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함께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설이다. 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은 무얼까. 올해는 용의 해, 특히 60년만에 찾아온 흑룡해이다 보니 '용' 또는 '흑룡'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올해가 아니라 매년 설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동물을 꼽으라면 무얼까.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동요 '설날'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설날 하면 '까치'를 떠올린다. 노래대로라면 까치는 사람보다 나이를 하루 일찍 먹는 동물이다. 그런데 왜 까치의 설날은 정월 초하루가 아닌 섣달 그믐날일까.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 중 많은 이들이 정설로 받아들이는 것은 국어학자인 고 서정범 교수의 주장이다. 원래 섣달 그믐날은 '아치설' 또는 '아찬설'로 불리었다. 여기서 '아치'는 '작은'이라는 뜻을 지닌 용어다. 즉 설날 전날인 섣달 그믐날을 '작은설'이라는 뜻으로 '아치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치'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그와 음이 비슷한 '까치설'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그 근거로 다도해 지방에서는 작은 조금을 '아치 조금'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경기만 지역에서는 '까치 조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작은설'이라는 뜻의 '아치설'이 '까치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설명대로라면 사실 새 '까치'는 설날과 별 관계가 없는 동물이다.
이외에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실린 설화도 있다. 신라 '소지왕(炤知王)'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하여 왕을 해하려 했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이를 모면했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그 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로 정했다는 설화다.
어쨌든 까치는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새다. 설날이 다가올 때마다 노래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물론, 까치는 길조의 대표격이다. 우리 조상들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었다.
이는 까치의 습성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에 까치는 동네 어귀의 높은 나무 등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 또 시각이 사람보다 발달했고 후각 역시 사람보다 뛰어나 주위의 냄새는 물론 사람의 냄새도 기억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의 표시로 우는 것이다. 때문에 조상들은 까치가 울면 동네에 살지 않은 사람, 즉 객지에 나간 자식과 같은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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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날이라고 하지요?” “설 전날은 정말 까치들의 설인가요?” “설날 하는 세배말고 묵은세배라는 것이 별도로 있습니까?” “묵은세배는 언제 무슨 뜻으로 하지요?” 설이 가까워 오면 여기저기서 물어오는 말이다.
먼저 까치설부터 알아보자.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는 설날노래 사설이 문제이다. 그 이전에는 까치설이란 말이 쓰이지 않았다. 노래 사설은 시적 표현이다. 상징성을 생각하지 않은 채 낱말 자체로 받아들이면 까치들의 설날이 된다. 실제로 텔레비전에서 설날노래를 들려주면서 이 대목에 까치가 감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섣달그믐날을 왜 까치설날이라 할까. 국어학자들은 고어의 지식을 동원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나름대로 어원풀이를 한다. 섣달그믐날은 작은 설이어서 과거에는 ‘아찬설’이라고 했는데, 이때 ‘아찬’이란 ‘작은’을 나타내는 옛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찬’이란 말이 점점 그 뜻을 잃어버리고 ‘아치’로 변하여 ‘아치설’이 되었다가 ‘까치설’로 엉뚱하게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이 어원풀이가 맞으려면 섣달그믐날이 곧 작은 설이어야 할 뿐 아니라 ‘아찬’이 ‘까치’라는 말로 변하는 과정이 음운법칙에 따라 설득력있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작은 설은 동지를 일컫는 말이다. 동지를 아세(亞歲) 곧 작은 설이라 하였던 것이다. 과거에는 동지를 한 해의 기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설은 한 해의 기점을 뜻하는 날이자 시작의 날이다. 그런데 한 해의 종점을 두고 작은 설이라 할 까닭이 없다. 게다가 아찬→ 아치→까치로 변했다고 하는 음운변화 법칙도 불분명하다. 특히 까치는 특별한 의미를 별도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치’처럼 의미를 잃은 말이 ‘까치’처럼 특정한 뜻을 지닌 말로 바뀌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섣달그믐날을 까치설이라 하는 것은 설빔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설빔은 아이들에게 가장 화려한 옷이자 설을 실감하게 만드는 동시에 설을 하루 앞당기는 구실을 한다. 설날 아침에 설빔을 비로소 입기도 하지만, 섣달그믐날이 되면 아이들은 설빔을 미리 입어보며 품도 맞추어 보고 옷고름이나 대님도 매어 본다. 그래야 설날 아침이 번거롭지 않고 순조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섣달그믐날 설빔으로 지은 새 옷을 입고 어른들께 묵은세배도 드린다.
아이들의 설빔은 한결같이 색깔이 화려한 색동옷이다. 색동저고리와 색동두루마기처럼 오색이 찬란한 때때옷이다. 오색의 색동옷을 때때옷이라고도 하지만 까치옷이라고도 한다. 까치옷은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양의 오방위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옷을 아름답게 꾸미는 동시에 아이들을 부정한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액막이 구실도 겸한다. 이처럼 까치옷은 액을 막고 수명을 길게 하는 뜻이 있어 곧잘 아이들의 돌옷이 되기도 한다.
색동옷처럼 색깔이 알록달록한 대상을 일컬을 때 ‘까치’라는 꾸밈말을 쓴다. “까치놀, 까치두루마기, 까치저고리, 까치부채, 까치꽃, 까치허리띠” 등이 대표적인 쓰임새이다. ‘까치놀’은 아주 곱게 물든 저녁 노을을 일컫는다. ‘까치꽃’은 색동옷의 은어이고 태극부채 중에서도 특히 색깔이 화려한 부채를 ‘까치부채’라고 한다. ‘까치허리띠’는 오색 물을 들인 명주실로 짠 허리띠를 일컫는다.
섣달그믐날은 설빔으로 지은 까치저고리와 까치두루마기를 처음 입어보는 날이다. 아이들은 까치옷을 입으면서 설날의 기쁨을 실감한다. 아이들에게 설은 사실상 섣달 그믐날의 까치옷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말을 지은 윤극영 선생은 아이들이 까치옷을 입고 설을 실감하는 섣달그믐날의 상황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까치설이라 일컬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설날의 세배와 차례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섣달그믐날에도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린다. 이른바 묵은세배와 그믐제사 풍속이 그것이다. 설날아침에 세배를 드리듯이 섣달그믐날 밤에도 어른들께 묵은세배를 드리고, 설날아침에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듯이 그믐날 밤에도 조상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에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그믐제사를 올린다. 그믐제사를 사당 앞에서 지닌다고 ‘사당제(祠堂祭)’ 또는 밤늦게 지낸다고 ‘밤중제사’라고도 한다.
그믐제사는 사당을 모시고 있는 큰댁에서만 올리지만 묵은세배는 집집마다 한다. 섣달 그믐날 저녁을 먹고 새 옷을 갈아입은 뒤에 가까운 어른들을 찾아뵙고 묵은세배를 드린다. 아버지 세대가 할아버지 세대를 대상으로 묵은세배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묵은세배를 다니기도 한다. 이때 아이들은 설빔의 까치옷으로 성장하고 따라나서게 마련이다. 세배와 달리 묵은세배에는 어머니나 아주머니가 잘 참여하지 않는다. 주로 남성어른들이 조부모 세대를 대상으로 묵은세배를 드린다.
세배처럼 큰절을 올리며 한해 동안 돌봐 주신 은혜에 감사 드리고 편안한 새해가 되기를 비는 것이다. 설날 세배와 달리 형이나 오빠들에게는 묵은세배를 하지 않는데, 심술궂은 오빠들은 자기에게도 묵은세배를 하라고 거들먹거리기도 한다. 먼 친척 어른들부터 찾아뵈온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자기 집 어른들께 묵은세배를 드린다. 묵은세배를 드릴 때는 세뱃돈이 없다. 행여나 세뱃돈을 받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돈을 넣은 봉투를 드려야 한다. 내일 손자손녀들에게 줄 세뱃돈을 아버지께서 미리 챙겨드리는 것이다.
정초에 바쁘기 때문에 앞당겨 묵은세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마치 아침인사를 하기 바쁘다고 저녁인사를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설날 세배가 연초의 최초의례라면 묵은세배는 연말의 최종의례로서 엄연히 성격이 다른 세배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른들께 인사하고 잘 때도 인사하며,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친구들과 동료들을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인사하는 것처럼, 모든 인사예절은 처음과 끝이 짝을 이루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른들께 문안인사를 올리는데 일년이 처음 시작되는 설날 문안인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평소와 달리 살아있는 조상들께는 세배를 드리고 돌아가신 조상들께는 차례를 올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잠자리에 들 때나 하루일과를 마칠 때도 인사로 마무리하는데, 일년을 마치는 섣달그믐날 마무리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묵은세배이자 그믐제사로서, 설날의 세배와 차례에 짝을 이루는 예절이다. 그러므로 세배와 차례는 설날아침에 올리지만 묵은세배와 그믐제사는 그믐날 밤에 한다. 세배와 차례는 가까운 사람부터 하는데, 묵은세배는 촌수가 먼 어른들부터 한다.
묵은세배를 한자로 구세배(舊歲拜)라 표기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구’라고 하는 것은 낡은 것을 뜻하는 것으로 ‘마무리’나 ‘끝’이라는 뜻을 지닌 묵은세배의 뜻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묵은세배를 구세배라 하면 설날 세배는 신세배라 해야 하는데, 설날 세배도 새롭다는 뜻이 없다.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뜻의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묵은세배를 한자로 나타낼 필요도 없지만 굳이 한자로 나타내려면 세배와 구별하여 종세배(終歲拜)라 하거나, 아니면 말세배(末歲拜)라 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말이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묵은세배는 섣달그믐날에만 가까운 일가 어른들께 올리는 제한된 인사이나, 설날 세배는 정초 동안 이웃어른들은 물론 같은 형제자매나 동년배끼리도 서로 교환하는 상당히 일반화된 인사이다. 따라서 일가친지가 아니라도 동네어른들이나 선배를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는 것이 오랜 풍속이었다. 친구끼리는 서로 맞절을 하며 새해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정초에 어느 중노인이 이웃에 사는 상노인에게 세배를 하러 갔다. 상노인이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 세배는 무슨 세배, 그냥 앉게 고만.” 하고 만류했다. 그래도 중노인이 세배를 하려고 하자, 상노인이 “그만 됐네. 이렇게 보면 되지, 새삼스럽게 세배는 무슨….” 하고 그냥 앉으라고 권했다. 중노인은 못 이기는 척하고 세배를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상노인이 버럭 화를 내며 “이 사람아, 세배를 하러 온 것은 네놈이 할 도리이고 앉으라고 한 것은 내가 할 도리인데, 내가 그만 두라 한다고 그냥 앉는 법이 어디 있어. 내가 할 도리는 내가 하고 네가 할 도리는 네 놈이 해야지.” 하며 중노인을 꾸짖었다고 한다.
최근에 묵은세배 풍속이 거의 사라졌다. 망년회는 잘 챙기면서 묵은세배는 잊어버리고 지내는 것이 현실이다. 신년회가 있으면 망년회가 있고, 시무식이 있으면 종무식이 있게 마련이다. 설날 세배만 하는 것은 종무식 없이 시무식만 하는 셈이다. 옛 어른들은 묵은세배를 하지 않은 채 세배하러 찾아오는 이가 있으면, “아무개는 묵은세배도 모르면서 세배는 곧잘 하는구만!” 하고 핀잔을 준다. 일의 뜻도 모른 채 형식만 갖추는 사람을 나무랄 때도 이런 말을 한다. ‘까치설과 묵은세배’, 뜻이나 제대로 알고 해를 넘겨야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