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초보자를 위한 추천음반 두번째로서 Chuck Mangione의 77년도 명반 <Feels So Good>을 소개합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Grover Washington Jr.의 <Winelight>가 밤에 어울리는 성숙한 분위기의 재즈라면 이번 <Feels So Good>은 반드시 아침에 들어봐야만 할 앨범입니다. 그만큼 리듬에 적당한 활력이 있어 상쾌하면서도 멜로디나 악기의 음색이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와서 잠에서 덜 깬 몸과 마음을 일으키면서 오늘 하루를 차분하게 계획하게 만드는 분위기의 음반입니다.
우선 자켓을 보시면 까만 모자를 쓰고 구레나룻을 기른 작은(그의 키가 작은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표정을 짓고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거인일리는 없다는 필자의 인상을 적은 것임) 아저씨가 금관악기를 하나 품에 꼭 안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더없이 착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영화배우라도 표현해내기 힘들듯한 '행복'을 연출하고 있는 이 사람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Chuck Mangione입니다. 그가 품에 안고 있는 악기가 그의 음악적 분신인 Flugelhorn이구요. 그의 인상처럼 대부분의 그의 음악도 소박하고 평화로운 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면에 번득이는 음악적 영감이 숨쉬고 있슴을 언제나 느낄 수 있기에 처음 듣는 사람이나 오래 음악을 들은 사람 가릴 것 없이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음반을 걸고 타이틀 곡인 첫 곡에 바늘을 올려 놓으면 가녀리면서도 포근한 취주악기의 소리가 단순한 기타반주에 실려 흐릅니다.
이것이 바로 Flugelhorn의 소린데 악기나 연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저로서도 다소 음폭이 좁지만 음색에 있어서 특이한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악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도입부에 흐르는 Flugelhorn의 느린 가락이 바로 이 곡의 주제로 금방 친숙해지면서 따스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는 멜로디 입니다. 리듬파트가 가세한 짧은 간주에 이어 다시 한 번 주제를 반복하는데 이번에는 다소 빨리 연주하면서 리듬악기들이 강조된 형태를 취합니다. 똑같은 주제를 이번에는 기타가 이어받아 연주하는데 사실 이 곡에서 가장 감칠맛나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Grant Geissman의 기타입니다. 주제를 단순하게 멜로딕하게 연주하는 이 부분에서는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면서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담백한 음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기타가 끝나면 색스폰 독주가 잇따르는데 제2주제라고 할
만한 부분으로 애드립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두드러지기 보다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뒤를 이어 이 곡의 클라이막스인 기타 독주가 이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Grant는 제2주제를 변주하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그렇다고 주제를 아주 이탈하는 것도 아닌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현란한 꾸밈음과 당김음속에서 기타라는 악기가 가진 온갖 오묘한 소리를 들려주는 고난도의 연주력을 보여줍니다. 기타의 아슬아슬함이 아찔한 수준에 이른후 다시 처음의 주제를 Chuck가 연주하면서 한숨 돌리고 애드립이 이어지는데 Flugelhorn과 Saxophon, 두 대의 관악기가 서로 보완하면서 서로를 지양하는 마치 다른 색깔의 실 두가닥이 얽히는듯한 연주로 듣는 재미를 선사하고 주제의 재현과 애드립을 반복하면서 곡을 마무리 짓습니다.
다음 곡인 <Maui-Waui>는 10분여에 이르는 긴 곡인데 뚜렷한 멜로디가 없이도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가는 특이한 곡입니다.
사실 이 음반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곡에 끌리게 되는데 저는 이곡과 <Feels So Good>의 관계를 소설과 시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하곤 합니다. 소설이 뚜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작가의 말솜씨에 의해 차근차근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반해서 시는 독특한 시어의 울림과 배열을 통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문학의 장르입니다. <Feels So Good>이 소설이라면 이 곡은 시처럼 물흐르듯
평화로운 음의 배열을 통해 이미지를 그리는 시와도 같은 곡입니다. 잘 들어보면 주제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없는 것도 아니고 변주나 애드립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얼른 눈에 띄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의도적인 윤곽의 흐림(blunting)에 의해 작은 변화만을 준 악절들을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느긋한 평화로움이라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곡입니다. 이런 구성을 취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슷한 느낌의 악절들이 반복됨으로 인한 지루함을 피하는 것인데 Chuck의 음악적 리드와 밴드의 역량이 무리없이 소화해 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음 곡은 아마도 TV 드라마로 기억되는데 Side Street라는 작품의 주제곡인 <Theme from "Side Street">입니다. 앨범에서 가장 짧은 2분 남짓한 소품이지만 Chuck의 반복되는 주제 연주 사이사이의 공간을 기타와 리듬파트가 휘몰아치는듯한 간주로 팽팽하게 채우고 있는 군더더기 없이 멋진 곡입니다.
뒷면으로 넘어가면 숨바꼭질(숨었든 말았든 내가 찾으러 간다)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가진 <Hide & Seek (Ready Or Not Here I Come)이 등장합니다. 이 곡은 특이한 점이 많은데 우선 주제부가 짧고 단순하여 베이스, 드럼, 기타등이 리듬을 연주하고 Chuck의 일렉트릭 피아노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구성의 짧은 악절이 곡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골격의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서 들려주는 일렉트릭 피아노의 음색과 멜로디는 블루스 피아노의 거장인 Booker T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여 이채롭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악기는 바로 Charles Meeks의 Bass입니다. 처음 도입부에서부터 장난스러운 리듬을 두드리며 선보이는 그의 Bass 연주는 묵직한 경쾌함으로 차곡차곡 리듬을 접어내는 품새가 Boz Scaggs의 <Lowdown>에서 명연을 보여준 David Hungate를 연상시키며, 때때로 멜로디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순발력도 보여줍니다. 주제부가 반복되는 중간에 세번에 걸친 솔로가 나오는데 (Flugelhorn, Saxophone, Guitar) 마치 프리재즈나 rock을 연상시킬 정도의 격렬함과 분방함을 보여주는 것이 또한 이 곡의 특징입니다. 첫번째 솔로인 Chuck의 flugelhorn은 <Feels So Good>의
순한 음색이 아니라 마치 Herb Alpert의 trumpet을 듣고 있는듯 힘찬 블로윙을 보여주며, 두번째 솔로인 Chris Vadala의 Saxophone도 Chuck의 사이드 맨으로서가 아닌 당당한 솔로 연주자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soprano saxophone의 소리가 Kenny G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시는 것도 재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Grant의 기타 솔로......
각 솔로 연주시 리듬악기들이 주제부에서 보여주는 장난스러움과 차분함에서 돌변하여 수많은 당김음으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격렬한 리듬을 두드려 대다가 다시 주제로 돌아오고하는 모습을 귀담아 들어 보는 것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할 것입니다.
다음 곡은 앨범에서 가장 낭만적인 분위기의 <Last Dance>. 아주 느리고 감미로운 Chuck의 flugelhorn의 소리가 꿈결처럼 펼쳐지다가 중간정도 빠르기의 본래 리듬으로 돌아와 기타와 피아노의 도움을 받아 반복 연주를 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이 곡에 맞춰 사랑하는 연인과 마지막 춤을 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곡의 분위기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것 입니다. (마루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제 안사람이 '따뜻하고 약간 슬프다'고 얘기하는군요. 것두 괜찮은 표현인걸......) 바로 앞 곡에서는 rock에 가까운 격렬한 기타 솔로를 들려준 바 있는 Grant가 연미복을 입고 acoustic guitar를 들고 들어와 청아한 솔로를 들려주고 나면 (여기서도 Grant의 테크닉은 범상치 않지만 이런 곡을 들을때까지 기술적인 면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와인이라도 한 잔 하면서 분위기에 취해보면 되겠지요.) 잠시 후 Chris의 색스폰이 나즈막한 소리로 등장,
감미로움을 더해 줍니다. 그리고 주제의 반복이 시작되면 처음과 같은 반복인데도 왠지 모를 쓸쓸함이 맴도는 기분이 듭니다. 사실 이 느낌은 리듬악기의 연주와 리듬의 미묘한 변화로 인한 효과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몰라도 묘한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하는데 성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사실 어떤 곡에서 분위기의 섬세한 변화가 무엇에 기인하는지를 다 밝혀 버리고나면 곡의 매력이 반감되고 맙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유전자 복제의 문제처럼 그냥 베일에 싸인채로 두는것이 훨씬 나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호르몬과 신경 자극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나면 우리 인생의 모습이 얼마나 황량하겠습니까? 현명한 사람이라면 양파의 껍질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기위해 양파를
없애버리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법입니다. 살짝 가리워진 것들의 아름다움......
이제 Chuck의 flugelhorn 독주가 시작됩니다. 무도회장의 붐비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쓸쓸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는 감미로움의 기억과 함께 혼합되는 듯한 느낌의 독주가 끝나면 이제 주제부의 반복이 계속됩니다. 이 부분에서 Chuck는 곡의 긴장감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일부러 무시한 채 완전히 이완된 반복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곡 후반부의 분위기를 지속시키면서 다음 곡의 역동적인 면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이중의 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다음 곡은 이 앨범의 대미인 문제작 <The XIth Commandment>입니다. 이 곡은 이 앨범보다 4-5년 후 발표된 Chuck의 자선공연 앨범 <Tarantella>에서 한면을 가득 채우는 대곡으로 편곡되어 참여한 연주인들의 극한적인 즉흥연주로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던 곡으로 6분여에 불과한 원곡에서도 리듬의 역동성과 팽팽한 긴장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곡입니다. 다소 심각한 듯한 Chuck의 flugelhorn 연주에 Chris의 flute가 묘한 긴장감을 더해주는 도입부에 이어서 베이스 독주가 묵직하게 연주되고 다시 주제를 재현하다가 몇 번의 주춤거림 끝에 리듬악기들의 애드립이 시작됩니다.
튀는듯한 베이스와 드럼의 연주에 경쾌한 기타가 끼어들어 균형을 잡아주는데 Chuck의 애드립이 시작됩니다. 애상적인 분위기를 품은 힘찬 서곡풍으로 시작하는 그의 연주는 열정적인 리듬과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점점 격렬해지고 결국 리듬에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되어 드럼과 캐스터네츠의 열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호쾌한 원시적 역동성을 연출합니다. 이윽고 모든 악기들의 함성이 한 번, 두 번 터져 나오면서 앨범 전체가 마무리 됩니다.
이 앨범은 지난번에 소개드린 Grover Washington Jr.의 앨범과 함께 재즈 앨범 중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앨범입니다. 그만큼 대중적으로도 호소력을 갖춘 앨범이면서 우수한 퓨전 재즈 앨범에서 보여주는 연주자들의 초인적인 연주 역량과 정확한 호흡의 일치, 전통 재즈의 요소들을 낯설지 않게 재현해내는 친화력 등의 장점을 지닌 꼭 들어 보셔야할 명반입니다. 이 앨범을 추천하면서 저는 여러분들께서 아침마다 이 곡들을 감상하면서 제가 느꼈던 평화로운 상쾌함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정의 공유를 통한 상호 이해와 사랑은 모든 음악의 궁극적인 목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