜨라는 날마다 정해진 시각에 조용한 장소에서 노래하거나 외워야 하겠지만 설거지나 청소와 같은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만뜨라를 노래할 수 있다. 만뜨라를 노래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호흡을 관찰한다. 또한 만뜨라가 무엇인지, 그것의 신비와 힘이 어떤 것인지,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소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소리의 에너지도 사라지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만뜨라에 대한 호감과 열망이 더 커질 수 있다.6) 어떤 일을 하던지 만뜨라 암송으로 형성된 기운이 흩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직장에서, 집안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교통 체증이 있을 때, 어느 곳에서든 만뜨라를 암송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 속으로 만뜨라를 암송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과거나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하루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만뜨라를 암송하면 평화로운 기운이 의식 속에 퍼져나갈 것이다.7) 만뜨라 요가의 수행법은 기타의 요가 수행법들 또는 다른 여러 종교적인 수행법을 보조하거나 심리치료에 쓰일 수 있다. 수행이 무르익은 수행자들은 만뜨라를 암송하면서 다른 명상법을 병행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두 가지 명상 기법의 결합으로 그 상승적인 효과를 충분히 거두고 있다. 만뜨라 요가 수행을 오래도록 수행한 사람들일수록 만뜨라를 마음속으로 암송하면서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자연스럽다. 잠시간이라도 영적 수행을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들은 삶의 모든 부문을 신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나가게 된다. 모든 수행법과 일상생활에 직,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만뜨라 요가는 심신수련 및 삶 그 자체의 매우 유용하며 필수적인 방편이라 하겠다.8)
ꡔ시바 상히타ꡕ에서는
“다만 힘써 수행하는 사람만 성취할 수 있다.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성취할 수 있겠는가. 속세의 왕들도 요가를 열심히 수행하면 만뜨라의 염송을 통해 요가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재가인(在家人)도 요가행자도 요가수행에 노력하라”(5.264∼268)9)
고 생활속에서 재가인(在家人)들의 만뜨라 요가의 실천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Ⅴ. 만뜨라 요가 수행의 효능과 메카니즘(Mechanism)
1. 만뜨라와 소리요법에 의한 몸 치유 메카니즘(Mechanism)
소리는 원초적이고 근원적이어서 인간이 가장 쉽고 빠르게 원초적인 순수함에 몰입하여 정서적, 생리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도구이다.
‘치유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heal은 그 어원이 ‘소리를 만든다.’는 의미이고, ‘사람’을 뜻하는 person은 그리스어로 ‘소리가 통과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sound라는 말은 ‘소리’라는 뜻 이외에 ‘건강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소리와 사람의 건강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만큼 음향 통한 자극과 이완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리는 에너지출입구를 활성화하고 자연치유력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1) 물리학에서는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 의해서 나타나는 에너지’라고 정의하였다. 즉 ‘에너지’란 어떤 것을 움직이거나 부딪치거나 끌어당길 때 생성되며, ‘진동’은 어떤 것이 스스로 움직일 때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리 = 진동 = 에너지」란 수식이 성립된다. 이러한 수치에 건강과 관계된 용어를 삽입하여 표현하면 「음성 = 활동 = 힘」이란 간단한 문구가 성립된다. 보통 그 사람의 건강정도를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목소리와 운동(활동)능력, 그리고 체력의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2) 소리의 전달과 감응과정을 보면 소리가 귀바퀴와 외이도(外耳道)를 거쳐 고막, 이소골(耳小骨)을 지나 내이(內耳)에 이르러 난원창의 진동이 와우각(蝸牛殼)내의 림프액을 진동시켜 그 진동으로 기저막 상층부의 섬모가 자극되어 전기를 발생, 청(聽)신경세포에 의해 대뇌(大腦)에 전달되는 생물학적이고 기본적인 청각전달과정을 제외(除外)하고도 외부세계(外部世界)의 정보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와 대뇌에까지 전달되면 지각(知覺)이 형성된다.
그런데 이들 감각신경은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視覺)을 제외하고 온 몸의 말초신경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말초신경은 온몸에 퍼져 있으며 정보전달이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소리의 진동이 청각만이 아니라 피부의 촉각으로도 느껴진다는 사실이다.3) 최한기는 소리의 전달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들 몸 안의 기(氣)가 몸밖으로 일어나거나 감촉(感觸)하는 것은 모두 모발공(毛髮孔)으로 느끼고 있었다. … 밖에서 들어오는 입장에서 말하면 신기(神氣)가 먼저 움직이고 혈맥(血脈)이 다음으로 응(應)하고 장부(臟腑)와 백해(百骸)가 따라서 응(應)하여 들어온 것의 귀취(歸趣)를 모아 저장한다. … 내외(內外)가 서로 응(應)하는 면에서 말하면 신기(神氣)가 영상과 안색과 언어와 행동에 드러나 나타나고 혈맥이 다음으로 응하여 힘을 기울여 쏟고 장부(臟腑)가 따라 원조한다. 어느 경우에나 신기(神氣)가 먼저 인도(引導)하여 부르고 다음에 혈맥(血脈)과 장부(臟腑)가 응(應)하여 소리의 전달과 인식과정에서 모든 피발(皮髮)과 장기(臟器)가 관여한다”4)
고 인식하였다.
최한기의 소리의 전달과정은 외부로부터의 에너지에 대한 감응(感應)과정을 말해주는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한 신기(神氣)가 바로 미약(微弱)의 에너지이며 이 미약에너지의 집합지인 일곱 부위가 바로 일곱 차크라(chakra)를 의미했다고 사료된다.5) 예로부터 동양의학은 마음의 상태가 질병의 중요한 직접적인 변수임을 알고 이것을 다스리는 데 노력하였다. 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의 에너지 체계로 이해하고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비물질적인 기(氣, Energy)와 물질로서의 혈(血, Blood)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 균형 유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6) 그 예로 동양의 명의들은 목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병을 알았다고 한다. 그만큼 목소리는 건강의 척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목소리가 우렁차고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건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유형별로 보면
첫째, 몸이 건강한 사람의 소리.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소리는 맑고 힘이 있고 울림이 있다.
맑다는 것은 목이 탁하거나 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울림이 있다는 것은 심폐기능이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힘이 있다는 것은 단전의 힘이 배와 목을 거쳐 걸림이 없이 소리로 잘 나오는 것을 말한다.
둘째, 마음이 건강한 사람의 소리.
마음이 건강한 사람의 소리는 안정감이 있고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있거나 불안한 사람의 소리는 듣는 이에게도 그와 똑같은 느낌이 전달된다. 전통적 관습에 의해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소리내는 데에 많이 억압되어 있다. 그래서 충분히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는 단전의 힘과 심폐기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약하고 불안정한 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이는 심리적으로 억압돼 있는 정서적 발성 장애로도 볼 수 있다.
셋째,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소리.
가늘고 약한 소리, 탁하고 뜨는 소리를 내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허약하고 심지어 자신이 모르는 병이 있는 경우가 많다.
소리는 단순히 목의 소리를 내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고 심폐, 배, 단전 등 몸의 전체적 반영이기 때문에 목소리의 상태가 건강의 중요한 바로메타가 된다. 그래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들어서 귀에 편하지 않은 즉,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넷째, 위가 약하면 잘 안 나는 소리.
목소리의 기본을 점검해 보면 단전에는 힘이 있어 기운이 올라오지만, 명치 아랫부분에서 소리가 걸리거나 줄어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분들은 입을 다물고 내는 ‘음∼∼’ 소리를 내는데 있어 힘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섯째, 폐가 약하면 잘 안 나는 소리.
폐가 약한 사람들은 부수적으로 호흡기가 약해 감기에 잘 걸리고 아토피성 피부질환에도 약하다. 폐가 약하면 목소리도 약하고 노래할 때 장음을 잘 내지를 못한다. 이런 분들은 ‘아∼∼’ 음을 힘들게 낸다.
여섯째, 간이 약하면 잘 안 나는 소리.
목(木 : 나무 목) 기운인 간은 물(水 : 물 수) 기운인 신장의 도움을 받고 불(火 : 불화) 기운인 심장을 돕는다. 간이 약하면 잘 피곤하고 ‘어∼∼’ 음을 힘들게 낸다.
간은 우리 몸의 화학공장으로써, 몸에 들어온 각종 물질들을 몸에 맞게 가공 처리하여 공급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대사 분해하여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도 한다.
일곱째, 심장이 약하면 잘 안 나는 소리.
심장과 관계되는 소리는 ‘이∼∼’ 음이다. 기본 목소리 점검에서 심장이 약한 사람은 ‘이∼∼’ 음이 다른 음에 비해서 뚜렷하게 약하고 힘들게 나온다. 다른 장기가 약해서 나는 소리는 크게 차이가 없는데 비해 ‘이∼∼’ 음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심장의 울림과 관계가 깊은 듯하다.
여덟째, 신장이 약하면 잘 안 나는 소리.
신장이 약하면 잘 안 나는 소리는 ‘우∼∼’ 이다.
자궁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인체가 진동에 반응하여 우리 내부에 있는 수조 개의 세포들이 웅장한 “소리의 교향곡”을 만들고 있다. 우리 몸의 각각의 분자나 세포, 조직, 기관은 자신의 활동에 도움을 주는 이상적인 공명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진동회로를 조절하고 균형을 잡아주므로써 인체의 시스템 방어와 매커니즘 개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질병 또는 무질서는 우리의 세포와 기관 조직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진동 패턴을 망가뜨린다.7) 인간의 몸은 약 10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세포의 8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만물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물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지어는 문자가 전하는 메시지도 알아듣는다. 인간 몸의 세포는 말할 나위가 없다. 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뿐 아니라, 그 반응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신과학적 세계관에 따르면 이 우주는 전일적인(holistic) 하나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어, 모든 종과 류는 각각의 고유한 파동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상호간에 서로 공명한다. 개체 상호간에는 에너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때로 이는 기억될 뿐만 아니라 같은 종과 류의 유전자에 서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8) 물론,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인체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특정한 소리(만뜨라)를 통해 장기를 진동시키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병약한 사람은 소리를 적절히 활용하면 상당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9) 실제로 인간은 일과 중에서 발성하는 소리에 따라서 체질과 성격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더욱이 모음(母音) 발성은 질병 치료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발성하는 음에 따라서 생리와 자세가 달라지며 특히 모음은 자음(子音)보다 인간의 감정을 부드럽게 하여 정신작용에 관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 하고 소리를 내면 혈액이 알칼리화하여 즐겁게 되고 불쾌할 때나 슬플 때는 ‘애’ 또는 ‘오’ 음을 내게 되고 이렇게 발성할 때는 혈액이 산성으로 되는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한 확신을 할 때는 ‘우’하고 소리를 내기 때문에 힘이 아랫배에 집중되어 결단력이 높아진다.
이렇게 발성은 혈액, 신경 그리고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것을 건강관리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10)
첫째, ‘아’ 음. 발성 만뜨라는 혈액을 알카리화시켜 명랑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피로를 풀어주고 소화장애를 해소한다.
둘째, ‘애’ 음. 발성 만뜨라는 혈액을 산성화하고 신경을 흥분시킨다.
셋째, ‘오’ 음. 발성 만뜨라는 혈액을 약산성화하여 성격을 유순하게 한다.
넷째, ‘우’ 음. 발성 만뜨라는 심신을 통일되게 하여 결단력이 생기고 원기가 왕성해진다.
다섯째, ‘이’ 음. 발성 만뜨라는 음기(陰氣)의 성격이 개조되어 실천적, 적극적으로 되며 감미(甘味)를 좋아하는 기호를 고친다.11) 이와같이 만뜨라 요가는 모음의 조직으로 된 특별한 소리를 영창하여 우리 몸 전체의 신경이나 샘이나 뇌수에 진동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이다.
모음의 발성은 자음의 발성보다 부드러운 감정을 내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또한 깊은 호흡으로 힘껏 힘을 주어 발성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난다.
여러 가지 모음이 해부학적인 여러 부위에 영향을 준다.
∙이—이—는 머리 속에서 진동하여 뇌하수체와 송과선, 뇌수의 두개골 속에 있는 모든 부분에 힘이 미친다.
∙에—에—는 인후, 기관, 갑상선, 부갑상선에 영향을 준다.
∙아—아—는 폐의 윗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요—요—는 중흉부(中胸部)에 영향을 미친다.
∙오—오—는 폐의 아랫부분, 심장, 간장, 위에 영향을 미친다.
∙외—외—는 간장, 횡경막, 위에 영향을 미친다.
∙위—위—는 신장(腎臟)에 영향을 미친다.
∙오—오—는 직장, 생식선에 영향을 미친다.
∙mmmmmmm—Po—mmmmmmm은 심장에 진동을 보낸다.
인간의 몸에 미치는 힘은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에너지와 관련되어서 어느 모음의 발성에 의하여 나타난다고 하였다.12)
스와미 시바난다 라다(Swami Sivananda Radha)에 의하면
만뜨라는 영송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의 감정을 해소시키고, 내면의 정적과 이완 상태를 유도함으로써 치유 효과를 발휘한다. 마음이 이완되면 질병의 근원과 갈등의 숨겨진 원인들이 의식의 표면에 부상하여 치료를 가능하게 해준다.
따라서 만뜨라를 영송할 땐, 병자의 마음 상태를 확실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병자의 심신을 철저히 이완시키고, 그 사람의 내면을 깊숙이 부드럽게 조사하여 저항심의 장벽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가능한 한, 상대방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육체적인 치료는 마음이 치료된 후에야 가능할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있어서 질병이 어떤 목적이나 원인을 갖고 있는지, 혹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 기도나 만뜨라 영송을 하면서 만뜨라의 힘이 작용하게 할 수도 있다. 만뜨라 영송은 진실한 관심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만뜨라를 노래하거나 외울 때, 그 사람이 건강해진 모습을 시각화하라. 그 사람이 병들어 아파하는 모습을 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 심상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특정 신(神)이나 성인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사람이 그 신성한 존재의 빛 속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치료의 힘이 자신을 통해 흘러가게 하라. 이때 그 힘이 결코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되게 해선 안된다. 그저 만뜨라의 에너지를 치료의 광선으로 생각하면 된다. 만뜨라 빛의 소용돌이가 그 사람을 휘감아 모든 빛의 근원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상상하라. 그런 다음 영송에만 전념하면 된다.
하지만 설령 치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치유받은 사람이 이기적이거나 유해한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병은 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으로 재발하기 십상이다. 병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선이나 이타적인 봉사 활동으로 신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13)
라고 만뜨라를 통한 몸과 마음의 치유메카니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최근, 의학자들 또한 마음과 몸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둘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건강과 질병, 삶과 죽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빈곤, 직업에 대한 불만, 사회적인 냉대, 문화적인 고립,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 사회적 활동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보다 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또한 믿음, 사랑, 열정에서부터 공포와 분노에 이르는 감정적 상태들은 혈액의 화학 변화와 심장 박동수, 위장에서 면역계에 이르는 몸의 세포조직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연쇄반응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감정적인 동요가 인간의 유기체에 미치는 영향이 확실히 입증되면서 사람은 감정 상태에 따라 아플 수도 건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단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신체적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발병 원인을 마음에서 찾고자 했던 움직임들이 심신상관의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심인성 질환으로 불리는 이런 증상의 환자가 전체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현재 의학계의 중론이다.
면역학 연구자들은 뇌에서 분비되는 펩티드(엔돌핀도 펩티드의 일종)라는 물질을 발견했는데, 아미노산이 주요 성분으로 되어 있는 이 화학 물질이 감정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뇌에서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면역계나 내분비계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감정 변화가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도 우주를 고형물체가 아닌 ‘에너지와 정보의 네트워크’라고 봄으로써 삶과 건강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즉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고, 마음을 통해 생각, 느낌, 욕망 등의 주관적 경험을 하고 몸을 통해 객관적인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의식이 몸 속에 있는 낱낱의 세포에 영향을 끼치므로, 노화를 촉진시킬 수도, 속도를 줄일 수도, 잠시 정지시킬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역전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14)
이상의 다양한 분야의 전거를 분석해 볼 때 만뜨라와 소리요법에 의한 육체적인 치유에 앞서 마음의 치유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혀낼 수 있었다. 즉 마음의 치유가 선결과제인 것이다.
2. 마음에 미치는 영향과 삼매 현상
마음은 호수와 같아서 생각의 물결은 늘 흔들린다. 진정한 자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흔들리는 물결을 잠재울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에는 마음은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욕망과 증오와 즐거움과 괴로움 등에 이끌려 다닌다. 마음을 흔드는 가장 큰 요인은 환상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이다. 욕망은 끊임없이 다른 욕망을 창조해 낸다. 만뜨라 수련은 마음을 통제하여 고요히 가라앉게 하고, 궁극에는 지혜와 기쁨을 가져다준다.
우선 마음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 생각, 행동의 울타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만뜨라 수행으로 마음을 통제하면 느낌과 생각과 행동이 통제된다. 마음과 동화가 되면 마치 다른 사람을 지켜보는 것과 같이 자신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보면 그것들로부터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통제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1) 수행으로 닦여지지 않은 평상시의 마음은 불순함(Mala) 산란함(Vikshepa)의 거친 특성을 나타내기 쉽다. 만일 마음이 거친 층(Sthu̅la Śarīra)에 놓여있다면, 대상과 감각, 관념과 망상, 욕구와 번뇌에 속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뜨라의 암송은 마음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만뜨라의 수행에 의하여 거친 수준에서 정묘한 수준(Su̅kṣma Śarīra)으로, 정묘한 수준에서 근원적인 수준(Ka̅rana Śharīra)으로 얼마든지 마음을 바뀌어갈 수 있다.2)
수행 중에 정밀한 내적 음악인 만뜨라를 계속해서 음송하면 만뜨라는 차크라를 진동시켜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존재리듬은 마침내 일직선의 우주리듬으로 변형되고 모든 요가 수행의 목표인 영원히 정지된 고요한 우주의식의 바다와 합일을 이룬다. 명상수행자의 존재리듬은 만뜨라의 진동(울림)에 의해 점차 느려진다.3) 그리하여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게 되는 것이다.
또한 깊은 만뜨라 명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수행자의 마음은 레이저 광선과 같은 정신집중 상태가 된다. 만뜨라에 강력하게 집중함으로써 정신적 육체적인 모든 에너지가 응집되어 막대한 정신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과학적 발견들은 고대 요가 수행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정밀한 기구들이 신체 표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에너지의 발산 중심부 즉 챠크라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였으며 의식의 상태에 따른 뇌파의 변화를 측정하였다. 미세한 전류를 생산하는 수십 억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뇌는 미묘한 전자기파 혹은 뇌파를 발생하는데, 이 뇌파는 의식의 상태에 따라 변한다. 과학자들은 각각 다른 의식 상태에서 방출되는 여러 개의 서로 다른 형태의 뇌파를 발견했다.
정상적으로 깨어있는 의식상태에서 생기는 뇌파는 베다(β)파라 불리어지는 빠르고(초당 13 혹은 그 이상의 사이클) 불규칙한 리듬이다. 조용히 주의를 집중한 상태에서는 뇌파가 전혀 다른 형태의 파동인 알파(α)파를 발하며 이는 훨씬 느려지고(초당 약 8개의 사이클) 일정하고 율동적이다. 그러나 진폭과 에너지는 더욱 높다. 알파파 상태는 집중의 상태로써 정신적인 세계 즉 내부 의식 수준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상태에서 기억된 내용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아난다 마르가 명상 수행자에 대한 실험에서 만뜨라 명상을 하는 동안 뇌파는 불안정한 베타리듬에서 곧 바로 잔잔한 알파파로 느려지며, 계속해서 만뜨라에 집중하면 알파파의 에너지가 점차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깊은 명상 중에 알파파는 더욱 더 느리고 강력한 세타(θ)리듬으로 바뀐다(초당 4사이클). 명상이 깊어질수록 뇌파는 더욱 느려져서 델타(δ)파가 된다(초당 1사이클)4). 또한 만뜨라 하나에만 집중해 있는 동안에는 뇌의 모든 부분들이 같은 주파로 진동하게 되는데 그것은 심장박동, 호흡과 같은 리듬이다. 명상의 완성에 도달하게 되면 마음과 몸의 모든 리듬이 동시에 하나의 강력한 리듬으로 일치하게 되고, 이는 우주의 리듬과 부합한다. 합창단에서 일제히 노래하는 많은 목소리의 진동처럼 흩어져 있던 일상적인 사고의 진동은 서로 섞여 조화롭게 진동하는 하나의 흐름이 되듯이, 만뜨라를 계속해서 반복하면 초의식 상태나, 법열과 관계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뇌의 한부분인 림프계에 공명이 일어난다. 림프계는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내면적인 반복과 관련되어 있다. 만뜨라의 진동은 뇌의 주요부분에 연결되어 있는 림프망을 통해 뇌의 다른 부분들로 퍼져 나가고, 신경계를 통해 파동을 그리며 몸의 다른 부분들로 흘러가서 내분비선을 진동시킨다. 이렇게하여 만뜨라는 마음과 몸의 모든 진동을 일치하게 한다.5) 요가 Yoga 명상의 출발점이 단 하나의 대상을 향한 의식의 집중이듯이 일점(一點)을 향한 집중, 즉 에카그라타 eka̅grata̅의 즉각적인 결과는 속된 의식을 지배하는 모든 기계적인 자동활동과 산란한 마음에 대한 신속하고 투철한 억압을 이끌어 낸다.6) 요가 행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는 자신을 생각 바깥에 놓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요가 수행은 상념적인 흐름을 막아 하나의 ‘정신적인 덩어리’ 즉 단단하게 통일된 하나의 연속체를 구성하는 에카그라타(eka̅grata̅)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심적 유동성의 두 개의 발생인(發生因)인 감각활동(indrya)과 잠재의식의 활동(saṃska̅ra)을 제어하는 것이 에카그라타(eka̅grata̅)의 실습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심적 소용돌이(cittavṛtti)의 두 개의 근원적인 기능을 임의로 직접 중재하는 능력을 말한다. 요가 행자는 자신의 뜻대로 의식의 단절을 행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도 일점을 향해 자신의 주의를 집중할 수 있으며 여타의 감각적이거나 기억을 수반하는 자극에 초연할 수 있다. 에카그라타(eka̅grata̅)를 통해서 진정한 의지. ‘유기체의 지능적인 활동의 중요 요소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힘’를 얻는다.7) 만뜨라 요가 수행은 이 에카그라타를 획득하는 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만뜨라의 반복은 집중력을 기르는 수단이다. 만뜨라 요가 수행은 본질적으로 헌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미에 집중함으로써 잠재의식을 정화하여 진아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
막혀있는 쁘라나를 뚫고 이완시켜 나디(nadi, 에너지의 통로)와 차크라를 각성시키며, 호흡의 조절로 감정의 통제력을 기를 수 있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여 정화된 느낌을 갖게하며, 만뜨라가 잠재의식에 스며들면서 마음은 정화되고 동시에 에고는 보다 높은 차원의 자아에게 압도된다.
이렇게 만뜨라 영송은 숨결과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이러한 내적인 고요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내면의 평화, 평형, 힘을 가져다 준다.
만뜨라 영송은 마음을 통제하게 해줌으로써 오래된 사고의 패턴으로부터 주의력을 고차원적 자아로 돌려 자아의 긍정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 준다. 현상적 자아(저차원적인 자아 혹은 에고, 육체의식)에서 고차원적 자아로의 자각이 있게 한다.
ꡔ하타요가 프라디삐까ꡕ(4.7)에서는 삼매는 쉬바와 샥띠의 결합, 소우주와 대우주의 합일, 개아와 우주의 합일,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합일, 지바아뜨만(개인적인 자아)과 빠라아뜨만(우주적인 자아)의 합일 등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요가 8지칙에서와 같이 수행의 마지막 단계인 삼매와 관련된다.
그러면 수행이라는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서 어떻게 무의식적인 삼매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으로 삼매가 비약적인 초월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제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삼매의 경지는 자발적인 그것 자체의 방법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며, 그 경지는 각성(覺性)에 비교된다.”8) 이렇게 비약적인 초월에 의하여 도달된 삼매는 어떠한 심(心)의 상태인가? “삼매는 주관의 존재가 잊혀지고 객관만이 의식을 차지한 상태이다.9) 그때의 심리상태는 일반적인 판단과 추리등의 사고작용을 첨가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직관(intuition)이라 할 수 있다.10) 삼매의 경지를 삼매라는 술어 이외에 라자 요가, 라야11), 운마니12), 마논마니13) 현생해탈, 제4경지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삼매는 수행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경지이다. 이 경지는 완전한 감각의 억제와 집중을 통하여 도달되는 의식이 소멸된 최고의 상태이다. 그래서 게란다샹히티(7.1)에서는 삼매를 ‘위대한 요가’라고 한다. 그러나 삼매의 본래 의미는 ‘하나로 묶인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관과 객관이 합일된 상태라고 정의한다.14)
그렇다면 만뜨라 요가 수행으로 삼매에 도달할 수 있을까?
만뜨라의 계속적인 암송은 몸과 마음을 최면적인 이완 상태로 바꾸어 놓는다.
수행자의 뇌파는 8∼14Hz의 알파(α)파로 떨어지게 된다.
첫 단계에서 수행자는 고요함과 평화, 기쁨과 행복감을 맛보게 된다. 그리 어렵지 않게 나타나는 이 현상은 수행에 더욱 관심을 갖고 정진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된다.
더욱 수행자가 동일한 대상인 만뜨라에 주의를 강하게 집중하면서 암송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면 감각의 둔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면 의식은 내부 세계, 잠재의식의 세계로 향해진다. 만뜨라와 같은 명상적인 대상에 우리의 의식을 철저히 모아둔다면 외부 세계로 향한 감각의 문은 서서히 닫혀가고, 그와 반비례하여 내면의 영적 세계의 문은 점점 더 넓게 열리게 된다. 그러면서 영원한 실재(Sat)와 만나거나 순수의식(Cit)의 상태에 도달하거나 형언할 수 없는 지복감(至福感, Ānanda)을 느끼게 된다.
감각의 둔화가 가속화되면 마음을 가득 채웠던 온갖 종류의 감각과 지각, 사고와 기억들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만뜨라를 암송하거나 바라보는 행위만 남아 있다가 드디어는 만뜨라를 외우거나 바라보는 순수한 자아만이 홀로 존재하고 다른 모든 것은 사라져버리게 된다. 요가에서는 그것을 내적 자아 또는 진아(Ātman)의 독존(獨存 Kaivalya)이라고 부른다. 그 어떤 조건에도 매이지 않는 순수한 자아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뜨라 요가의 수행이 깊어지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영적 황홀경, 말하자면 지복의 느낌을 맛보게 된다.15) 또한 수행자의 의식은 생각이 아직도 남아있는 ‘유상삼매(有想三昧 Samprajnata Samadhi)’에서 생각과 마음이 모두 끊어진 ‘무상삼매(無相三昧 Asamprajanata Samadhi)’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3. 초능력의 발현
시바상히타에 의하면
만뜨라의 가장 우수한 점을 알면 요가가 성취된다. 이 요가는 뛰어난 수행자에게 모든 초능력과 행복을 준다.(5.240)
항문의 위치에 꽃잎이 4장 달린 연꽃이 있다. 이 연꽃의 한가운데에 (언어의 여신) 바츠로부터 생긴 종자가 번개처럼 번뜩이고 있다.(5.241)
심장에는 반두카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종자가 있다. 미간 차크라에는 1,000만 개의 달빛에 버금가는 샤크티라는 종자가 있다. 이 3개의 종자는 비밀로 해야 한다. 이것들은 향략과 해탈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초능력을 성취하려는 요가행자는 이 3가지 만뜨라1)를 수행하라.(5.242-243)
요가 수행자가 150만 번의 송창(誦唱)을 하면 싯다(Siddha), 비디야다라(Vidhyadhara), 간다르바(Gandharva), 압사라스(Apsaras) 등의 종족(種族)이 모두 그의 지배 아래 든다. 그리고 모든 소리를 이해하는 영청(靈聽)의 지혜와 일체지(一切智)2)의 힘이 생긴다.(5.254)
라고 만뜨라 요가 수행을 통한 초능력의 발현을 설하고 있다.
만뜨라는 스승의 입을 통해서 학습된다.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음소(音素)와는 판이한 것들이다.
일단 스승으로부터 「전수」되면, 만뜨라는 무한한 힘을 갖는다. 제 일급에 속하는 탄트라, ꡔ사다나말라 Sa̅dhanama̅laꡕ에서는 주저 없이, ‘규율에 따른 만뜨라에 의해서 성취될 수 없는 것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예를 들면, 로카나타 만뜨라(lokana̅tha mantra)는 가장 극악한 죄장(罪障)도 소멸시킬 수 있으며, 에카쟈타 만뜨라(ekajata̅ mantra)는 그 위력이 막강하여 전수받은 제자가 이것을 중얼거리자마자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진다. 모든 초능력이 바로 이 만뜨라에 의해서 획득된다3).고 하고 있다. “심작용의 하나인 초능력 중에는 요가의 목적인 해탈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는 반면에, 요가의 목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있다. 이것이 지혜이다. 이 지혜중에서 최고의 단계인 분별지는 초능력 중에서도 최고의 초능력이며, 해탈과 직결하는 것이다.”4) 실천적 수행을 중시하는 요가는 해탈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삼매와 초능력을 수반하게 된다.
초능력에 대해서 빠딴잘리의 고전요가에서는 삼야마(saṁyama, 總制)5) 수행을 수단으로 하여 얻게됨을 설명하고 있다. 즉, 윤회에 대한 삼야마를 실천함으로써 전생을 알게되고, 관념에 대한 삼야마를 함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알게되며, 몸의 형태에 대한 삼야마를 함으로써 자기의 모습이 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사라지게 하는 능력 등 다양한 초능력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6)
요가의 관점에서 초능력 현상은 어떤 외적인 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던 것이 수행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수행의 과정에서 나타난 초능력(siddhi)은 요가수행자의 수행에 대한 확신을 주는데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에 집착할 경우 더 높은 수행의 목표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만뜨라 요가의 수행자들과 유사하게 무당과 주술사들은 입신(入神) 상태에서 초능력(siddhi)을 잠시 동안 발휘하곤 한다. 영적 치유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만뜨라 요가와 샤마니즘은 그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몰아지경의 트랜스(trance) 상태 또는 접신(possession) 상태에서 얻은 신비적인 힘을 다른 사람의 심신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만뜨라 요가 수행은 자기 치유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 비하여, 샤마니즘의 주술적 치유 행위는 타자 의존적인 것이라는 점에 그 현격한 차이가 있다.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려면 이와 같은 행복감과 초능력, 환상 등에 매료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수행에 활력을 주기는 하지만,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데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초능력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싶어지는 유혹도 생긴다. 이것은 ‘버려야만 얻는다’는 수행의 기본적인 준칙을 망각한 채 자아를 살찌우는 행위인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수행자로 하여금 어떤 것이 상상력에 의한 환상이고 어떤 것이 신성(神性)의 참된 실재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7) 초능력 획득에 대한 요가적 설명은 바로 ‘인간=신’이라는 신념 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가 행자는 신적 능력의 소유자 즉 ‘mahasiddha’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초능력의 획득은 현실적 쾌락을 포기하는 것이 지니는 긍정적 가치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수행자는 현실적 쾌락을 모두 포기하는 대신 그 쾌락보다도 훨씬 더 큰 힘을 얻음으로써 오히려 풍요로워 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8) 그러나 진정한 요가 수행자는 그러한 초능력의 획득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초능력을 획득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마저도 버리는 또 하나의 포기를 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만족하는 순간 새로운 초능력을 획득할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며, 초능력을 사용하려는 욕구는 좀 더 진전된 명상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소유는 동시에 소유한 것에 대한 속박을 의미한다. 초능력을 얻은 신적인 상태는 분명 영예로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게 해방된 상태는 아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요가 수행자는 모든 집착을 버리고 최후의 삼매에 이를 때까지 분투해야 한다고 한다.
진정한 수행자는 참아뜨만에 대한 지식을 얻을 때까지 그리하여 절대자유의 세계에 이를 때까지 쉼 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9) 요가의 목적은 오직 해탈을 얻는 데 있다. 요가 수행자는 절대로 초자연적 능력이라는 구렁텅이 속에 빠져서는 안되며, 그러한 능력의 유혹을 극복하고 해탈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10)
만뜨라 요가 수행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Ⅵ. 결 론
이제까지 만뜨라 요가의 수행 체계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만뜨라 요가의 어원, 기원 등 그 근원을 고찰해 보았으며 만뜨라 수행의 역사적 배경, 만뜨라 요가 수행의 원리와 특성 및 다양한 만뜨라 종류 및 그 실천 수행법과 만뜨라 요가 수행의 효능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본 논문에서는
Ⅱ장에서 만뜨라 요가 수행의 이론적 기초를 고찰해 보았다. 1절에서는 마음을 자신으로부터 구하는 것 또는 마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힘, 인간을 구원하는 생각의 도구, 마음의 집중을 통해 해탈을 이끈다는 의미인 만뜨라의 어원⋅기원에 대해 알아 보았으며, 만뜨라의 암송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상으로 볼 때 만뜨라는 베다(Veda)와 우파니샤드(Upaniṣad)등의 성전(聖典)에 등장함으로써 그 오랜 역사를 시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베다서(書)에 신(神)에 대한 찬가를 일컫는데서 그 기원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만뜨라에 내재해 있는 신성한 힘, 즉 만뜨라 샥티(Sharti)는 최초의 근원으로부터 현재 그것을 암송하는 사람에게로 피어나는 것으로 추정됨을 알 수 있었다.
2절에서는 만뜨라의 원리 및 특성에 대해 고찰해 보았는바, 한 음절의 만뜨라는 하나의 상징이며 그것은 실재(實在)를 상징이며, 동시에 상징을 위한 기호임을 알 수 있다. 만뜨라의 글자 및 음절과 인체의 미묘한 기관들은 우주에 잠자고 있거나 현상화되어 있는 신성한 에너지 사이에는 불가사의한 관계, 즉 부분은 전체에 속하며, 전체의 원리나 성질이 부분에도 똑같은 법칙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상징을 작동함으로써 모든 존재의 차원에서 그 상징과 상응하는 모든 에너지를 일깨우게 됨을 알 수 있었다.
3절에서는 만뜨라의 기능에 대해 고찰해 보았는바,
주술의 기능, 의례의 기능, 상징의 기능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만뜨라의 종류 및 사용법을 고찰해 보았다.
1절에서는 만뜨라의 종류 및 분류를 살펴 보았는바,
만뜨라는 본질적인 특징에 따라 갖가지 위력과 다양한 변모 기능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었다. 음절과 단어에 따른 음성적 기능, 만뜨라와 의미적 기능, 만뜨라로 단문 및 장문 만뜨라로 분류 가능하며, 그 쓰임새에 따라 현실적 이익을 얻기 위한 만뜨라와 영적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만뜨라로 분류가능하다. 발화적(Speech)기능에 의해 언어적 만뜨라와 비언어적 만뜨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즉 베다만뜨라와 탄트라 만뜨라로 분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만뜨라 명상의 대상에 따라 싸구나 만뜨라, 니르구나 만뜨라, 비자 만뜨라 등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2절에서는 자빠를 위한 만뜨라를 고찰해 보았는바, 자빠가 만뜨라의 반복이라면 아자빠는 노력없이 자발적으로 만뜨라가 흐르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싸구나 만뜨라는 구체적이고 신성한 특정한 신(神)이나 신성 또는 형상있는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행하는 만뜨라로써 그 종류 및 사용법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니르구나 만뜨라는 특정한 대상이 없는, 명상의 대상이 속성이 없거나 또는 명상하는 사람이 자신을 절대와 동일시하여 자신의 본성(참나)을 밝히는 만뜨라인데 그 종류 및 사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모든 중생의 생명력의 만뜨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주적 만뜨라로 칭해지는 대표적인 ‘나는 나 자신이다’라는 의미의 함사 만뜨라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옴만뜨라도 여기에 속하나 만뜨라 요가에서의 절대적 의식을 상징하는 신성한 음절이며 성음(聖音)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3절에서 별도로 옴의 의의와 구성, 상징, 수행법을, 특히 ꡔ우파니샤드ꡕ 경전과 ꡔ요가쑤뜨라ꡕ를 통해서 고찰해 보았다.
4절에서는 만뜨라와 얀뜨라의 관련성을 고찰해 보았다. 소리와 형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만뜨라는 종종 얀뜨라 위에 새겨지기도 함을 알 수 있었다. 만뜨라의 형상화된 모습이 얀뜨라임을 알 수 있었고 얀뜨라는 명상 만뜨라의 시각적 형태로서 본래의 만뜨라와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영적 진화의 과정들을 거쳐 실재(實在)를 체험해주는 힘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Ⅳ장에서는 만뜨라 요가 수행의 실천적 수행법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만뜨라 요가 수행을 위한 입문에 관해 언급했는데 만뜨라 요가 수행의 과정은 입문단계, 수행단계, 완성단계로 나누어지는바, 그중 특히 입문 단계의 중요성과 절차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요가 수련에서는 특히 스승(구루)과 제자(시스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바, 이는 영혼의 지식은 상호 주고 받는 전수과정이라는 데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입문을 통한 스승으로부터의 만뜨라의 전수 절차 및 의식의 의의를 살펴보고 그 입문과정을 통해 심적, 영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만뜨라 특유의 비전적인 의의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2절에서는 만뜨라 요가의 실천적 수행방법을 고찰해 보았는바 ꡔ만뜨라 요가상히따ꡕ에 의한 16가지로 구성된 만뜨라 요가의 세부 수행법을 살펴 보았는바 만뜨라 요가의 실천 수행법으로써 헌신의 과정에서부터 삼매의 과정까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구체적인 수행법으로서의 실천적 수행방법인 만뜨라 요가 수행을 실시하는 시간⋅장소부터 마음가짐까지 세부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특히 만뜨라 수행중에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염송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의식을 완전히 집중한 상태에서 진지한 열정을 갖추고 임할 때 훨씬 그 수행의 효과는 증폭됨을 알 수 있었다.
3절에서는 생활속에 만뜨라를 살펴보았는바,
생활속에서의 진실된 말과 구절의 반복은 신체와 정신의 건강상태에 커다란 역할을 하며, 만뜨라 또한 부주의한 생각을 줄이고 언어를 일상적인 잡담에서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 수단이 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수행법과 일상생활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만뜨라 요가는 심신수련 및 삶 그 자체에 매우 유용하며 필수적인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정신적인 전통과 마찬가지로 만뜨라 요가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생활속의 만뜨라 요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산스끄리뜨어 ‘Vetti’(knowledge)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체득된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Vetti’의 의미처럼 입과 머리가 아닌 몸과 가슴으로 체득되는 생활속에 실천수행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논문의 실질적 결론에 해당하는 Ⅴ장에서는 만뜨라 요가 수행의 효능과 메카니즘(Mechanism)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첫째로 만뜨라와 소리요법에 의한 몸 치유 메카니즘의 고찰을 통해 만뜨라 요가 수행은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몸의 질병을 치유케하는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인체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특정한 소리나 만뜨라를 통해 인체의 장기를 진동시킴에 의해 신체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원리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우리 민족 고유로 소리 요법의 발성 수련 등을 통해 각 장부별로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일과중에서 발성하는 소리에 따라서 체질과 성격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더욱이 모음 발성은 질병치료에까지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육체적 치료는 마음의 치료가 선행된 후에야 그 효과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이는 곧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심신일여(心身一如)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만뜨라의 반복은 집중력을 기르는 수단인바, 만뜨라 요가 수행을 본질적으로 헌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미에 집중함으로써 잠재의식을 정화하여 진아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게한다.
만뜨라 수련은 숨결과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내적인 고요에 도달하는데 도움을 준다. 즉 내면의 평화, 평형, 힘을 가져다 준다.
만뜨라 요가 수행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 스스로의 의식 상태를 간파하는 수단을 제공해 주며, 이를 통해 삼매 현상이 체득을 강하게 해 준다. 요가는 삼매를 통하여 요가의 목적인 해탈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이에 대한 성취는 종교철학적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세 번째로 만뜨라 요가 수행중에 초능력 현상을 체득할 수도 있는데, 이는 요가 수행의 진전을 확인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요가 수행자는 그러한 초능력을 얻은 신적인 상태는 분명 영예로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게 해방된 상태는 아니다.
진정한 요가 수행자는 그러한 초능력의 획득에 만족해서는 안되며 초능력을 획득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마저도 버리는 또 하나의 포기를 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가 수행자는 참 아뜨만에 대한 지혜를 얻을 때까지 그리하여 절대자유의 세계에 이를 때까지 쉼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본 논문은 만뜨라 요가 수행에 대한 전반적인 수행체계를 고찰함으로써 만뜨라 요가 수행체계의 방향을 설정, 정립하는데 다소나마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상의 고찰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본 논문이 구체적 실천을 요하는 수행법을 주제로 하는 만큼 주관적 수행체험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본 논자가 직접적으로 오랜기간 지속적인 만뜨라 요가수행을 통하여 증득된 체험적 인식과 각성의 경험이 부족한 탓으로 인한 실제적인 근거의 미약함을 들 수가 있겠다.
이는 차기의 연구 보완 과제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