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최고의 목조 건물 안에 들어있는 세계최대의 청동대불을 보는데 어른은 500엔, 어린이는 300엔을 내야한다. 유료다. 물론 여기서도 불당이 다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은 다르고 그 불당안의 문화재들이 너무나 볼만하기 때문에 꼭 표를 사서 보기를 권한다.”
불국사 4인가족 1만2천원 ‘불과’
“외국 비해 저렴…인식전환 시급”
사진설명: 일본 교토의 토오다이지(東大寺). 500엔(한화 5,000원)의 입장료를 받지만 관람객은 기꺼이 이를 지불한다.
일본 토오다이지(東大寺)를 방문한 어느 한국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절 앞에 사슴이 노니는 것으로 유명한 토오다이지는 고대 백제인들이 불교를 전파하고 장인을 파견, 건축을 도운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찰이기 때문에 한국인들도 자주 찾는다.
하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절 전체를 구경하는 것도 아닌, 한 건물만 보는데 한화 4100원 가량을 지불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블로그 어디에도 이 청동대불을 친견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한데 대해 억울해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글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돈 아까워하지 말고 가까이서 보라며 적극 권유하고 있다.
반면 우리 상황은 어떠한가. 불국사를 예로 들어보자. 화폐 도안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다보탑을 비롯 석가탑 연화교 칠보교, 백운교 청운교,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세계적인 문화재가 즐비한 불국사는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재적 가치 등을 따져 토오다이지를 훨씬 능가한다. 불국사에 들어가는데 가장 비싼 요금을 지불하는 25세 이상 65세 이하의 성인이 4000원을 지불하고, 어린이는 그 절반인 2000원, 단체 관람객은 그보다 훨씬 저렴하며 장애인이나 국가유공자 등 무료입장 대상자도 많다. 토오다이지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국사는 관람료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늘 비싸다며 매를 맞는다. 문화재 가치나 역사적 연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격만 놓고 평가하는 풍토가 잘못된 문화를 낳은 것이다.
중세 교회가 많은 유럽을 예로 들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할 만큼 문화재 관람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처음으로 왕위 대관식을 가진 이래 전통적으로 영국 왕실의 대관식장이 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한화로 어른 7300원, 어린이 4000원 가량의 입장료를 받는다. 또 있다. 가이드 안내비로 8500원을 더 내야한다. 부부가 자녀 둘을 동반하면 웨스트민스터 사원 한 곳에만 모두 3만원을 지불하는 셈이다. 이는 25유로에 해당한다. 게스트 하우스 하루 숙박비가 20~30유로인 점을 감안하면 일가족이 교회 한 곳 관람하는 데만 하루 숙박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나마 웨스트민스트 사원은 런던의 다른 문화재에 비하면 꽤 저렴한 편에 속한다. 현재 영국 여왕이 살고 있는 버킹엄 궁전은 우리 돈으로 2만4060원이다. 공원에서 0.5~1유로를 지불하고 간단히 점심을 ‘때우는’ 배낭여행객과 비교하면 버킹엄 궁전을 구경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보다는 저렴한 프랑스 관람 비용도 적지 않게 든다. 프랑스 혁명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파리로 끌려간 베르사이유 궁전 입장료는 한화로 약 9000원 가량. 오후 3시30분 이후는 6400원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가이드 투어비 시간당 5000원을 더하면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도시 전체가 관광지인 파리는 파리 전체 70개의 박물관과 기념관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박물관 카드를 발급한다. 1일 2만2000원부터 6만5000원 가량하는 5일권 까지 있다.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의 성당은 대부분 무료입장이지만 내부 시설을 이용하는데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로마 베드로 성당은 입장료가 무료지만 로마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쿠폴라’(돔)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약 7000원을 지불한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있는 피렌체의 두오모 역시 7000원 가량의 추가 이용 요금이 부과된다.
독일역시 유스호스텔 비용이 1만8000~2만7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관람료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가이드 투어를 포함하면 4000원에 이르고, 프랑크푸르트 괴테 하우스는 6000원이 넘는다. 독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베를린 찰리 박물관은 9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유럽 각국은 우리의 사찰이나 궁궐처럼 주로 교회나 성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비싼 관람료를 받는다. 이들 각국의 교회나 성은 원래 목적대로 이용하지 않고 관광지로 전환된 지 오래다. 운영주체와 유명세 등에 따라 입장료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름이 덜 알려진 경우 입장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 든 것처럼 유명 관광지는 예외 없이 비싸다. 유명 관광지이지만 지금도 원래 용도로 사용하는 교회나 성당 궁 등은 입장료가 저렴하거나 무료다.
하지만 이들은 관람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아예 개방하지 않는 점이 우리 사찰과 다르다. 프랑스 대통령 궁전으로 사용하는 엘리제궁은 개방하지 않으며, 영국 여왕이 사는 버킹엄은 여왕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 두 달만 개방한다.
사진설명: 하루 관람료가 2만원에 달하는 앙코르와트 입장 티켓.
유럽의 문화재 관람료나 입장료가 비싼 이유는 유명세와 이들 나라의 국력과도 관련돼 있다. 높은데서 낮은 데로 문화가 흐르듯 부국인 유럽은 아시아 등 낙후지역보다 관광객이 많아 더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것이다. 지난해 석달 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김모씨(여, 29)는 “1유로도 안되는 돈으로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1만원씩 들여가며 박물관이나 성당은 꼭 보았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스페인을 관광했다는 최모씨(41, 의사)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등 스페인 명소를 중심으로 구경했다”며 “비싼 요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사찰 문화재에 대해서도, 요금이 문제가 아니라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볼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관람객들에게 심어 줄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김제 금산사를 다녀왔다는 최인숙씨(38, 인천)는 “그 전에는 몰랐는데 아들에 의해 유폐된 견훤 등의 이야기를 미리 공부하고 갔더니 한층 의미가 있고 금산사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며 “처음으로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의 유산과 비교해 역사.문화적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사찰 문화재를 관람하는 데, 2000원 내는 게 결코 아까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정은 기자 jung75@ibulgyo.com
[불교신문 2243호/ 7월8일자]
● 문화재관람료의 진실
산을 가꾸고 지켜온 불교계 노력
‘단순 지식’으로 무시.매도 문제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관람료를 지불해야 한다. 관람료 지불방식이나 금액은 사찰 마다 다르다. 국공립 공원에 속한 사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화재관람료와 별개로 국립공원입장료도 내는데 일반적으로 공원 관리소에서 함께 징수한다. 물론 별도로 징수하는 곳도 있다.
합동징수 때문에 시민단체 등산객 등의 민원이 많아, 1970년 속리산부터 시작된 합동징수는 이제 폐지될 전망이다. 여당 측에서 입장료 폐지 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찰은 관람료를 자체적으로 징수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는 문화재 보수 유지 등에 사용된다. 국립공원입장료는 공원 관리 보호에 사용된다. 하지만 연간 징수액 300억원 가운데 70% 이상이 관리요원 인건비로 충당되는 등 본말이 전도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많은 등산 관련 단체 인터넷 사이트 들이 ‘사찰관람료 부당 징수 폐지’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산과 사찰의 관계를 모르거나 알면서 모르는 체 하는 행위라는 것이 불교계의 시각이다. 등산로의 상당 부분은 사찰 토지일 뿐만 아니라 산 자체를 스님들이 가꾸고 보존해왔다. 사찰은 그래서 공원지정에 격렬히 반대했으며 관람료 징수도 원하지 않았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한 뒤 일반인들에게 돈을 거둬 문화재 보수비 명목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유럽의 교회나 성당은 대부분 성소의 기능은 상실하고 관광지로 전락했다. 반면 한국의 사찰은 문화재이면서 생활공간이다. 유럽은 이 경우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불교계가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사찰을 방문할 경우에만 관람료를 지불하겠다면 공원내 사유지인 사찰 토지를 모두 측량해서 등산로를 새로 조정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또 사찰이 나서 천년넘게 가꿔온 주변 숲이나 계곡 등에 대한 관리 소유권도 다시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일부 사찰과 스님들은 차제에 관람료도 폐지하고 대신 일반인들의 사찰과 주변 토지 출입을 막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즉 문경 봉암사의 확대 실시인 셈이다. 이같은 주장은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 많은 스님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지방의 한 본사 주지스님은 “사찰 문화재관람료도 근본적인 데서 다시 출발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하정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