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한국인의 일상속 종교이야기2/
수난받는 아내의 종교Ⅰ
아내의 예수가 부처, 道師로 보인다
*사주보고 택일한 결혼식과 기독교 하객들
25년 아내와 함께 살면서 미안한 것이 한둘 아니지만 아마 죽는 순간까지 갖고 갈 미안함은 결혼날짜 일것이다. 기독교신자이며 직장 또한 기독교계통(극동아세아방송)인 아내에게 나는 결혼날짜를 12월 25일 크리스마스로 통고했다. 기독교인들의 최대 축제인 성탄절에 결혼한다고 하니 교회에 다니는 처가식구들이나 직장 동료, 그리고 목사님들은 얼마나 황당해 했을까. 아무리 어머니의 택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조금만 상대에 대한 배려를 했더라면 성탄절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은밀한 잠재심리중 서양종교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교회다니는 사람들의 심정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당시 예배를 마치자 마자 허둥지둥 예식장에 들어서는 아내의 동료, 친지, 목사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조차 없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내가 너무 뻔뻔스럽게 느껴져 낯이 달아 오른다. 처가식구들이야 결혼대사에 궁합, 사주도 볼 수 있다는 양해를 했다 치고, 결혼전 웨당샤워로 인상깊고 진정어린 축하의식을 치러 주었던 방송국 직원과 목사님들에겐 배반감마저 들었을 법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런 결정적 과오를 아내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아내가 한번도 이에 대해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이제사 풀어놓는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무척 의아해 할 것이다. ‘그렇게 미안한 심정이었으면 한마디 해주시지’라며 자신도 ‘너무 뻔뻔스럽게 당연시해 말할 필요와 값어치가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결혼식 때부터 이렇게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내가 25년동안 쌓은 파렴치는 대단할 것이다. 이제 조금은 신경쓴다고 하지만 현재진행형인 파렴치도 있을 것이다. 결혼날짜 정한 것처럼 하도 기가 막혀 가슴속에 묻어두고 산 내 못된 버릇은 얼마나 많을까. 牛耳讀經, 굳혀진 내 생활과 사고방식에 손을 들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 심성이 애초 이기적이라지만 평생 반려자에게만은 헌신적인 태도가 필요할텐데 오히려 아내한테 믿거라 하며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게 마련인가 보다. 주변사람들에겐 눈치를 보며 다소 배려하는 면이 있지만 아내한테는 다 이해해주겠거니 하며 내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종교적 측면에서 나는 마치 이유없이 투정부리는 철없는 아이처럼 굴었는지 모른다. 결혼 6년째 되는 해, 나는 기존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이단시하는 통일교재단의 세계일보로 직장을 옮겼다. 물론 나는 주변의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기성교인의 독선과 오만함을 비웃었다. 다행히 아내는 아무 말없이 나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따라서 아내의 친지, 친구들이 무슨 말을 쑥덕거리는지 내가 신경쓸 바 아니었다. 나는 세계일보의 대변자가 되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열심히 자신의 신앙생활을 했다.
몇 년뒤 세계일보에 통일교인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고 이에 자발적 사표를 던질 때도 아내는 입사할 때와 같은 태도였다. 다만 홀가분해진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때서야 그동안 아내가 느꼈을 감정들을 잠깐 생각해보았을 뿐이다.
그런 내가 요즘 다시 통일교가 주관하는 세미나 등의 행사에 참여했다. ‘나는 통일교인이 될 수 없다’는 전제가 서 있기에 마음 편히 참석했고, 경비 안들이는 여행 및 세미나가 재밌었다. 또한 세계일보와 통일교에 대한 인식 역시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가 가지를 칠 때는 모두 이단이었고 통일교 역시 한 분파이며 제대로 좀더 오랜 세월 지탱하면 누구나 고상하고 품위있게 여기는 종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심지어 20년 기자생활을 했으며 현재 미디어 원론을 강의하는 사람이 ‘통일교가 만드는 신문은 통일교 색채가 있어야 된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이 각각 나름대로 색채를 내듯이 세계일보는 통일교 사람들이 들어와 통일교 색채를 띠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통일교인이 언론을 점령한다’며 사표냈던 때와 이율배반적이다.
아내는 통일교 해외세미나를 떠날 때도 조용히 짐을 꾸려 주었다.
“즐겁고 편하게 여행하고 돌아와요!”
아내가 주변사람에겐 ‘통일교 해외세미나’에서 ‘통일교’를 빼고 말했을 것이란 짐작이다.
*“아내의 종교를 믿어보자!”
내가 파렴치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아내의 신앙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이다.
아내는 차례나 제사같은 행사에 나보다 더 성의를 보였다. 제사상에 올려놓을 각종 전(煎)을 상차림만큼만 구입하자고 하면 ‘제사상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며 기독교신자인 그가 오히려 나를 무색케 했다. 일요일에 교회대신 산에 가 절을 찾고, 술을 퍼먹어도 자신의 기도가 부족하다고만 느꼈는지 마음 편하게 내 생활을 즐기게 해주었다. 다만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믿지 않아도 아내가 기도에 열중하는게 보기 좋았다. 새벽기도 등 너무 열성적인 것에 때론 거부감이 있었으나 차츰 아내의 구원과 위안을 믿고 싶게끔 되어 갔다.
아내의 기도가 주효했던 것일까. 어느날 순간적으로 아내에게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으로부터 느껴야 할 감흥(?)을 아내에게 받은 것이다.
“팔푼이 소리를 들어도 좋다. 천사는 하늘에 있는 젊은 처녀가 아니다. 나를 한없이 감싸주는 아내가 바로 천사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내겐 천사임에 틀림없다”
이기심 덩어리인 나에게 변함없이 대해준 데 대해 미안함, 죄책감, 무능함, 부끄러움 등이 몰려온 순간, 나는 즉흥적으로 “아내의 종교를 믿어보자”고 결심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기도 하는데 내 천사를 위해 교회에 같이 못나가랴!
성경을 들고 아내의 교회에 따라 나섰다. 새신자 등록을 하고 몇주 개근한 결과 꽃다발 받고 축하찬송 들으며 목사님과 기념촬영도 했다. 목사님 설교를 열심히 메모하는가 하면 펄벅의 ‘풀어쓴 성서이야기’을 단숨에 읽어내며 성서지식을 익혔다.
그러나 아내를 천사로 보고, 종교를 같이하자 한 결심이 순간적, 즉흥적 일이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따뜻하게 느껴졌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던 교우들의 환대가 부담스러워졌으며 근본적으로 성경말씀이 와닿질 못했다. 내 믿음보다는 아내를 보고 교회에 다니자는 애초의 결단은 쉽게 허물어져 갔다.
이윽고 아내에게 내가 교회에 나갈 조건을 새삼 제시했다. ‘함께 산에 다니면 교회에 나가겠다’는 핑계를 댄 것이다. 정신건강도 좋지만 아내가 무엇보다 신체건강이 절실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교회출석 명분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무조건’에서 ‘아내 건강을 위해’로 바뀐 것.
하물며 나는 등산복 입고 예배보는 교회를 발견하고 이곳에 함께 출석하자고 아내를 설득하기도 했다. 대모산 자락 밑 아늑한 곳에는 일원동교회라는 아담한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데 ‘등산복으로 예배보세요’라는 교회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구원받는 것 보다 산 좋아하고 아내 환심을 사기 위해 교회나가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교회같았다.
결국 교회 나가기 싫어 만든 핑계가 성공을 하게 되었다. 함께 산과 교회를 찾은 것은 몇번 되지 않았다. 차츰 각자의 산과 교회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서로 융화되는 신앙심
내가 아내의 종교를 존중하는 사이, 아내 역시 나에게 동화되는 일면도 생겼다. 원래 성향이 있었겠지만 아내는 틱낙한, 달라이라마, 법정스님 등의 불교 명상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아내 마음 속의 예수가 부처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찬양과 기도와는 다른 차원의 道師나 추구하는 깊은 명상을 즐기는 듯 했다.
때론 나처럼 ‘十二支干으로 보는 오늘의 운세’와 꿈해몽에도 관심을 가졌다. 애들에겐 사주팔자와 관상, 占卜 등을 믿지 말라고 하지만 내심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주변상황이 난감하거나 괴로워질 땐 점쟁이라도 찾아가고 싶은 듯 솔깃해 했다.
최근 나온 책 ‘서양인의 한국 종교 연구’(서울대 김종서 교수편)엔 우리의 이러한 일상적 종교생활이 연구대상이어서 흥미롭다. 아버지는 절에 다니고 아들은 교회 가는 것도 연구대상이라는 것. 또한 각 종교가 주장하는 신자수가 총인구보다 많은 것은 단순히 숫자 부풀리기가 아니라 중층다원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 가족 안에 여러 종교 신자가 혼재하고 기독교인이면서도 자녀 결혼때는 사주, 궁합을 보고, 택일하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이 한국종교의 특징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현재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나의 노모가 다시 택일해 주신다면 크리스마스를 피하실까. 되도록 피하시겠지만 사주에 최고의 길일이라면 갈등을 느끼시리라. 아내 역시 비슷하게 되지 않았을까. 좋게 보면 한국의 종교생활이 다른 종교를 수용하는 삶에 익숙해 종교 선진국이랄 수 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25년 나와 융합하려 애써 온 아내의 종교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북내비게이터대표. 미디어강사)
첫댓글 민형아, 아내를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야... 너 자신을 위해서 가야 해. 그 것이 결국 아내를 위하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가까워졌구나... 축하한다.
결혼 기념일은 절대로 안잊어먹겠다~ ㅎㅎ 어머님이 며느리를 좇았으니 민형이도 아내를 따를날이 멀지않은듯~
같은 기독교에, 같은 교회에서 청년회장과 부회장으로 만난 나와 아내이지만,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이 워낙 달라서.. 민형이만큼은 아니라도 많은 해프닝이 있다. 성수주일, 새벽기도, 십일조, 교역자대우등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보수적인 신앙'을 나타내는 아내와 '날나리 신앙'같은 나... 융화되고 더 나아가서 남의 표현과 방법까지 포용하는 넓이에서 형식의 다름은 안보이고 내용이 같음이 보이겠지..
도사 운운하는 사람들은 道師 아니다. ^^ 그러나 민형은 진짜 道士 같다. ^^
민형아 위에 쓴 댓글은 그저 말 장난 한거고 다시 음미하며 찬찬히 읽어보니 종교로 고민한 궤도가 나와 비슷하여 많은 공감이 간다. 민형이 참 좋은 반려자를 만났구나. 그런데 정확한 道師의 의미를 알고 싶다. 좋은글 고맙다.
어차피 종교는 인간을 위한거지 神을 위한게 아니니까 아주 파렴치한 사이비 종교 빼고... 아무튼 민형이는 천사를 얻었으니 그게 축복이네 !!
우리의 영원한 호프 민형이가 무슨 새삼스레 미안, 죄책감, 무능 등등... 이냐? 민형이 답지 않은 관점이구나. 예수님 탄신일에 결혼했으니 크리스챤으로서 가장 행복한 날 축복을 누린 것이니까 도리어 은나씨와 함께 기뻐해야지. 아마 예수님도 그걸 더 좋아하실 거다. 등산 문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도 요즘 성당을 자주 빠지거든... 고백성사봐야하는 불편은 있지만 사람사는 데 어떻게 꼬박 주일만을 지키냐? 나이먹을수록 부처님이 좋아지더라. 절에 매주 오라고 안하시니까... ㅎㅎㅎㅎㅎㅎㅎ
참~ 민형 글을 본 뒤, 20여년전의 내 결혼식 모습이 떠오른다. 퍽 당황했던 추억이지. 오랜 세월 부끄러움, 자책감을 느껴왔던 일이지만 이제는 나를 용서(?)했다. 나중에 틈나면 에피소드로 그 얘기를 올려볼까 싶다. ㅎㅎㅎㅎㅎㅎ
요즈음 잘 나가는 사찰에서는 새벽예불도 하고 매주 모이는 곳도 있다던데... 능인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