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1 - 19절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세기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썬다 씽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도 바울 못지않게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전도 여행을 했던 전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많았는데 특별히 사람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의 은사와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가 매우 뛰어났습니다. 어느 날, 썬다 씽은 윌리엄이라는 소년이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이 소년은 자기에게 와서 기도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초청을 했습니다. 썬다 씽은 병원으로 그 소년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밤새도록 윌리엄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병원의 의사들과 그 소년이 다니고 있던 교인들은 윌리엄이 완쾌된 사실을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썬다 씽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고 많은 곳에서 썬다 씽을 초청을 해서 말씀을 들으며 얼마나 칭찬을 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썬다 씽에게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받고 있던 칭찬과 명성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썬다 씽은 그 이후부터 어떤 사람이 오든지 병을 고쳐달라는 청을 거절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썬다 씽이 병을 고쳐 주면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하는데 오히려 썬다 씽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썬다 씽은 교회나 하나님 나라의 덕을 쌓지 못하는 자신의 은사를 절제하고 숨기기까지 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은사라면 차라리 절제를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고 있는 이야기도 바로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방언 같은 경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이런 은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좋고 빠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언도 은사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받으면 좋고 기쁜 것이지만 이런 방언의 특성 때문에 너무 방언에 대해서 욕심을 내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이지 않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까지 말씀해 주고 있냐면 19절에 보면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에게 자신이 먼저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진실성 있게 말하는 다섯 마디가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방언이 가치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방언이 교회의 덕을 쌓지 못하고 있다면 이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에 도움이 되라고 주신 것인데 이런 것을 가지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이런 은사를 가지고 자신을 높이려고 한다면 그런 은사는 백해무익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인데 그 선물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서 얻게 될 영광의 장애물이 된다면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은사를 선호하고 은사에 대해서 높은 가치를 두고서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은사를 잘못 사용해서 교회의 덕을 쌓지 못하고 있는 것! 바로 이 부분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도 우리에게 주실 때는 3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이런 이유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주시는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돈을 받는다거나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을 해서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 은사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먼저 주신 것은 그것을 나누라는 것이고 잘 활용을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더 든든히 세우라는 의미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사로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진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은혜로 주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받은 은혜를 헛되이 사용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잘 사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고, 오늘도 이 말씀에 순종을 해서 교회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