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시다에 폭탄 투척… 아베 피격 9개월만에 또 테러
[日총리 겨냥 폭발물 테러]
24세 남성 사제폭탄 공격
기시다, 터지기 직전 피신
日 前現총리 겨냥 잇단 테러
기시다 바로 뒤에 폭탄 15일 오전 11시 26분경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사이카자키 어항의 중의원 보궐선거 유세장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운데)가 고개를 돌려 등 뒤쪽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 모양의 폭발물(점선 안)을 쳐다보고 있다. 경호원(왼쪽에서 두 번째)은 이 폭발물이 날아오다가 땅에 떨어져 기시다 총리 왼발 옆 약 30cm 거리까지 굴러오자 방탄 커버로 쳐낸 뒤 총리를 에워싸고 피신시켰다. 폭발물은 52초 뒤 ‘펑’ 소리를 내며 흰 연기를 내뿜었다. 산케이뉴스 유튜브 캡처
일본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를 향해 20대 남성이 사제(私製) 폭발물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유세 중 사제 총에 맞아 숨진 지 9개월 만이다. 기시다 총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전·현직 총리를 겨냥한 테러가 잇달아 일어난 데다 다음 달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임박한 시점이라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1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15일 오전 11시 26분경 오사카 남부의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의 사이카자키 어항(漁港)에서 선거 유세를 하기 직전인 기시다 총리를 향해 군중 속의 한 남성이 은색 쇠파이프 형태의 물체를 던졌다.
기시다 총리는 뒤쪽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현장에 소동이 일자 뒤돌아봤고, 곧바로 경호원이 물체를 밀쳐낸 뒤 방탄 커버를 펼쳐 들어 총리를 감쌌다. 물체를 던진 20대 남성 용의자는 주변 시민 등에게 곧바로 제압된 다음 경찰에 체포됐다. 폭발물이 땅에 떨어지고 52초 뒤 “펑” 하는 폭발음이 났지만 기시다 총리는 그 전에 현장을 빠져나갔다.
일본 경찰은 체포된 용의자가 일본 효고현에 거주하는 24세 남성 기무라 류지라고 확인했다. 용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경찰은 용의자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사건 동기 등을 수사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3일 후반부 통일지방선거 및 5개 지역구 중·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원 유세를 하던 중이었다. 그의 유세 일정은 14일 집권 자민당 홈페이지와 후보 소셜미디어 등에 공개돼 있었다.
기시다 바로뒤 떨어진 폭탄 52초후 ‘펑’… 24세 범인 묵비권 행사
기시다 유세중 ‘파이프 폭탄’ 테러
54세 어부가 현장서 범인 쓰러뜨려
범인 메고있던 배낭서 칼도 나와
日 내달 G7정상회의 앞두고 비상
“이 사람이다!” “뭐 하는 거야!”
15일 오전 11시 26분경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사이카자키 어항(漁港)의 한 행사장. 근해 어업을 주로 하는 지방 소도시 조용한 항구 마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이곳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향해 뒤쪽에서 날아온 쇠파이프 형태의 물체가 땅에 떨어지자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물체를 던진 기무라 류지(24)는 곧바로 주위에 있던 어부와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했다. 떨어진 물체에서 수십 초 뒤 ‘펑’ 하는 폭발음과 연기가 피어오르자 사람들은 “도망쳐” 등을 외치며 피했다. 총 52초. 9개월 전 나라현 참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격으로 숨진 악몽이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 쇠파이프 형태 물체 투척 52초 뒤 ‘펑’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전 어항에 도착해 시민들 앞에서 해산물을 시식하며 “맛있다”고 한 뒤 수십 m 떨어진 유세장으로 걸어갔다. 연설을 시작하려던 찰나 사람들 머리 위로 은색 쇠파이프 형태 물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들어 총리 뒤 불과 30cm가량 거리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뭐지” 하며 웅성댔고 경호원은 방탄 커버로 이 물체를 빠르게 밀쳐낸 뒤 총리를 에워쌌다.
그때 빨간 상의에 조끼를 입은 어부 니시데 씨(54)가 기무라에게 다가갔다. 기무라는 두 번째 투척을 하려는 듯 한 손에 또 다른 쇠파이프 형태의 물체를 쥐고 다른 손엔 라이터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었다. 니시데 씨는 기무라의 머리를 한쪽 팔로 감아 조이며 쓰러뜨렸다. 곧바로 경호원과 경찰들, 다른 어부가 달려들어 그를 땅바닥에서 꼼짝 못 하게 제압했다. 기무라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채 질질 끌려 나갔다.
15일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서 선거 유세 중이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향해 사제 폭발물을 던진 24세 남성 기무라 류지가 제압된 채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와카야마=AP 뉴시스
경찰은 기무라를 위력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변호사가 오면 말하겠다”며 사건 동기를 비롯해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당시 그가 메고 있던 회색 배낭에서는 13cm 길이의 과일 깎는 칼이 발견됐다. 폭발물이 불발됐을 때 다른 방식으로 위해를 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16일 오전부터 그의 효고현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화약으로 보이는 물품과 컴퓨터를 비롯해 종이상자 10여 개 분량의 자료를 확보했다.
기시다 총리는 유세 현장에서 용의자를 제압한 어부들에게 전화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초등학생 때 유도를 배웠다는 니시데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는데 왼쪽 앞에 있던 남성이 무언가 던지는 걸 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잡았다. 9개월 전 아베 전 총리 사건이 떠오르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전·현직 총리 대상 잇단 테러에 충격
비교적 치안이 잘 유지된다고 평가받는 일본에서 손수 제작한 총과 폭발물로 9개월 새 전·현직 총리의 목숨을 노리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테러 전문가 이타바시 이사오 공공정책조사회 연구센터장은 15일 NHK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현직 총리를 목표로 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며 “(폭발물이) 총리 바로 옆에 떨어진 것은 향후 경호에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쓰인 폭발물은 쇠파이프에 화약을 채운 일명 ‘파이프폭탄’으로 온라인에서 쉽게 제조법을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살상용 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기시다 총리는 16일 오이타현 등에서 선거 지원 유세를 이어갔다. 현장에는 경찰이 연단 주위를 에워싸고 청중이 모이는 장소를 지정하는 등 경호 태세가 더 강화됐다. 이번 사건이 23일 지방선거 후반부 및 중·참의원 보궐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 직후 참의원 선거에서는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이 압승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