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소나무들이다. 절문을 들어서자 봄내음보다 먼저 그들이 길손을 맞는다. 300년이 넘는 수령에 걸맞게 하늘을 가린 키 큰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 절집을 에워싸고 있다. 한참을 거닐어도 끝나지 않는 숲길은 때때로 계곡과 바위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기도 한다.
천년고찰 은해사는 그 속에 자리하고 있다.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날 때면 그 광경이 마치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하다 해서 은해사(銀海寺)라 했다는 이야기가 절로 떠오르는 풍경이다.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가자 담장에 둘러싸인 절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강정기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조선 4대 부찰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은해사의 담장 안 풍경이 궁금해진다.
송림 우거진 진입로.
보화루 누각 아래로 들어서자 대웅전과 늙은 향나무, 담소를 나누는 스님들의 모습이 마치 프레임 속 풍경처럼 잡힌다.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심검당과 설선당, 그 주변으로 흩어져 있는 여러 건물들이 은해사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으나 어째 좀 들쭉날쭉해 보인다. 어느 자료에선가 읽은, 은해사는 큰 절집이긴 해도 많은 건물들을 고치고 옮기고 새로 지었기 때문에 서로 어우러지기보단 부자연스런 모습을 남기게 됐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웅전 아미타삼존불.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출발했으나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돼 중창과 중수를 거듭했다. 특히 1847년 헌종 13년에 일어난 화재는 은해사 창건 이래 가장 큰 불로, 극락전을 제외한 1,000여 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됐다고 한다. 이후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이 중창됐는데, 이 때 다시 지어진 대웅전과 보화루, 불광각의 3대 편액이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다.
추사는 안동 김 씨와의 세도 다툼에 패해 55세 때인 헌종 6년(1840) 제주도로 유배돼 9년 세월을 보낸 다음 헌종 14년(1848)에 방면돼 다음 해 봄 64세의 나이로 한양에 돌아온다. 유배중에 불교에 깊이 귀의하게 된 추사는 영파대사의 옛터이며, 또 자신의 진 외고조인 영조대왕의 어제 수호완문을 보장하고 있는 은해사의 새 전각들에 기꺼이 글씨를 써준 것으로 추측된다.
추사 친필.
누군가는 은해사에서 추사의 친필을 접한 것만으로도 큰 안복을 누렸다고 행복해한다. 대웅전 편액만 바라보다 돌아서도 흐뭇하다고. 그 느낌이 좀체 와 닿지 않는 이들이라면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의 설명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눈여겨 볼 일이다.
성보박물관.
"무르익을 대로 익어 모두가 허술한 듯한데 어디에서도 빈틈을 찾을 수가 없다. 둥글둥글 원만한 필획이건만 마치 철근을 구부려 놓은 듯한 힘이 있고 뭉툭뭉툭 아무렇게나 붓을 대고 뗀 것 같은데 기수의 법칙에서 벗어난 곳이 없다. 얼핏 결구에 무관심한 듯하지만 필획의 태세 변화와 공간배분이 그렇게 절묘할 수가 없다"
*맛집
은해사 종루.
근처 하양읍내로 나오면 다양한 음식점이 많다. 읍사무소와 우체국이 있는 중심가 주변이나 대구가톨릭대학 인근 상가에 안동찜닭전문점, 곱창, 삼겹살집을 비롯해 젊은이들을 겨냥한 퓨전음식점이 줄을 잇는다. ‘박가네 동태탕·찜’(053-854-4777)은 동태를 전문으로 하는 집답게 깔끔하고 깊은 맛을 낸다. 얼큰한 탕과 매콤한 동태찜을 찾는 이들이 많다.
*가는 요령
쌍거북바위.
경부고속도로 경산 IC에서 나와 하양 방면으로 향한다. 919번 지방도를 타고 청통면 - 은해사 주차장에 이른다. 가는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영천에서 진입할 경우 28번 국도를 따라 의성 방향으로 접어들어 호당리나 신덕리에서 좌회전해 919번 지방도를 따라 청통면 사무소 - 은해사에 이른다. 은해사는 행정구역 상 영천시에 속하나 지리적으로는 하양읍에 더 가깝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하양읍에서 출발하는 게 교통편도 많고 거리도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