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여 소개드립니다.
박정희 정권의 '조국 군대화'(근대화가 아님) 정책에 따른 병역기피자에 대한 대응과 당시의 병무청과 여호와의 증인의 관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6227.html
기사 내용중에 특히 눈길이 가는 몇 구절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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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에 따르면 1970년 13.2%에 달하던 병역기피율은 1973년 3월 특별조치법 발효 이후 0.3%로 급감했으며, 1974년에는 0.1%가 되었다. 5·16 직후의 병역기피자 수가 40만을 넘었던 것에 비한다면 10여년 뒤 병역기피자가 0.1% 이하인 200여명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사실상 병역기피가 근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유신체제는 ‘단 한 명의 열외’도 없는 총화단결을 원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공무원들을 달달 볶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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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기피자 일소를 외치는 박정희의 뜻에 맞추어 병무청은 1974년을 ‘병역기피자 일소의 해’로 정하였다. 병무청의 방침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 여호와의 증인들이었다. 한 예로 병무청은 1974년 7월 “올 들어 발생한 병역기피자는 모두 78명으로 이 중엔 종교적 양심을 빙자하여 병역을 기피한 여호와의 증인이 87.2%인 68명”이라고 발표했다. 여호와의 증인들만 아니면 병역기피율은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1974년 병무청의 단속실적을 보고받으면서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병무청은 1974년 12월12일부터 1975년 1월11일에 걸쳐 여호와의 증인대표 210명과 입영 간담회를 개최한 결과, 증인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그릇된 소행’임을 인정하고 병역의무를 수행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허위 보고를 올렸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결정은 어디까지나 성서에 입각하여 개인 개인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단 차원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병무당국으로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무청의 설득에 따라 병역의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기로 했다고 청와대에 허위 보고를 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 중에서 다수의 병역기피자가 발생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었다. 그 결과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 대한 병무당국의 불법적인 연행과 강제입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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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강력한 의지에 부합하여 기피율 제로를 꿈꾸던 병무청은 불법적인 강제연행을 통해 여호와의 증인들을 군대로 끌고 갔다. 이제 병역기피율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했다. 징병 연령대에 해당하는 남성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국가의 강력한 단속에 아랑곳없이 양심의 명령에 따랐다. 이들은 민간인으로 병역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군대로 끌려와 항명죄를 저지른 것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처리하는 국가기관의 최일선에는 병무청이 아니라 군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 결과는 김종식(1975년 11월13일), 이춘길(1976년 3월19일) 등 여호와의 증인 신도 5명이 군대에서 맞아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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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다시 언급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던 박정희의 명령은 이유불문하고 입영기피율 0% 를 달성하라는 것이 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의 주무부서였던 병무청은 이 목표에 명백한 걸림돌이 되는 '여호와의증인' 입영 거부를 해결하기 위해 '여호와의증인' 대표들과 약 한달간의 간담회를 가졌었다는 사실입니다. (1974년 12월 ~ 1975년 1월)
이 간담회 이후에 병무청은 상부에 여호와의 증인들 측에서 병역 거부가 그릇된 소행임을 인정하고 병역의무를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상부에 보고하게 됩니다.
기사에서는 이렇게 보고한 것을 상황을 오판한 병무청의 허위보고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안의 한국에서의 병역 거부에 대한 증인 조직의 행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증인 대표들이 병무청과의 간담회에서는 충분히 그들이 상황을 오판할 수 있을 만큼의 이중 플레이를 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신도들에게 병역 거부나 이행에 대해서 어떠한 식의 강요를 하거나 지침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 앞으로 우리는 신도들에게 적극 입영을 권장할 것이다." 라는 식의 말을 병무청 대표에게 교단의 공식입장으로 표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에, 집회에서는 이렇게 얘기했겠죠.
"앞으로 개인적 양심에 따라 병역 거부를 하더라도, 병무청의 징집 요구에는 적극적으로 순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서에서도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고 했으므로... 대신에 훈련소에서는 총기를 가지고 행해지는 훈련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떄문입니다."
어쨌든 한국 워치타워 지도부는 병역 거부 문제에 대해서 세상 권위와 절묘한 타협을 자행하였고 이에 대한 결과로 기사에서 서술된 상황이 초래되어 버린 것이죠.
이들은 민간인으로 병역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군대로 끌려와 항명죄를 저지른 것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처리하는 국가기관의 최일선에는 병무청이 아니라 군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다시말해, 이러한 타협의 결과로 워치타워 조직은 한국 내에서 조직 자신에게 향해 있던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칼날을 잠시 비껴나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대신로 그 칼날은 자신의 조직원인 젊은 증인 형제들에게 더욱 무자비한 형태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 내에서의 인권의 신장과 함께 병역 거부 절차에도 변화가 있게 되었고 위와 같은 이야기는 옛일로 뭍혀 버렸지만,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워치타워 교단의 속성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 ~ 15절의 내용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11 나는 훌륭한 목자입니다.+ 훌륭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영혼을 내줍니다.+ 12 고용된 사람은+ 목자가 아니고 양들도 자기에게 속한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합니다—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채어 가고 흩어지게 합니다+— 13 그는 고용된 사람이라+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14 나는 훌륭한 목자입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압니다.+ 15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영혼을 내줍니다.+
예수께서는 훌륭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영혼을 내준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워치타워 조직은 그 동안 조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양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실제로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 한국에서 그들 조직과 수뇌부들은 평온하였습니다만 그 양떼 중의 상당수는 이루 말로 다하지 못할 고난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람도 여럿됩니다.
그래놓고 한 다는 소리가 ... 과거 독일의 나치정권이나 소련의 공산정권을 포함한 폭압적인 독재 정권들이 증인들을 없에려고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그들은 없어졌지만 아직 증인들은 살아남아서 여전히 번창하고 있지 않은가 ? 이것이 이 조직이 하느님의 승인 받은 조직이 아닌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 이럽니다.
하지만 결국 밝혀질 수 밖에 없는 진실은 그들은 결코 요한복음의 '훌륭한 목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12절 이하의 '고용된 사람'에 불과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양떼들을 혹사하는 목자의 탈을 쓴 '사업가'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맞습니다. 그때 형제들은 죽을똥 살똥 모르고 하루하루 살았지요. 집회보는 회관에 쳐들와서 잡아가고 화장실에 벽뒤에 숨기도 했지요. 백마부대에서 죽을만큼 맞은 형제들이 부지기수 입니다. 아무 죄없는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워타는 대성통곡하며 각성해야 합니다. 그 때 맞아서 죽은 고 김** 형제의 명복을 빕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본의아니게 산소운반님께 가슴아픈 이야기를 되새기게 해드렸네요.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210명의 대표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 개인의 의견을 제대로 토론에 반영할 수 있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모든 과정과 결론도출이 미국 본부의 지도와 통제하에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통치체 여증말대로 군대도 안가고 집총거부했다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만 살판났을겁니다. 통치체뜻에따라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피값을 어찌하려는지..통치체는 여전히 건재하기만 합니다.
병역 거부를 가르치고 세뇌 시키는 동시에 철저하게 강조하는게 바로 개인의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문구 입니다.
과거에는 형제들에게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이라는 명분을 들어 국가의 명령인 징집에 응해야 한다 그러나
살인 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집 총 거부 등의 군사 훈련을 해서는 안된다 였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자 입대를 하여 지혜롭지 못한 불리한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 시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당시 병무청과의 간담회에서 증인 대표들이 거의 99% 우리는 신도들에게 국방의 의무을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린적이 없다
그것은 그들의 개인적 양심일 뿐이다 라는 식의 거의 같은 주장을 했을겁니다
그라한 이율 배반적인 증인 조직 대표들의 태도는 간담회 이후 병무청이 지도층 여호와의 증인들 측에서 병역 거부가 그릇된 소행임을 인정하고 병역의무를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상부에 보고 할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양심이란 워치타워 협화와는 별개로 형제들 개인 각자의 독자적인 신념이며 그 문제는 협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죠.
아주 가증스럽고 야비하기 짝이 없는 조직입니다.
위의 글은 많은 증인 형제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실거라 생각됩니다. 추천 합니다.
아참...저렇게 죽고 인생을 소진하다니..ㅠㅠ.......ㅠㅠ...
아주 야비하고 가증스런 경우를 당하고 나니 갤런트님의 글이 아주 이해가 잘됩니다.
잘 읽었구요 감사합니다~
참 가슴아픈 일을 당했던 그 때 그 형제들~~ 관념의 포로에서 해방되어야 할텐데....
이 내용은 저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게 소위 신권전략이라는 이중적이고도 위선적인 워타의 정책때문에 형제들이 큰 해를 입었죠. 당시 군사정권이 중립을 지키려는 형제들을 오판(즉, 교단은 군대에 가도 좋다고 하는데 니들 개인들이 말을 안들어서 그렇다는둥, 아니면 교단에서 니들을 방치했으니가 이젠 개패듯이 해도 되겠다는) 하도록 만든 사건이지요...정말 워타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집단입니다...그나저나 이 책을 쓴 한홍구씨는 증인들의 이런 슬픈 내막을 알고는 있을까요? 협회홍보부 홍영일 형제(서울대 동문)자료는 확인도 안하고 바로 인용한다는 말도 있던데...
그때 그시절.... 왕국회관에 보안사 직원들..군인들이 연단에 군화신고 올라와 마이크잡고 협박하던 시절이엇지요....
ㅠ ㅠ 제 다리엔 그때 부대에서 당한 폭행의 흔적이 아직도... 몸은 또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들은 민간인으로 병역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군대로 끌려와 항명죄를 저지른 것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처리하는 국가기관의 최일선에는 병무청이 아니라 군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것이,.. 그렇다면 전두환,노태우,김영삼,심지어 노무현떄까지만 해도 군대에서 강제로 끌고가
항명죄를 저지르게 한것일가요?
저를 포함한 수많은 증인들이 자진입대하여 집총거부를 해 항명죄를 성립했는데.. 무슨 저런,.ㅎㅎ
유럽에서는 이미 대체복무도 반대했고...심지어 전도봉사하는것을 대체복무로 인정해주겠다는 제안마저 온전한 충절운운하며 거절한 워타수뇌부
들이였죠.. 암튼 저런 이중플레이에 꽁 징역 3년게 억울할 뿐입니다.
하물며 과거 고문으로 정신적 트라우마와 불구..사망한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저런 살인자 워타 수뇌부영감들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랍시고.. 중립,충절 운운하는것이 역겹기만 합니다.
@상위1% 저도 3년형 받고 중립 지켰는데.상위님께서도 3년형 중립 시절 시대 분이시군요?반갑네요.어쩌면 같은 교도소 동기 일수도 있겠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