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부서지기 쉽거든요."
영남알프스 7봉 일주와 백두대간 일곱 번째 종주(우두령~황악산~추풍령~웅이산~큰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시대 가장 논쟁을 즐겼던 철학자 가운데 첫 손 꼽힐 만한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부음을 접했다. 영국 BBC는 고인이 지난 19일(현지시간) 82세를 일기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며 지난해 12월 회고록 '줄곧 생각 중'(I've been thinking) 출간에 즈음한 인터뷰 내용 중 위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다. 인간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가 인공지능(AI)을 새로운 위험으로 보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었다.
고인은 지난 반세기 가장 예리하고 가장 선지적인 지성인으로 꼽힐 만하다. 평생에 걸쳐 인간의 마음과 의식에 대한 커다란 의문점들을 파고들었다. 수십권의 책을 써냈고 인지과학과 마음에 관한 철학, 진화이론 등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합리성과 회의론을 열정적으로 옹호했던 지식인이었다.
"만약 우리가 지식을 위해 갖고 있는 이 멋진 기술을 잘못된 정보를 위한 무기로 바꾼다면, 우리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며, 우리가 정보를 받았는지와 잘못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편집증에 시달리거나 지나치게 회의적이 되거나, 그저 무관심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둘 다 매우 위험한 길이다. 그들이 우리를 뒤쫓고 있어서다."
1942년 3월 28일 외교관이자 이슬람사 학자였던 부친과 편집자이자 교사였던 모친 사이에서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데닛은 1963년 하버드대학 철학 학사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학으로 건너가 철학자 길버트 라일에게 배웠다. 옥스퍼드 석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첫 저서 '내용과 의식'(Content and Consciousness)을 1969년 출간했다. 1965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어빈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971년 터프츠대학으로 옮겼다.
고인은 철학 연구의 전통적 방식을 탈피, AI와 신경과학 및 인지심리학에도 밝았다. 여러 학문을 독학하며 마음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해야 생산적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태도는 전통적인 철학 연구자들과 달라도 한참 달랐고, 동료들은 그를 급진주의자로 여겼다. 하지만 과학을 통해 두뇌의 메커니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자 여러 학문 분야와 제휴하는 그의 연구방식은 더욱 많은 지지를 얻게 된다.
국내 지식인 사이에 그의 존재감이 돋보인 것은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1941~)를 옹호하고 동맹군이 된 것이 계기가 됐다.
터프츠 대학 인지연구소 소장을 지낸 데닛의 저서 '설명된 의식'(Consciousness Explained, 1991)과 '다윈의 위험한 생각' (Darwin's Dangerous Idea,1995)은 마음이 없는 자연선택 과정이 두뇌와 인간 의식의 발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들여다본다. '마음의 종류'(Kinds of Minds, 1996)는 이 현상들을 계속 탐구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썼는데, 마음은 오로지 두뇌의 작용과 관련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는 유물론 관점을 한 걸음 진전시켰다. 그 밖에 '자유의 진화'(Freedom Evolves, 2003), '달콤한 꿈 '(Sweet Dreams, 2005), '주문 깨기'(Breaking the Spell, 2006) 등이 있다.
그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의식이 나왔다고 굳게 믿었다. 고인은 지난 2009년 5월 한국일보가 주선한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학적 개념이다. 물리학과 화학을 마음, 의도, 생물, 시, 윤리학과 함께 하도록 한다. 모든 생명체의 결실들, 인간의 문화와 예술, 열정까지도 포함한다. 이 모든 것들이 기적이 아니라 어떤 물질의 조합으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탄소 원자로부터 시가 나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다윈"이라고 단언했다.
한겨레는 2005년 9월 1일 그의 사상을 집중 조명하며 침팬지, 인간, 그리고 로봇은 근본적으로 같다고 봤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다윈 알고리듬' 혹은 '다윈 기계'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지능과 의식이 출현했듯이 동일한 과정을 통해 로봇도 지능과 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최재천 교수와의 인터뷰 앞뒤로 고인이 사흘 연속 하버드대학 특강에 나섰는데 다른 연구자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신랄했던지 도마 위에 오른 스튜어트 카우프먼(생명의 창발성 연구로 이름을 알린 복잡계 연구자)이 30분을 넘기지 못해 강연장을 박차고 나간 일로 원성이 자자했다.
1997년 '뉴욕 서평'을 통해 하버드대학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와 벌였던 설전은 진화학도들에겐 전설로 자리잡았다. 굴드는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통해 가해진 비판에 분을 참지 못하고 데닛을 '도킨스의 애완견'이라고 놀렸고, 이에 데넷은 굴드에게 '뻥쟁이'라 응수한 일화도 있다.
그의 글쓰기도 남다르다. 전문가를 지향하지 않는다. 언제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적절한 예제, 그럴듯한 비유, 고품격 농담 등이 넘쳐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연구작업을 '직관 펌프질'로 규정하곤 했다. 대중들의 직관을 펌프질해 그릇된 통념들을 날려버린다는 뜻이다.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철학자였지만 몸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메인주의 농장으로 달려가 흙을 땅을 파고 과일을 담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철학자로 '생각의 밭'을 일궜다. 열일곱 살에 이미 비트겐슈타인과 데카르트의 저서를 읽고 오류를 찾아낸 천재 소년이었다. 범생이 천재들과 달리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온갖 재주를 자랑했다. 조각가, 재즈 피아니스트, 테니스, 스키, 카누 선수, 심지어 항해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30년 동안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편씩의 논문을 써댄 열정적인 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