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포항에서 시민들을 만나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어느새 나무도 산도 온통 가을로 물들어있습니다. 가을 햇살은 따뜻하지만, 바람은 선듯합니다. 옷을 두둑히 입고 고추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11월 중순이지만, 비닐하우스에서는 여전히 고추가 자라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고추 수확을 끝내고 밑둥을 자른 지 오래됐습니다. 내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고추가 얼 것을 대비해 오늘은 남은 고추를 최대한 수확했습니다.
가지를 쳐주어서인지 고추가 또 많이 컸습니다. 초록색, 빨간색 할 것 없이 다 땄습니다. 여전히 고추 꽃도 많이 피고, 새롭게 크는 아기 고추들도 많았습니다.
행자들이 여전히 잘 자라고 있는 고추를 보고 신기해하자 스님이 고추는 다년생 작물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고추는 다년생 작물이에요. 식물이 아니라 나무예요. 따뜻하기만 하면 몇 년을 자랄 수 있어요.”
고온성 작물인 고추의 원산지는 남미 볼리비아입니다. 고추는 다년생 나무라 온도만 맞춰 주면 몇 년을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지방에서는 고추를 계속 기르기가 어렵습니다. 가을이 되면 서리가 내리고 추워지면서 잎이 얼어 죽게 되어 난방을 해야 하는데, 난방비를 들여 고추를 수확하면 오히려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한 해 농사만 짓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에서는 한번 심으면 여러 해 동안 고추를 수확한다고 합니다.
“작은 고추는 그냥 나둬 보세요. 어떻게 되나 봅시다.”
햇살을 받은 비닐하우스는 금세 더워졌습니다. 옷을 하나씩 벗고 때 아닌 더위를 느끼며 계속 고추를 땄습니다.
가지를 뚝뚝 떼서 가져다주면 한 쪽에서는 고추를 땄습니다. 빽빽했던 고추밭이 한산해졌습니다.
“손이 시커매졌네”
일을 마치고 손을 툭툭 털며 스님이 말했습니다. 수확한 고추는 이제 분류를 해야 했습니다. 빨갛게 익기 시작한 고추는 씻어서 따뜻한 방에서 빨갛게 익을 때 까지 널어두었습니다. 초록색 고추는 장아찌를 담그기로 했습니다.
고추 양이 워낙 많다 보니 행자님들이 남아 밤까지 고추를 분류하고 씻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이 있어 오후 5시 30분에 포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녁 강연은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열렸습니다. 강연 시작 전에 이미 객석이 모두 만석이 되어 뒤이어 오는 시민들은 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았습니다.
1층과 2층까지 6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습니다. 7시 30분이 되자 뜨거운 박수 소리와 함께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2시간 동안 11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스님도 ‘답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해본 적이 없는지 너무 궁금해 했습니다.
즉문즉설은 정답이 없는 대화
“제가 이 자리에 청문회 나온 줄 아세요? 자기가 물을 것이 있으면 묻지, 왜 남의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게 항상 궁금했어요.”
“스님이 답을 준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즉문즉설은 대화하는 자리인데, 질문자는 스님이 답을 준다고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즉문즉설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질문을 소재로 대화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지식적인 것을 묻는다면 ‘구글에 검색해 보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무엇을 물을 지 예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물을 것인지 제가 알 수 있어요, 없어요?”
“알 수 없어요.”
“사람들이 무엇을 물을 지 모르니까 사전에 준비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강의 시간에 맞춰서 오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뭘 묻든지 그건 저한테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걸 갖고 대화하는 것이지, 정답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꾸 스님이 정답을 준다고 얘기합니다.
스님이 웃긴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웃긴 건 하나도 없어요. 질문자들이 웃기는 질문을 하지요. 그래서 저는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구글 찾아보세요’, ‘그건 병원에 가 보세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되니까요. 즉문즉설은 질문에 답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질문을 소재로 해서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도 스님은 농사를 짓다 왔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남편이 자신을 너무 구속하는 것 같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 나이에 왜 남편한테 구속을 당해야 하나요
“그러니까 남편이 불안해 하지요. 같이 살면서 내내 다른 남자만 쳐다보며 기다리니까요. (모두 웃음) 남편이 질문자보다 8살이 더 많다구요?”
“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남편이 더 불안한 겁니다. 그래도 의처증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만약 남편이 의처증이라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일 거예요.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는 것 빼고는 직장 생활이나 사회 생활 등 모든 면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아내나 남편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 하나만 병적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눈치 챌 수도 없고, 남들에게 얘기해 봐야 ‘남편이 그렇게 좋은데 왜 그러냐’ 이렇게 문제 제기를 받게 되거든요. 일반적인 정신 질환은 다른 사람이 겪어봐도 ‘좀 이상하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데, 의처증은 부인을 의심하는 것 빼고는 일체 다른 것이 다 정상이에요. 의부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병이 있는 사람과는 같이 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의처증의 일부처럼 남편이 질문자에게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질문자가 남편으로부터 이해를 못 받고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남편이 질문자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동창회에 못 가게 하는 이유는 동창회에 가면 남편보다 훨씬 젊은 남자들을 만날 수도 있어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더럽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남편은 나 없이는 못 사는구나’
질문자가 아버지 같은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에요. 그걸 자업자득이라고 그래요. 친구 같은 남편을 안 구하고 아버지 같은 남편을 구했는데, 아버지 같기는 커녕 아이 같은 남자를 만났네요.” (모두 웃음)
“그런데 남편은 저보고 하루라도 자기보다 늦게 죽으라고 합니다. 자기는 100살까지 살 테니까 제가 한 달이라도 자기보다 더 살다가 자기 밥 다 해주고 죽으라고 그럽니다. 이기주의자입니다.”
“남편 생각이 그런 거야 당연하지요. 현실이 그렇게 안 되서 그렇지 모든 남자가 그렇게 되길 원해요. 그래야 삶의 불편이 없으니까요. 그건 이기적이기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남편은 모든 것에 너무 부정적입니다. 동창회도 왜 못 가게 하냐면 동창회에 남자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남편 성격이 그런걸 어떡해요?”
“그냥 이러고 살아야 되나요?”
“그거야 질문자가 결정해야할 일이지요. 저렇게 살면서도 또 자기 딸한테는 시집가라고 할 거 아니에요?”
“이미 시집은 다 갔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지 눈까리 지 찌른거지 누구를 원망할 수 없어요. 이제까지 38년도 살았는데 앞으로 80살 까지 산다고 해도 이제 20년 밖에 안 남았잖아요. 첫째, ‘38년도 살았는데 20년을 못 살겠나’ 이렇게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사는 길이 있습니다. 둘째,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으면 황혼 이혼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당신과 못 살겠습니다. 저도 좀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선언을 하고 이혼 신청을 하세요.”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저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데요.”
“남편이 질문자를 죽여버릴 것 같아요?”
“네.”
“그렇게 겁을 내기 때문에 거기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까짓 거 죽이면 죽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버리면 죽든지 길이 열리든지 결론이 납니다. 만약 그게 두려우면 지금까지도 살았는데 그냥 살든지요.”
“알겠습니다.”
“질문자는 ‘남편이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이건 내 문제이지 남편의 문제는 아니에요.
‘이런 남편을 만난 내가 어떤 인생의 길을 선택할거냐?’
이것은 내 문제입니다. ‘이 경우에 내가 어떻게 하겠냐’ 하는 거예요. 오늘 소풍을 가려고 했는데 비가 장대 같이 온다면 이게 비 문제에요? 아닙니다. 내 문제에요. 비가 많이 온다면 내가 소풍을 포기할 수도 있고, 그래도 우비 쓰고 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어떤 인생을 살거냐 하는 것은 내 문제이지, 남편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 거냐’ 하는 자기 문제인데 자꾸 이걸 남편 문제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저하고 대화하면서 그 생각을 조금 바꾸셔야 합니다.
남편 성격으로 봐서 헤어지겠다고 했다가는 맞아죽을 것 같다면, 이 경우에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선택하면 됩니다. 맞아죽는 것이 낫겠냐, 조금 속박 받고 사는 것이 낫겠냐, 둘 중에 선택을 하면 돼요. 속박 받고 사는 것이 낫다면 속박 받는다는 생각을 팍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면 ‘당신과 못 살겠습니다’ 하고 선언을 하고, 다행히 안 죽으면 원하는 대로 한 번 살아보는 겁니다. 죽으면 죽는대로 또 괜찮고요.
이렇게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남편이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남편은 그냥 그런 사람이에요. 남편은 젊은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여자 가까이에 다른 남자가 얼쩡거리는 것에 대해서 불안과 초조를 갖고 있는 겁니다. 아마 남편에게는 어릴 때 엄마가 자기를 놓고 어디를 가버렸다든지, 안 그러면 연애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자기를 떠나버렸다든지, 이런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불안해 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은 그렇게 생긴 걸 어떡해요. ‘그런 사람을 나는 어떻게 대할거냐’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내가 어디 가려는데 애들이 엄마를 찾으면, 애들을 생각해서 가는 길을 포기하고 애들을 안고 있을 수도 있고, 애들을 등 두드려서 재워놓고 외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리 애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그냥 놔 놓고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선택하는 겁니다.”
“100살까지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모두 박수)
밝아진 표정의 질문자에게 청중이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작년 포항 강연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스님에게 음료수를 건냈는데 스님이 거절을 해서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왜 거절을 하는지 그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음식을 받지 않는 이유
“저는 여러분들이 주는 것은 일체 받지 않습니다. 정토회 활동가들과 소풍을 갈 때도 저는 제 도시락을 싸서 갑니다. 과일 한 쪽이라도 안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뭘 가져와서 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한테 주잖아요. 그러면 제가 엄명을 내립니다. ‘누구든지 사람들이 주는 것을 받았다면 나하고 같이는 못 산다’ 이렇게요.
여러분들이 저를 좋아한다면 그저 좋아하기만 하면 됩니다. 기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저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단체에 공식적으로 기부하고 영수증을 받아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법륜 스님 개인한테 자꾸 돈을 주지 마세요. 사적인 돈이 생기면 중이 타락할 일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건 여러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에요. (모두 박수)
저는 산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늘 여러분들 속에 살잖아요. 여러분들 속에서 여러분과 애 낳는 얘기도 하고, 부부 관계 상담도 해주고, 온갖 주제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다른 스님들이 보면 ‘저 중 미쳤다’ 그럴 겁니다. 늘 이렇게 세속에서 같이 살기 때문에 잘못하면 저도 모르게 안개에 옷 젖듯이 세속에 젖을 수가 있단 말이에요. ‘스님 좋아요’ 하는 사람한테 빨려들 수도 있고요. 온갖 사람이 저한테 와서 어떻고 저떻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도 살아야 되잖아요. 저한테 주어진 강연 시간에는 따뜻하게 대하지만, 그 외에는 냉정하게 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중심을 잡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올해 절에 들어온 지 딱 50년째입니다. 제가 이렇게 조심을 안 했으면 어느 여자 손에 잡혀갔을지 모를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음식 같은 것을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항상 ‘노, 땡큐’ 라고 합니다. 감사하지만 사양합니다. ‘스님 사랑해요’ 그러면 ‘감사합니다만 NO’ 이래요. ‘그래도 사랑해요’ 그러면 ‘정신과에 가보세요’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웃음)
이것이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하자 청중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대중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수행자로서의 중심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38살 미혼입니다. 아직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데 골치덩어리입니다. 부모님이 결혼을 하라고 하는데 결혼할 사람이 없어요. 제가 잘못하는 건가요?
옛날에 비해서 인생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힘겹게 들어간 회사에서 사고를 당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 후로 열정이 사라져서 젊음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두 달 전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들이 ‘외할머니는 잘 계실까’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가 커피숍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직접 와주신다고 하면 오늘 강연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커피를 한 잔씩 드리고 싶습니다.
봉사 단체 모임에 나갈 때마다 직책을 제안 받아서 매번 거절을 했지만 결국 직책을 받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저를 왕따시키고, 시기와 질투를 해서 힘듭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남편에게 욱 하고 화를 냅니다. 화를 내고 나서 후회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7살 된 쌍둥이 남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여자 아이가 너무 배려도 없고 욕심이 많은 반면에 남자 아이는 그렇지 못해요. 이렇게 서로 다른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질문을 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분도 있었습니다.
“오사카에서 비행기 타고 질문하러 왔습니다. 딸이 결혼하고 3년이 되었는데 아기를 가지려고 하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스님의 대답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딸의 생각을 늘 존중하겠습니다.”
“비행기값은 하신 것 같아요?”
“네!”
한 분은 강연을 듣다가 고민이 해결되었다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만 하고 앉았습니다.
“앞에서 질문한 분들과의 대화를 듣고 나니 저절로 고민이 해결되었습니다.”
“즉문즉설을 하려면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해요.” (모두 박수)
스님은 질문한 모든 분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각자 한 줄로 지금의 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행복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너무 쫓기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깊은 상처를 보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 “편안해졌습니다.” “오늘부터 열심히 사과하겠습니다.” “아이가 아니라 제가 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아이 키우는 문제에 대해 질문했는데요. 아이 문제가 나오자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스님은 종종 야단치듯이 말하는 경우는 세 부류가 있다며 그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제가 좀 야단치듯이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가 어린 자식을 제대로 안 돌보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경우에요. 예를 들면 이혼을 해서 애를 누가 키울거냐 이런 문제로 싸운다든지, 자녀 접근권을 갖고 싸운다든지 할 때입니다. 이럴 때 부모는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합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부모가 됐으면 자식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생을 하면서 키워야 됩니다. 내가 아이를 안 보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무리 보고 싶고 가슴이 미어져도 안 봐야 되는 거예요. ‘내가 아이를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아이를 볼 수 있느냐’ 이런 관점을 갖는 것은 부모의 자격이 없습니다. 어린 자녀에 대한 여러분들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부부가 맨날 싸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을 주게 됩니다.
둘째, 스무 살이 넘은 자식을 자꾸 부모가 걱정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넘었는데 부모에게 의지하는 젊은이에게도 야단을 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성인이에요.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으면 부모가 자식과의 관계를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에서 성인과 성인의 관계로 전환을 해줘야 해요. 자녀도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의 보호를 받지만, 성인이 되면 자기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반면에 자기 생활을 독립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독립된 관계에서 서로 협력을 하거나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도와줄 필요는 없어요. 부모도 도와줄지 말지 선택할 권리가 있는 그런 관계예요. 그리고 자녀도 성인이기 때문에 부모가 어떤 조언을 할 때 그 조언을 듣고 안 듣고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상호 인정해야 됩니다. 그래야 부모도 다 큰 자녀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고, 자녀들도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관계를 잘 설정하지 못해서 부모 자식 간에 형제 간에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동물 세계에서 어미와 새끼가 원수되는 것 봤어요? 없습니다. 어릴 때는 필요할 때 목숨을 걸고 돕지만, 크면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런 관계로 바뀝니다.
셋째, 결혼한 남자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경우입니다. 효를 빙자해서 양다리 걸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선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옛날 가족관계를 돕는 것은 좋습니다. 어느 것이 1순위이고 어느 것이 2순위인지를 분명히 정하면 고부 간에 갈등이 생기지 않아요. 양다리를 걸치기 때문에 고부 간에 갈등을 유발시키는 겁니다.
이렇게 인간관계를 성인과 성인의 사회적 관계로 정확하게 맺어나가야 하는데, 정에 끄달리기 때문에 혼탁하게 되어서 늘 갈등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더 자기 삶에 대해서 냉정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건조하고 맑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합장하고 인사하자 모두 큰 박수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꼬불꼬불 이어졌습니다. 질문을 했던 분들도 스님에게 사인을 받아갔습니다. 스님도 질문자를 알아보고 한 마디 보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행복하게 사세요.”
강연을 준비한 행복학교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님은 고추 작업을 하고 있는 행자님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작업은 다 했어요? 제가 갈까요?”
스님이 두북에 도착할 즈음 행자님들은 모든 작업을 마쳤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내일은 서울에서 평화재단 창립 15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