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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세이클럽 赤月魅惑
헿ㅎ 난밥많이무긋쓰니까 한식부폐가서싹쓰리해쑤니까 산책좀다녀올게..
문제시 댓글부타캐여
반지 - 붉은 영혼의 계약
그자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발끝부터 천천히 사라져갔다.
그림자같은 그자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광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이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허공에 그자의 머리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을 때 이제껏 감겨있던 그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비명을 지를새도 없이 그자의 홍옥같은 붉은 눈동자가 사라지며 말소리만이 남았다.
-계약은 성립되었습니다-
띠리리리..
탁!
더듬더듬 손을 뻗어 알람을 꺼버린 현이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습관처럼 욕실로 향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으며 거울을 보던 현이는
문득 화들짝 놀라며 수건을 들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가느다란 반지가 눈 속에서 크게 각인되었다.
섬짓하도록 붉은 홍옥이 꿈속에서 보았던 그자의 눈동자 색깔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 .. 그럼.. 그게 꿈이 아니란 거야..?!"
찬찬히 반지를 돌려보며 중얼대던 현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뭐? 에이.. 꿈꾼거 가지고 우기지 좀 마!!"
"진짜라니까.. 와.. 미치겠네. 나도 안 믿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이렇게 반지까지 끼워져 있더라구.."
현이는 진호의 눈앞으로 반지 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진호는 처음에는 못내 미심쩍어 하다가 현이가 하도 우겨대고,
또 반지까지 보자 믿어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거.. 루비잖아! 나도 한번 껴보자!"
"근데.."
현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반지가 안 빠져."
"뭐?"
"어떻게 끼워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리 뺄려고 해도 빠지지가 않아.
뭐 녹이 슬거나 그러진 않으니까 그냥 두기로 했어."
" .. 그래? 좀 찜찜하다."
"뭐가?"
현이가 멀뚱해진 표정으로 진호를 바라보자 진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냐.. 그냥 해본 소리였어."
언젠가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의 핏줄이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진호는 현이에게 그 말을 하려다가
현이가 기분 나빠 할까봐 관두고 말았다.
"근데 그 사람.. 아니 악마? 여튼 그 자가 네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대신 넌 뭘 주기로 한거야?"
"내가 죽으면 내 영혼을 가져가겠대."
"뭐?"
아무렇지도 않게 섬뜩한 소리를 내뱉는 현이를 보며 진호는 잠시 아찔해져옴을 느꼈다.
"너 미쳤어?"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잖아. 그럼 된거 아냐?"
자신의 걱정스러운 맘을 몰라주고 화를 내던 현이 때문에
진호는 집에 돌아와서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의고사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고3이라는 버거운 책임감까지 어깨를 짓누르는데
가장 친한 현이까지 뭔가 문제가 생긴것 같다.
현이는 성적이 중하위권이다.
그 성적으로는 현이가 가고 싶어하는 대학엔 어림도 없다.
항상 공부 잘하는 진호를 부러워하며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현이여서 항상 걱정됐었는데..
오늘 현이가 해준 믿지 못할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가 꾸벅꾸벅 졸던 현이는 괘종시계가
3시를 울리자 세수라도 하고 올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한다.
순간 방안이 정전이 된 것처럼 캄캄해지더니
허공에 소용돌이가 생기며 발끝부터 그자가 나타났다.
처음엔 긴 머리의 여자로 보였다가 어느샌가 또 금발의 아이로
보이곤 하는 모습을 알 수 없는 그자는 느닷없이 현이에게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현이가 죽으면 그 영혼을 가져가는 대신 현이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현이는 망설일 새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시험성적을 올려달라고 말했고 자신이 죽는다면 영혼을 가져가도 좋다고 계약했다.
한낱 꿈인줄 알았던 그자와의 계약이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 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죽은 다음에 영혼이 무슨 상관이냐며 대학만은 꼭 가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현이를 앞에 두고 진호는 이 상황을 어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방관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채 모의고사 날이 되었다.
아무리 밤새워 공부를 해도 머리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서
머리가 무겁기만 한 현이는 모의고사 문제지를 받자마자
빨리 풀고 잘 생각으로 문제를 스윽 훑어보았다.
손도 못 댈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현이는 여느 때처럼 아무답이나 찍어버릴 생각으로 OMR답지를 꺼내들었다.
막 답을 체크하려는데 마침 방송에서 듣기 방송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눈치 때문에 듣는 척이라도 하려던 현이는 방송을 듣고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여자 성우가 친절하게도 1번부터 차근차근 답을 불러주고 있었다.
현이는 떨리는 손으로 여자 성우가 불러주는 답을 받아 적으면서
방송을 같이 듣고 있는 반 친구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다들 방송에만 집중 할뿐 누구도 자기처럼 답을 받아 쓰거나
놀라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미친건가. 시험 방송중에 답을 듣고 있다니..'
순간 반짝하고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현이는 악마인지 뭔지 모를 그자와의 계약을 생각해냈다.
방송은 현이가 언어영역 60문제의 답을 모두 체크하자 끝났고,
현이는 문제지와 답지를 비교해가며 답을 맞춰보고는
기쁨에 겨워 당장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음 시간인 수탐I 영역은 방송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칠판에 한가득 답이 적혀있어
이번에도 현이는 아무 문제 없이 답을 적을 수 있었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다른반인 진호가 현이를 찾아왔다.
"현아! 모의고사 어땠니? 잘 봤어?"
"말도 마. 나 이번에 400점 만점이야!"
" .. 뭐?"
"못 믿겠지? 나도 못 믿겠는데 어떻게 너더러 믿어달라고 그러겠니.
그 계약, 그리고 이 반지 때문에 시험지만 받으면 답이 그대로 보여!"
다음날, 모의고사 점수가 나왔다.
등교하자마자 담임의 호출로 현이는 교무실로 달려갔다.
"현아, 너 이번에 모의고사 점수가.."
" ..네.. 400점 만점이죠."
뿌듯해하는 현이와는 반대로 담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만점이라.. 지난번 전교 1등이던 성민이가 이번에
386점을 받을 걸 보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인데..
현이 너.. 지난번 모의고사 점수가 몇 점이었지?"
담임의 말하는 의도를 알아차린 현이의 표정이 굳어져가고 있었다.
" ....."
"내가 기억하기론 넌 지난번에 240점을 겨우 넘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3주 사이에 만점이라..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니?
아니.. 뭐 네가 평소에 열심히 한다는 건 알고 있다만.."
"이번 모의고사를 제가 컨닝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불쾌해진 현이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보통 때보다 두배, 세배는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지금 컨닝을 의심하고 계시죠? 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너무도 억울해하는 현이를 보자 그제야 선생님은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런.. 내가 말을 실수한 것 같구나. 그런 뜻이 아니였단다 현아..
400점 만점이라니.. 이런 기쁜 일이 또 어디있겠니.
오늘 내가 널 부른 건 앞으로도 더욱 분발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란다."
"선생님. 계속해서 이렇게 하면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거죠?"
"그럼. 꼭 그 대학만이 아니라 더 좋은 대학에서 널 데리고 가려고 난리일거다."
현이의 얼굴에 살풋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 ..계속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교실로 돌아오자 반 친구들이 현이의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 현아. 너 요번에 만점이라며?"
"너 머리에 총 맞았냐? 짜식 그렇게 열심히 할때부터 알아봤다. 축하해!!"
평소 공부는 좀 못했지만 남달리 사교성이 좋았던 현이는
여러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축하를 받았다.
애들이 현이 주변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자 2분단 맨 앞줄에 앉은
성민이가 문제집을 풀다말고 집중이 안되는지 소리를 빽 질렀다.
"조용히 좀 해. 지금이 쉬는 시간이야? 공부하는데 방해하지마!"
평소 같으면 전교1등에 반장이기도 한 성민이의 말에 다들 기가 팍 죽었을 테지만
오늘은 각자 자리를 찾아 흩어지며 다들 한마디씩 해댔다.
"성민이 저 녀석, 너한테 전교 1등자리 뺏긴거 속상해서 저러는 걸꺼야."
" ..그.. 그래.."
영혼과 맞바꾼 계약이라지만 성민이한테는 조금 미안해지는건 사실이었다.
수능이 보름 가까이 남았다.
현이는 반지를 얻은 후 6개월동안 계속해서 400점 만점의 행진을 계속해왔다.
물론 전교1등 자리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예전에 자기가 희망하던 대학이 아니라
더 좋은 대학까지도 넘겨다 볼 욕심까지도 생겼다.
계약을 하고 반지를 얻었다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학생들같이 초조하지는 않았다.
시험때면 으레 그래왔듯이 시험지만 받으면 눈앞에
답이 좌악 펼쳐졌고 그걸 잘 베껴 쓰기만 하면 만점이니까!
수능 치기전 마지막 모의고사였다.
거의 수능이라 생각하고 치는 시험이라 다들 긴장했다.
1교시 언어영역은 항상 여자 성우가 1번부터 60번까지 답을 불러주었다.
현이가 여느때처럼 여자성우가 불러주는 답을 받아 적고 있는데
국어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섰다.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푸는 것을 주욱 둘러보시던 선생님께서 현이 자리 앞에 와서 서셨다.
답을 받아 적던 현이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문제지를 꼼꼼하게 읽는 척 했다.
현이옆에 섰던 선생님께서 현이가 말릴 새도 없이 현이의 답안지를 들고 훓어보기 시작했다.
어느순간, 선생님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졌다.
답안지를 내려놓으며 선생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현, 시험 끝나고 나한테 좀 왔다가 가도록 해라."
핼쓱하게 질린 채 교실을 나서는 국어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현이는 어리둥절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여자성우가 다시 불러주는 답을 받아 적기에 바빴다.
"이현, 솔직히 말해봐라. 이 문제 어떻게 푼거니?"
시험이 끝나고 국어 선생님을 찾아간 현이 앞으로 선생님은 대뜸 문제지를 들이대셨다.
듣기평가 문제였다.
"이거 듣기 평가 문제잖아요. 못 풀 이유가 없죠. 듣고 답하는 건데.."
"그냥 찍은 게 아니라 듣고 답한 거라고?"
국어 선생님의 말투가 풍기는 뉘앙스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현이는 고개를 들어 국어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뭐가 뭔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의 대답 하나가 매우 중요하단 걸 알 수 있다.
" ..실은.. 답 안쓰기가 뭐해서 그냥 아무거나 찍은 거예요."
"그래! .. 그럼 그렇지.."
국어 선생님은 긴장이 풀린 것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오늘은 방송시설이 고장나서 듣기평가 방송이 나가지를 못했는데
네가 듣기 평가 문제를 모두 그것도 모조리 정답으로 체크해놓았으니..
정말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구나."
교무실을 나서면서 현이는 손가락에 끼워진 빠지지 않는 반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듣기 방송이 안 나왔다구..
아까 대답을 잘못했으면 큰일날뻔 했구나..
앞으로는 이런 상황도 고려를 해서 조심해야겠는걸..'
시계를 보니 12시 반이었다.
진호는 주섬주섬 풀던 문제집을 정리하고는 가방을 메고
텅 빈 교실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전등 스위치를 눌러 껐다.
적막감에 쌓인 복도 끝 1반만이 아직 환하다.
진호는 1반을 지나치며 힐끔 안을 들여다보았다.
2분단 앞에 앉은 성민이와 4분단 끝에 앉은 현이가 보였다.
"현아!"
진호는 뒷문에 서서 조용히 현이를 불렀다.
현이는 표정없이 진호에게 눈길을 한번 주고 나서 다시 문제를 푸는데 열중한다.
"먼저가!"
억양없는 말투에 진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아섰다.
싸한 겨울 내음에 외투를 추스르며 학교를 나서는 진호의 걸음이 착잡하다.
반지를 얻고 난 후 확실히 현이는 변했다.
성적뿐 아니라 생활태도,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까지도..
전교 1등 자리를 탈환하고 난 녀석은 친구들을 무시하고 멀리하는 것 같아 보였다.
심지어는 진호까지도..
공부에 미친 사람같이 성민이와 함께 밤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하곤했다.
반지를 얻기 전 현이와 친했던 많은 아이들이 이제는 현이를 피하거나 뒤에서 욕을 해댔다.
진호는 할 수만 있다면 현이의 반지를 없애버려서라도 계약을 파기하고픈 심정이었다.
진호를 혼자 보내고 계속 공부에 열중하던 현이는 눈앞으로
톡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에 놀라 무의식중에 코에 손을 가져다댔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목으로 뜨뜻한 피가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더듬더듬 가방속에서 휴지를 찾던 현이에게 누군가 손수건을 쥐어주었다.
성민이었다.
"좀 쉬어가면서 해."
" ..고맙다.."
현이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성민이가 머뭇머뭇 거리다가 현이에게 말을 꺼냈다.
" .. 근데 그거 사실이야?"
" ..뭐?"
" ..너 그 반지 말야. 그걸 끼고 시험을 치면 답이 보인다며..?"
" ....?!"
"풋.. 놀란척은.. 농담이야.. 그런 반지가 어딨겠니.
그냥 네가 요즘 갑자기 성적이 오르니까 그런 루머가.."
"너!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성민이는 별안간 화를 내는 현이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 ..저.. 그게.."
"어디서 들었어.. 말해!"
"네가 방송도 안나온 듣기평가까지 맞추고 또 성적이 오른 후부터
계속 그 반지를 끼고 다니니까 그런 루머가 도는게 당연하지 않겠어..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생각...야! 무슨짓.. 켁켁.. 현아.. 야.."
입안 가득 짭짤한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문득 정신을 차린 현이는 쓰러져 있는 성민의 목에
손을 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아직 멈추지 않은 코피가 입안으로, 바닥으로 방울지며 떨어지고 있었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성민이의 손수건은 성민이의 목을 조르는데 사용됐음이 분명하다.
흰 눈자위를 까뒤집은 채 목에 졸린 자국에 선명한 성민이는
확인해보지 않아도 죽은게 분명한것 같았다.
현이는 여전히 코피를 뚝뚝 흘리며 성민의 시체로부터 뒷걸음쳤다.
어떻게 상황을 수습할 수가 없다.
손수건을 주워들어 닥치는 대로 핏자국을 지우고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갔다.
수능날은 역시 다른 날보다 한결 추웠다.
고사장으로 들어서며 진호는 고사장에 배치된 사복 형사들을 겁먹은 눈으로 주욱 훑어보았다.
일주일전 그렇게 현이를 혼자 두고 가는게 아니었다.
아니, 현이에게 마지막으로 전화가 걸려왔을때 어떻게든 자수하라고 설득시켜야 했다.
반지의 비밀을 알아버린 성민이를 살려둘 수 없었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현이에게 진호는 아무런 말도 해줄수가 없었다.
내내 침묵을 일관하고 있던 진호에게 현이는 말릴새도 없이
전화를 끊으며 마지막 말을 내뱉았다.
" ..나 .. 일주일 뒤에.. 수능치러 갈꺼야.. 꼭.."
다음날 학교는 성민의 죽음과 현이의 실종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형사들이 수사에 나섰고 결국에는 진호로부터
현이가 수능을 치러 나타날 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거의 모든 수험생들이 입실을 완료한 것 같았다.
시험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비어있던 자리는 헐레벌떡 뛰어오는
수험생들에 의해 하나 둘 채워져갔다.
세번째 줄에 앉은 진호는 마지막 줄 첫째 칸 비어있는 현이의 자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수능치러 갈꺼야.. 꼭'
현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날벌레 떼처럼 머릿속에서 웅웅됐다.
시험 감독이 들어오고, 사복형사까지 배치된,
보통때보다 2배는 더 살벌해진 고사장으로 문제지가 조용히 나눠졌다.
언어영역의 듣기방송이 약간 지지직거리며 시작되었다.
초조한 마음이 식은땀이 되어 자꾸 펜을 미끄러지게 한다.
진호는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켰다.
지금 시험에만 몰두하기에는 너무나 버겁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의 고함소리,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
그러더니 느닷없이 고사장 문이 벌컥 열렸다.
"현아!!"
진호는 시험을 치다말고 벌떡 일어서며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쳐 현이를 불렀다.
순간 고사장 내가 조용해졌다.
듣기평가 방송만이 흘러나올뿐, 누구라도 감히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잠시 진호를 응시하던 현이가 굳게 결심한 듯 입을 꼭 다문채
담담하게 고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비어있는 자신의 자리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은 현이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책상위의 문제지를 펼쳐든다.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너무도 태연하게 답안지에 답을 체크해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미 지나가버린 듣기평가 1번부터!!
"체포해!"
사복 형사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부수는 말을 내뱉았고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이 그제야 작동한다.
"이것놔요!"
손목에 수갑을 차면서까지 끝끝내 현이는 사인펜과 답지를 들고 있다.
"시험 치고 갈게요.. 네? .. 저 대학 꼭 가야 되거든요.. 제발 시험만 치게 해주세요."
막무가내로 끌어내는 형사들의 억센 손길에 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손에 쥔 답지를 놓을 줄을 모른다.
"시끄럿! 조용히 해!"
"시험 치고 갈게요.. 시험만 치고.."
고사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결국 현이는 형사들에게 끌려
복도 끝으로 사라지면서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현이를 따라 고사장 밖까지 나왔던 진호는 형사의 제지에 의해 고사장으로 돌아가다가
복도에서 아직도 온기가 붙어있는 현이의 사인펜을 발견하고는 주워들었다.
진호의 눈 속에 담긴 사인펜 두 개가 그의 볼을 타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재판 날짜가 확정됐다.
정신병자 판정을 받지 않는 이상 사형이거나 무기징역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아는 현이였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컴컴한 독방에 쓰레기처럼 구겨 박혀져 있는
그의 모습에서 더 이상 예전의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암울한 미래의 절망만을 눈 속에 가득 담은 채 그가 시선을 허공에 그덕그덕 걸어놓는다.
섬짓하도록 붉은 독기를 뿜어대는 루비 반지가 여전히 그의 넷째 손가락에 매달려있다.
" ..끝이야.. 끝.. 알겠어? 끝이야.. 후훗.."
붉은 반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이 흐른다.
반지위로 투명한 그의 눈물방울들이 묻어났다.
" ...이런걸 원한게 아니었어. 이젠.. 끝내고.. 싶어.."
현이는 빛 하나 들지 않는 절망 속에서 마지막 결단을 내리고는 한참을 오열했다.
곧 그는 담담해진 표정으로 반지가 끼워진 넷째 손가락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
허공에 부옇게 소용돌이가 생기며 그자가 발끝부터 천천히 나타났다.
피가 철벅거리는 바닥을 밟고서 그자가 몸을 구부려
현이의 입속에서 반지를 찾아 꺼낸다.
퀭했던 그자의 비어있던 눈동자 속으로 딱 맞게 반지가 들어가
어느새 홍옥같은 눈동자가 된다.
-계약대로 당신의 영혼을 가져가겠습니다-
그자가 곧 피가 흘러내릴 것 같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현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창백한 그자의 입가에 핏빛 미소가 얼핏 어른거렸다.
현이가 손가락을 깨물어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이의 입 속에서 끊어진 손가락은 찾았지만 끼워져 있던 루비반지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가끔 가위를 눌리곤 한다.
수능이 끝난 후 여러모로 충격이 컷었던 나는 5개월간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요양했다.
나는 녀석이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던 대학에 합격했지만
치료 때문에 입학식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1학기가 시작되고 한달만에 처음 듣는 수업이다.
현이를 암울한 절망에서 끌어내주지 못한 것이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지만, 이젠.. 묻어두고 싶다.
"안녕! 처음보는 얼굴이네~ 너도 우리과니?"
한 여자애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음.. 몸이 안 좋아서 좀 쉬었었어.. 난 한진호라고 해."
"그래?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난 신가인이야."
그녀가 방긋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무심코 그녀의 내밀어진 손을 잡으려던 나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녀의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루비 반지의 붉은 독기가 시리도록 눈을 찌른다.
첫댓글 재밌당 ㅜㅜ씁쓸하기두하고~ 잘 읽었어!
안타깝네 왠지.... 잘읽었어 !!
진짜수능이뭐라고..고마워언니!
ㅠㅠㅠ 잘 읽었어.. 씁쓸한 내용이다 ㅠㅠ
우리나라서만있을소설주제같아요...참 입시스트레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