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생이 감겁(減劫)을 만난 탓으로, 강보(襁褓.아이용 포대기 즉 유아기를 말함)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일찍 죽는 경우가 절반을 차지하는데, 우리들은 20여 세의 나이가 되도록 살고 있으니, 이것이 첫 번째 행운이다.
우리들이 우학(于學)이 되기 전부터 이런 창황(蒼黃)한 시대를 만났는데도, 끝내는 어버이가 남겨 주신 몸을 잃지 않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행운이다.
진묵겁(塵墨劫.오랜 시간) 이래로 흩어져서 제취(諸趣)를 돌아다니다가, 침개(鍼芥)가 서로 만나는 것처럼 이 정법(正法)을 만났으니, 이것이 세 번째 행운이다.
화택(火宅)의 하루살이요 포환(泡幻)의 신세라서, 한 달 중에 입을 벌리고 웃을 수 있는 것이 몇 번도 안 되는데, 우리들이 함께 선산(仙山)에 거하면서 법회에 동참하여 담소하며 함께 노닐고 있으니, 이것이 네 번째 행운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가 되는 등 어버이가 주신 몸을 제대로 보전하여 돌아가는 자가 거의 드문데, 우리들은 이목이 총명하고 남자의 전형을 갖추어 사람들의 버림을 받지 않으니, 이것이 다섯 번째 행운이다.
이 다섯 가지 행운을 갖추고 있으면서, 금수(禽獸)처럼 헛되이 살다가 죽어서는 안 될 일이다. 바라건대 우리 벗들은 다시 그동안 모아 놓은 것을 아끼지 말고서 천지 성현(聖賢)의 망극한 은혜를 갚도록 할 것이요, 국가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며 천하의 태평을 이룰 것이요, 이와 함께 무량(無量)한 세월에 걸쳐서 우애하는 형제로서의 인연을 계속 맺을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 좋은 벗들은 다시 고개 돌려 스스로 생각해 볼지어다.
註: 이 글은 사명당이 20여 세때에 동년배의 출가자와 갑회(甲會)를 결성하면서 지은 것이다.