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반, 유세장, 사제무기… 아베 피습때와 ‘판박이’
[日총리 겨냥 폭발물 테러]
전-현 총리, 유세중-직전 공격 당해
인터넷에 일정 공지된 점도 비슷
지난해 7월 8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사제 총에 피격당한 직후 쓰러져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15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겨냥한 폭발물 투척 사건은 지난해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피격 사망 사건과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 9개월 시차를 두고 전·현직 총리가 시간, 상황, 용의자 신상 등이 비슷한 공격을 당한 것이다.
먼저 발생 시간과 장소다. 두 사건 모두 오전 11시 30분경 도쿄가 아닌 지역의 선거 유세장에서 벌어졌다. 기시다 총리는 23일 중·참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 지원을 위해 와카야마현을 방문했다가 연설 직전 공격당했다. 아베 전 총리도 지난해 7월 8일 나라현에서 자민당 참의원 후보 지원 유세를 시작한 직후 총에 맞았다.
다른 일정과 달리 집권 자민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전 공지되는 유세 일정이었다는 점도 같다. 일본 당국은 아베 전 총리 사건 이후 경호 체계를 강화했지만 유권자와 가까이 만나는 대낮 야외 유세장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범인이 남성이며 사제(私製) 무기를 사용한 점도 닮았다. 이번 사건 용의자 기무라 류지(24)는 20∼30cm 길이 쇠파이프 모양 사제 폭발물을 직접 만들었다. NHK방송은 수사 당국을 인용해 “용의자가 지닌 원통 모양 폭탄 2개 중 1개는 현장에서 터졌다”며 “통 양쪽 밖으로 도화선 같은 것이 나와 있었다”고 전했다. 아베 전 총리 저격범인 전 해상자위대원 야마가미 데쓰야(41)도 목판과 금속통을 테이프로 고정해 직접 만든 권총을 썼다.
이번 사건이 아베 전 총리 피습 사건을 모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소셜미디어에는 야마가미를 향한 동정과 찬양 여론이 퍼지기도 했다. 간사이국제대 나카야마 마코토 교수는 산케이신문에 “둘 다 일국 총리를 노린 ‘론 오펜더’(단독범)로 보인다”며 “이런 범죄의 싹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지가 향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아베 피습후 대책 내놨지만… 또 뚫린 요인 경호
[日총리 겨냥 폭발물 테러]
폭발물 든 범인, 총리 접근 못막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폭발물 투척 사고 이후 인근 와카야마역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앞서 기시다 총리의유세가 예정됐던 곳에서는 한 남성이 폭발물을 던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기시다 총리는 별다른 부상은 당하지 않았다. AP 교도/뉴시스
지난해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사제 총에 맞아 숨진 지 9개월 만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에 대한 사제 폭발물 투척 사건이 발생하자 총리를 비롯한 요인(要人) 경호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전 총리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경호 체계 증강 대책을 내놨지만 1년도 안 돼 현직 총리 근처까지 폭발물을 소지한 남성이 아무런 제지 없이 접근한 것이다. 폭발물이 바로 터졌거나 총리 몸에 맞았다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원내각제 일본에서는 주요 선거 때마다 총리가 전국 유세에 나선다. 그러다 보니 총리가 불특정 다수에게 너무 가깝게 노출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아사히신문은 16일 “아베 전 총리 사건 이후 경호 방식을 바꿔 경찰청과 현지 경찰이 사전 점검하고 확인하지만 유세 특성상 불특정 다수와 정치인을 완전히 분리하는 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사건에 앞서 경찰 등이 현장을 점검했지만 개방된 장소이다 보니 청중 소지품 검사나 금속탐지기 체크 등은 없었다.
5월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호 문제도 큰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자국 전문가를 인용해 “일본이 안전한 나라라는 신화가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며 “폭력 행위가 다른 세력에 의해 확대, 반복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본 전체가 보안과 안전 보장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찰은 16∼18일 가루이자와에서 열리는 G7 외교장관 회의에 대비해 경력을 증원하고 회의장 주변 일반 차량 통행을 제한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