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계절의 한복판 시간마저 숨을 죽인 듯 고요한 논산 명재고택을 방문하였다. 수백 년 세월을 견뎌낸 묵직한 기둥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며 번잡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잠재워 주고 고택 입구 연못에는 하얀 연꽃이 단아하게 피어나 반겨주었다. 진초록 연잎 사이로 피어난 연꽃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깨끗한 품위를 잃지 않고 잔물결 따라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연못을 지나 고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한 여름의 정점을 알리듯 배롱나무의 붉은 꽃물이 눈부시게 펼쳐지고 있었다. 빛바랜 기와와 예스러운 툇마루 앞에 흐드러진 배롱나무꽃은 고택의 기품과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이루고 바람에 흩날리는 진분홍 꽃잎은 오랜 옛이야기를 소곤거리는 듯했다.
마당 한편 따스한 볕을 머금은 정갈한 항아리들은 이 집이 품어온 세월과 삶의 온기를 묵묵히 전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나지막이 자리한 초가지붕의 소박한 선은 기와의 매끄러운 멋과 어우러져 가슴 한구석에 깊고 따뜻한 쉼을 선사해 주었다.
단아한 연꽃과 화려한 배롱나무꽃 세월을 품은 항아리와 정겨운 초가지붕 명재고택의 여름 풍경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볼거리가 아니라 지친 영혼을 다독여 주는 한 편의 서정시였다.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마음 깊이 품어 안은 이 고요한 쉼표 하나가 오래도록 짙은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